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2호]지역에서 시작하는 산별노조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4)

지역에서 시작하는 산별노조
특집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김동성


지역에서 시작하는 산별노조

김동성 / 발전노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


지역에서 시작하는 산별노조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의해 노동환경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변화는 분명히 자본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들의 의도대로 가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가 전체노동자의 60%를 넘어가고 있고 생존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투쟁을 각오해야 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전체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위해 싸워야 할 조직된 정규직노조는 자기방어에도 급급하여 같은 사업장 내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투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의한 위기의식과 2007년 복수노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들이 산별노조 건설로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하여 많은 단위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대다수가 동의하는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계급성, 투쟁성을 구현할 수 있는 산별노조를 만들자는 것, 그리고 그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러한 원칙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고 각 단위별로 조합원의 대중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 조직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 경로에 대해 많은 의견이 제시될 수 있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좀처럼 하나로 모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모아지길 마냥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나로 모일 것을 강제하는 것도 비민주적이다. 우리는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단위현장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자주적 결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만 분명히 하고 나가면 된다. 따라서 개별 조직주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조합원 대중의 동의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산별노조 건설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기본원칙을 구현할 수 있는 산별노조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제안들이 나와야 한다. 이글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토론을 통해 동의하고 있는 내용들을 충실히 담을 수 있는 산별노조 건설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연대성, 계급성, 투쟁성을 열어줄 ‘지역’

산별노조의 완성된 형태는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조직으로 포괄하는 1국 1노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상층간부들의 조직간 협상에 의해 만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조직 형식적으로만 접근하면 중도에 파산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활동역사와 투쟁경험에서 채워진 내용들이 그에 걸 맞는 조직형식을 받쳐주지 못하면 산별노조는 도중에 공중 분해되거나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전망마저 가로막는 관료조직으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조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의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계급성, 투쟁성은 활동경과를 거치면서 강화되기도 하고 탈색되기도 한다. 이것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지난한 과정이 필연적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아예 이러한 내용들을 담을 수조차 없는 왜곡된 산별노조가 만들어 질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이러한 요구를 담아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조직형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역’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지역노조는 업종산별노조보다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연대성과 계급성 그리고 투쟁성까지 담아내는 데 수월하고 그것을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조직형태다. 업종산별노조에서의 연대는 특별활동에 속하지만 모든 업종의 조직들을 포괄하는 지역노조는 연대자체가 일상활동이 된다. 연대투쟁이 일상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계급성을 형성하고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연대성과 계급성 속에서 투쟁성은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반대로 업종산별노조는 현실적인 교섭구조 형성의 수월함은 있으나 업종별 장벽 속에서 자본의 편재에 갇히고 길들여지기 쉬워 연대성과 계급성을 형성하고 살려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업종산별노조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접어들 공산이 크며 노동자계급의 자주성과 계급적 전망을 상실한 관료적 산별노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일반노조나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경험을 살린다면 먼저 교섭구조를 잡아놓고 연대성과 계급성 실현을 이후의 과제로 놓기 보다는 오히려 연대성과 계급성을 먼저 살리는 조직형식 속에서 교섭구조는 투쟁과정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차후의 과제로 남겨놓는 것이 계급적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확실한 경로가 됨을 알 수 있다. 현재 업종산별노조가 활동하고 있지만 조직유지 자체도 버거우며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외부의 충격에 매우 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당 노동자들의 연대성과 계급성이 강화되었다고 확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며 기업별노조의 산술적 합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기 쉬운 ‘지역’

자본의 노동자 분할통제 전략의 핵심은 비정규직에 있다. 정규직을 공격해서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다시 비정규직을 정규직을 위협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새로운 공장에서는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채워나가고 기존공장의 일감은 새로운 공장으로 이전시켜 정규직을 위태롭게 한다. 위태해진 정규직은 더욱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이해에 매달리게 된다. 즉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자본의 목표는 정규직 없는 꿈의 공장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 비정규직을 조직화하여 투쟁주체로서 세워내지 못하고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그릴 수 없다. 따라서 건설될 산별노조는 비정규직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과 조직적으로 하나 되어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다수 사업장 노동자 중 절반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같은 사업장 내에서 회사를 달리하면서 정규직과 같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업장의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불분명하고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비정규직 철폐는 구호로만 외쳐질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노조는 기업별 장벽 또는 업종별 장벽에 갇혀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멀리 있는 부담 없는 비정규직 투쟁현장에는 열심히 쫓아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각 연맹의 소산별이나 업종산별노조의 지난경과를 보면 비정규직 조직화의 중심으로서의 전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산별노조가 해당업종의 비정규직을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산별노조 내에서조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기존 산별노조가 비정규적 조직화의 중심조직으로 설 수 있는가에 의문을 던진다. 업종산별노조를 포위한 기업별, 업종별 장벽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한 비정규직노동자와 하나 되는 투쟁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비정규직을 담아낼 좋은 그릇이 바로 지역이다. 그들을 묶어내기도 수월하고 활동하기도 편한 지역노조는 지역에 있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이나 개인으로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지역 정규직노조의 지원과 연대를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조직으로까지 융합될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지역노조가 건설된다면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급물살을 탈것으로 예상된다. 이제까지 비정규직 투쟁의 실질적인 중심이 지역이었다는 것을 볼 때 비정규직 조직화의 희망은 바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3. 지역본부를 지역노조의 출발점으로

이미 우리는 업종산별노조의 맛을 봐 왔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과기노조, 택시노조, 전교조, 대학노조 등. 그러나 이들 업종산별노조들의 이후 전망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산별노조를 이끌고 있는 조합간부나 그에 속한 조합원이나 자기조직의 발전 전망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현재의 산별노조는 조합간부에게나 조합원들에게 전망과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대와 계급적 활동으로 전체 계급운동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업종산별노조의 한계일 수도 있다. 조직에 대한 대중적 확신과 발전 전망 없이 이러한 상태를 지속시키다 보면 투쟁할 때마다 내부분란이 야기되면서 조직을 공중 분해시켜 나갈 수도 있다.

이제 산별노조 건설경로를 기존 업종산별노조가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출발해보자. 물론 출발은 동의하는 지역의 단위조직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지역노조 출발의 중심에 서야 한다. 지역 내에 개별 사용자를 둔 사업장과 비정규직노조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노조에 동의하는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들을 모아서 토론회를 시작으로 조직화작업을 진행한다. 조직화의 구체적 대상은 금속, 보건의료, 과기, 택시, 대학, 전교조 사립학교 등의 개별사업장, 비정규직 노조나 개별노동자 등이 된다. 기존의 업종산별노조에서 운동의 전망을 찾지 못하면서 갑갑해 하는 조직은 해당 조합원들의 충분한 토론과 결의를 바탕으로 참여한다. 가입을 강제할 이유는 없다. 지역본부가 지역노조건설을 투쟁의 성과로 만들어내야 할 중심사업으로 설정하고 잘 이끌어 나간다면 조직 확대는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과정은 철저하게 단위사업장 조합원들의 민주적 절차와 자주적 결정에 의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 조직들이 산하조직의 자주성을 인정한다면 문제가 발생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연맹, 기존산별노조의 조합간부들의 대범하고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본부는 지역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규직노조 뿐만 아니라 지역의 비정규직노조와 개별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교섭구조의 문제는 과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투쟁과정 속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지역의 일반노조나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경험을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교섭은 투쟁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역노조가 투쟁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여전히 교섭은 어렵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투쟁이 교섭을 규정해야지 교섭이 투쟁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교섭의 문제를 우선시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업종산별노조로 다시 회귀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지역노조도 마찬가지로 가입된 조직의 자주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또한 현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위에 지역노조가 안착되도록 현장 활성화의 인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역노조는 단위현장의 활발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과 재정을 지역으로 과도하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지역노조는 현재 기업별노조가 가진 현장 활동성을 그대로 살리고 연대성과 계급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4. 총연맹을 전국민주노조의 출발점으로

각 지역이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노조를 건설해나가는 것에 조응하여 총연맹은 이들을 전국적으로 소통시키고 묶어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노총 산하에 전국민주노조라는 산별노조 조직을 띄우면 된다. 지역본부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이 직접관장하면서 조직 규모에 맞게 점차적으로 역량을 배치해 나가면 된다. 이 조직은 중앙교섭을 트기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지역의 투쟁을 확장시키고 강화하는 것이 주요 임무라 할 수 있다. 지역에서 추진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전국적인 사안의 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단위로 자리매김 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존 각 연맹에서 산별노조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서 연맹을 대체해 나가듯이 지역노조가 지역본부를 대체해 나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국민주노조가 민주노총을 대체해 나가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특정시점에서 동시에 전환하기는 어렵다. 또한 무엇보다도 참여할 단위들의 대중적 동의하에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조직 형식적 완성태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출발은 가급적 빨리 해야 한다. 출발선상에서 모든 것을 그림으로 완성할 수는 없다. 다만 목표를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그림들은 실제 진행과정에서 수정하거나 추가해나가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 간의 관계를 상하좌우로 긴밀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따라서 개별 자본에 대한 단위 노동조합의 투쟁도 해당 노동조합의 투쟁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단위사업장을 넘어서야 해결될 투쟁들이 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간의 노동조합의 활동은 공장의 담을 넘지 못하였다. 지역에서의 출발은 조합주의에 가로막혀 공장안에 머물렀던 노동조합의 활동을 끄집어내어 지역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당사자로 나서게 한다는 것과 지역 민중을 노동자를 중심으로 모아내고 이끌어가는 지도적 역할을 노동운동이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지역노조 건설운동은 노동조합활동을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이는 발판이 될 것이다.


5.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선 지역에서 지역노조 건설에 동의하는 주체들을 모아내고 토론하기 위해 지역본부, 단위노동조합의 조합간부, 활동가, 노동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노조 건설을 위한 토론회를 시작하자. 이 토론회를 통해서 지역노조의 상과 경로 등을 토론하자. 이러한 토론회의 내용들을 조합원들과 같이 고민하기 위한 대규모 공청회를 열어서 여론화하자. 조합원들의 여론과 반응에 따라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건설계획을 세우고 집행해 나가면 된다. 활동과정 속에서 지역노조 건설의 규모와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노조 추진단위가 어느 정도 꾸려지면 전국적으로 모아내는 작업을 위해서 지역노조 추진주체들의 전국토론회를 통해 전국민주노조 추진의 초동주체를 형성해나간다. 이후의 그림은 추진주체들의 기획력과 상상력 그리고 실천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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