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사용자성 인정이 핵심이다. [25호|특집2]

1. '내가 자본가라면 '

노동조합에서 일을 하다보면 '내가 자본가라면 노동조합에 어떻게 대응할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실패하는 투쟁을 겪거나 잘 풀리지 않는 투쟁을 통해 조금씩 자본가의 노하우(?)를 알아가기도 한다. 내가 자본가로서 시작하는 첫 번째 작업은 파견노동자나 용역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본은 더 이상 정규직을 쓰지 않는다. 자본은 더 이상 직접고용 계약직을 쓰지 않는다. 자본은 개수별 실적관리가 용이한 노동자들에게는 사용자등록증 한 장을 발급해줌으로써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만들어 버린다. 그마저도 용이치 않을 때에는 직접부서 · 간접부서 할 것 없이 파견, 외주 · 용역화, 분사, 하청, 아웃소싱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사용한다. 아마도 파견업종 전면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근로자파견법이 개악된다면 이러한 추세가 무한대로 가속화될 것이다.


2. 시지프스의 노동과 같은 원청을 대상으로 한 투쟁

1) 경험으로 인식한 투쟁의 원칙

수많은 빌딩, 건물, 시설물 등에는 기능직, 경비주차직(보안직), 미화직 등 70여만 명의 시설노동자들이 지하에서 시설관리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의 90% 이상은 대부분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소수의 직접고용된 시설노동자들이라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자본은 기회만 있으면 용역 전환으로 위협하며 노동조건의 하락을 강요한다. 노동자들이 이에 저항하면 자본은 지체 없이 용역으로 전환해 버리고, 용역업체는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몬다. 조직되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 시설관리에 종사하는 직접고용 노동자들이라고 별다를 게 없는 것이다.

길게는 십수 년, 짧게는 수년 동안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은 간접고용된 시설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해왔다. 그러나 지난한 투쟁의 경험 속에서 원청이 아닌 용역업체와 맺은 단체협약이나 각종 합의사항은 업체가 바뀌면 휴지조각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1년마다 재계약되는 용역계약은 설사 대규모 용역업체에 정규직 형태로 고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경험으로 인식하였다.

시설관리노조는 이러한 경험과 인식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개별 용역업체와의 투쟁 속에서도, 단사 차원의 싸움이었지만 늘 원청을 대상으로 한 투쟁과 교섭을 중심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용역재계약이 있을 경우에는 원청을 상대로 고용보장, 단협승계, 노동조합승계를 관철시키고자 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청 시설물 점거, 지하 기계실 옥쇄투쟁 등 매 투쟁마다 각종 고소 · 고발과 손해배상 · 가압류로 점철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은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뒷받침되어서인지, 아니면 중소규모인 개별 자본이 폭력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해서인지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당해본 경험은 없다. 다만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수많은 투쟁 중에서 굿모닝신한증권이라는 대자본과의 투쟁과정에서 용역깡패의 침탈과 폭력경찰의 연행 등으로 2명이 구속되는 희생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각종 크고 작은 형사사건이 발생하였으나 투쟁하는 노동조합이라면 늘 있는 일일 것이다.)치열하게 투쟁해왔다.

2) 두 가지 경험 - 쓰라진 패배와 지난한 승리

시설노조의 수많은 투쟁 중에서 최근의 두 가지 사례(굿모닝신한증권지부투쟁, 부산대학교지회투쟁)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이 부정되는 현재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원청을 상대로 한 투쟁은 그 치열함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일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지부의 경우 그동안 반복되던 시설노조의 신규조직 건설과 투쟁과정을 일반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동시에 단사차원의 투쟁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굿모닝신한증권지부는 해마다 반복되는 용역계약 갱신에 따른 고용불안과 3년 동안 계속되었던 임금삭감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19명의 조합원으로 지부를 건설한 후 법에 정한 절차를 거쳐 원청과 용역업체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실질사용자인 굿모닝신한증권이 이에 응하지 않았음은 물론, 용역회사 또한 아무 진전이 없었던 교섭 막바지에 일방적으로 임금을 13.1% 삭감하여 지급함으로써, 결국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도록 벼랑 끝에 내몰았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지 두 시간만에(!) 원청은 면담 도중에 용역계약해지 통보서를 전달하여 사태를 악화시켰으며, 파업에 돌입한 이튿날 굿모닝신한증권은 노조의 요구조건을 수용할 계획이니 일단 건물의 냉동기를 가동시켜 달라는 요청과 교섭을 하자는 요청을 함께 하였다. 그러나 원청은 교섭 중에 비밀리에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경찰병력 투입을 요청하여 노동자들이 폭력적으로 연행당하도록 하는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

원청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굿모닝신한증권지부는 와해되었고, 핵심간부 2인은 구속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한 핵심간부와 열성조합원은 원청의 회유와 협박으로 스스로 퇴사하였으며, 필수인원 수명만이 원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용역업체는 변경된 채로 말이다.

부산대지회의 경우, 노조 조직력의 와해를 틈타 원청인 부산대학교의 암묵적인 주도 하에 조합원 61명 중 60명을 용역재계약 하루 전날인 12월 30일 전화 한 통화로 해고시켜 버렸다. 새로운 용역업체는 전직 북파공작원(H.I.D.)이 만든 한국경비청소용역업협동조합 소속 업체로 이미 해고된 조합원들의 자리에 합법적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해버렸고, 조합원들은 새해 첫날부터 해고상태가 되었다. 노조는 용역업체와의 투쟁보다는 원청인 부산대학교를 상대로 하는 투쟁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12월 31일 즉각 부산대학교 본관 총장실 앞 복도 점거농성에 들어갔고, 부산대학교 총장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원청에 대한 수차례의 대화요청을 묵살당한 노조는 투쟁수위를 높여 학사업무를 총괄하는 총무과를 점거하고 농성을 계속했으며, 총무과에서 철수하면 교섭에 응하겠다는 부산대학교측의 요청으로 총무과에서 철수하고 5층과 6층의 복도에서 농성을 지속했다. 그러나 교섭과정에서 부산대학교는 선별적인 고용승계만을 내세울 뿐이었다.

이틀 후 주말 새벽을 틈타 지회 조합원들과 서울에서 연대투쟁을 위해 방문해있던 조합원들이 있던 농성장에 100여명의 20대 건장한 괴한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북파공작원들이 침탈해 들어왔으며, 농성장은 폭력적으로 철거되었다. 이튿날 부산지역에서 달려온 연대대오와 조합원들, 그리고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용역깡패들과의 치열한 몸싸움 끝에 본관로비를 탈환하고 투쟁 수위를 높여 대학교의 상징적인 장소인 총장실을 점거했다. 이후 부산대학교와 용역업체, 그리고 노조 간 3자간의 지리한 투쟁과 교섭을 끝으로 본관 점거 50여 일만에 조합원 전원을 원직복직 시키기로 합의했다. 부산대학교와는 용역업체 변경시 조합원 고용승계 보장 쌍방이 제기한 모든 법적 고소 · 고발 및 진정 건에 대해 취하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아니하기로 합의하였다.


3. 원청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교훈

늘 그렇듯 원청(굿모닝신한증권, 부산대학교)을 대상으로 했던 투쟁이었지만 결과가 달랐던 이유에는 다음의 몇 가지 있다.

첫째, 원청자본의 성격이 상이했다. 부산대학교의 경우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사학으로 상대적으로 공공성이 강했고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됨으로써 전면적인 탄압을 할 수 없었고, 또한 노무관리의 치밀함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경우 기업 이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본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정규직 노동조합을 상대로 해왔던 노무관리의 치밀함에 노조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던 측면이 있다.

둘째, 각 투쟁에 결합하는 연대단위들의 차이이다. 부산대학교의 경우 연초부터 벌어졌던 주요한 비정규직 투쟁의 하나였으며, 부산지역의 연대단위들은 물론 부산대학교 내의 단위들, 즉 대학노조 부산대학교지부, 공무원노조 부산대학교지부, 민주화교수협의회,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의 연대투쟁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으로 부산대학교를 압박할 수 있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경우 노조의 투쟁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 동안의 자신감으로 초기에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데 소홀히 했었다. 투쟁 초기인 파업 2시간 후부터 용역계약해지를 비롯한 용역깡패 동원, 경찰병력 투입 등 예상치 못하게 신속한 탄압을 자행했던 원청의 대응이 연대투쟁을 조직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현장조합원들을 투쟁의 중심에 세우지 못했던 까닭으로 침탈 이후 지속적이고 완강한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원청을 대상으로 한 투쟁이 주체적인 역량 및 준비정도와 원청측의 대응 및 탄압 정도에 따라 승리하기도 또는 패배하기도 하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크고 작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원청과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느냐 아니냐이다. 사실상 원청을 상대로 하는 투쟁이 패배로 점철되거나 지난한 싸움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원청(실질사용자)의 사용자성 부정'이라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를 투쟁으로 돌파했던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보다 치밀해지고 신속해질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인 대응을 통해 단사차원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각개격파하고 고립시킬 것이다. 아니 자본은 이미 그렇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여전히 단사차원의 불법파견-정규직화 투쟁이나 원청이 보장해주는 고용안정 합의 등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는 전사회적이고 계급적인 요구로 '원청(실질사용자) 사용자성 인정'을 걸고 불법파견-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투쟁을 중심으로 투쟁전선을 재편해야 한다.


4. '원청 사용자성 인정'으로 투쟁전선을 재편하자!

연초부터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현대자동자, 기아자동차, 하이닉스-매그나칩 등 대공장 중심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지만 전면화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진정을 통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정규직화 투쟁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자본은 완전도급화로 맞서고 있다.(일부 단사차원의 투쟁의 정도에 따라 일부 노동자들이나 작업/공정이 정규직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세련되고 폭력적인 노무관리를 해왔던 거대자본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으로 저항하고 있지만 불법파견-간접고용-파견법이라는 전체 비정규직의 사회적 문제로 확대시키지 못하고 단사의 투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현 상태이다.

이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지역 업종 건설노동조합이나 시설노조 등 모든 노동조합이 각자의 현안을 갖고 치열하게 투쟁해왔지만 이 투쟁을 하나로 묶어 '원청 사용자성 인정'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원청사용자성 인정 투쟁' 전선을 만들고, 그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간접고용 노동자 모두는 더 이상 투쟁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그리고 간접고용이라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점점 많아진다. 무권리의 노동자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이 노동자들 모두가 힘을 다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원청사용자성 인정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투쟁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투쟁전선의 선봉에 서야 한다. 이것이 사내하청 노동조합과 지역 업종건설노동조합이 살 길이며,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이 살 길이다. 그리고 미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살 길이며, 전체 노동자계급이 살 길인 것이다.

필자|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교육선전부장 이동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알고싶어요. (1)

Q : "노동의 불안정화"란 무엇이고 어떤 투쟁을 해야 합니까?
A : 불안정노동자란 이전부터 상대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그러한 불안정한 특징으로 인해 최근 드러나고 있는 불안정화 경향에 더욱 심한 타격을 입는 노동자 집단으로 장애, 이주, 여성, 실업, 비정규노동자들을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지속되자 이와 같은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도 확산되고 있으며 운동진영에서 이에 대한 대응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무력화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칩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불안정화는 비정규직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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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간접고용 , 시설노동자 , 시설관리노조 , 사용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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