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 사립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진보교육뉴스 63호

최근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운영에 관한 평가보고서(이하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특히 올해는 지난 2002년부터 시범실시되었던 6개의 학교에 대한 평가를 통해 향후 자립형 사립고의 정책방향을 결정짓는 해이기 때문에 보고서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자립형 사립고는 재정적 자립을 기초로, 학생선발과 등록금책정을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학교로서 현행 고교평준화제도 하에서 이른바 ‘학교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다양성과 자율성에 기초한 학교운영의 일환으로서 ‘5.31 교육개혁안’에서 최초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학교선택권의 보장은 일부 특권층의 엇나간 욕망을 채워주었을 뿐이고, 애초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입시전문 귀족학교’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은 현실로 드러났다.


자립형 사립고의 실상

부모는 고소득, 고학력자
자립형 사립고에 재학 중인 학생의 집안 월평균 가계 소득은 537만원이었다. 특히 민족사관고는 687만원, 해운대고가 587만원, 상산고가 586만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5년도 1/4분기 도시근로소득자 월평균 가계소득 329만원에 비하여 배에 가까운 것이다. 학부모의 소득에 따른 구성 비율을 보면 월 소득이 700만 원 이상인 학부모의 비율이 각각 민족사관고 35.4%, 상산고 21.6%, 해운대고 19.6%에 달한 반면, 월 소득 200만 원 이하는 각각 1.2%, 5.9%, 2.3%로 나타나 사실상 저소득층 자녀들의 자립형사립고 진학은 불가능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학부모의 학력을 살펴보면, 민족사관고 재학생의 학부형 중 아버지의 학력이 대학원졸 이상은 50.3%, 대졸이 44.7%였고, 상산고의 경우 대학원졸 이상이 34.7%, 대졸이 44.6%, 해운대고의 경우 대학원졸 이상이 28.8%, 대졸이 47.7%로 부(父)의 학력이 대졸이상인 비율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자립형 사립고는 고소득, 고학력을 바탕으로 한 중상류계층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학교임이 밝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립형 사립고의 연간 교육비는 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등록금과 수익자 부담비용(기숙사비, 특기적성교육비, 급식비 등)을 합한 연간 총 교육비가 민족사관고의 경우 1,621만 원, 상산고 1,013만 원, 해운대고가 1,054만 원에 달해 실제로 이를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적 중심으로 학생 뽑고, 입시위주 교육 실시
애초 학생선발 시 소질, 적성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하고 특성화된 입학 전형을 실시한다던 계획은 무시되고 내신우수자나 토플 일정 점수 이상, 경시대회 우승자여야 지원을 할 수 있다. 또한 교육과정을 국어, 수학, 영어 등 특정과목의 수업시간수를 높게 편성, 운영하면서 입시위주 교육을 하고 있었고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 또한 대부분 대입 준비에 맞춰져 있다.

일반고 학생들보다 더 많이, 더 비싼 사교육 받아
한편 “교육의 질이 좋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이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비싼 사교육을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상산고는 재학생 중 58.4%가, 해운대고는 83.7%가 사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이는 해당 지역의 일반고 학생들보다 높은 수치이다. 사교육비에 있어서는 민족사관고가 월 104.5만원, 해운대고 55.7만원, 상산고 42.4만원으로 해당 지역의 일반고 학생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보고서의 핵심은 자립형 사립고는 명백히 귀족학교이며, 입시위주 교육을 통한 명문대 입학의 발판일 뿐임을 알 수 있는데, 다만 보고서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 굉장히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부가 어떻게 나올 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예상컨대 그동안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등 학교다양화 정책이 고교평준화제도의 ‘보완책’임을 뻔뻔스레 강조해왔던 교육부의 주변머리로서는 자립형 사립고의 확대는 예정된 결론처럼 보인다.


선별과 배제의 사회학. 왜 평준화가 문제가 되는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후기중등교육(고등학교)은 사회적 지위 획득과 직결되는 대학진학을 위한 중간기점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고등교육은 하층계급에게는 자녀의 지위상승을 위한 디딤돌로, 상층계급에게는 자녀에게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상속하려는 지렛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즉 사회계층의 분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는 고등학교 진입단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기회의 획득을 판가름하는 후기중등교육체제의 형식과 내용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이른바 ‘학교선택권’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특권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녀를 ‘질 좋은’ 입시교육을 제공하는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은 자신의 높은 지위를 대물림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획득하는 합리적 소비행위일 따름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입시교육을 제공하느냐의 여부로 학교를 판단하며 통학과 관련된 시간적,공간적 제약은 경제력에 의하여 충분히 극복가능하다. 학비가 얼마가 들든 내 돈으로 다 부담해서 내 자식 ‘좋은 학교’를 보내겠다는데 왜 소비자의 선택권을 막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고교평준화 제도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은 학교에 억지로 다니게 만드는 획일적 평등주의이고, 자신의 지위 대물림에 있어 결코 유리하지 않은 제도일 따름이다. 이것이 ‘학교선택권’이란 개념의 사회적 실체다. 따라서 상류계층과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부 언론 등이 끊임없이 고교평준화제도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도 김경근(2001)의 연구에 따르면, 자녀의 교육성취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고,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자립형 사립고의 진학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나 평준화제도에 대해 불만이 많은 전문직,고소득 계층의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탐욕을 엿볼 수 있었다. 보고서는 이것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었다.

불평등의 재생산 고리를 끊어야

불평등의 재생산 메커니즘은 이미 몇몇 통계자료를 통해 폭로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사교육비의 규모와 질을 규정하고, 이러한 사교육의 효과는 대입경쟁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져 이로써 부모의 지위가 세습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입경쟁에서 공교육의 효과가 크지 않음을 감안할 때 자립형 사립고의 존재는 극히 일부에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립형 사립고는 필시 학교간 등급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귀족적인 자립형 사립고, 보통 사립고, 소외된 공립고로 서열화 되어 가난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영세한 사립학교나 슬럼화된 공립학교로 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사회계급구조에 조응하여 학교 등급이 만들어지면서 학교가 계급간 불평등을 ‘대놓고’ 재생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 나아가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결국엔 이념의 문제, 첨예한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가난한 계급의 아이들은 공동(空洞)화된 공립학교에 다니고, 부잣집 아이들은 귀족적인 사립학교에 다니게끔 교육이 계급분화에 조응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재생산의 고리를 끊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길러낼 것인가. 민중의 대안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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