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정부는 양극화 논리를 통해서 무엇을 노리는가?

<37호>
정부는 양극화 논리를 통해서 무엇을 노리는가?

노동자의 힘 정책국장 / 손진우

집권4년차를 경유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06년이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사회통합’을 정국운영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지난 1월 19일의 ‘대국민 신년연설’은 1월 26일 ‘국민통합연석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에 발맞추어 열린우리당은 2월 24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5대 양극화해소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특위 산하에 4개 분야별 기획단을 설치했다. 그리고 ‘5대 양극화해소 대책본부’를 출범하며 ‘양극화해소 원년’을 선포했다. 이렇듯 집권세력인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양극화’ 이슈를 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며, 신자유주의가 파생시킨 ‘근로빈곤층의 증대’와 ‘사회적 빈곤’의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왜 이들은 끊임없이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가!

정부는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체질개선을 통해서 나아지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경기회복’의 성과와 그동안의 치적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으나, 노동자 민중의 삶의 조건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65%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문제와 700만을 넘어선 절대빈곤층의 문제가 더 크게 체감되고 있을 뿐이다.
05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한국의 빈부격차 정도에 대한 의식조사 결과에서 93%가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느낀다”고 답변한 문제나, 삼성경제연구소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자본주의의 이미지’에 대해 41%가 ‘빈부격차’를 꼽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06년 LG경제연구원의 ‘양극화 시대, 중산층은 안전한가’라는 연구보고서도 임금상승률과 배율면에서 중위노동자와 상위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임금으로 측정한 중위노동자의 지위가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임금의 상대적 크기, 증가율, 소득점유율 등 주요 관련 지표로 볼 때 최근 수년간 고소득층 대비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입지의 약화를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과 정권이 진두지휘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와 그것이 양산한 ‘사회적 빈곤’의 문제가 객관적 지표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대중의 분노가 높아져 가고 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투쟁의 양상이 보여주고 있듯이 저항의 형태가 더욱 격렬하며, 통제불가능한 범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양극화 담론’은 지배계급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추어진 진실! 양극화 논리의 허구!

이러한 ‘양극화 담론’은 지배계급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문제를 왜곡·은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들을 파생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진단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해소해야 할 과제로 천명한 5대 과제 (1> 소득 계층간 양극화, 2>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3> 정규직·비정규직간 양극화, 4> 교육 양극화, 5> 남북간 양극화)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다실이 더욱 명확해 진다. 이 과제들은 한국 사회의 위기양상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각각 다른 범주의 문제이다. ‘자본과 노동 간의 격차’인 ‘소득계층간의 양극화’와 ‘자본 내부의 격차’인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노동내부의 격차’인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등 각기 범주와 영역이 다른 문제들을 동일한 것 인양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를 ‘양극화 담론’을 통해 펼쳐놓으면서, 문제의 본질을 대중들의 시야에서 흩트려 놓는다. 게다가 이러한 대립들 속에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속에서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잔업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해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사회적 위기의 주범’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어찌 지배계급의 일원이며, 노동자 민중의 고혈을 짜대는 자본가들과 정규직 노동자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담론’은 ‘중단 없는 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양립불가능한 문제가 체제 내에서 해소 가능한 것인 양 포장을 하고 있다. 즉 노동자 대중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제기한 기만적인 담론인 것이다. 또한 ‘양극화 담론’은 전사회적인 타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와 타협을 통한 비정규직의 확대는 결국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하향평준화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양극화 해소’인가?!

개혁세력의 결집과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적 효과

이러한 ‘양극화 담론’은 또 다른 측면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지배계급 내부에서 보수 세력과의 차별성을 극대화 시켜내고, 차기 대선을 바라보며 전통적 지지층의 재결집을 촉진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신년연설을 통해 제기된 ‘양극화 해소’, ‘사회적 책임’ 속에서 제기된 것은 ‘재원마련의 문제’였다. 이것에 대해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감세를 주장했고, 이후 열린우리당이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갈하며 증폭된 ‘감세 vs 증세’논쟁은 ‘수구·보수vs 개혁·진보’라는 정치구도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집권세력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뉴라이트 세력을 공격하며 사회적 위기의 주범으로 ‘수구·보수’, ‘기득권’의 지칭하며 정치공세를 진행했다. 이는 5.31지자체 선거와 07년 대선까지를 바라보는 ‘개혁세력’결집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위기의 주범’을 낙인찍고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전사회적 위기징후들을 돌파해내는 통치전략은 지배계급이 역사적으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매카시즘 공세’와 독일 나치파시스트들의 ‘유대인 학살’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 군사독재 시기 ‘반공’을 기치로 민중운동과 노동운동을 전국가적 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어 왔다. 수위와 폭은 다르지만 집권세력은 이러한 지배전략을 ‘양극화 담론’을 통해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과의 강고한 개혁동맹 구축! 민중운동에 대한 제도적 포섭!

앞서 밝혔듯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양극화 담론’은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단적으로 ‘증세-감세’ 논쟁에 앞 다투어 뛰어든 언론과 시민운동 단체들은 노무현 정권을 최선두에서 방어하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또한 작년 9월 22일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를 추동하고 조직했으며, 올 초 출범한 ‘국민통합 연석회의’의 주축세력으로 결합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의 결과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사실상 노무현의 정권의 정책브레인으로 결합하는 이중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또한 보수 세력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과 ‘현실가능성’으로 모든 문제를 환원함으로써 결국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 비정규직 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보이듯이 이들의 태도는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일조할 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불안정 노동’, ‘장애’, ‘이주’, ‘여성’ 등 투쟁을 통해 주체화되고 있는 이들의 대변인이 된 것 마냥, 매사안마다 정부와의 ‘중재안’ 등을 발표하며 오히려 투쟁의 주체들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것이 민중운동에 대한 체제내적 포섭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북주의 세력은 ‘한나라당 재집권’의 위기감에 벌써부터 ‘반보수대연합’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며,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타협’을 강조하는 세력들의 주장은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통합’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05년 하반기 민중연대 대표자회의에서 벌어진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참가와 관련한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와같이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담론’은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이 양산한 체제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담론을 거부하고,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으로 투쟁할 때만 신자유주의 위기는 극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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