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호] 실질사용자의 법적 책임 인정투쟁

<36호>
실질 사용자의 법적 책임 인정 투쟁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노동법 개악 최종 일정이 4월로 넘어갔다. 민주노총이 순환파업을 하겠다고는 했으나 총파업 투쟁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4월에 국회 앞에서 열심히 모여서 개악 반대를 외친다 해도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노동법 개악 철회’를 주장해야 하고, 투쟁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노동법이 개악되면 그 중 파견법으로 인해서 이제는 간접고용이 일반화될 것이다. 자본은 파견회사를 만들어서 노동자를 그곳에 고용하고, 파견회사에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곳에 파견보내는 간접고용 형태를 선호한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회사가 모든 면에서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파견법 철폐’와 더불어 ‘실질적인 사용자가 법적인 책임을 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는 매우 절실한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 투쟁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과제가 아니었다. 투쟁의 주체가 이 문제를 절실하게 제기하지 못하니까 결국 실질적인 사용자의 사용자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사회화되지 못했다.
2006년에도 물론 실질적 사용자에게 법적으로 사용자 책임을 지게 만드는 투쟁은 전면화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공통 과제임을 확인하고, 주체들을 세우고, 이 투쟁이 왜 중요한지를 잘 알리기 위한 출발을 해야 한다.

1. 실질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며 노조를 무력화했던 시도들

실질적 사용자가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 못하면 노동자들을 탄압하거나 초과 착취를 하면서도 법적 책임으로부터는 한 없이 자유로운 자본가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말살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건설일용노조의 경우 2003년부터 공안탄압의 광풍이 몰아닥쳤다. 건설현장에서는 원청업체나 전문건설업체를 상대로 하지 않고는 임금체불 문제가 되었든 휴일 휴게시간 문제가 되었든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원청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자 임금을 지급받았는데, 이에 대해서 공안검찰과 건설사는 갈취와 공갈, 협박의 누명을 씌워 노조 활동가들을 구속하고 수배했다. 실질적인 사용자가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을 무시해가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한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사내하청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문제 등 모든 문제에 걸쳐 원청회사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하이닉스 등에서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이를 불법파견으로 이를 규정하고 노동부에서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것은 원청회사가 사실상의 사용주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업체들은 사실상 중간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원청은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마음대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간부들을 해고하고 업체를 통째로 계약해지 해왔다.
물론 노동위원회에서는 현대중공업의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인정해서 노조활동을 탄압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점을 명시했으나 여전히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사측의 노조탄압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고 있다.
굿모닝 신한증권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경우 파업을 시작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굿모닝 신한증권이 계약을 해지하고 자신들과 관계 없는 사람들이 자기네 시설물을 점거했다고 경찰을 부르는 바람에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파업은 깨지고 노동자들이 구속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계속 한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위탁업체만 계속 바뀐다. 위탁업체들은 단지 임금을 중간착취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간다. 노동자들은 그냥 있는데 고용업체가 계속 바뀌면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형편없이 떨어지는데 도대체 원청회사가 사용자가 아니라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자체에서 민간위탁된 노동자들이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조건에 영향을 완전하게 미치는 것은 정부의 예산이고, 도교육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적인 고용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직접적인 고용의 당사자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고용의 당사자가 허수아비인 용역업체라면 그 업체를 대상으로 교섭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내하청, 용역, 다단계 하도급의 건설 노동자 등 대부분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사용주는 사용주로서의 책임을 면책 받고, 오로지 허수아비에 불과한 업체만을 사용주로 인정하는 구조 때문에 모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원청은 용역단가를 낮추려고 하고 하청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낮추거나, 노동자들의 수를 줄여서 이윤을 더 많이 챙기려고 한다. 그래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형편 없이 떨어진다. 그 때 노동자들이 이 현실을 개선하려고 투쟁하려고 하면 실질적인 사용주인 원청이 계약을 해지하거나 고용계약 때 불이익을 주거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2. 실질 사용자 법적 책임 인정 요구의 문제점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인 줄 알지만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특수고용 노조들이 전국업종노조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쟁점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던 것에 반해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단위사업장 단위 노조로 묶여 있거나 지역으로 묶여 있어서 현장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력 해왔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원청에 대항하는 것보다 일단 하청 업체를 상대로 임금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일단 노조를 안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원청사용자 책임 인정투쟁을 발전시키지 못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2004년과 2005년에 금속연맹에서는 불법파견 릴레이진정을 통해서 간접고용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묶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불법파견 투쟁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지만, 원청이 사실상의 사용자임을 확증하는 투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투쟁은 전체 불법파견 사업장 공동의 투쟁으로 전환되지는 못했다. 대부분 단위사업장의 교섭과 문제해결로 국한되었고, 사회적인 의제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불법파견에 대해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감도 일정하게 있고, 정규직과 함께 했을 경우 단위사업장 차원의 문제제기와 투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본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계약해지, 진성도급화의 방식으로 피해가거나, 계속 시간끌기로 대응하면서 사실상 불법파견 전선을 무너뜨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불법파견으로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사실을 확증했으면서도 이것을 사회화하여 법적으로 책임을 지우게 하는 투쟁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불법파견 투쟁은 ‘실질적 사용자의 법적 책임 인정 투쟁’의 핵심적 고리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최근 실질적 사용자의 법적 책임 인정 투쟁에서 두 가지 현상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건설업의 ‘시공참여자제도’1)에서 알 수 있듯이 다단계 하도급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업체만을 실질적인 사용주로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구상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건설업체의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사용자로 만들어서 4대보험, 체불임금, 산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악랄한 제도이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책임과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을 분리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낸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소송에서 노동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은 없지만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방해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는 그에 기반하여 다시 현장으로 진입하여 노조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책임은 인정하고 있으므로 함부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못할 것 같지만 대단히 제한적으로만 책임이 인정되고 있고, 근로기준법상 인정이 안 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부당노동행위인 부당해고는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개정된 최저임금에서도 원청이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일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본과 정권이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후 계속될 기업들의 다단계 하도급화, 외주화의 구조와 제도를 정비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대응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3. 2006년 간접고용 투쟁의 방향

올해 간접고용 투쟁에서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첫째는 실질 사용자 법적 책임 인정 문제가 현재 비정규직인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민주노조운동에 이해시켜야 한다. 지금 자본과 정권은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외주화이고 중층적 하도급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변화시켜나갈 때, 그래도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기본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실질 사용자 법적 책임’이 확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 KTX 승무원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다. 실질적인 사용주인 철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온갖 개입을 다 하고 있으면서도, 여승무원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회사인 철도유통이나 KTX 관광레져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철도유통이 되었든 KTX 관광레져가 되었든 이 모든 것은 철도를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회사의 확장과 간접고용화의 문제이다. 이제 수많은 철도노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될 것이다.
특히 2년 이상 계약직은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간접고용으로 전환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간접고용이 구조조정의 일반적인 패턴이 될 테인데 그렇게 간접고용화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면 이렇게 실질적인 지배개입을 하고 있는 원청의 책임을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우리 노동자 모두의 과제가 된다.
둘째로, 이 문제를 절실한 과제로 느끼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묶어서 문제의식을 사회화할 수 있는 기획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사내하청 노동조합들이 사내하청노조연대회의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가 연대하고자 한다면 어떤 공동의 요구를 갖고 모일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인 ‘실질 사용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간접고용 대책회의’를 하루 빨리 구성하자. 비록 올해 간접고용 노동자 전체의 투쟁을 만들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이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을 알리고 의제화해야 한다.
셋째로는 실질 사용자 책임 인정이라는 요구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상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고,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을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노동재해나 최저임금 문제에서 원청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있는 조항들이 있는데, 이를 더욱 확장하여 원청이나 전문업체 등이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설 의무를 갖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전체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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