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선택권 확대는 학업성적을 높이나?

진보교육뉴스 75호

::::: 해방으로 가는 논쟁과 소통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은 고등학교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가 주장하는 바는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 시 현행 학군제에 따라 학생을 배정하지 않고 서울시 전역 내에서 지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서울시 전체를 단일한 학군으로 만드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도 부동산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당시 김진표 장관이 서울시 학군 조정 문제를 잠깐 언급한 바 있었는데, 최근 부동산 문제를 빌미로 중대한 교육정책의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집값을 못 잡으니 교육정책이라도 바꿔보자?

이런 방안은 ‘학교선택권’ 확대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곤 하는데, 이 주장이 가정하고 있는 중요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현재 중학교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 시 학군 내에서 근거리 배정되는데, 사실 학군마다 교육여건이나 효과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만이 표출된다. 특히 소위 ‘강남 8학군’은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기 때문에 강남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우수한 8학군 효과를 누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셈이다. 따라서 학교선택권을 보장하여 낙후된(!) 지역의 학생들도 강남의 우수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주장의 요체. 게다가 강남 입성 경쟁 때문에 덩달아 집값까지 오른다며 학군을 조정하든지, 다른 지역에도 입시명문고를 지어 경쟁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강남의 효과는 학교효과가 아닌 사교육이나 가정배경의 효과이기 때문에 강남에 있는 학교로 옮겨갈 수 있다고 해서 대입경쟁에서 유리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선택권의 확대가 학교 간에 경쟁적 환경을 조성하여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다는 믿음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연구보고서도 이런 믿음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학업성적을 높이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선택권의 확대가 실제로 학업성적을 높이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연구자는 선택권 확대를 전제로 구체적인 시뮬레이션까지 했으나 정작 왜 선택권을 확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실상 국내에서도 학교선택권 확대의 타당성을 다루는 연구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선택권 확대 주장은 평준화에 대한 공격논리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신화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떨까? 특히 우리보다 앞서 자유시장 원리를 적용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한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반면교사를 삼도록 하자.

사례1. 잉글랜드 초등학생의 선택권과 학업성취도

현재 잉글랜드에서는 1988년 교육개혁법 이래 많은 지역에서 선택권이 확장된 결과, 거주지배정 방식과 선택권 방식이 공존한다. 잉글랜드의 모든 공영학교는 관할권 내의 학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지역교육청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상당부분 재정지원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학생 수에 따라 지원을 받는다. 이렇게 선택권이 확대된 결과 학교는 살아남기 위해서 성취수준을 높임으로써 학생들을 유인해야만 한다. 따라서 선택권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학업성적을 높인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런던대학 경제학부의 스티븐 깁슨과 동료들은 선택과 경쟁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학업성취에서의 유리함에 관한 실증적 증거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했는데, 1) 학생들은 자신의 거주여건 하에서 학교를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주어진다면 성적이 더 높아지는가? 2) 학생들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학교들과 경쟁해야 하는 학교에 다닐 경우 학생의 성적은 더 높아지는가?

연구자들은 잉글랜드의 공영초등학교 2,412개교 201,034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주지에 따라 선택권과 경쟁 지표를 정의하고 그것이 학업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부정적이었다. 즉 선택권과 학업성취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경쟁과 학교성적 간에는 약간의 상관관계를 찾았는데, 이것이 경쟁 때문인지는 근거가 없었다. 이는 학교의 위치나 배정된 학생의 영향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선택/경쟁과 학업성취도 간에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다.

사례 2. 캘리포니아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

미국의 차터스쿨은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1992년에 최초로 개교된 이래 현재는 41개 주(워싱턴 DC 포함)에서 약 3,400개의 학교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급격히 팽창했다. 차터스쿨 또한 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경쟁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기존의 공립학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을 내세웠다. 즉 자유시장 하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공급자 간에 경쟁을 유발하고 그 결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공급자의 질이 높아진다는 자유시장 신봉자들(밀턴 프리드만, 처브, 모우 등)의 믿음이 차터스쿨이나 바우처 제도와 같은 선택권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리차드 부딘과 론 짐머 두 연구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차터스쿨 때문에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그리고 학생들의 성적이 높아졌는지를 조사하였다. 먼저 연구자들은 지난 2002년에 주내에 있는 200여 개 공립학교와, 차터스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6개 학구를 골라 그 학구 내에 있는 30여 개 공립학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차터스쿨에 다니는지, 차터스쿨 때문에 학교내부의 변화가 있는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물었다.

설문조사 결과 대략 50% 정도가 차터스쿨에 다니고 있는데, 실제로 교장들은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은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터스쿨 때문에 교원 인사(고용/해고), 연수, 보상, 그리고 교육과정 등에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교장들은 절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재정적 안정,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능력, 교사채용과 유지, 학생 유인능력 등에서 차터스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질문에 교장들은 네 가지 항목 모두에서 차터스쿨의 효과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6개 학구의 교장들은 교사 채용과 유지 항목에 있어서 차터스쿨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학교 교장들은 차터스쿨 때문에 공립학교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110만 명의 1997/1998 학년도부터 2001/2002 학년도까지 읽기와 수학 성적을 토대로 선택권 확대 정책이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택권의 확대는 학생으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지를 보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공립학교는 학생 모집에 있어서 경쟁의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립학교는 차터스쿨에 학생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성적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공립학교에 미치는 이 경쟁의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몇 가지 지표를 고안했는데, 차터스쿨까지의 거리(학생에게는 차터스쿨까지 거리가 가까울수록 공립학교가 느끼는 압력은 세다), 4km 이내에 차터스쿨의 존재 여부(일정한 경계 내에서 경쟁자의 존재여부), 4km 이내에 차터스쿨의 수(경쟁자의 수), 4km 이내에 있는 차터스쿨의 학생 점유율, 4km 이내의 다른 학교로 옮겨간 학생 수(전년도에 차터스쿨로 전학 간 학생 수), 이 5가지 지표로 공립학교가 겪는 경쟁 압력의 정도를 측정하였다. 결과는 교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마찬가지였다. 차터스쿨이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초등학생의 읽기 성적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즉 캘리포니아에서는 차터스쿨이 유발한 경쟁효과는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학교선택권 확대는 학업성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외국 사례에 비춰봤을 때, 학교선택권 확대(그리고 경쟁효과)가 학업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다. 대학입시를 기준으로 선호/기피(또는 명문/똥통) 학교가 확연히 갈라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연구책임자인 박부권 교수가 직접 말했듯이 “기피하는 학교는 도태시켜야” 하는 게 선택권 확대의 궁극의 목적이다. 교육불평등이 문제의 핵심이라 했을 때 선택권 확대는 그 원인 처방이 될 수 없을뿐더러, 자유시장이라는 가정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므로 선택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학교구조조정이라는 무시무시한 발톱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선택권 확대는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외국에는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실증적 연구물들이 숱하다. 허나 한국에서는 변변한 연구물도 없고, 정책입안자나 관료들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어설픈 주장을 앞세워 정책을 밀어붙인다. 당연히 갈등과 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곡학아세가 무서운 이유다.

<연구 결과 요약>

선택과 경쟁, 그리고 학업성취

스티븐 깁슨 외
2006. 7.

  최근 몇 년간 교육에서 선택과 경쟁은 정책결정자와 학자들에게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터한 교육개혁의 실제 효과에 대한 증거는 애매모호하다. 선택과 경쟁의 경제학적 근거는 명쾌하지만, 이제까지 연구들은 두 개의 개념을 구분하려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잉글랜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넓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학업성취가 더 나은지, 그리고 학교가 경쟁적 조건에 더 많이 노출되었을 때 성적이 더 높은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단순회귀모형을 사용한 결과, 선택권과 학업성취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경쟁과 학교성적 간에는 약간의 상관관계를 찾았다. 그러나 이는 학교의 위치나 배정된 학생의 효과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입학 학군의 불연속성에 터한 도구변수방법은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할 경우 학교성적은 제한됨을 보여준다. 다만 학생선발과 운영이 자유로운 종교계 자율학교의 경우 경쟁과 학생들의 성취도 간에 약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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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요약>

캘리포니아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를 높였나?

리차드 부딘 & 론 짐머
2005. 9.

  본 연구는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차터스쿨 정책은 차터스쿨 재학생의 성적을 높이는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공립학교와 경쟁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립학교의 성적을 높이는 간접적인 효과에 밑바탕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사례를 바탕으로 공립학교 교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차터스쿨이 유발하는 경쟁 효과가 공립학교 학생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공립학교 교장들은 차터스쿨이 경쟁효과를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차터스쿨 경쟁효과가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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