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은
혁명적 구호인가
지난
9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가 공식 출범하면서 소위 ‘사회양극화’의
본질과 원인, 그리고 해법에 대해 운동진영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국민연대>가 내세운 주요 정책의제인
‘단계적 무상교육 실현’이 기왕에 민주노총이 하반기
핵심과제로 선포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 그리고 노무현 정권 차원에서도 국민통합을
위한 양극화 문제 해소를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양극화 현상의 해법으로써 무상교육이란 의제가 정권과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의 합의 하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과 시민단체들의 문제의식은 차치하고서라도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의미심장하다.
현 정권이 끊임없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던 주요 포인트는 무엇이었는가.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 ‘노동귀족 그들만의 노동운동’
등 왜곡된 주장으로 노동운동을 공격했고, 연이어 터지는
노조 비리는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러한 정권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대안적’
과제로 투쟁의제를 전환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이용된 것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의 요구는 그 자체로
혁명적이며 정당하다. 감히 누가 민주노총의 구호에 반대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상교육 의제가 그 실현을 목적으로
제기됐다기보다 민주노총 현 지도부의 수세적인 국면돌파용으로
악용된 것이기 때문에 그 진정성과 실현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수석부위원장까지 구속된 지금 현 지도부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실현할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인다.
현
시기 교육위기의 근본적 쟁점은 무엇인가
<국민연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예산확보
운동에 주력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제도적인 틀 내에서 합법적인 캠페인과 국회로비를 통해
교육여건을 일부 개선하고 교육재정을 확충하는 활동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교육의 모순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재생산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자본은 학교교육을 통해
현 생산체제에 적합한 노동력을 길러내는 동시에 교육기회의
부여, 교육활동의 과정, 교육의 결과 등 학교교육의 전
과정을 통해 대중 내부에 끊임없이 경쟁과 배제를 조장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성공과 실패로 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고, 개인의 능력에 의해 교육적 성취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공공연히 드러난 지금 대중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실패한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비용을 들여
별도의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 욕구를 해결하려 나서면서
이러한 교육모순의 폭발은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교육모순의 근본적 해결 없이 공공재정 확보를 통해 학교교육비용의
일부를 보전해 줘봤자 대중들은 해당 비용을 사교육에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교육불평등 현상은 단지 계급격차에 따른 공교육비 지출
차이에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교육의 모순과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더욱 경쟁을 강요하는 현 시스템에서
대중들은 살인적인 입시경쟁에 내몰리며,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하고, 갖은 고생을 해서 대학을 나와도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대>의
무상교육운동은 현 자본주의 체제와 그 체제를 재생산하는
핵심기제로서 제도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없으므로
인해 오히려 교육의 모순과 그로 인한 대중의 불만을 은폐하고
진정시키는 작용을 할 뿐이다. 오히려 현 체제의 원활한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을 따름이다.
개량세력의
무상교육운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현
시기 무상교육운동이 진정한 의미와 전망을 가지기 위해선
단지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예산을 확충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러한 요구가 대리주의적이고 합법적인
틀에 갇힌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도 안 된다. 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교육비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동시에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외국인학교 등 다양한 학교정책을 통해 대중
내부에 차별과 배제를 확대하고 있으며, 교육과정과 학제를
개편하여 더욱 강화된 선택형, 수준별 과정으로 학생들을
갈라놓고 있다. 또한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한 청년실업난
속에서 대학은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하여 더 이상 학문과
교육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막대한 사회적 낭비를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대중들의 요구는 교육여건 개선과 교육예산
확충에 한정되어선 안 된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무상교육의
의미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를 저지하는
것에서 무상교육운동의 실질적인 의미와 전망을 획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교육운동은 일부 시민단체들의
단발성 캠페인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대중들이 교육이란
민중의 보편적이고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권리의
주체로 나설 때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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