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가치에 잠식당한 대학

진보교육뉴스 60호

::::: 해방으로 가는 논쟁과 소통

지금, 대학은 '여전히'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탐구의 장일까? 아니, 어쩌면 역사적으로 진정 자유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사실 대학이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왔고, 이제는 그러한 사실을 응당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지금 우리로 하여금 대학의 존재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좀 흘렀지만 곱씹어봐도 좋을 것이다.

'이건희 사태'의 또 다른 측면

400억 원짜리 철학박사학위증은 비싼 만큼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있은 이후 총장이 넙죽 사죄의 절을 드리고,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은 총사퇴서를 내고, 시위 학생들에겐 징계방침을 내리는 등 학교는 물론 사회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전직 대통령은 고작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채 차안에서 소변을 해결해가며 밤늦도록 버티다 돌아갔어도 그 후 별 다른 일이 없었건만, 자본의 위력이란 이런 건가.

당일 학생들의 시위가 '반지성적'이었느니 '폭력적'이었느니, 삼성그룹의 반노동자적 경영철학이 문제니 하는 논란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다만 '사태'의 수습과정에서 학교측이 보인 행태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자 한다. 개교 10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기부금을 조직하고, 그 돈으로 학교의 외양을 화려하게 치장하는데 여념이 없던 고려대는 국내 최고기업인 삼성이 400억 원이나 쾌척하여 건물을 지어줬으니 실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셈이었다. 이건희에겐 가당치도 않은 명예철학박사학위는 그에 대한 응당의 보답이었던 것이다(경영학박사학위는 서울대에서 이미 받았단다). 하지만 학교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의 시위 탓에 '고객'에 대해 큰 결례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회장님'의 스타일을 구겼기로서니 바로 다음날 총장이 사과문을 전달하고 부총장과 9명의 처장단이 '학생들을 잘못 가르친 죄'로 전원 사표를 냈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자신의 학문분야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권위를 가졌다고 하는 교수들이 한낱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과잉행동을 보인 것은 과연 이들이 교수 자격이나 갖추고 있는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제 고대생들의 삼성 취업은 물건너갔다'는 학생들의 비아냥거림은 '왜 시위를 했는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행위 결과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서 결국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기업의 가치가 학문의 자유를 대체하고 대학구성원들의 인식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자본의 위기와 이로 인한 대학의 재편이 대학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A급 전범이 설립한 재단의 기부금이 국내 대학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가는 다시금 술렁였다. 학생들은 '극우 단체의 돈이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시위와 서명운동 등 자발적인 행동을 보여줬다. 하지만 따져보자.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A급 노동 탄압자의 돈은 받아도 되고, A급 전범의 돈은 받으면 안 된단 말인가. 그 돈 모두 우리 민중들의 생명과, 피땀어린 노동과 맞바꾼 거 아닌가.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의 착취와 지배를 은폐할 만큼 강하다는 진리(?)는 황우석 열풍에서도 드러난다.

국보급 과학자 황우석을 숭배하라?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황우석,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보'이자 '희망'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딜 가나 노련한 매너와 화려한 언변을 구사한다. 난치병 환자를 만나면 삶의 희망을 주고, 자신의 연구성과가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여 마치 당장이라도 커다란 부(富)를 가져다 줄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에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점을 교묘히 피해간다. 단 한 개의 복제배아를 성공시키기 위해 쓰였을 수백 개의 난자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인위적으로 복제된 배아는 잠재적인 생명체인데, 다른 생명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 잠재적인 생명체를 수단화하는 것은 정당할까. 배아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진다 해도 돈이 없는 환자들에게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갈까. 그는 이런 질문들에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황우석에 열광하는 언론도 이런 의문들을 궁금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답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우석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이후 연일 바이오 관련 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언론들은 연구결과의 의미, 사회적·윤리적 영향 등을 심층있게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줄기세포로 인해 난치병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줄기세포의 '시장성'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관련 업계로 '돈'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도 애국심에 호소하며 '첨단과학'에 투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나선다. 황우석에게 '국보급' 경호와 예우를 하는 것은 그에 따른 조치다.

연구과정과 결과의 사회적 영향과 의미는 간과한 채 자본과 국가가 총동원한 '황우석 숭배 프로젝트'는 대학으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연구의제와 과학활동을 제어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대학은 황우석처럼 '시장성' 있는, 즉 '돈이 되는' 연구에 매진하도록 내몰리고 있고, 더 나아가 연구결과를 바로 상업화하는 방식으로 연구활동을 제한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미국의 예를 살펴보자.

"닫혀진 대학"

지난 1999년, 미국의 버클리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식물·미생물학과는 초국적 생명공학 기업인 노바티스社로부터 5년 간 무려 2천 5백만 달러를 지원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노바티스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연구결과의 1/3에 대해 우선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다. 당시 이 협약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생태학 교수 이그나시오 샤펠라는 그 후 2001년 11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유전자변형작물 재배가 금지된 멕시코 한 지역의 토종옥수수에서 유전자변형 옥수수 디엔에이가 다량으로 발견되었음을 알리는 논문을 게재하였다. 미국의 유전자변형작물이 국경을 뛰어넘어 다른 지역의 농작물까지 오염시킬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 논문은 당연히 생명공학 기업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2002년 4월 <네이처>는 이미 동료심사를 거친 샤펠라 교수의 논문 게재를 철회한다고 밝히면서 오히려 그의 연구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 두 개를 실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연구자들이 모두 노바티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았거나 버클리와 노바티스와의 계약을 적극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파문은 더욱 커졌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극적으로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이른바 '지식기반' 산업들이 부상하면서, 기업의 대학 연구개발 투자가 급증했다. 1970년만 해도 연구개발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은 149억 달러로 기업의 총투자액 104억 달러보다 많았으나, 1997년이 되면 연방정부의 지출은 627억 달러, 기업의 지출은 1,333억 달러로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처럼 대학의 연구개발에 대한 기업의 투자는 급속한 비율로 증가하였고, 1980년 '베이-돌 법안'의 통과로 연방정부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연구성과를 대학이 특허를 취득하여 이윤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학자들은 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고, 대학의 공공성과 학문의 자유가 훼손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버클리와 노바티스와의 계약 체결 당시 상당수 교수들은 학문의 자유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또한 공익적인 연구가 저조해질 것이며, 학자들간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는 사실로 나타났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식의 독점을 보호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연구결과의 발표를 연기하거나, 심지어는 후원한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게 연구결과를 조작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제 교수들은 단순히 기업의 후원금을 받는 것을 넘어 직접 벤처를 차리고 자신의 연구결과로부터 직접 이익을 얻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렇게 연구의 상업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시장성'이 없는 연구는 당연히 소외되어 버렸다. 버클리대학에서는 노바티스의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생물학적 방제 ― 거대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화학적 살충제가 아닌 천적 등을 이용한 해충 제거 ― 연구에 대한 지원금이 없어져 버렸다.

기업의 지배는 대학을 구원할 것인가?

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크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기업의 후원을 잘 끌어오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자 생존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점에서 이것이 대학에,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기업의 가치는 공공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기업의 막대한 돈이 대학으로 유입되는 순간부터, 대학은 그리고 대학의 연구는 민중의 보편적 이익에 반하게 된다. 노동자의 피눈물이 어린 삼성의 돈이 고려대학교의 학문적 위상을 높여줄까? 온 나라가 열광해마지 않는 배아줄기세포연구가 가난한 환자들에게도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까? 몹시 불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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