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호] 한미FTA와 비정규직 문제

<40호>
한미FTA와 비정규직 문제


최하은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부장


1. 들어가며

미국은 그간 체결된 FTA에 노동장(Labor chapter)를 예외없이 포함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준수노력과 무역 투자 유치와 촉진을 위한 노동기준의 저하 금지이다. 정부는 이 노동장을 들어 ‘미국이 그동안 FTA를 통해 상대국의 노동기준의 준수를 강하게 요구해왔으므로 한미FTA를 체결하더라도 근로조건 보호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동장은 자신들의 고용환경이 악화되는 것에 대한 미국노동계의 방어에 대한 배려 등 자국 내 정치역학을 반영한 것으로,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정작 한미FTA 체결이 노동자들에 미칠 파급력은 FTA 협정문에 열거된 노동장의 조항이 아니라, 이 협정 전반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노동조건과 고용형태, 나아가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살펴볼 때 판단 가능하다.
한미FTA는 한칠레FTA나 한일FTA와는 달리 금융과 투자 등 경제영역 전반을 포괄하는 실질적 ‘경제통합’ 협정이다. 한미FTA는 전 산업영역에서의 질서재편과 민중의 건강과 안전, 필수 공공서비스 등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파급력 역시 전방위에서 유발될 것이며, 특히 이미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다 시피하고 있는 불안정노동계층에 대한 영향은 매우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미FTA는 구조조정의 일상화를 통해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심화시키고, 이들의 노동권과 생활권을 심각하게 악화시켜 민중의 빈곤화를 강화하고, 아울러 이들 자신의 조직화와 투쟁을 현저히 무력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한미FTA는 한축에서 진행 중인 비정규 개악안 처리와 노사관계로드맵 등의 한국정부의 유연화전략과 맞물려 노동의 불안정화와 민중의 빈곤화를 가속하고 기정사실화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한미FTA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좀 더 상술하며, 향후 투쟁의 전망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2. FTA 이후, 전방위에서 급속히 진행될 유연화

2005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6.1%인 840만 명에 이른다. IMF 위기 이후 전 산업에서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비정규직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왔고, 여전히 증가상태에 있다. 노동자들을 ‘뼈빠지게 일해도 가난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는 민중의 빈곤화의 핵심적 원인이다.
통계상으로 혹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저임금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주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유발되는 해고로 인해 이들이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반복의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인입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노동조건 역시 더욱 저하된다.
핵심은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고 ‘일해도 빈곤하다’는 사실이다.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즉 비정규직을 철폐하지 않는 한 민중의 대다수가 겪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지하고 있듯 이 불안정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유연화 구조조정이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해결할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이러한 빈곤화(일명 양극화로 명명되는)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구조조정에 따른 효율성 증대와 경쟁을 통한 산업경쟁력 향상, 무역장벽 해소를 통한 교역량, 특히 수출 증대, 외국인 투자 증가로 자연스레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 지표에서조차 오히려 단기적으로 고용은 감소한다고 드러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도 고용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검증되지 않았다.

고용을 창출한다는 정부 주장의 허구성

정부는 우선 대외정책연구소(KIEP)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한미FTA 체결로 중장기적으로 GDP 2% 성장과 10만 명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통계가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다분히 공상적이며 자의적인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은 또 다른 글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고 생략하기로 한다. 또한 ‘수출 증대로 고용을 창출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IMF 이후 ‘수출의 증대에 따른 국내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가 급감하고 있다’는 주지의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신빙성 없는 ‘주장’일 뿐이다.
한편 정부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유발하는 고용창출 효과를 설명하면서 인수합병형(M&A)은 제외한 채 사업장 설립형(Greenfield)형만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인직접투자의 비중이 인수합병형으로 급속히 늘고 있음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투자가 직접투자 보다는 증권투자 등의 포트폴리오 투자임도 감추고 있다(2004년 현재 외국인 직접투자비율 21%,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51.1%). 외한은행 인수건으로 4조 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당이득을 챙기며,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던 론스타의 사례는 이미 ‘투기자본의 천국’이 되어버린 한국의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는 예이다. 아울러, 한미FTA협상 이후 초국적 투기자본의 진출 이후 벌어질 현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초국적자본들은 비단 금융산업 뿐 아니라 전체 산업 전반에 대해 투기자본의 형태로 적대적 인수합병자의 형태로 국내에 들어와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더구나 FTA가 담고 있는 ‘이행의무부과 금지’ 조항은 미국계 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고용승계, 단협승계, 내국인 일정비율 고용 등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도록 한다. 즉,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휘둘려질 초국적자본의 칼날에 대해 노동자들은 고스란히 목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목이 잘린 노동자들은 다시 새로이 비정규직으로 흡수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이미 FTA와 별개로 혹은 이와 연동해서 ‘비정규보호법안’이라는 이름의 전면적 노동유연화를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미FTA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부문의 경우, 366만 명에 이르는 농민 대다수가 농업에서 퇴출돼 40만 명의 농민만이 남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부 역시 농업인구가 축소됨을 (매우 축소된 수치를 주장하나!) 인정하고 있다. 대다수 고령에 농업만을 전념해온 이 농업인구가 어디로 흡수될 것인가? 운이 좋으면 하청·기간제·파견·특수고용 등 비정규직이 되거나 노점상 등의 비공식 노동에 종사하거나, 장기 실업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값싼 노동력의 유입으로 그나마 기존의 비정규직의 일자리도 내부 경쟁 가속으로 인해 더욱 불안정해 질 것이다.

NAFTA 이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

나프타(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를 맺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 모두에서 제조업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노동조건과 실질임금에서의 하락을 경험했다. 국가를 막론하고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자본의 이윤 증대를 증폭시켰을 뿐,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화를 야기했을 뿐이다. ‘고용이 없는 성장’이 이루어졌고, 그나마 증가한 고용도 ‘질이 낮은 고용’ 즉 비정규노동으로 채워졌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미국과 NAFTA를 체결했던 멕시코의 경우, 1993년과 2000년 사이 제조업 연평균 고용 -0.3%, 노동비용 -29.9%, 실질임금 -7.9%의 고용과 노동조건 저하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멕시코 4천만 노동자들의 25%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20%나 감소했다. 구조조정과 공장폐쇄 또는 이전으로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150만 멕시코 농가가 파산했고, 멕시코인들은 오늘도 죽음을 무릅쓴 월경을 시도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NAFTA 체결 당시 마낄라도라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10년간 만들어진 약 800만 개 일자리 중 절대 다수가 3개월짜리 비정규직이며, 마낄라도라 노동력의 90%를 구성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성폭력, 인권유린, 노조 탄압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제조업에서도 마낄라도라 외 부문(특히 부품 및 원자재)에서는 일자리가 오히려 9.4% 축소됐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했던 캐나다 역시 현저한 노동조건 악화를 경험했다. 1989년 미캐FTA와 이후 NAFTA로 캐나다 산업 전반이 구조조정 당하면서 비정규직과 비공식노동이 꾸준히 증가해 NAFTA 이전 5.0%였던 비정규직 비율이 11.6%로 증가했다. 1993년에서 2000년 사이 캐나다 제조업의 노동비용은 10.9%로 감소했다. 같은 시기 미국 역시 15.2% 노동비용이 감소한다. 미국은 1995년과 2000년 사이 총 700만개 일자리를 축소했고, 이 중 3분의 1이 제조업에서의 대량 해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을 통해 서비스산업으로 이전한 제조업 노동자들 대부분 임시직,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이 되었으며, 이들의 임금은 평균 13% 줄었다.
이런 모든 현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비정규직이 늘고, 그래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더 저하된다는 의미 뿐인가? 그것은 노동의 불안정화가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며, 비정규직 노동 형태가 예외가 아닌 고용의 원칙적 형태로 기정사실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불안정과 빈곤화의 구조적 원인이 일상적 구조로 고착화된다는 것이고, 지난 수년간 그토록 간절히 요구해왔던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가 이제는 ‘정말로’ 혁명을 통해서나 가능한 꿈같은 구호로 남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3. FTA는 이미 전방위로 진행 중인 미국식 노사관계 재편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미FTA 체결은 미국식 경영정책이 이식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산업 전반의 대대적 구조조정ㆍ노동유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수년간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을 투자 장벽으로 규정하며, 한국정부에 대해 노동유연화를 요구해왔다. 실제 한미FTA 협상을 주도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06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투자장벽’ 분야 노동시장 관련 노동자 채용과 해고의 유연성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한미재계회의에서 발간한 [2005년 한미 경제현안 정책보고서]를 보자. 이 문건은 노동조합의 무력화와 경영진의 권리보장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해고시 사전 통보 시한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일 것 △노사관계 위반을 형법 관할에서 민법 관할로 바꿀 것 △노동관계법 제43조를 삭제하고 파업 중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할 것 △임단협 개시 전 파업찬반투표를 금지할 것 △퇴직연금제도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로로 전환할 것 △다년임금계약을 도입하고 단체협약의 효력을 현행 2년 이상으로 연장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실제 협상과정에서 직접 공론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질적 경제통합 과정을 앞둔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 자본의 용이한 ‘경영’ 활동을 위한 노사관계의 재편은 더욱 절실한 요구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연히도 한국 내 자본의 이해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미 한국정부는 경제자유구역설립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노사관계 재편’을 적극 추진해왔다. 2005년 정책보고서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현재 정부가 올 안에 통과시킨다는 방대한 내용의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이다.
이 내용들은 결국, 노사간의 집단적 관계를 해체하고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며, 성과주의를 통해 노동자 내부를 분리 통제해 노동자 내부에서 스스로의 ‘관리’체계를 공고히 하는 미국식 노사관계의 전면적 이식을 말하는 것이다. FTA가 신자유주의의 국제적 이식 과정이라면, 진행 중인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강행 시도는 이것의 국내적 강제과정인 것이다.
이는 노사관계 전반에서 노조의 협상력이 무력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된 노동운동이 이렇게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드는 그 순간부터 자본과의 전면전을 감행해야 하는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비정규노조의 가뜩이나 열악한 운신의 폭을 좁히리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조직노동운동의 전반적인 쇠락은, 과거 서구의 노동운동이 그러했듯 노조가 투쟁하는 조직이 아니라 투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조직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나마 조직률조차 서구에 비해 현저히 열악한 한국의 노조는 ‘협상만’을 대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정한 협상을 통해서라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것은 가능한가? 과잉축적은 고사하고 마땅히 지출해야 할 비용도 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 엄살을 떠는 국내중소자본과 초과이윤 착취만을 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려는 초국적자본 혹은 이미 초국적자본화되어 있는 국내 거대자본이 무엇을 내줄 것인가. 허울뿐인 사회적 합의의 기풍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라리 죽이라’는 절규를 ‘전투적 노동운동’으로 고립시키고, 이들을 적당히 ‘관리’할 것을 살아남은 조직운동에 요구할 것이다. 싸우려 해도 싸울 무기를 상실한 노동조합, 이것이 미국식 노사관계 로드맵 이식의 전말이다.

4. 한미 FTA는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를 상품으로 만들어서 불안정한 삶을 더 무너뜨린다.

교육을 받고,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에너지를 소비하고 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는 계급과 계층,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이다. 국가는 이를 사회구성원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의무가 있다. FTA는 이러한 사회적 권리들을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내던질 것이며, 이는 민중 생존의 파탄과 항상적 빈곤화를 야기할 것이다.
정부는 공공성 훼손이 우려되는 공공서비스 부문은 신중하게 대처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미 FTA 협상 관련 협정문 초안 총 22개 챕터 어디에도 공공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적 공급과 사적 공급이 공존하거나, 공적 공급이라 하더라도 상업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는 협상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 부문을 시장화·사유화하여 사적 자본 진출을 허용하면, 무역협상으로부터 제외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공공서비스는 관세와는 전혀 무관한 서비스 시장이며, 일부 제한 조항과 예외 조항 혹은 국내법에 근거한 규제 관련 법들이 문제가 될 뿐이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설립, 제주특별자치도법 제정, 지역특구와 기업도시 지정을 통해 초중등 교육까지 외국자본의 교육기관 설립의 길을 터주고 있으며, 공영형 혁신학교 추진 방안에는 민간 기관이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0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대한 법률이 2009년까지 살아있는 상황이며 발전 매각, 가스 직도입 등 완전 사유화를 위한 정부 정책은 여전히 다양한 양태로 추진되고 있다.
이미 직도입을 허용하고 신규물량을 사적 자본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가스 산업의 실질적 사유화가 상당부분 진척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해오던 상수도 사업을 민간위탁 방식으로 사유화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며, 논산, 사천, 예천, 정읍 등에서는 이미 민간위탁이 실시되고 있다. 송배전 분야의 경우 독립 사업부제를 통해 경쟁 체제를 도입, 시장화하고 있다. 발전사는 상장 매각을 통해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정부는 의료보험 사유화 정책과 주식회사형 영리병원 허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여타의 공공서비스 영역을 사유화 해 한미FTA 협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편 FTA는 의약품인정기관과 특허기관 간의 연계, 특허심사 기간만큼의 특허기간 연장, 자료독점권의 인정 등 특허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는 다양한 장치로 의약품 접근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심지어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에 대해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FTA를 통해 선진 7개국의 평균약값을 강제하는 등의 의약품 가격을 높이려는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나프타(NAFTA)에서 처음 도입된 ‘기업-정부중재제도(investor-government claims)’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 국가의 공공의 건강을 철저히 유린하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나프타 체결 국가에서는 ‘기업정부중제제도‘에 따라 신경독성물질의 수입규제(에틸사 사례), 유목물질 쓰레기장 인허가(메틸 클래도 사례)에 대한 제소가 잇따랐다. 나프타 이후 12년째인 지금까지 42건의 제소가 있었고, 결론이 난 11건 중 5건에서 초국적기업이 승리해 멕시코 정부는 총 3,5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미국의 학교와 병원들이 영리법인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고, 이는 다시 한국의 병원과 학교가 영리법인화를 강제할 것이며, 결국 값비싼 교육비와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대다수의 민중은 양질의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건강보험이 아니라 값비싼 민간보험만 취급해주는 병원들이 늘어갈 것이다. 약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치료약이 있어도 치료받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상황. 물을 마시는 것도, 전기를 가스를 쓰는 것도 ‘지불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들이 상품의 영역으로 편재되는 야만적인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빈곤한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은, 대다수 민중의 삶은 그야말로 ‘파탄’을 맞게 될 것이다.

5. 민중의 권리의 이름으로, 다른 세상의 이름으로

한미FTA 저지투쟁은 ‘한미FTA 협상 중단’을 당연히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계 초국적 자본과 이들 초국적 자본과 융합되어 있는 국내 거대자본의 전면적인 공격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관철되고 있다. 한미FTA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노동자와 민중의 삶 전반을 파괴할 지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이 ‘한미FTA 협상 중단’의 의미는 단순히 협상 그 자체의 중단을 의미할 수는 없다. 한미FTA가 완결 지으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대한 공세적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구조조정과 임금 노동조건의 저하를 저지하는 것을 넘어, 박탈당했던 ‘생존의 권리’를 되찾아 오는 것.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초국적 자본의 논리에 맞서, 국경을 넘어 세계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새로운 대안적 세계의 전망과 실천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추상이 아닌 구체적 권리로서 ‘안정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영위할 권리‘,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안전한 물을 마시고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권리’ 등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혹은 이 모든 것들 ‘필요로 하는’ 인간의 이름으로 이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탐욕스런 초국적 자본의 ‘이윤’이 아닌 호혜와 평등·연대를 위한 무역의 실험들은 이미 지구 반대편 너머에서 진행 중이며, 1999년 시애틀을 시작으로 촉발된 반세계화 투쟁은 이미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생산의 발달과 진보의 성과들이 인간에게로 돌아오는 세상.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이든 이제 ‘지금의 세상은 틀렸어, 우리는 이런 세상을 원해!’라고 말하자. 과거 전노협 건설을 외치며 우리가 부르던 ‘노동해방‘의 이름처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그림을 말하자. 그것이 한미FTA 저지 투쟁을 경과하며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전망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철폐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