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가진 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25호|특집3]

"오야지가 도망가서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죠?"
"원청에서 받지"
"화장실이 더럽고 똥도 튀고 ."
"원청 놈들이 해줘야 되는데, 지들은 수세식 화장실 쓰면서"
"이 현장은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노동조합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원청에서 허락했나?"


현장노동자들이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현장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최고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직종이 다르고 고용된 업체가 다른 노동자들이 모두 현장에서 자신의 숨통을 죄고 있는 당사자가 원청사용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법리적 근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 당연한 요구를 법리적인 잣대로 가로막는다면, 그 잣대를 부러뜨리고 우리의 잣대를 새롭게 대야 할 것이다.

원청을 상대로 한 단협 요구와 쟁취는 공갈과 갈취?

경기서부지역 건설노동조합은 지난해 10여명이 수배되었고, 그중 세 명이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어 재판 중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게 속속 벌금이 떨어지고 있다. 그 죄명은 공갈과 갈취였다.

건설노동조합 간부들이 단체협약을 통한 전임비라는 명목으로 건설회사를 협박하여 지속적으로 돈을 갈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은 기아자동자 채용비리 사건과는 다르게 신문을 통하여 사회면에 개제되고선, 그 이후에는 잘 다루지 않는 내용이 되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노동조합 활동에는 실질적인 타격이 되었다. 이 내용은 원청과의 교섭 권한을 포함한 사용자성을 전면 부인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깔려 있다. 자본과 검찰이 말하는 "공갈"의 근거는 원청과의 교섭 권한이 없는 하청노동자 중심의 건설노조가 법적 근거도 없이 원청업체와 단체협약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렇게 체결된 협약에 근거한 전임비는 "갈취"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원청사용자 책임을 요구하는 이유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인정한 상태에서 건설 현장 조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렇다. 지난 2000년 건설노조가 원청과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받기 이전이 이러했다.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조직 활동을 시작하면 바로 해고한다. 1개 팀이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면 그 팀을 도려낸다. 한개 하청업체가 조직되기 시작하면 그 하청과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잘라낸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례이다.

건설노동자들은 각각의 다른 기능을 가진 노동자들이 하나의 현장에서 각각 다른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각기 다른 공정을 수행한다. 건설노동자들의 요구는 서있는 위치와 고용되어 있는 업체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고 하나의 요구를 할 수 있는 요소는 모두가 공통되게 건설현장의 하도급 구조에 의해 고통 받고 있으며, 그 핵심에 원청업체가 서있음을 명확히 할 때이다.

건설노동조합이 작은 역량으로 거대한 건설자본과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각기 흩어져 있는 건설노동자의 역량을 모아서 하나의 건설자본을 상대하는 전술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과 자본은 거꾸로 요구하고 있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하청 소속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권한을 가지지 못한 하청업체를 상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청을 상대로 하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원청사용자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투쟁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건설현장 뿐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세상은 건설 현장처럼 변화되고 있다. 건설현장이 중층적 하도급에 의해 신음하듯이, 일반 제조업 현장 또한 사내, 사외하청에 오야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름뿐인 사장만 무책임한 책임을 갖고 있을 뿐이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원청으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못하며, 원청업체에서 만들어놓은 내적 기준, 즉 노동조합 결성이나 파업 여부 등에 의해 고과점수로 통제된다. 문제는 그 지배 구조가 하청 업체에 대한 지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에게 미치고 있으며, 노동자로 하여금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소박해 보이지만 가장 잔혹하면서도 자본주의적인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연대로 원청사용자성 쟁취 투쟁!

이미 현장에는 정규직 이외에 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차별받고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경비직, 시설관리, 청소, 식당 등등에서 하청, 재하청, 파견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요구를 함께 모아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조직된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은 조합주의적인 경향에 많이 물들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기 보다는 정규직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 연연한다. 비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들을 더욱 조합주의적 경향으로 몰아간다. 그 조합주의적 경향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들의 배타적인 태도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공격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역량들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지 엄호하고, 주체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자본과 정권이 갈라놓은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차이를 떠난 연대투쟁이 요구된다. 그것은 하나의 조직으로 만났을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불법파견 투쟁이 이후 원청과 하청의 연대, 하청노동자들 간의 연대, 비정규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연대 가능성을 가늠하는 주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원청과의 단협을 쟁취하거나 원청이 인정하는 단체협약을 쟁취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넓어진 전선에 무기를 들 더 많은 주체들이 필요하며, 그 넓어진 전선의 적이 사실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적들은 우리에게 분산될 것을, 고립될 것을 강요한다. 적들의 분열공작과 각개격파 전술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더 거대하게 연대하고 투쟁하는 길이다. "원청사용자성 인정", 아니, "권한이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그것이 저들에게 쥐어진 우리의 숨통을 틔우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연대하고 함께 투쟁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투쟁이 원청을 넘어서 총자본과 그들의 권력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 경기서부지역 건설노동조합 조직1부장 최정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알고싶어요. (3)

Q.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어떤 사람이 가입해야 하나요?
A. 불안정노동을 철폐시키는 정치적 기획 속에서 함께 투쟁할 동지면 다 가입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복무하려는 모든 사람이면 됩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일차적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조합 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의 주체들, 각 연맹과 지역본부의 활동가들, 다양한 노동, 사회, 정치단체의 활동가들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모두가 오며 전국적 수준에서 상호 교류하고,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조직하는 것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입니다.
태그

노동조합 , 건설노동조합 , 단체협약 , 원청 , 건설자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철폐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