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7호]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 민주노총 이대로 좋은가?

민주노총 이대로 좋은가?

정상철 / 공공연맹 대전충남지역본부 본부장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1)
민주노총 이대로 좋은가?


1. 들어가며

지난해 1월16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총은 이수호 집행부에게 3년간의 집행을 맡겼다. 그리고 1년 4개월 남짓 지난 오늘 2005년 4월 7일 현재, 민주노총은 깊은 대립과 갈등에 휩싸이며 조직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위기가 사실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상에 대한 확대과장이자 본질을 속이기 위해 이수호 집행부가 대중기만적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2004년 7월 1일 주 5일제 시행을 앞두고 임단협 투쟁을 집중해 내면서 힘차게 7월 투쟁을 준비하는 듯 했다. 그러나 5월 어느 날 느닷없이 ‘사회적 교섭 토론지침’을 현장에 내린다. 집행부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이 댔다. 현장은 교란되었고, LG 정유노동조합과 궤도연대가 파업투쟁을 힘차게 전개하던 그 즈음 제국주의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직권중재 철폐 요구도 걸고서)를 이유로 이수호 위원장은 서울 어느 공원에서 단식에 돌입했고, 7월 투쟁은 사그러 들어갔다.

2004년 9월7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개정안(이하 ‘파견법’)이 정권(노동부)에 의해 입법 발의된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노동자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당선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전면화하기 위한 마지막 법적 제도적 장치인 이 법안을 들고 나오면서 노동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였다. 민주노총은 9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이 ‘비정규법안이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될 시 강력한 총파업을 전개한다.’고 대의원 만장일치의 결의를 밝히며 자본과 정권에 대한 전면적 투쟁을 마찬가지로 선포했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은 그렇게 선포했다.

민주노총은 11월26일 하루 파업을 전개했고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직면한 자본과 정권은 비정규직법안을 2월로 연기시켰고, 다시 4월로 재연기 시켰다. 투쟁을 준비해야 하는 노동의 입장에선 시간을 번 셈이다. 투쟁을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현장을 다지고 또 다질 시간을 번 셈이다. 이미 파견법이라는 ‘전가의 보도’ 같은 법이 있고, 이 법을 개정(기존의 파견법도 당연히 폐지시켜야 하는 투쟁을 해야 하지만, 이들이 내건 개정은 순전히 개악된 내용으로 되어있다.)하여 법과 제도라는 형식적 장치를 완성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는 여유를 부리며 느긋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국회에서의 처리연기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예봉을 무너뜨리거나 교란시키는 방편이 되면서도 생색내기에는 그지없이 괜찮은 것이다. 게다가 이름도 그럴싸한 사회적 교섭이라는 명분으로 민주노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야….

파견법이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8개월이 흘렸고, 이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정세는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 스스로 이 법이 통과되어 비정규직이 전면화 되면 ‘노동운동이 없다’고 했고 노동진영의 그러한 위기적 인식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런데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어떻게 했던가? 1월20일 속리산에서 대의원대회가 개최되었다. 사회적 교섭안건을 두고 지루한 논쟁이 진행되었고, 정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40여분간의 토론이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질 정도로 지도부의 파행적 의사진행이 이어졌으며 다음날 새벽 6시경 정족수 미달로 대의원대회는 유회되었다.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부각시켰던 제도언론은 “민주노총내 강경파의 반발, 노사정위 복귀무산”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2월 투쟁을 준비해야 할 민주노총 지도부는 온데간데없이, 사회적 교섭 강행처리에만 혈안이 된 이수호 집행부는 2월1일 다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다. 15일전 대의원대회 소집공고절차마저도 내팽겨 치고서 말이다. 2월1일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대회가 또 다시 유회되고 사회적 교섭이 통과되지 않을 시 위원장이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서 다시 한번 사회적 교섭안건을 강행처리하려고 시도하지만 참석한 대의원과 현장활동가들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하게 되고 대의원대회는 다시 유회된다.

이수호위원장은 2월1일 대의원대회 이후 자성과 반성을 이유로 위원장직 수행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현장을 돌며 의견을 듣는다는 구실도 단다. 노동운동이 사라질지도 모르다고 그들 스스로 얘기한 파견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당면한 2월 투쟁을 앞두고 말이다. 위원장을 대리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2월1일 투쟁을 전개한 동지들에 대하여 소환장을 배달증명으로 보내고 진상조사단을 꾸리며 ‘폭력에 대한 강력대응’을 천명한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대응이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 대의원대회를 준비한다. 삼 세 번인가!

3월15일 대의원대회, 드디어 완장을 찬 질서유지대가 등장하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개회선언도 못하고 또 대의원대회는 무산되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에 의해 4월 처리가 공언된 파견법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 준비된 투쟁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하면서 당선된 이수호 집행부의 모습이었다.

‘04년 9월 21 대의원대회 이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자본과 정권을 상대로 파견법 저지를 위한 한차례의 투쟁시늉을 하며 자본과 정권과의 전면전은 애써 피해왔다. 대신에, 자본에 투항하는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며 투쟁하는 조합원과 활동가들을 상대로 한 정규전(戰)을 지루하게 펼쳐왔다. 이수호 집행부는 그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조합원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는 집행부도 이상하거니와 무엇에 씌인 듯 사회적 교섭을 통과시켜야만 하는 이수호 집행부가 이제는 안쓰럽기까지 하지 않은가!. 3.15 대의원대회 무산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수호 집행부는 우회로를 선택했고 그것은 유효했다.

비정규직 법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노사정대표자회의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고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파견법 개악안이 강행처리될 공산이 매우 큰 현상황에서 이수행 집행부는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비정규직 법안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노사정간 대표자 회담을 진행한다”(말장난 같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표현을 노사정간 대표자 회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고 한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보란 듯이 참석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가 참 길게 조잘거려본 현상들이다.

2. 몸말

이제, 여러 가지 정치적 수사를 빼고 왜 민주노총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제대로 원인을 한번 둘러보자!

하나, 노동조합운동 내 기회주의 세력이 똬리를 틀고, 교섭과 투쟁의 병행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며 조합원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세력은 노사협조주의(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노동조합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세력이며 총자본의 포섭체제에 투항, 야합하려는 대중조직(노동조합) 상층의 기회주의 세력이다.

이수호 집행부는 유세 중에 03년 11월9일 거리투쟁에서 노동자들이 골목으로 쫒기며 전경들의 방패와 방망이에 맞는 것이 ‘쪽팔린다’고 했다. 이렇게 싸워야 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면 손배가압류 문제로 열사들(배달호, 김주익, 이현중, 이해남,..)이 죽어나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음(이용석 열사 등)을 무릅쓰고 투쟁하고 있는데 싸우지 않을 재간이 있나! 또 집회현장에서 노동자 민중이 얼마나 맞고 깨졌나! ’04년 2~3월 박일수 열사의 투쟁 때에도 그랬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현대자본에 대한 분노를 모아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집회 장소를 일산해수욕장으로 배치하며 ‘오늘 집회 기조는 평화기조다’라고 선언하면서 대중의 투쟁의지를 관리 조절하지 않았던가! 경총의 자본가 놈들을 방문하고 경총 놈들이 민주노총을 들락거리고, 조직내부의 어떤 논의나 의결도 없이 노무현을 만나 그 자리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계급화해 도구를 만들어 내왔다. 하나를 보면 열을 한다고 했고,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다. 이제는 제대로 봐야 되지 않나!

둘째, 계급의식과 노동자 계급의 철학으로 무장한 지도부가 없다.

이수호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면서 노동과 자본 간의 대립과 투쟁(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멸망할 때까지 기본적인 사회 작동 메커니즘이다)을 우회하는 노사정 합의체제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 합의주의(corporatism)’라고 한다. 그런데 이수호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이 ‘사회적합의주의’는 아니라고 한다. 이수호 집행부는 또 말한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그런데 신자유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대체 이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인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취할 태도인가? 최소한의 계급의식과 노동자 철학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상층에 관료주의, 추수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파생된 노동강도 강화, 조합원내 개별화/대리주의/이기주의 만연, 현장공동화 등으로 이어지는 현장의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체계적인 대응방안은 찾아보기 힘들고, 현장을 투쟁회피와 핑계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추수주의가 상층에 만연하고 있다. 조합원의 정치의식,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현장의 투쟁동력을 복원해 내려는 중앙차원의 체계적이고 구체적 조직-교육-선전선동 사업은 볼 수가 없다. 그래놓고 세상을 바꾸는 준비된 투쟁을 한다고 한다. 이수호 집행부는 공약을 내세우며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불안하다. 민주노총이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이 바뀌기는 바뀔 모양이다. 정규직이 몰살당하거나 고립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무력화되고, 그래서 투쟁과 저항이 사리지고 5:95의 양극화된 세상, 여전히 일년에 3,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노동재해로 죽어나가는 학살의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세상!으로 말이다.

3. 나오며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 변한 적 있는가! 노동자 계급의 처지가 변한 적 있는가? 자본과 정권은 그들의 위기 극복을 위하여 치열하고 집요하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그들은 착취와 지배의 강화라는 그들의 목적을 ‘유연하게 관철해 오고 있다.

진리는 간단하고 단순하다. 자본과 맞서면서 투쟁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에게도, 현장의 조합원, 활동가에도 진리는 단순할 수 있다. 정권과 자본이 하는 얘기, 그들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과 방송이 하는 얘기, 자본가들이 하는 얘기와 반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그들이 노사정위에 극구 들어오라고 하면 왜 들어오라고 하는지 꼼꼼히 살펴보고서 안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나! 늘 그래왔던 역사적 과정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정말 끈질기게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290일째 직장폐쇄에 맞서 호텔 현장을 점거하고 사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호텔리베라노조 동지들, 불법적 계약해지에 맞서 고공농성 등 힘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경찰청고용직노동조합 동지들, 262일째 전면파업을 전개 중인 충남의 대성엠피씨 동지들, 한원CC 동지들, 현대자본과 맞서 불법파견 근절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비정규직동지들 그리고 하이닉스 동지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 이자본주의 사회가 존재하는 한 투쟁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몰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고자 하는 노동자는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수 없다. 사회적 체제, 관습, 관념, 도덕에 그대로 순응하면서 자신이 인간이고자 하는 욕구를 배반하거나 체제 순응적으로 조절하면서 에토스(ethos)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자는 자본가들이고 정권이고 그들의 국가이다.

우리에게는 감성적 파토스가 존재한다. 인간이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를 긍정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된 구조와 관념, 현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켜내는 사회변혁의 추동력인 파토스(pathos), 이 파토스를 회복해서 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갈아 엎고 사회변혁을 쟁취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계급의식을 복원해야 한다.

대중조직의 지도부를 무조건 기계적으로 따를 순 없다. ‘민주’와 ‘조직의 질서와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반민주와 강제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자본과 당당히 노동자 계급으로 투쟁하기 위해,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의 원칙을 지키는 조직 대내외적 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배우자.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노동자계급의 분노와 감성적 파토스를 억누르고 조절하면서 계급화해를 부추기고 투쟁을 회피하려고 하는 노동운동 지도부는 노동자계급의 적인가 동지인가? 민주노총 이대로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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