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10월|칼럼] 전국노동자대회, 감격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한노보연 회원 김 재 광


전국노동자대회. 한때는 대회에 참가하는 자체가 감격스럽고 군중 속에 있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오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쯤부터 인가, 명절에 성묘 가듯 의무적 혹은 관성적으로 대회에 가게 되었고 대회 속에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일 때가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열정이 식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10년을 넘게 참가하다보니 모든 것이 식상해진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과거의 감격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했던 것일까?

전국노동자대회, 그 역사성은 자못 훌륭하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기운은 전국노동자의 연대 투쟁과 조직을 원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안은 1988년의 첫 대회는 전태일 열사 정신을 다시금 역사의 수면 위로 올려놓았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 후 매년 대회는 그 해 투쟁의 기운을 모아내고 다음해 투쟁의 방향을 공유하고 결의하는 그야말로 투쟁의 장으로서 역할 하였다. 더불어 새롭게 조직되었던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에게 몸으로 전국노동자의 연대를 느끼게 하기도 하였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노동자계급과 활동가들에게 감격의 장이었던 이유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뿐 만 아니라, 단결과 연대를 통한 투쟁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고, 향후 투쟁의 방향을 공유하게 하였으며, 이것이 희망임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회는 갈수록 그 무대 규모는 더욱 더 커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오히려 열기는 식어만 갔다. 세상을 이끌 주체는 노동 ‘부문’ 으로 축소되었고, 대회를 통한 투쟁의 결의는 현장에 돌아
가면 별 달리 적용되지 않았다. 대회가 활력이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전국 계급투쟁이 현장에서. 지역에서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의 후퇴와 패배감의 확산은 당연하게도 대회의 흥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대회의 프로그램이 아무리 정교한다 한들 대회의 감흥과 감격은 도시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대회의 참가자가 구경꾼이 아닌 주체가 되어야만 흥이 돋고 기가 살 것인데, 주체는 대회 당일이 아니라 이미 삶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서있어야만 가능하다.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조합원이 주체로 서있어야 하고, 정치활동에 있어 주체로 서있어야 하는데, 최근 10년 여 간의 역사는 오히려 노동조합의 제도화와 비례한 전투성의 약화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격하시켰고, 정치는 역할론 (정치는 정당,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 굳어지면서 표를 행사하는 것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였다. 촛불항쟁과 희망버스의 대열에서 노동자계급은 시민 속에 노동자일 뿐, 투쟁의 큰 동력이 될 자기의 주요한 무기 ‘정치파업’을 손 놓아 버림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고유의 활력을 잃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자본주의는 눈에 띄게 휘청이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그 누구도 진화할 수 없어, 언제 무엇이 어떻게 터질 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 조차 ‘월가를 점령하자’는 운동에서 ‘계급전쟁을 진전시키자’는 구호가 공공연히 선전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역할이 요청되고, 필요한 시기이다. 전국노동자대회의 감흥과 감격은 바로 이러한 시기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정체성을 올곧이 세우고, 지역과 현장에서의 투쟁을 전국화해야만 다시금 찾아올 수 있다. 따지고 보니 전국노동자대회의 감격은 무대가 아닌 이미 참가하는 자가 지니고 가져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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