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2호]류기혁 열사와 현대자동차노조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정

정세와 초점

비정규노동자 류기혁 열사와 현대자동차노조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정
정세와 초점/국내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박종성


비정규노동자 류기혁 열사와 현대자동차노조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정
박종성 / 한노정연 연구원, 정책위원회




들어가며
9월9일 노동부가 연간 2천억원대 규모로 추정되는 ‘외국인 근로자 전용보험’ 상품에 대해 삼성화재가 독점할 수 있도록 불법적으로 특혜를 주고(각주 : 출국만기보험 귀국비용보험 상해보험으로 구성되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은 산업인력관리공단을 단체계약자로 지정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입국시 의무적으로 삼성화재의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9월14일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취지로 05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LG전자(주), SK텔레콤(주) 등 82개사를 선정·발표(각주 : 노사문화 우수기업’ 선정제도는 노사협력 증진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지금까지 총 792개사가 신청하여 이 중 388개사가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하는 사회, 그러나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삶의 질은 향상되기는커녕 질곡으로 치닫고 결국 또다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9월4일 저녁 6시경,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맞은 편 골목, 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실(3층 건물) 옥상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소속으로 울산 2공장 투싼라인(21라인) 해고자인 류기혁(31) 조합원이 줄에 목을 매 자결했고, 일주일 뒤 9월10일 부산에서는 김동윤 화물연대 조합원이 “유류보조금을 세무서에서 압류해 살기가 힘들다”며 투쟁조끼와 머리띠를 매고 분신한 뒤 13일 0시 40분경 사망하였다(각주 : 고 김동윤씨는 지난 6월말부터 올해 말까지 매월 50만원씩을, 내년 1월부터 7월까지는 매달 100만원씩을 납부해 체납세금 980여만원을 모두 갚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지난 6월1일 세무서에 제출했다. 세무서는 대신 운송료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풀었다. 운송료 가압류가 해제 후 9월까지 석달 동안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각서대로 꼬박꼬박 세금을 냈으나 부산 수영세무서는 9월 김씨에게 사전통보나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이번에는 유류보조금을 일방적으로 가압류했다. 현재 세무당국은 김동윤 조합원 뿐 아니라 부가세 등을 체납한 부산지역 화물운송 노동자 4,000여명의 유류보조비를 일괄 가압류 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9월14일, 정부의 이주노동자 단속에 대한 ‘공포’로 이주노동자 응엔 치쿠에트가(각주 : 경남 함안에서 14일 오후 1시 45분경,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던 베트남 출신의 이주노동자 응웬 치쿠에트(30)씨는 인근 공장 앞 승합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단속반원으로 오인해 도망치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2년 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경기도의 모 업체에서 근무해 온 응웬 치쿠에트씨는 지난 9월 초 회사를 나와 경남 함안에 소재한 모 업체에서 일해 왔다. 평소 응웬 치쿠에트씨는 건강한 편이었고 별다른 지병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월15일 새벽에는 20여 일째 천막농성 중이던 여수항운노조 김익준 조합원이 사망하였다(각주 :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은 그동안 대한통운과 계약을 맺고 상차, 운반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남해화학의 사장으로 김장규 씨가 취임하면서 현재 상차계약의 단가가 높다는 이유로 대한통운과의 상차계약을 해지하면서 여수항운노조 조합원 113명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에 여수항운노조 조합원 110여명은 8월 27일부터 남해화학 본사 후문 쪽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남해화학 측은 회사 출입구를 봉쇄하고 음식물 반입도 금지시키고 있었다.). 노동자의 자결과 분신, 그리고 죽음은 삶에 대한 ‘공포’와 직결된다. 공포는 ‘규정된 대상’에 대한 공포이다. 이 사회에서 자신이 조성하지 않은 객관적 규정으로서의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로서의 삶, 그 속에서 그의 노동의 성격은 그 자체 ‘공포’로 연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생활과 생존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구조 안에서 노동자의 죽음을 바라보고자 한다. 물론 죽음에 내몰리는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관계를 살펴볼 때, 노동자 개인이 그 구조 자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 노동자는 오직 자본주의라는 구조 안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조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지난 1월18일부터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5공장 전면파업에 돌입하고, 이후 징계 및 해고를 당한 조합원들이 220여명에 이를 정도로 현대차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우리는 노동자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져 있는 생존조건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생존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구조’이다. 자본주의 ‘구조’는 자본주의 체계의 요소, 즉 노동자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관계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배적인 생산관계, 즉 불법파견에 의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이 시대의 ‘노동자의 사회적 목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사이의 관계 방식, 그리고 노동자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는가?’ 이런 것들이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는 구조들이다. 이렇게 규정되는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인간의 개인적, 나아가 사회적 생존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문제이므로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간과하고는 노동자의 자결과 분신, 죽음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노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구조를 도외시하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사변과 주관주의에 빠지고 만다. 노동의 성격은 노동자의 사회적 존재방식과 생활양식의 질을 규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의 구체적인 생활조건과 생존 가능성은 노동의 성격에 의해서만 제대로 판단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9월4일 현대자동차비정규노동조합 류기혁 조합원 자결을 둘러싸고 일어난 문제에 초점을 맞춰 그를 규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생존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 류기혁의 자결을 둘러싼 논란

앞의 문제제기와 연관되어, 우리는 다시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신봉하는 이 사회 체제에 의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노동자의 사회관계 방식, 생활양식, 그리고 구체적인 생활조건과 생존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노동자 계급은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어떤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되묻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계급은 노동자 계급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불법파견 등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의 노동을 통해서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자본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의 강제적 생존조건의 가장 극한 상황에 직면한 계급이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노동의 강제적 조건, 즉 불법파견으로 자본이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적 조건 한 가운데에 바로 류기혁 비정규직노동자가 있었던 것이다. 즉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울산 2공장 투싼(21라인) 해고자인 류기혁(31) 조합원’, 이것이 바로 그를 객관적으로 규정한 사회적 조건이며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그의 생존조건을 강제하는 구조의 한 가운데에 그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 속에서 류기혁 조합원은 자신의 활동의 변화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와 보다 나은 생존가능성과 생활조건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노동자의 강제적 생존조건은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근태 불량 등의 이유로 해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박탈당했다. 또한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도 그의 삶을 압박하는 계기로 작동했다(각주 : 해고 당시 류기혁 조합원은 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해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현대차 자본은 출입금지 및 퇴거단행기처분신청 대상자 91명의 맨마지막에 류기혁 열사를 집어넣었다.”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 특보, 2005년 9월7일.). 이렇듯 그의 삶의 조건은 불안정한 노동의 조건 속에서 해고에 의해 삶에 대한 공포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상태였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 류기혁의 자결을 둘러싸고 열사 규정문제로 대책위 구성의 쟁점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류기혁이 자결한 다음날인 9월5일, 울산에서는 오전 11시부터 대책위 구성을 둘러싼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의 주된 쟁점은 고 류기혁 조합원을 열사로 규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는 노조탄압에 의한 타살이라는 입장과 노조탄압에 의한 타살이 명확치 않다는 입장으로 구분되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노동탄압에 의한 타살’로 규정하였고(각주 : 열사 대책위 구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근태상의 이유라는 것은 업체가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며 건강상의 이유로 결근을 보고한 바 있고, 노조활동 등을 이유로 작업장 내에서 심각한 왕따를 당했으며, 해고 전후로 심각한 심신의 고통을 받았기에 회복기를 가지며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의 과정을 준비 중이었다는 등의 근거를 들어 ‘노동탄압에 의한 타살’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정규직노조는 해고 사유와 노조활동으로 인한 탄압에 의한 것임을 규명하기가 명확치 않은 상황, 근태불량으로 해고당한 것, 정규직 정서상 열사로 생각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고 류기혁 조합원을 열사로 규정하는 것에 이견을 표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류기혁 조합원에 대해 민주노총이 9월6일 오후 2시에 열린 중집회의에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준)의 대책위 구성 제안을 받아들여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현대자동차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로 구성된 열사대책위를 꾸리기로 했다. 그러나 앞서 확인 했듯이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노조는 고인의 사망원인이 노조활동 탄압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될 시에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현대자동차노조의 태도는 이후에 비정규직노조와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여지를 남겨두는 계기가 되었다. 9월7일,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연맹 울산본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가칭)불법파견 철폐, 비정규노조 탄압분쇄 및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정했고(각주 : 대책위의 목표는 고 류기혁 동지의 죽음이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 확산에 따른 것임을 명확히 하고, 이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고 불법파견 철폐, 원청사용자 책임성 인정 등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의제 확산, 비정규노조 탄압 분쇄 및 노동3권 쟁취, 비정규 불법파견 현안투쟁 엄호로 정하고, 중앙대책위와 지역대책위를 함께 구성했다. 대책위사업의 전반적 기획과 중앙대책위와 지역대책위간의 긴밀한 결합을 위해 민주노총, 금속연맹,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연맹 울산본부, 현대자동차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로 투쟁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책위 구성 논의가 ‘열사’ 표현 문제로 난항을 겪는 가운데 현대자동차 곳곳에서는 농성이 이어지다가(각주 : 지난 9월1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여온 윤성근 현대차노조 교육위원, 조정모, 권혁모 5공장 대의원은 9월7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도 9월7일 오후 1시30분부터 본관 앞 노숙농성에 결합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 노숙농성에는 9월8일 현대차비정규직노조, 현대차정규직 활동가 등 약 200여명이 동참하고 있었다. 구속수감 중인 안기호 현대차비정규직 노조위원장도 지난 5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9월15일, 안기호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안기호 위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35명 중 18명에 대해서는 간단한 심리만이 진행됐고 나머지 17명의 조합원들은 집행유예와 벌금, 선고유예 등의 판결을 받았다. 한편 안기호 위원장은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 이상욱 현차노조 위원장과 함께 증인으로 채택되어 '현대자동차의 노동자 불법 파견 건'에 대해 증언하게 됐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도 고 류기혁 조합원 사망과 관련 지난 5일부터 전면파업을 단행했다. 한편 지난 7일부터 울산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도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류기혁 열사 정신계승’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했고,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도 현대차 각 공장 앞에서 출근투쟁을 진행했다.), 9월 11일 대책위 명칭에 ‘류기혁 동지’ 문구 명시화로 마무리 됐다.
대책위 구성 문제와 더불어 9월8일 현대자동차노조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논란의 지점은 불법파견 특별교섭 문제 등 현대자동차 내 비정규직 현안 투쟁에 대한 대응 부분이다. 고 류기혁 조합원 관련 대책위 구성 논란이 계속되는 9월8일 오후 7시 30분경, 현대자동차 노사는 올해 임금·단체교섭에 잠정 합의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이날 교섭에서 △임금 89,000원, 추석, 설 상여금 80만원, 3사제도개선 격려금 100만원(타결 즉시 소급분 지급) △주간연속2교대제 2009년 1월1일 시행 △강병태 해고자 석방 후 본인 요청시 1개월 이내 복직 △정규직 13명 고소고발 쌍방 철회, 손배 가압류 철회 △비정규직 임금 82,770원(정규직 임금인상의 93%), 성과금 300%, 일시금 120만원 △비정규직 8월12일 이후 발생한 고소고발 철회, 징계 최소화 등 63개 조항에 합의했다.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노사와 비정규직 노조를 포함한 3자 실무팀을 구성해 1개월 이내 교섭을 추진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현대자동차노조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해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는 9월12일 “9개월 가까이 전개해온 불법파견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한 불법파견 철폐 투쟁이, 05년 임단투 공간에서 ‘1개월 내 특별교섭 실시’라는 부도수표에 스러져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불법파견 투쟁 관련 비정규노조 탄압에 대한 원상회복 합의에서 ‘8월12일 이후’라고 못 박아 결국엔 1월18일부터 파업농성에 돌입해 투쟁해 온 5공장 농성자들이 배제된 점 △2·3차 업체 노동자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점 △비정규직 임금 관련 정규직 ‘인상분’의 93% 인상, 성과급 차별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노조는 “매년 80% 수준의 임금인상을 해왔으나 올해는 93%를 쟁취하는 등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불법파견, 임금인상, 해고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단협 34조(배치전환의 제한)와 관련한 합의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개선계획’의 실행을 위한 전초작업이라는 우려를 강하게 드러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이런 전환배치 기준 논의가 “당장에는 사측이 공장간 물량 차이 등을 운운하며 배치전환 기준의 완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내막에는 불법파견을 적법도급으로 해결하려는 이른바 ‘불법파견 개선계획’의 실행과 궁극적으로 파업권 무력화를 통한 노조파괴라는 노림수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9월12일, 현대자동차노조는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 전체 조합원 42,830명 중 40,686명이 투표에 참여해 94.99%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투표 조합원 26,005명 찬성(63.92%)으로 잠정합의안을 가결시켰다.

2. 현대자동차정규직노조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정

우리는 여기서 비정규직 노동자 류기혁의 자결과 관련된 대책위 구성에서, 이상욱 위원장이 불과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임단투 마무리 전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노사와 비정규직 노조를 포함한 3자 실무자팀을 구성해 1개월 이내 교섭을 추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점(각주 : 이에 대해 조돈희 현대중공업 해고자는 “현차노조의 이번 모습은 전부다 불만과 비판과 비난만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상욱 집행부가 잘못하고 있는걸 바꾸려는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운동, 투쟁,지도부를 견인하기 위한 현장조직과 활동가들의 대오 각성이 촉구된다.” 강조했다. 9월13일, 참세상, [특별기획: 2005년 한국의 노동자](8)-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2)), 그리고 지금까지의 현대자동차노조의 불법파견에 대한 입장과 태도에 주목해 볼 때, 현대자동차노조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에 대해 이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을 의사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2003년 7월8일에도 현대자동차정규직노조 상무집행위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냈으며(각주 :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직투쟁위원회가 2003년 7월8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총회’를 갖고 노조로서 그 위상을 재정립했다. 이로서 아산에 이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도 하청노동자들의 독자노조가 설립되었다. 비정규직노조의 출범이 알려지자 각 처에서 이를 환영하는 성명이 잇따랐다. 울산의 모든 제조직들은 노조 설립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금속노조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금속연맹,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이 노조설립을 축하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현자노조 상무집행위원회는 조금 다른 입장을 보였다. 현자노조 상집은 지난 7일 “비투위 독자노조 추진에 대해 강력히 재고를 요청 한다”고 밝히고 “비정규직의 독자노조 추진은 비정규직의 차별철폐 투쟁전선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돼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으며 어렵고 더디더라도 정규직과 함께 비정규 노조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1월18일, 비정규직 노조가 울산 5공장을 중심으로 단독 파업을 벌여 90여명이 무더기로 해고된 뒤에서야, 원·하청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각주 : 1월24일, 현대자동차 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불법파견 연대회의’가 노조 공식기구로 의결됐다. ‘불법파견 원하청 연대회의’는 ‘공동논의,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을 원칙으로 하며, 정규직 임원 8명, 비정규직 임원 3명이 참여한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현대자동차 5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9일째 무기한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1월26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건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한 금속노동자 결의대회’ 첫 원하청 공동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서도 이상욱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이 땅의 가장 큰 모순 중 하나이며, 비정규직 철폐는 가장 큰 염원 중 하나”라고 전제하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 싸움은 정권과 자본과의 대리전이라고 본다. 이번 불법파견 투쟁 승리의 의무가 정규직노조에게 있다고 생각 한다”고 불법파견 투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또한 노동부가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9천여 명에 대해 불법 파견 판정에 이어, 1월18일 비정규직 노조가 단독 파업에 나서고 이후에 회사쪽은 노조와 노조원들을 손해배상 가압류와 징계·해고하는 상황(각주 :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달 20일 농성중인 84명 조합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2월24일 현재까지 118명을 형사고발 했으며, 지난 1일 5공장 농성노동자 87명을 상대로 수 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태다.)에서도 정규직 노조는 “조합원들의 정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파업을 결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각주 : 2005년 1월18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격적으로 생산을 중단, 총력투쟁에 돌입했다. 오전 7시부터 5공장 원하청 노동자들 200여명은 5공장 정문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한 공동출근투쟁을 전개하고, 오전 8시를 기해 5공장 비정규직 동지들 100여명이 업체 탈의실로 집결하여 힘차게 파업투쟁을 결의했다. 한편, 현대자동차정규직노조는 이번 전격 파업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었다. 손봉현 5공장 대표는 "현재 조합원들의 정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파업을 결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사업부 대표라고 해서 독자적인 연대 지침을 내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손봉현 대표는 또한 "이번 5공장의 경우, 불법적으로 라인을 정지한 것이기 때문에 업체측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해도 법적 문제자체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 대표에 따르면 20일 잔업거부 관련 3개 원칙은 △아르바이트 투입 불가 △관리자를 통한 직영노동자 작업배치 불가 △타 협력업체 비정규직 투입 불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대공장노동조합의 이해관계 속에 방치되지는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우리는 다시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존재 조건을 되묻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력밖에 없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 그 중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 속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다. 비정규직노동자는 지배계급에 의한 더욱 가중된 경제적 착취, 정치적 압박, 이데올로기적 억압 속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벌어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결이 대공장노동조합의 이해관계 속에 내맡겨졌다면, 우리는 이것을 노동자 계급의 ‘자기 부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고통 받는 노동자 계급의 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의 해방을 담지하고 있는 사회 변혁의 주체이다. 앞서 확인했듯이,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자기 부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 비정규직노동자 류기혁의 자결과 관련된 대책위 구성 논란과 임단협에 대한 현대자동차노조의 태도이다.
‘노동자 계급’은 이미 계급으로서의 보편성의 추구와 이를 위해 현실적 모순의 지양을 담고 있는 계급이다.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는 또한 개별적인 인간이기에 시·공간적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사회성과 역사성을 요구한다. 사회성은 공간적 제약을 확대한 것이며, 역사성은 시간적 제약을 확대한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 계급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개인, 또는 특수성이라는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아의 반성을 통한 타자로 자신의 지평을 확대해 전진해 가야하는 계급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지만, 정규직 노동자는 바로 그 다른 것, 비정규직이라는 ‘타자성’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비체계’ 속에서만 세상의 것들이 존재한다.
사회의 본질적 모순의 대립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기 위해서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보여준 노동자 계급 스스로에 의해 벌어지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기 부정으로부터 전체 노동자 계급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있는 비정규직의 고통과 연대로 나아가기 않으면 안된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의 종말로서의 역사는 현대자동차노조라는 특수성 속에서 노동자 계급이라는 보편성으로의 확장을 요청하고 내올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새로운 운동은 노동자 계급의 분화를 통해 약화된 노동자계급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노동자계급’이라 할 때, 노동자계급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의 계급, 즉 단일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성은 자본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분화로 인하여 이제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단일성과 다양성의 모순은 한편으로는 자본의 관점에서는 자본 운동의 통일과 유지, 그리고 포섭과 통제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의 관점에서는 자본의 포획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기 위해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의 분할 구도는 방치할 수 없는 내적 모순이다.
결국 자본의 지배와 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은 노동자계급을 자기 필요에 맞게 둘로 나눌 수도 있고 셋으로 나눌 수도 있고 그 이상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자본의 분할 구조를 파괴하는 노동자 계급으로서 노동자는 하나이다. 즉 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모순의 지양은 자본에 의해 분화되고 파편화된 ‘다양한’ 노동자로서의 분할상태를 폐지하고,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동일성을 보존함으로써 가능하다.

나오며
노동자 계급 투쟁은 자신의 노조를 넘어,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자 계급의 분할을 부정하고 노동자 계급의 현실적 요구를 실현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본의 운동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 즉 비정규직이라는 객관적 규정에 대한 부정이 노동자 계급 운동이다.
이렇게 볼 때, 앞서 살펴봤듯이 그동안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입장, 고 류기혁 조합원 자살 관련 대책위 구성 논란, 그리고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현대자동차노조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현대자동차노조는 노동자 계급의 단일한 ‘계급’으로서의 현실적 요구와 분리되었고 궁극적으로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정의 길을 걸어왔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조합주의의 외양에 잘못 인도되어 임금과 같은 경제적 범주에 갇히고 만 것이다. 이러한 시장개념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노조의 한계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조합주의의 한계에 다름이다. 궁극적으로 자본의 분할구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조합주의는 노동운동의 파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자 계급이 자기 계급의 이해를 보편적 이해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노조의 이해를 넘어 노동자 계급이라는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각주 :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노총의 사무총국 개편안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다소 멀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9월6일,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민주노총 사무총국 개편안을 확정했다. 사무총국은 사무처, 조직, 정책, 대외협력, 비정규 미조직, 교육선전, 문화미디어 등 기존 1처6실 체제에서 사무처, 조직, 정책, 기획조정, 홍보, 문화미디어, 교육실 체제로 재편된다. 기획조정실은 사업계획 수립 및 부서간 업무조정, 총무, 회계 등을 담당하고, 사무차장은 사무총장의 업무를 총괄한다. 또한 기존의 교육선전실은 홍보실, 문화미디어실, 교육실로 재편되고, 홍보실은 언론홍보와 임원보좌를 담당하게 되며 문화미디어실은 문화, 미디어, 정보통신, 영상, 편집, 선전 업무를 담당함, 교육실은 교육 및 교육원 설립 준비를 주로 담당한다. 개편안에서 주목할 점은 미조직 비정규실은 없어지고 비정규센터를 부설기관으로 설립해 비정규 조직 및 활동가를 양성하게 될 예정이며, 미조직 비정규실이 담당하던 비정규투쟁은 조직쟁의실로 옮겨진다는 점이다.). 다시는 노동자의 죽음이 노조의 이해관계 속에서 내맡겨 진 채 방치되면 안된다. 이 과정의 주체, 자본의 무덤 파는 주체는 노동자,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체로 선다는 것은 정규직에 의존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록 비정규투쟁에 함께 해야 할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노동조합이 매우 실망스러운 임단협 타결을 이루며 비정규직철폐투쟁전선에서 이탈해 갔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사항전은 바로 지금부터”(각주 : 사내하청노조·사회단체들은 9월15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혔다. 또한 현대·기아·GM대우 등 자동차 사내하청노조를 포함한 9개 사내하청노조와 민중연대 민주노동당 민교협 등 8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15일 오후 2시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류기혁·김동윤 열사의 죽음과 관련해, 전국의 사내하청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공동 총파업 및 투쟁의 전국화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고 류기혁·김동윤 열사의 죽음은 “불법파견을 자행하고도 직접고용 정규직화 시정조치는 커녕 노조탄압을 자행한 현대 재벌과, 비정규직 확대양산만을 꾀하며 비정규노조 탄압을 수수방관하거나 앞장 서 진두지회한 노무현 정부에의한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현대 재벌과 노무현 정부의 사죄 △노조탄압·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 전환 및 원청 사용자 구속수사 △원청 사용자는 집단해고·폭행 등 탄압을 중단하고 교섭에 나설 것 △파견법 철폐, 원청사용자성 인정,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기간제 사용사유 엄격 제한 등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등을 촉구했다.)이다. 현대자동차노조가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였다면, 비정규직노동자는 노동자 계급으로서 노동3권을 부정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저항의 힘으로 영원한 자본의 장송곡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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