일터

[11년|10월|노안활동가에게듣는다] “틀에 갇히지 않는,경계를 넘는 활동으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이태영 정책국장
▴정리 _ 선전위원 흑무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면 인터뷰 대상자에게 다시 원고를 보낸다. 내가 왜곡한 것은 없는지, 중요한 내용인데 빼놓은 것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인쇄를 건다. 편하게 얘기하시라는 의미로 그에게 ‘인쇄 걸기 전에 원고 보내드릴께요’ 라고 하니 그는 ‘피드백은 없어도 된다’ 했다. 구구절절 한들 간결명확 한들 십 년 동안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이 있고 사람들이 가진 태도, 생각, 선입견들은 쉬 바뀌지 않는다며 각자의 프레임대로 볼 것이라고 했다. 옮겨 적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래서 더 어렵다.

-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에 2011년 4월 1일자로 복귀했고 정책국장을 맡고 있다. 나는 노동안전보건국장을 맡았으면 했는데 그렇게 안됐다. 조합의 여력도 없고 ‘노동안전보건 국장’이라는 직함이 공공운수 노조에서 전례가 없었다고 한다. 정책국장의 직함을 가지고 노안사업과 정책생산의 역할을 맡고 있다. 회의가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바쁘게 살고 싶지 않은데 바쁘게 살고 있다.
성격상 일을 시작하면 무섭게 빠져드는 편이라서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집안일이나 주변 사람을 두루두루 챙기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고민도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다는 바램이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의 건강권 관련 요구는 무엇이 있나

2011년 6월 24일 창립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아래 공공운수노조)은 공공, 운수, 사회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산별노조이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기업 노동자 / 화물, 버스 등을 운전하는 운수부문 노동자 /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노동자 / 보육, 간병, 요양,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 /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대학교, 대형건물 등에서 청소,시설관리를 하는 노동자 / 문화예술, 전기기술분야, 경제사회단체 등에서 일하나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출처 -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홈페이지>
궤도, 발전 등을 제외하고는 산재보상보험법이든 산업안전보건법이든 어느 한 쪽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무직이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되지 않는 사업장이 굉장히 많다. 안전, 보건의 측면에서 1차적인 보호막이 없는 노동자들이다. 또 특수고용노동자들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더 개방되어서 이들의 치료받을 권리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무직, 특수고용, 하청, 감시단속노동자들이 보호받을 길은 막막하다. 치료받을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산재 관련 상담전화는 조합으로 자주 걸려오나
산재가 발생했을 때 조합으로 상담전화가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산재가 발생하면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 하청, 감시단속 노동자들은 원청이건 소개소이건 싸워야 한다. 두 번째는 회사의 지원 체계가 잘 되어 있는 경우다. 지원 체계가 잘 되어 있지 않더라도 산재가 발생했을 때 혼자 처리하는 것이 이익일 때가 있다. 경영평가 같은 것을 할 때, 산재가 발생했다고 하면 감점을 받게 되니 만인이 인정하는 사고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혼자 처리하게 된다. 오래된 관행이다. 간부들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운수조합원들의 문제는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 너무 어렵다. 금속노조의 경우 ‘공장에서 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조건 등이 너무 다르고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 올해 계획하고 있는 사업은
사업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크게 두 가지다. 각 지부(단위노조)에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체계를 확인하는 기초 조사가 시급하다. 둘째로는 교대-야간노동 실태조사를 간단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근무형태, 노동자 수, 노동시간, 임금 등을 파악해서 교대-야간노동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향을 확인하고자 한다. 사회적 관계는 어떤지, 일상생활은 어떤지에 대해서 우선 지부, 지회를 중심으로 다음 달에 설문지를 돌려 자료를 모아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조사에 대한 계획을 세워서 내년에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조사를 할 예정이다.
보통 노동조합들은 노동뿐만이 아니라 생활-사회 분야의 기초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료가 필요할 때 굉장히 많은 문항을 담아서 조합원 설문조사를 하는데 이것은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지금 계획으로는 2-3년에 한 번씩, 연속적으로 조사해서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자료를 축적할 예정이다. 이런 기초 조사를 하고 자료를 축적하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그간 노동조합들은 자료를 가지고 경향을 파악하고, 방향을 정하고, 사실 속에 이야기(진리)를 찾아내고 추론하는 방식보다는 ‘양치기 소년’ 같은 방식을 주로 써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조합원들의 현실이나 변화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기초조사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14만 명 중에 10%의 이야기라도 제대로 축적하고 확인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자료가 될 것이다. 다만 조합원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조사 내용을 잘 정해야한다. 편중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철도에 오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 있어 2001년 8월에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정식채용은 아니었고 일종의 상담자, 조언자 정도의 역할이었는데 철도 집행부가 노동안전보건 사업이 만만치 않은 사업이며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 당시에 몸이 안 좋아서 쉬려고 했었는데, 철도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맡기로 한 사람이 막판에 안 한다고 해서 내가 하게 되었다.
얻은 것이라면... 직무사상사고가 4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2002년에 직무사상사고가 40명이 넘었다. 한 해를 거의 장례식장에서 보냈다. 그전에는 어용 집행부라 장례식장에 가지도 않았었고... 개가 죽어도 3백만 원이라는데 철도 노동자들은 그만큼의 보상도 못 받은, 죽은 사람만 억울할 때다. 싸우면서 보상 교섭하는 일을 1년동안 반복했다.
지금은 직무사상사고가 1년에 한 건, 두 건 정도다. 조합이 잘 한 건지, 사측이 정신을 차린 건지, 어쨌든 외형적으로 가장 큰 성과다.

-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학생 운동하다가 수배생활을 굉장히 오래하게 되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사면복권 등으로 다들 정리가 됐는데 나는 그 때도 수배 중이었다. 감방에 갔다와서도 집행유예 상태이니 뭘 할 수가 없었다. 현장에서 뭘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시간을 좀 벌어보려고 대학원 공부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나에게 이 분야(노동안전보건)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 셋이 있다. 아내, 마창 산재추방운동연합의 이은주 선배, 당시 대우조선 산안부장이었던 김정곤 동지다. 이은주 선배는 '노동안전보건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대학원에 가려면 이쪽으로 가라, 누가 알아주진 않지만 노동자들의 삶과 밀접한 분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얘기를 듣고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니, 이은주 선배는 김정곤 동지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서 97년 노동자 대회 때 김정곤 동지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말 그대로 술을 ‘디지게’ 먹고 대학원을 산업보건 쪽으로 택하게 되었다.

-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해보니 어떤가, 어려운 점은
후회한다,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시작한 것을...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슴이 아프다는 건, 10년 전이나 15년 전이나 바뀌지 않은 노동자의 현실이다.
전체 운동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분위기와 별개로 보더라도 노동안전보건활동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축소시키고 있다. 지금도 -과거에도 그랬지만- 개인의 정치적 성향, 의식, 의지와는 상관없이 굉장히 협소한 부분으로의 활동을 요구받고 있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 스스로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조직이든, 정책이든, 선전이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개인 혹은 집단 안에 이런 내용들이 켜켜이 쌓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갈등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런 지향들이 있었다. 전체 조직 일정을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내용을 가진 조직가로 서는 것 말이다.
지금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은 노동안전보건 활동만 한다. 노동안전보건은 노동운동 전체이기도 하고 그 전체의 일부가 노동안전보건이기도 한데 말이다. 노동안전보건은 스스로의 영역을 점점 축소시켜나가고 있다. 전문적 내용이 필요한 부분만 부풀어 오르고 있다. 기형적인 발전형태다.
노동자들의 건강이라는 것이 사회적 의제와 떨어져있는 게 아니다. 서로 공부를 하거나 참여를 하거나 해서 서로의 논의를 듣고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은 그런 데에 잘 가지도 않고, 또 그렇게 흘러오다 보니 그쪽 분야에서도 찾지 않는다. 노동안전보건과 노동조합의 의제들에서 둘의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사업을 하면서 노동안전보건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데 이 둘이 따로 가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활동가들이 진행하면서 노동조합 집행부를 비롯한 조합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계획을 세워야하고, 연구/사업결과를 보고 누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며 세운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그런 건 없다. 그 때 그 때 다르다.

-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체계로부터도, 현실 상황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상상하고 고민해야한다. 제안을 받는 수동적 입장에서 제안을 하는 입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기억나는 활동이 있다면 잘했든 못했든 만 10년, 나의 30대를 보낸 곳이 철도다. 그래서 기억나는 투쟁, 활동, 이야기들 모두 철도에 관련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반절만 철도에 쓰고 반절은 다른 일 할 걸 싶다. 철도에 있는 동안 철도 밖의 활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에게는 어찌되었든 10년 만에 나타난 사람이다. 이 10년에 대해 나도 아직 잘 정리하지 못했다.

- 앞으로 이태영동지의 삶은 어떻게
‘이전보다는’ 많은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고 싶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것들, 배우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다. 많이 소진되어 있는 내 안을 채우고 자극하는 일들을 찾아보고 싶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일을 벌리지 않으면서 조심 조심 일하고 싶다. 사고 안치고. 하하,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목조주택 짓는 것을 배우고 있고 황토 집 짓는 것도 배우고 싶다. 내가 상당히 기계치인데 잘 돌아가던 기계도 내가 손 대면 고장 난다. 나이 먹으면 돈도 별로 없을 텐데 집 짓고 고치고 하면서 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더 지나면... 노동조합 활동은 그만하고 싶다. 내 몸 안에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때.

그의 말은 날카롭기도 했고 말과 말 사이를 침묵이 대신하기도 했다. 어떤 질문에는 따라 적기 벅차게 말을 쏟아내기도 했고 어떤 질문들에는 한 줄도 답하고 창 밖을 내다 보기도 했다. 그 말과 말 사이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볼 수 있을까 하며 던진 ‘어떤 활동가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변화구에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 정도’라 했다. ‘노안활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직구에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는 알려나, 죽기 전에는 알아야 할 텐데’라며 공을 되돌려 주었다.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다들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얽매이거나 하지 말고... 푸는 것도 스스로 풀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는 별로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란다.
이태영 동지는 한노보연 회원이지만 TV에서 철도 관련 뉴스가 나올 때 화면을 통해 그의 옆 얼굴을 잠깐 본 것 말고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연구소 회원과 데이트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와 그를 잘 모르니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할 수 없다는 걱정을 양손에 쥐었던 인터뷰였다.
공공운수노조에서 같고도 다른 활동을 시작한 이태영 동지의 인터뷰를 3년쯤 후에 다시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삶과 활동은, 우리의 노안활동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2011년 6월 24일 창립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아래 공공운수노조)은 공공, 운수, 사회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산별노조이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기업 노동자 / 화물, 버스 등을 운전하는 운수부문 노동자 /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노동자 / 보육, 간병, 요양,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 /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대학교, 대형건물 등에서 청소,시설관리를 하는 노동자 / 문화예술, 전기기술분야, 경제사회단체 등에서 일하나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출처 -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