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양극화 바로보기

<37호>
양극화 바로보기

황형욱 /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양극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양극화의 심화를 빈곤의 확대나 소득불평등 확대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이 개념들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빈곤 지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빈곤율로, 일정한 빈곤선 이하의 가구(또는 개인)의 규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득불평등 지수는 전체 소득 평균으로부터의 차이, 즉 소득 분포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평등 지수들은 전체 평균으로부터의 차이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소득분포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예컨대 소득분포가 몇 개의 극점(極點)으로 집중되는 것과 골고루 분포하는 것의 의미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극화지수는 분포의 집락성(clustering)에 보다 비중을 두면서 분포의 변동이 지수 값의 변동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처럼 소득불평등지수와 양극화지수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다소 낮더라도 양극화는 심화될 수 있다. 상위와 하위 집단간 격차가 커질 때도 양극화는 심화되지만, 집단 내 동질성이 증가할 때(상위, 하위 각 집단 내부의 소득분포가 집중될 때)도 양극화는 심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평등 지수와 양극화 지수는 공히 그 사회의 내적 갈등의 수준을 보여주지만, 불평등 지수에 비해 양극화 지수가 사회 갈등 내지 사회 불안정성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2)

빈곤과 양극화의 실태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실태는 어떠한가? 우선 빈곤율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극화의 심화는 소득분포에 있어서 중간 집단의 감소와 하위 집단의 증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빈곤율의 시계열적 변화를 보여준다. 절대빈곤율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상대빈곤율은 중위소득의 50%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절대빈곤율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상승하다가 하강하지만 최근 들어 소폭 상승하고 있다. 이와 달리 상대빈곤율은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양상을 보인다.3)

이처럼 절대빈곤율과 상대빈곤율이 다른 곡선을 그리는 것은 공식 빈곤선인 최저생계비가 낮다는 점,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빈곤선을 상대빈곤율의 기준인 중위소득 50%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소득격차 확대와 양극화의 심화 현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요한 함의를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근로빈곤층(working poors)의 확산이다. 최저생계비 이상, 중위소득 50% 사이의 빈곤층은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보다 근로소득이 있는 근로능력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근로빈곤층은 과거 노령, 실업, 질병, 장애 등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전통적인 구빈곤층과는 다르게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노대명은 최저생계비 기준 빈곤가구 중에서 근로능력자가 1인이라도 있는 가구의 비율은 47.2%,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근로능력자는 31.9%, 이들을 포함한 전체 가구원은 61.8%로 추정했다. 근로빈곤층의 취업실태는 비빈곤층에 비해 심각하다. 경제활동인구는 58.6%, 비경제활동인구는 41.4%로 비빈곤층에 비해 비경제활동인구가 높게 나타난다. 또한 근로빈곤층의 87.8%가 임시·일용직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실업률 또한 비빈곤층의 5배에 달한다.

더욱 큰 문제는 근로빈곤층의 문제가 단지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층 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 1> 상대빈곤율의 지속적 상승에서 확인한 것처럼, 근로빈곤층의 확산은 절대빈곤보다 상대빈곤에서 더욱 심각한 양상을 드러낸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근로빈곤층이 확산된다는 것은 노동소득 분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노동소득분배율은 96년 63.4%를 정점으로 하락해서 2003년에는 59.7%에 머물고 있다. 노동자 몫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은 임금소득 불평등 증가이다. <표 3>에서 보듯 5분위배율4)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소득불평등도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니계수5)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이래 큰 변동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도시가계조사의 한계가 끼치는 영향이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가계소비실태조사 자료를 이용해 자영업주, 무직자 및 1인가구를 모두 포괄하여 지니계수를 계산한 유경준의 연구에서 지니계수는 2000년에 0.389로 도시가계조사 자료보다 현저하게 크게 나타났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수행한 연구는 지니계수 등 전통적인 소득불평등지수와 함께 양극화지수를 추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양극화지수는 지니계수에 비해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지니계수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큰 소득 격차와 그로 인한 빈곤층의 박탈감 심화를 볼 수 있다.

양극화의 원인 :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변동

그러면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양극화의 원인은 무역 및 자본자유화, 기술변화, 탈산업화, 자본의 고용전략 및 고용구조 변화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요인의 공통점은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전지구적 경쟁체제의 강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대응 전략에 따른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 등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득 양극화의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앵글로색슨 국가들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소득불균등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 등 북구유럽 국가들도 1990년대 이후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6).
그러나 다른 연구들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양극화의 심화가 특히 문제되는 것은 양극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양극화의 여러 측면이 압축적으로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듯 양극화의 구조적 심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동시장의 변화는 소득양극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의 변화는 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지만,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로 인해 급속도로 전면화되었다.
노동시장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가 실업의 증가와 고용의 불안정화이고 둘째가 노동유연화의 확산에 따른 비정규직의 증가와 차별 심화이며 셋째가 산업구조 개편으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의 심화이다.

우선 실업의 증가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살펴보자.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실업률은 급격히 상승했다가 최근 3-4%에서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표실업률의 안정은 실업문제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표실업률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지표실업률과 체감실업률과의 괴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지표실업률의 통계적 오류와 함께 우리나라 경제활동참가율이 60% 초반대7)로 매우 낮은 상황에 기인한다. 지표실업률에 비해 높은 체감실업률과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을 통해 여전히 실업문제는 심각한 상황임을, 실업이 구조화되어 있고 고용이 불안정함을 보여준다.
둘째로 노동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의 확산 및 차별 심화에 대해 살펴보자. 실업률의 증가가 고용의 양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면, 비정규직 비율은 고용의 질과 안정성을 보여준다. 1995년에 41.9%에 불과하던 비정규직 비율은 2000년도에 52.1%로 증가했고, 2003년 8월 784만 명(임금노동자의 55.4%)에서 2004년 8월 816만 명(임금노동자의 55.9%)으로 31만 명(0.5%) 증가한데 이어, 2005년 8월에는 840만 명(56.1%)으로 25만 명(0.2%)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양적인 확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의 심화이다.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 월 임금 총액은 2004년 51.9%에서 2005년 50.9%로, 시간당 임금은 53.7%에서 51.9%로 그 격차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상위10%와 하위10%간 임금격차는 2001년 4.6배에서 2005년 5.0배로 증가했다. 시간당 임금기준으로는 2001년 4.8배에서 2005년 5.4배로 증가했다. 노동자계급 내에서의 임금 불평등 심화는 저임금계층의 증가로 이어진다.

셋째, 산업구조의 재편에 따른 일자리 양극화도 소득불균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1차 산업과 제조업의 비중은 감소하고 소위 지식정보화 서비스 부문은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산업 부문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영세한 자본으로 자영업을 하거나 저임금 서비스 업종이나 일용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노동양극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공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상위와 하위 일자리는 증가하지만 중위의 일자리가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변동은 이미 구조화되어 있고 이는 양극화가 앞으로도 개선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대 80의 사회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김유선은 노동소득분배율의 증감 원인과 관련된 가설을 검증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 결과를 밝혔다. 첫째, 소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가설(trickle-down effect)은 기각되며 경제성장은 소득분배 구조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둘째,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이 악화된다. 셋째, 노조 조직률이 증가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이 개선된다. 넷째,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면 노동소득분배율이 기각됨으로써 그동안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소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깨졌다는 사실은 양극화를 다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결국 경제성장의 열매가 노동자계급이 아닌 자본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최상위 기업집단, 소위 재벌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여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상위 재벌기업들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경쟁력있는 기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국의 첼시팀 선수들이 삼성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을 누비는 것을 보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인가? 삼성전자가 스포츠 마케팅으로 몇 천억 원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미국 본토에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생산비용을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비정규직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쥐어 짜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극화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이처럼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으로 내모는 대가로 경제성장, 아니 소수 재벌기업의 경쟁력과 이윤확보를 획책하는 노동시장의 전면적인 재편을 추구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기껏 내리는 결론이 노사간에 상생하자,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하라는 것이라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했듯이 우리나라의 노동유연화는 법적, 제도적으로 최고 수준이다. 양극화를 쟁점으로 점화시킨 현 정부가 오히려 양극화에 주된 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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