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정부의 빈곤대책 비판과 우리의 대안

<37호>
정부의 빈곤대책 비판과 우리의 대안

강동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


올해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협정 체결, 저출산 고령화 대응, 부동산 대책 수립을 국정수행 4대 과제로 선정하였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소위 사회적 일자리를 중심으로 2008년까지 3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3월 24일부터 생계위험에 처했을 때 1개월간 생계비와 교육, 의료, 주거서비스 등에 대해 긴급지원제도를 실시하고 2008년까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하는 등의 대책 등을 내놓고 있다. 2006년 예산에는 기초생활보장예산의 증가분인 9700억 원이 복지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수사와 언론지상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말 잔치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매우 빈곤하다. 비록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대상자수가 늘어났으나, 여전히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에 처해 있는 비수급 빈곤층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 주거 급여 등이 약간 인상되었으나, 실상은 생색내기에도 모자라는 미미한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시장개방을 서두르고 있다. 한미FTA 협정 체결 움직임이 그것이다. ‘한미FTA로 양극화해소 해결’이라는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의 강화로 일하는 빈곤층이 늘어나고, 정부통계로도 빈곤층이 716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서가 제출됨에 따라 노무현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을 제출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10월에 제출한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정책’과 2005년 10월에 발표한 ‘희망한국 21-함께하는 복지’가 그것이다.

더욱 열심히 일하라! 그러면 빈곤탈출?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의 존재는 자못 심각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실업과 반(半)실업, 취업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들이다. 따라서 정부 실업통계에서도 이들은 제외된다.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임시적인 일자리에 종사한다. 또한 이들 중 대부분은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험 적용 대상이긴 하지만 이러한 혜택에서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연금은 23%, 산재보험은 42%, 고용보험은 18% 정도가 그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보고된다. 그리고 임금도 지극히 낮거나 불규칙하게 지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생활수준은 매우 낮다. 이러한 ‘일하는 빈곤층’이 132만 명 정도 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빈곤 가구 비중은 4년간 20.6∼21.5%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16.5%는 ‘항상적인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빈곤가구 중에서 취업자가 있는 가구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즉 일을 하더라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하는 빈곤층’의 존재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임금 수준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 최근에 들어와서 이들의 존재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활수준을 영위하지 못하는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도 많은데 ‘배부른 소리’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하지만 ‘일하는 빈곤층’의 존재가 자본과 권력에는 또 다른 짐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들의 생활실태와 삶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이로 표출되는 자살자의 증가 등 사회적 문제는 정권과 자본을 위협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정부 산하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제출한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지원 정책’ 또한 그러한 요구 속에서 제출된 것이다. 보고서에서도 이는 그대로 표현된다. “최근 실업률은 안정되었으나 빈곤율은 상승”되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양극화에 따라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근로빈곤층이 증가”에 두고 있다. 그리고 생산적 복지에 따라 구축된 사회안전망도 “근로빈곤층 문제에 대해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위원회에서는 일하는 빈곤층에 대한 교육·의료·주거지원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제도 도입 추진, 사회적 일자리 확충, 자활지원정책 대상 확대 및 내실화, 저소득층 창업 지원 제도 혁신 등을 주된 전략으로 제출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더욱 열심히 일하라’라는 것이다. ‘일자리가 곧 복지이다’라는 것의 재천명이다. 즉 ‘일을 열심히 하면 빈곤에서 탈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왜 일하는 빈곤층이 실업과 취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고, 왜 이들은 항상 저임금 상태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항상 빈곤의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 ‘노동시장 양극화’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에 대한 처방은 없다.
비록 다섯 가지 방향으로 제출된 전략이 단돈 만 원이 아쉬운 이들에게, 당장 일할 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을지는 모르지만, 가뭄 해갈에는 턱도 미치지 못한다. 일하는 빈곤층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위 5가지 전략은 유럽이 복지국가 모델에서 점차로 ‘일과 연계된 복지’로 전화하는 전략을 취한 것과 이미 70년대부터 이를 구체화한 미국의 사례를 따라 이를 모방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하여 미국 사회에서 빈곤을 탈출한 계층이 늘어나 빈곤율이 줄어 들었다는 보고는 없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국가에서 건강보장을 해 주는 메디케이드, 메디케어와 직장에서 민간보험 가입을 통해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 모두에서 제외되어 있는 사람이 4천만 명이나 된다. 이는 최근에 더욱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일을 안 하거나, 못 하거나 혹은 덜 열심히 해서 ‘빈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전략은 ‘사후 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일시적인 대증요법으로 지속적인 악순환을 야기해 병의 골만 더 깊게 할 뿐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일자리 관련해서 살펴보자. 정부는 2004년부터 시작한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2008년까지 1조원을 투입하여 연평균 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06년에는 3039억 원을 투입하여 연인원 13만 명 정도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조차 이렇게 제공되는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decent job)라고 부르고 있지 못하다. 일자리의 대부분이 시간제, 파트타임, 1년 미만의 기간제 계약직 비정규직이다. 임금수준도 복지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20만원, 교육부의 대학 장애학생 도우미사업 25만원, 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는 50만원, 복지부의 방문도우미 사업은 52만 원 등으로 대부분 100만원 이하의 일자리이다.(표1 참조)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의 대부분은 정부가 당연히 양과 질에 있어서 책임질 분야이다. 따라서 사회적 일자리란 미명하에 이를 민간에게 맡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음으로 EITC에 대해서 알아보자. EITC는 노무현 정부가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제도이다. 기존에는 없는 제도라는 말이다. 하지만 새롭다고 해서 좋거나 올바른 것은 아니다. EITC는 일하는 빈곤층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하여 조세제도를 통해 소득을 지원하는 일종의 마이너스 조세이다. 저소득층에게 노동소득이 증가할수록 지원액을 늘리는 것인데, 이는 소득지원만이 아니라 노동유인을 높이기 위한 제도로서 미국, 영국, 호주 등 주로 영미권 국가에서 시행되는 제도이다. 2007년 도입을 목표로 현재 모델작업을 진행 중인데, 올해 6월 정도에 그 시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하는 빈곤층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일하는 빈곤층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때문에 발생한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그대로 둔 채 노동능력 있는 빈곤층의 노동유인을 높이는 EITC는 이러한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더군다나 실시의 전제조건인 소득파악도 되고 있지 않다. 만약 도입된다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일부층에게만 지급되거나, 왜곡된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일하는 빈곤층에 대한 의료, 교육, 주거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 일하는 빈곤층이 사회보험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아울러 기초생활보장제도 하에서 교육, 의료, 주거 등의 개별 급여가 현실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액수를 얼마 올리는 방식은 그 자체의 효과를 보기도 힘들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는 자산형성지원 사업과 마찬가지로 빈곤의 악순환이 되는 원인은 남겨두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자산형성지원 사업의 경우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우리 사회의 경우 자영업자는 포화상태이다. 그리고 이들 자영업자는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자영업자를 다시 양성한다는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꼴이 되기 싶다.

‘희망한국21- 함께하는 복지’1)는 희망인가?

지난해 9월 26일 발표되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에 구상하여 발표한 ‘참여복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처음 발표한 내용이다.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정책’이 정책 검증이나 예산확보 과정이 부실하여 왜곡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큼에 비해 ‘희망한국21’은 실질적인 집행계획과 예산확보 방안까지 포함함으로써 약속어음이 아닌 보증수표에 가까운 방안2)이라 할 수 있다. ‘희망한국 21’은 추진배경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8.15경축사인 “양극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지속적인 성장 기반마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긴급지원을 확대하고 개인이나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곤경은 국가가 덜어드릴 것입니다.”를 들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말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기본방향과 구체적 정책과제를 보면 이전의 생산적 복지-참여복지의 연장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명하고 있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드러나지 않는다. 수많은 문제점 지적과 그에 따른 개선 과제를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기존 사회보험제도의 근본적 개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적 개선 등에 대한 총체적 재편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이 대부분 부분적인 제도개선 차원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첫술에 배부르랴’라고 할 지 모르지만, 현재 빈곤층은 몇 끼를 굶은 상태에서 밥상 앞에 앉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상태이다. 밑반찬 한 두 가지 던져 놓고 배부를 것이라고 희망을 갖자고 하거나 함께 하자고 해선 안 된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기초생활수급권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이는 예산 증대에 의한 효과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축소, 빈곤탈출을 위한 소득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 통계만으로도 현재 기초생활수급권자에 해당하는 인구는 300만 명 가까이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수급권자는 130만 명을 약간 상회한다. 나머지 15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번 조치를 통해서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차상위계층 120%에서 130%로 상회함으로써 추가 수급권자가 약 11만 명에 이를 것이라 하나 이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상자 수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2005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대상자 확대를 가로막는 주요 요인인 부양의무자기준, 부양판별기준, 소득인정액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이 요구되었으나 부양의무자기준을 1촌 직계로 한정하는 수준에서 법안이 확정되었다. 이 외에도 주거, 교육, 의료에 대한 급여분리를 포함해 자활사업까지 문제가 산적하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급속한 인구노령화가 진행 중이지만, 정부는 2008년 도입을 천명하고 있어 매우 급하게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를 실시할 인프라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노인장기요양시설을 확충할 계획을 제출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필요시설에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혹 의료기관과 마찬가지로 노인장기요양시설도 민간참여라는 미명 하에 대부분 민간이 소유하는 기관으로 대체하여 노동자·민중의 쌈짓돈(노인요양보험료와 본인부담금)으로 병원자본이나 지방토호세력의 배만 불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저소득층과 다른 집단 간의 불평등만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차상위 계층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 주거, 보육, 교육, 자활 및 고용지원, 노인·장애인·아동 등에 대한 급여 및 수당지원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현금지원 액수만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기초수급권자인 중증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장애수당을 6만원에서 7만원으로 인상하거나 차상위계층으로 확대한다는 것으로 이는 중증장애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임은 수차례 지적되어 온 바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정브리핑 “2006희망한국 정책프리즘-사회안전망 강화”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몇 년 전 CF와 영화제목에 등장해 다시 한번 인기를 누렸던 만화영화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가다. 위기 상황마다 나타나서 지구를 지키는 짱가는 70년대 어린이들의 ‘희망’이었다. 사회보험제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빈곤과 소외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줄여나가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복지 정책들이 2006년에는 저소득층에게 든든한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

노무현 정부가 70년대 군사독재정부의 잔여적·시혜적 복지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당시에도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하에 열심히 일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누누이 귀가 아프도록 빈곤층은 들어왔을 것이다. 위정자인 박정희 독재체제가 민중의 ‘희망’임을 강변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경제성장과 온갖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70년대나 21세기인 지금에나 빈곤층은 여전히 가난하다. 또한 가난은 이제 대물림되고, 더욱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빈곤층의 자발적 투쟁만이 ‘희망’이다
- 2006년 반빈곤운동의 과제

기존 빈곤탈출 및 해소정책이 그 효과가 의심되고 미흡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소득격차확대와 빈곤층 확산을 야기하는 메가톤급 협정을 현 정부는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한미FTA 추진이 그것이다. 더군다나 이를 추진하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는 뻔뻔한 거짓말도 한다.
이러한 시기를 맞아 2006년 반빈곤운동은 다음과 같은 기조와 요구를 가지고 전개되어야 한다. 첫째, 한미 FTA 저지를 위해 빈곤에 저항하는 운동진영이 나서야 한다. 금융세계화, 개방화, 노동유연화, 사회서비스의 민영화는 빈곤층을 양산하는 원인일 뿐만 아니라 이의 악순환을 낳는 핵심전략이다. 올해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협정 체결과 노사관계 로드맵의 완성을 통해 이 전략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한미FTA의 체결은 이로 인하여 농업이 희생되고 파괴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에너지, 교통, 통신, 문화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이윤 중심의 논리가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멕시코의 경우처럼, 저임금 비정규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빈부 간 격차는 더욱 커져서 빈곤층이 더욱 광범위하게 형성될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이 고통은 더욱 가중되며,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 사회적 권리와 인권은 지속적으로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사회공공성 확대와 생활소득·임금 쟁취를 내걸고 제반 정부정책에 대한 반빈곤운동 진영의 대응을 강화하고, 빈곤대책의 실질적 효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보육, 간병, 청소, 환경정비, 장애인 활동 보조 등 사회적 일자리의 대부분은 교육, 주거, 의료 등과 마찬가지로 누구나가 누려야 할 삶의 권리를 위해 필요한 사회서비스이다. 따라서 이러한 서비스를 담당하는 일자리는 당연히 사회적, 공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권리 또한 적정하게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수익성을 확보하고 민간참여를 활성화한다는 명분하에 대부분 민간과 시장영역으로 이를 떠넘기려 하고 있다. 동시에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묶어두려 하고 있으며, 게다가 길어야 1년 정도의 단기적 계약직 일자리로 고정시킬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민간이 참여하는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대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영에 있어서 참여하는 당사자와 주민, 그리고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며,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시혜나 혜택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권리를 실현하는 일 주체로서 당당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의무 하에 공적인 사회서비스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일자리는 불안정한 저임금의 일자리가 아니라 안정되고 적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여야 함을 천명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반빈곤운동 진영은 기간 최저생계비·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의 성과를 모아 나가고, 그리고 빈곤층의 사회적 권리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는 사회적 권리 쟁취에 있어 개인의 책임과 부담을 강조하는 속담이 아니다. 대중의 자발적인 투쟁만이 빈곤을 해소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철폐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