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경쟁을 부추기면서 사교육비를 잡겠다?

진보교육뉴스 66호

::::: 해방으로 가는 논쟁과 소통

방과후 학교는 사교육비도 못 잡고 학교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갈 물귀신 정책

정부가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아예 학교에 입시학원을 차릴 태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기존의 특기적성교육, 수준별 보충학습, 방과후 교실 프로그램을 통합하여 내년부터 학교에서 원어민강사에 의한 영어수업과 예체능, 논술을 학원강사나 전문가에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시킨다고 사교육 수요가 없어지겠는가? 현행 초중등교육체제는 대학서열구조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어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워 대학서열에 맞게 배치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 말리는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강화한다 한들 소수 부유층 자녀들의 ‘차별화된’ 사교육은 말릴 수가 없다. 또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저렴하게 입시교육을 시켜준다 해도 그들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방과후 학교는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지자체의 경제규모에 따라 부담액 및 지원액이 달라져 사교육의 ‘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과후 학교는 사교육비 경감 효과도 없으면서 학교교육을 더욱 입시교육에 종속시킬 것이 뻔하다. 방과후 학교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시간구애 없이 밤늦게까지, 현직 교원뿐만 아니라 학원강사나 원어민강사도 참여하여, 수요자의 요구를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학교교육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공교육 부실의 책임을 교원과 학생 개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교육부가 방과후 학교를 통해 공교육을 아예 죽이려 하고 있다.

입시경쟁을 심화시키는 교육부

사실 정부는 2004년 2.17 사교육비경감대책 발표 이후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학교교육을 더욱 왜곡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BS 수능방송이 그 대표적 예이며, 그 밖에도 ▲수준별 수업 확대, ▲선지원 후추첨제 확대, ▲고교체제 다양화(특성화고, 자율학교, 자립형사립고 확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한 학교등급제, ▲교원평가제 등의 정책을 꾸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면서 초등학생들까지도 성적 올리기에 매달려 있고,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부담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교육비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입시경쟁을 심화시키고 학교현장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잘 아다시피 EBS 수능방송은 사교육비 경감에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또한 수준별 수업을 확대한답시고 우열반 편성을 의무화하여 학생들 간에 경쟁을 더욱 조장하고, 교원평가를 통해 교육활동을 통제하고 교원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학교 밖은 또 어떠한가.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한답시고 선지원 후추첨제를 확대하고 학교를 다양화하는 정책은 오히려 학교간 서열화를 부추겨 중학생들까지 치열한 입시경쟁에 뛰어들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WTO 교육개방으로 인해 외국교육기관마저 들어온다면 외국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엉뚱한 해법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것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폐해를 낳을 것이다. 더 높은 학력과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한 경쟁구조를 그대로 둔 채 사교육비 경감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학교교육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할 생각은 않고 학교교육을 입시교육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사교육 수요가 없어지겠는가. 턱없이 부족한 재정지원과 변죽만 울리는 정책을 개선하기는커녕 공교육을 죽이면서까지 사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교육부가 할 짓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교육부가 할 일은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실패와 악영향을 빨리 시인하고,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대안 마련을 위해 교육주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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