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22] 한미FTA 2차협상 저지투쟁

특집: 한미FTA 저지투쟁 2라운드

변정필 / 한노정연 연구원


7월 14일 한미FTA 2차 협상저지 투쟁보고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이번 협상이 파행으로 마감되었다는 문자가 돌기 시작했다. 6월 워싱턴에서 진행된 1차 협상이 매일의 브리핑을 통해 협상 진척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이번 2차 협상의 경우는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협상진행상황에 대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확인결과 의약품 분과회의에서 한국 측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계속 추진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미국 측 협상단이 회의에 나오지 않았고, 여기에 대해 한국 협상단도 14일 예정된 회의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결국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부가 협상과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국익’을 명분으로 일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검은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단 드러난 내용만 본다면 이번 협상에서 쟁점이 되었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이미 한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개시를 위해 지난 해 미국 정부에게 내놓기로 합의 한 “선결조건”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말 보건 복지부가 돌연 약속을 뒤집고 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공표한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 한미FTA협상을 둘러싸고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를 홍보하기 위해 38억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매일 같이 국정홍보처 홈페이지를 FTA찬송가로 도배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내부 균열조차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한미FTA를 강행해 왔다는 것이 폭로된 것이었다. 게다가 1차 협상 이후 공중파 방송에서 한미FTA의 문제점을 보도한 프로그램으로 대중적 여론이 급반전 하면서 반대여론이 60퍼센트까지 치솟은 상황은 노무현 정부가 이대로 한미FTA를 추진하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2차 협상이 끝난 직후 ‘다음 세대를 위한 결단’이라며 한미FTA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착취의 국경을 없애는 한미FTA

한미FTA는 종합선물세트이다. 말하자면, 어느 하나라도 이가 빠진다면 그 모양새가 대단히 좋지 못하거나, 그 기능을 다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2차 협상의 파행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운동진영에게 있어 좋은 신호이기는 하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은 한미FTA 2차 협상 저지 투쟁을 통해 한미FTA라는 종합선물세트에서 뭐가 빠지고 뭐가 들어가야 좋은 선물세트라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 민중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종합 선물세트가 ‘왜,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는가’라는 점이다.

한미FTA, 즉 한국과 미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은 ‘협정’이라는 신사적인 말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착취의 국경을 없애는 자본 간의 신성동맹이다.
한미FTA는 고착국면에 있는 다자간 협상(WTO)을 돌파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한미FTA 협상의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협상은 상품에서 공적 서비스 영역까지 전 부문을 포괄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다면 상품만이 아니라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공공 서비스 또한 이윤추구의 영역으로 전락해 사유화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쌀과 교육, 그리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보건의료도 모두 협상의 대상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한미FTA가 자본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위기관리의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노동, 복지, 환경 등 최소한의 정책적 권한까지도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이 한미FTA를 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일까?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면서 굴욕적으로 한미FTA 협상이 추진되고 있으며, 결국 이것이 이 나라를 미국에 팔아넘기려는 매국협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 한미FTA가 이미 미국과 한국의 국익의 대립 또는 식민주의적 발상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FTA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

애초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가 만병통치약인양 떠들어 댔다. 한미FTA를 통해 고용이 증가하고 양극화가 해소될 것이라는 것이 그 논리였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의 통계조작 사실이 폭로되고, 농업을 필두로 한 각 부분의 엄청난 피해를 예고하는 근거들이 제출되자 한국 정부는 말 바꾸기를 했다. 일부 피해를 입는 부문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한미FTA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외부로부터의 충격요법이다. 한미FTA를 통해 외부적 충격을 가하고 이를 통해 농업 및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또 한 번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6월 한 언론을 통해 폭로된 정부용역보고서 ‘한미FTA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FTA피해기업의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대책 수립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및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문제, 고용경직성의 문제 등이 언급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한미FTA 이후 진행될 구조조정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발적 자유화 조치들

한미FTA가 단순히 국가간의 이익 대립 혹은 식민주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한미FTA 협상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각종 자발적 자유화 조치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미 경제자유구역법 및 제주도 특별법 등을 통해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영리법인화가 추진되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6월 29일 재정경제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7월 11일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는 의료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는 자리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에서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기로 함으로써 비급여 영역이 민간의료보험 영역으로 흡수가 되었다.
결국 한미FTA에서 미국 측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한국 측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되어 왔던 교육과 의료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몇 가지 사안들은 이미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통해 추진되어왔던 것이다.
결국 한미FTA를 통한 개방과 사유화, 시장의 확대는 이미 초국적 자본의 반열에 오른 국내독점자본에게 세계시장을 향한 무대를 활짝 열어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내의 규제완화 및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국내 독점자본 또한 요구를 갖고 있다.

한미FTA는 노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

한국 정부는 한미FTA를 홍보하면서, 미국에서 오히려 노동조항을 통해 한국 정부가 노동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노동조건의 악화 또는 생존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얼토당토 하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는 한국 사회에 떨어질 거대한 폭탄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여기저기서 터질 지뢰밭이기도 하다. 노동에 대한 공격은 단순하게 협정문의 ‘노동조항’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미FTA가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고 하는 것 한 축에서는 전체 노동자 민중의 삶 어느 하나 빠트리지 않고 교육,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를 상품화 국가 기간시설을 사유화함으로써 빈곤의 심화, 빈곤의 대물림을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또 한축으로는 투자자를 보호를 위해 노동자들이 쟁취해온 최소한의 노동기본권마저도 약탈해 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미 ‘한미재계회의 2005년 보고서’를 통해 떳떳하게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고, ‘경영진의 고용, 해고 할 수 있는 재량’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나 단체행동기간 중 대체근로자의 투입을 허용하라는 등의 요구는 투자자 보호라는 이유로 협정문 곳곳에 구체화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협정문 초안에서 ‘이행의무부과금지’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할 경우 고용승계의무, 정리해고 요건 등에 대해 한국정부가 의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 놓고 이 협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드러날 노동에 대한 공격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미FTA협상에 앞서 이미 많은 자발적 자유화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시나리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주도아래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한미FTA 협상은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노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미FTA 2차 협상 저지 투쟁의 쟁점

한미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미FTA 2차 협상 저지투쟁을 놓고 본다면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전술을 둘러싼 논의로 신라호텔 앞의 협상장을 봉쇄하는 투쟁을 할 것인지, 아니면 광화문과 시청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결집으로 청와대를 압박하는 투쟁을 펼칠 것인지의 문제였다. 2차 협상을 실질적으로 저지하는 데 있어서 협상장을 타격 봉쇄하는 투쟁은 7월 투쟁의 핵심이었지만, 범국본 내부의 논의를 통해 당일 전술은 ‘청와대 인간띠잇기’ 또는 청와대에게 대중적 위력을 보여주는 ‘광화문 투쟁’으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2차 협상 저지 투쟁을 둘러싼 한미FTA저지 범국본 내부의 다양한 흐름이 작용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협상장 저지 투쟁을 위력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조직화를 장담할 수 없었던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쟁점은 노무현 퇴진을 둘러싼 문제이다. 노무현 퇴진 요구는 한미FTA 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한미FTA 2차 협상을 앞두고 한미FTA저지 투쟁의 요구로 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2차 본협상이 저지되지 않을 경우 노무현 퇴진투쟁을 진행한다’는 모호한 기조로 정리되었다. 즉, 현재 한미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로 대표되고 있는 한미FTA저지 투쟁은 그 정치적 방향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한미FTA 2차 협상저지 투쟁을 시작하면서 범국본 내에서는 이번 투쟁은 우리가 때리는 투쟁이 아니라 맞으면서 깨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몇 몇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중적 지지, 즉 여론의 힘을 얻고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여론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나로 반전되었던 것처럼, 또 다시 어떤 이데올로기 역공세로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는 ‘바람’에 불과하다. 튼튼한 투쟁대오의 구축이 없다면 한미FTA에 대한 반대여론은 순식간에 또 다시 한미FTA를 찬성하는 바람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로 한미FTA를 추진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위력적인 투쟁을 펼치는 것이다.

한미FTA저지 투쟁, 노동자 계급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9월 3차 협상이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고, 10월이면 또 다시 한국에서 국경을 넘는 착취를 위한 한미FTA 협상이 한국에서 진행될 예정이지만, 이 투쟁을 또 어떻게 벌여나갈지에 대한 자신감도, 구체적 기획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은 구체적인 접점을 만들고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구나 하나의 전선에서 함께 투쟁을 해야 하지만 하나의 전선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 2차 협상 저지 투쟁의 정점이었던 12일 투쟁은 현재 한미FTA저지 투쟁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단면과도 같았다.
억수같이 비가 몰아치고 퍼붓는 광화문이라는 광장에는 엄연히 두 개의 투쟁이 있었다.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와 장투사업장 문제 해결을 외치며 동아일보사의 옥상을 점거하고 있었고, 광화문에 모였던 6만에 가까운 대오는 그저 위력적인 대중동원을 보/여/주/며 미 대사관 앞에서 정리 집회를 했다. 그러나 12일 투쟁에서 이 두 개의 투쟁은 하나가 되지 못했다.

10월에는 한미FTA 4차 협상이 다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개악입법 및 로드맵을 둘러싼 투쟁도 진행될 것이다. 이 투쟁은 노동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그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분쇄투쟁 전선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개악입법, 로드맵,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정점인 한미FTA를 통해 노동자 계급에게 입체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데, 노동자 계급이 사안별 평면적 대응을 한다면 결국은 지는 싸움이다. 이 어느 하나의 싸움에서 지더라도 결국은 노동자 계급의 생존은 벼랑 끝으로 몰린다. 그러나 역으로 이 어느 하나의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총 공세에 파열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싸움은 반드시 하나의 전선이어야 한다. 다시 10월이 돌아왔을 때 노동자 계급이 바로 이 한미FTA저지 투쟁 전선에 노무현퇴진의 요구를 걸고 위력적인 투쟁을 펼쳐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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