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호]이제는 비정규 노동자의 건강권을 이야기하자!(07년 1월호)

이강철 ⎟ 대전지역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그 뭔가를 하기 위해서 매일 노동을 한다.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에게 몸은 정말 소중한 자신의 재산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가 아프거나 혹은 다치지 않게 할 의무가 있고 그래서 임금수준을 고려할 때 위험수당 등의 기타 수당을 책정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대에 자본은 더욱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여러 수단을 강구해낸다. 그 수단의 하나가 전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난 2006년 11월 31일에 통과된 비정규개악안도 궁극적으로는 전체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다. 비정규직을 일반적 고용형태로 만든 후에 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하여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리해고를 완화하여 결국은 전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을 만들어서 자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만들 속셈인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투쟁은 결코 비정규직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다. 850만 명이 넘어가고 있는 현재의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난 수십년간 투쟁 속에서 쌓아온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력화 될 것이 뻔하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비정규 개악안이 통과된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와 개악안 통과 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1. 건강권의 문제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운동진영에서는 비정규 개악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고, 또한 많은 투쟁들이 전개되어 왔다. 11월 31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다음날, 비록 간부 중심의 상경투쟁이었지만 개악안 통과에 대한 항의 투쟁은 진행되었다. 하지만 12월 13일. 비정규 개악안처럼 국회에서 날치기 식으로 통과된 산재법 개악안에 대해서는 너무나 조용했다. 국회 앞 상경투쟁도 없었으며, 지역에서도 자그마한 투쟁도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앞서 서두에서 꺼낸 것처럼, 몸뚱이 하나로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건강이라는 것은 소중하고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일상생활이나 노동조합 활동에서나 노동운동 진영에서 노동자 건강권 부분은 사실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몇몇 노동안전 운동단체들이 힘겹게 건강권 쟁취 투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금속노동자나 혹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3년 금속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집단산재요양 투쟁은 건강권 투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집단요양투쟁을 열심히 하더라도 그 노동자들이 집단요양을 떠나면 그 자리를 비정규직들이 채우게 되고, 그 사이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다가 집단요양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들로 인하여 사측으로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결국, 노동자의 건강권 투쟁은 결국 비정규직 양산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결국 엄청난 노동강도로 인하여 노동자의 생존권마저도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비정규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은 계속 침해당한다. 불안정한 고용과 적은 임금은 결과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만든다. 정규 노동 시간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각종 수당 등으로 임금을 보전할 길이 없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자연스레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고용상태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불평등한 고용관계에 놓여 있어서 사업주의 해고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를 자유롭게 사업주에게 주장할 수 없다. 그래서 사업주가 요구하는 장시간의 노동에 어떠한 불만도 제기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


2004년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던 故 이정연 동지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 과로사를 했다. 그러나 당시 이정연 교사를 고용했던 구몬학습은 이정연씨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습지 교사들은 기본급은 없으며 순수하게 매출로만 구성된 월급을 받는다. 보통 한 과목당 3만원이 일반적인 학습지 비용이며, 교사 1인당 평균적으로 120~130 과목 정도를 맡는다. 약 360만 원 중 일정 퍼센트가 학습지 교사의 월급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故 이정연 동지와 같은 학습지 교사는 무리를 해서라도 과목의 수를 늘리고자 한다. 그래야만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4대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는 업무 특성상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데 잦은 이동과 늦은 귀가로 인하여 염좌-골절 사고가 잦다. 또한 매출(과목 확장)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위장-심혈관계 질환도 빈번하다. 무리한 업무로 인하여 학습지 교사 중에 유산 경험을 했다는 노동자가 5.4%나 된다.
학습지 교사 이외에도 금속에서의 하청 노동자들은 대부분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어도 바로 되기보다는 몇 개월이 지난 후에나 이루어지곤 한다. 또한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가 법으로 강제되지 않는 한에는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관리 체계는 유명무실하다. 학습지나 금속 하청 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쳐도 제대로 치료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 당하고 있다.
이들이 권리를 박탈 당하는 이유는 첫째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업장인데도 건강진단을 받을 기회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점에 있다. 두 번째는 다쳤을 경우, 치료를 받을 것과 계속 고용될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사용주로부터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연히 아픈 것을 숨기고 계속 고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쳐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산재처리 과정의 절차를 모르거나 너무나 복잡해서 개인 스스로가 처리해 나가기에는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치료비에 대한 개인적 부담으로 인하여 치료 받기가 쉽지 않다.


3. 근로복지공단의 횡포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2003년 금속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 승리 이후에 경총은 2004년 3대 독소규정이라 불리는 근골격계 요양기준 처리지침, 요양업무 관리지침, 과격 집단민원 대응지침 등을 마련해서 지침으로 내려 보냈다. 또한 사회보험성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만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노동자들이 산재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산재보험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비정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권리를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며,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비정규직의 건강권 쟁취를 주장하는 것은 비단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금의 노동조합이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집단요양투쟁을 전개해도 자본은 현장의 유해요인을 제거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요양으로 빈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운다. 또한 안전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용을 선택하라며 노동자들을 윽박지른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숨겨야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열심히 투쟁해서 작업중지권을 따낸다 하더라도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면 소용이 없다. 작업환경 개선투쟁이나 건강권 쟁취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 열악한 자리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결국에는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문제와 더불어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4. 비정규직 건강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것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활이 보장되는 최저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청노동자의 경우에는 원청사업주의 사업주로서의 책임이 강화되어 근기법과 산안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게 해야 한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제대로 치료를 받기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완전히 적용받아야 하며, 산재를 은폐하는 사용주는 강력 처벌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산재요양으로 빈 자리를 채우다가 버려지는 일회용풀이 아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체 노동자들은 다치기도 쉽고, 다친다고 해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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