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23]GS칼텍스 파업부터 노조파괴, 해고자들의 불매운동까지 전말

GS칼텍스: 파업부터 노조파괴, 해고자들의 불매운동까지 전말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12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오승훈


1. 파업의 진실

(1) 38년만의 첫 파업
2004년 7월19일, GS칼텍스(구LG정유)노동조합은 공장가동이 완전 정지되자 공장을 떠나 8월6일 복귀를 선언 할 때까지 20일간의 산개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역사 3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7월16일, 일근근무자를 파업에 참여시켰으나 실제 운전을 담당하며 공장가동을 하고 있는 교대근무조합원은 아직 파업에 합류하지 않고 있었다. 비번인 경우는 철야농성을 하면서 교대로 근무에 투입되고 있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가동이 중지되면 교섭은 진행될 수 없을 것이고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직접 공장을 가동 정지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고 있지 않았었다.

7월16일, 회사측은 정유1팀의 휘발유 개질공정(PLATFORMER)등 중요한 6개 공정을 스스로 가동중지 시키고 조합원을 내몰았다. 노동조합은 여수공장의 크고 작은 60여개 공정 중 6개의 공정을 스스로 가동 중지시키는 회사측의 의도가 결국 여수공장 전체 가동정지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수순이라고 주장했다.
7월18일, 교섭이 결렬되었고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선포했다. 중질유 분해공정(RFCC)와 방향족 생산공정 등 여수공장의 핵심 6개 공정만 남기고 모든 조합원이 공정운전을 비조합원에게 맡기고 평화롭게 철수하였다. 조합원이 철수한 공정은 대졸 엔지니어, 본사와 영업소등에서 운전을 훈련받은 비조합원들이 맡았다. 조합원이 철수하지 않은 RFCC등 6개 공정은 중앙조정실을 비조합원이 들어올 수 없도록 통제한 체 조합원이 운전하고 있었다. 회사측과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수공장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7월19일 10:00경, 누군가가 RFCC공정가동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 산소공급 밸브를 잠궈 조합원이 급히 조치를 취해 다시 정상화를 시켰으며 11:20분경 회사측 관리자 200여명이 조합원들이 운전중인 RFCC공장 조정실을 탈환하기 위한 시도를 했고 조정실을 지키려는 조합원과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하였다. 이런 와중인 11시30분경 무렵 누군가가 RFCC공정 가동에 또하나의 필수요소인 연료개스를 차단하기 위해 공급 밸브를 잠근 사건이 있었다. 그 전에 회사측 관리자가 현장 운전책임자인 직책계장(조합원)을 찾아와 공장 가동을 정지하라는 요청을 했으나 노동조합은 가동중지를 거부했다.

그러나 12:30분경 누군가에 의해 RFCC공정 주전력 스위치가 내려감으로써 RFCC공정가동이 완전 중단되었다. 당시 운전 중이던 조합원들과 노동조합은 공장을 다시 돌리고자 서로 연락하면서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실패했고 회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향족 생산공정 등 아직 조합원들에 의해 가동 중이던 나머지 공정도 스스로 가동중지 시켰다. 노동조합은 회사측이 공권력을 불러들이고 불법파업으로 내몰기 위해 부도덕한 방법으로 공장가동을 중지시킨 것이라고 주장했고 회사측은 언론에 노동조합이 공장을 가동중지 시켰다고 보도했다.

모든 공정이 가동 정지되자 곧바로 여수공장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19일 저녁, 노동조합은 위험한 정유시설 안에서 전투경찰과의 충돌을 우려해 이른바 ‘산개투쟁’을 결정하고 공장을 빠져나와 전국각지로 흩어졌다. 20일 아침 7시경 전투경찰 3천명이 조합원이 모두 빠져나간 여수공장에 들어왔다. 전투경찰은 20일간의 파업이 끝나고 8월6일 복귀하고 난 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무려 52일간이나 공장안에 상주하게 된다.

파업대오는 조를 나눠 경찰과 회사 관리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산개와 거점(대학교 등)에 모이는 방법으로 8월 6일 복귀선언까지 20일간을 버틴다. 이때 보수언론의 파업 죽이기가 기승을 부렸다. 6천~7천만원을 받는 귀족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시키려고 파업을 한다고 연일 떠들어 댔다. 노사간 무엇이 핵심쟁점인지 구체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체 회사의 선정적인 보도자료만 부풀려 지면을 할애했다. 언론의 노조죽이기는 이라크인질 패러디 사건에서 극에 달했다.

8월2일 조선대에서 가장의 파업 때문에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불러 오락시간을 마련했다. 각 부서(조)별로 장기자랑을 하나씩 맡겼는데 이때 어느 조가 만들어 들고 나온게 이라크 인질사건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중 노조간부가 찍은 사진 한 장이 노조 홈페이지에 올라가게 된다. 노동조합 파업 죽이기에 혈안이 된 보수언론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노조원들과 그 가족 이외에는 거의 조회를 하지 않는 일개 노조 홈페이지에 실린 학예회 장기자랑 수준의 한 장의 사진은 일약 메이저급 중앙일간지 1면을 장식하며 파업 죽이기에 이용된다. 언제부터 보수언론이 노조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이나 이슈에 관심을 기울였던가.

(2) 파업의 이유
노조가 파업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GS칼텍스 같은 필수공익 사업장의 경우 직권중재에 회부되고 그 결말은 간부들의 구속과 해고가 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파업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GS칼텍스 회사측은 파업 전에 RMIP라는 인력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의 무력화가 절실했다. 이를 위해 회사가 꾸준히 노조를 지배개입하려 하여 극심한 분규를 겪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파업당시 3가지의 핵심요구안을 들고 나왔다. 이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로서 사회적 연대의식을 각성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고자 한 정의로운 요구였다.

첫째,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정규직화였다. GS칼텍스에는 공정시설에 정비를 맡고 있는 등 600명이 넘는 상주 비정규직이 근무하는데 이들의 처우는 정규직에 비해 절반수준도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이전부터 원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발뺌하는 회사를 상대로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부분적인 정규직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노동조합은 비정규직들의 임금 인상액이 정규직 인상액 보다 높도록 정액인상을 요구했고 각종 기념품등을 동일한 품목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공정지역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화 시킬것을 요구했다.

둘째, 지역사회발전기금 출연이었다. GS칼텍스는 40년동안 시프린스 사고를 비롯해 수많은 환경파괴사고를 유발했다. 또한 공장부지로 쓰기위해 황금어장이자 어류 산란지인 광양만을 매립하는 등으로 이 지역 어민 등 지역주민에게 많은 피해를 끼친 사업장이다. 2004년 한해에만 순이익 8,500억원을 벌었고 미국 석유자본과 허씨재벌이 절반씩 주식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130%라는 주주배당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GS칼텍스는 기업 홍보차원의 생색내기 비용으로 사실상 지역사회 발전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이를 각성하고 노동조합은 우선 매출액의 0.01%(2004년 당시 13억원)에 해당하는 지역발전기금을 매년 출연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셋째, 주5일 주40시간 시행 시 신규인력충원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었다. GS칼텍스는 2000년 이전부터 RMIP라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공장은 계속 증설하면서 신규채용은 거의없고 정규직 인원을 줄여나가는 방식을 취해왔다. 주5일제를 시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업무량을 고용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요구했지만 GS칼텍스는 수당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회사측은 3대 핵심요구를 철저히 거부했다.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인상과 주5일제 시행시 줄어드는 휴가에 대해 수당으로 지급하는 문제만 갖고 교섭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 해 교섭파국을 자초했다. GS칼텍스는 어차피 직권중재가 떨어질 것이고 파업은 불법으로 몰리게 될 것이고 직권중재서는 회사측의 의도대로 만들어질 것이란 것을 계산했다는 판단이다. 결과는 불을 보듯 했다. 중앙노동위원회 특별조정위원회 또한 회사측과 똑같은 입장에 서서 직권 중재서를 만들고 말았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은 동결까지도 감수하겠지만 사회적 의제인 3대 요구안은 부분적이나마 관철시켜야 된다고 판단하고 결국 파업을 강행한 것이다.

(3) 불법적 절차에 의한 직권중재와 지도부 구속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7월18일 직권중재 회부에 들어갔다. 파업은 불법으로 몰리고 지도부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8월6일 파업복귀를 선언한 후 김정곤 위원장을 비롯해 지도부 8명이 구속되었다. 8명의 노조간부들은 불법파업 혐의로 1심과 2심 재판부에게 징역3년(워원장)과 2년 6월이라는 실형을 선고 받는다.

구속간부들의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던 과정에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다. 파업전인 2004년 7월13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를 위한 특별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노법) 72조3항을 위반하는 중대한 위법을 저지른 것이다. 노노법 72조3항에는 “특별조정위원은 그 노동위원회의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중에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은 3인 내지 5인중에서 노동위원회의 위원장이 지명한다. 다만, 관계당사자가 합의로 당해 노동위원회 위원이 아닌 자를 추천하는 경우에는 추천된 자를 지명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GS칼텍스의 경우 당시 중노위 12명의 조정담당 공익위원 중 노조측과 회사측이 각각 4명을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은 3~4인으로 특별조정위원을 구성해야 된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법조항을 어기고 노동조합에서 1순위로 배제한 변도은이라는 위원을 특별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하였다.

2005년 5월12일, 대법원은 구속간부들의 상고심에서 “특별조정위원회 구성 및 중재회부결정은 관련 법령의 규정을 위반한 위법한 것이고 이와 같은 하자있는 절차에 기초한 이 사건 중재회부 결정 역시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원심파기 조치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2005년 8월 18일 중재재정취소 청구 소송에서 행정법원은 당시 노동조합이 특별조정위원회의 잘못된 구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재회부권고는 위법이 아니다 는 취지로 ‘각하’ 처분했다. 처음에는 행정소송 결과는 판결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정해진 선고일정 대로 하겠다고 했던 광주지법 재판부는 특별한 이유없이 행정소송 결과를 보고 판결하겠다며 선고를 뒤로 미루었다.

결국 9월14일 광주지법은 ‘노동조합이 중노위의 특별조정위원회 위법한 구성에 대해 당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하자가 치유 되었으므로 여전히 불법파업에 해당된다’ 라는 취지의 궤변적인 판결을 하였다. 대법원의 판결을 하급법원이 뒤엎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간부들은 즉각 대법원에 재상고를 하였다.


2. 파업복귀 후 대량해고, 노조파괴, 인권유린

(1)노조파괴를 위한 인권유린
비극은 8월6일 노조가 파업복귀를 선언하면서 부터 일어났다. 회사측은 공권력 3000명을 공장에 그대로 상주시키면서 직장에 복귀하려는 650명 조합원을 정문 앞에서 출입을 봉쇄했다. 이른바 선별적인 복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조합원을 성향별로 분석해서 등급에 따라 복귀 순위를 정하고 자택대기를 시켰다. 이런 과정은 3개월간 지속되었다. 30명을 해고 또는 권고사직 시켰고 650명 전원이 3개월 정직을 포함한 중징계를 받았다.
현장에 들어간 조합원은 반성문과 각서를 강요당했다. 사실상 회사 입맛에 맞지않는 조합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전향서였다.

회사측이 요구한 반성문 ‘모범답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업이 왜 잘못되었는가?
-민노총이라는 상부단체의 정치적 목적에 하수인으로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점.
-민노총이나 조합이 내 개인을 계속 속이고 부추긴 점

*앞으로 내자신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해고자 복직집회는 이제 참석하지 않는다
-조합이 내리는 집회는 이제 따르지 않는다
-산별노조 전환은 반대한다
-민노총 탈퇴를 조합에 적극 권유한다
-팀내 화합과 분위기를 저해하는 팀원은 직무순환 되게끔 적극 찬성한다.
-앞으로 노동조합이 이러한 길로 갈 수 있도록 일개 조합원으로서 노력하겠으며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대의원으로 활동하여 조합의 투쟁일변도 정책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음.

(2) 노조지배개입과 정치적 자유 사생활 침해
아래는 이러한 <표본>을 바탕으로 회사측이 어느 대의원을 상대로 받은 ‘제가 회사에 사죄하기 위해 드리는 각오 겸 약속’ 이라는 반성문의 주요 내용이다. 파업가담자 대부분에게 강요된 반성문의 내용은 대체로 아래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민주노총 화섬연맹 탈퇴 등 상급단체 변경에 대한 어떠한 발언과 행동도 불사하겠음.
2)현재 구속중인 집행부의 면회를 가지 않겠음.
3)현재 잘못된 조합규약(해고자 신분보장규정 등)의 폐지를 주장하겠음.
4)불법파업을 주도한 집행부에 대한 자선바자회/모금운동과 참석을 거부하고 조합원에게도 거부토록 권유하겠음.
5)회사에 해를 끼치는 어떠한 조합지침(집회,구호외치기,뱃지부착,선전물부착)에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동료조합원도 거부토록 권유하겠음.
6)민주노총,화섬연맹,공투본의 어떤 지침,집회,구호,뱃지부착,선전물 부착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동료조합원이 거부토록 권유하겠음.
7)산별노조 반대하겠음.
8)대의원으로서 조합 의도대로 팀내 조합원 의견 유도 않하겠음.
9)금번 불법파업에 적극 가담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회사에 공헌하는 어떠한 일도 하겠음. 회사에 사죄하고 팀장님과 선배님들께 용서를 빔.

GS칼텍스는 어떤 기업의 인사규정에도 없는 ‘55명 해고예정통보’라는 것을 통보해 파업참여 대의원 대부분을 해고예정자로 올려놓고 해고의 공포와 손배가압류를 미끼로 대의원들을 협박해 10월29일 대의원대회 때 민주노총 탈퇴를 강행시켰다.

평소 민주노조에 대한 소신을 지키며 활발히 노조활동을 한 조합원에 대해서는 반성문을 강요한 후 이 반성문을 공개된 사내게시판에 올리게 하여 당사자에게는 극심한 수치심을, 일반 조합원들에게는 극심한 무력감을 유발하였다. 이는 노사관계를 떠나 생존권을 담보로 하여 자행한 개인에 대한 인권유린인 것이다.

파업복귀 후 민주노동당 당적을 갖고 있는 조합원에 대한 정치적 탄압도 자행되었다. 징계와 해고 공포에 질린 당원들이 회사측의 협박에 의해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당원탈당증명원’을 만들어 달라며 여수시당 지역위원회에 호소하고 무더기 탈당하는 비극도 일어났다. 결국 100여명이 넘었던 GS칼텍스 내 당원은 파업 후 1년이 지난 시점 몇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밖에 구속출감 간부, 또는 해고자들과 악수를 했다하여 징계를 받은 사례, 해고자가 상을 당해 인터넷 게시판에 조의를 표했다고 관리자에게 불려가 면담을 당한 사례, 회사 내 반노조 서클을 만들고 비회원들을 왕따시키는 사례, 파업 적극참여자들을 다른 부서로 전출 보낸 사례 등 수많은 노조탄압과 인권유린을 저질렀다.


3. 해고자들, 그리고 불매투쟁

2004년 GS칼텍스 파업은 ‘산개투쟁’으로 공장시설에 대한 파괴행위도 없었으며 경찰과 회사측 관리자들과의 심한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평화적 파업이었으나 회사측의 부당한 고소와 사법부의 편파적 판결, 중앙노동위원회의 불법적인 직권중재로 인해 해고 및 강제사직을 포함해 30명이 일터를 잃었고 8명이 구속되어 1.2심에서 3년과 2년 6월이라는 실형을 받기도 했다. 결국 대법원 상고심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불법적 직권중재절차를 문제삼아 원심파기하면서 1년여의 구속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2004년 12월23일 해고된 이후, 현재 해복투를 구성해 투쟁하고 있는 13명의 해고자들에게 개인당 9천만원의 손배가압류가 가해져 있고 회사에 의해 지배개입 당한 직무대행 집행부와 변절한 대의원들은 노조규약에 명기된 해고자 생계기금을 단 한푼도 집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노조파괴,인권유린 악덕기업 GS칼텍스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해고된 지 450일이 넘는 해고자들 또한 최근 불매투쟁을 시작했다.
이는 법과 원칙에 입각해 모든 일을 처리하겠다고 떠드는 회사측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차도 부당해고라고 인정한 두사람에 대해서도 “죽어도 원직복직은 없다. 다만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가능하다.” 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며 해고자들을 사회에서 매장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해고자들의 선택은 외길인 것이다.

한편 회사의 오른팔, 어용으로 전락한 GS칼텍스노동조합은 해고 조합원들이 불매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06년 4월28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해고조합원 13명을 제명하고, 조합활동으로 인한 해고, 구속시 생계비를 지급하는 규약인 ‘신분보장규정’을 삭제하였으며 조합원 전체총회를 대의원대회에서 가름할 수 있도록 규약을 변경하는 등의 개악안을 통과시켜 노조의 자주성을 회사에 팔아 넘겼다.

원직복직과 민주노조 재건. 해복투가 해야 할 가장 큰 사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