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레닌의 『이스크라』 발간 노력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1


레닌이 러시아혁명의 과정에서 전국적 정치신문을 발간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던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다. 그의 노력은 1900년 12월 『이스크라』를 발간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 제2차 당대회로 이어졌고 이후의 역사는 알려진 그대로다.

그런데 레닌이 전국적 정치신문에 관심을 둔 것은 당연히 그것의 발간 자체가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노동자계급의 당 건설이었다. 그가 전국적 정치신문을 발간하자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전에 발표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1897)」라는 글에서, 그는 “공장과 도시노동자들 사이에 강고한 혁명조직을 창출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가 직면해 있는 첫 번째의 가장 긴급한 임무이며, 오늘 날 우리 자신이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라고 명확히 주장한다.*1)

그가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형 생활을 하고 있었던 1898년 3월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 제1차 당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6개의 조직을 대표하는 9명이 참가했다.**2) 대회는 강령이나 문서도 채택하지 못했고 고작 당이 결성되었다는 선언과 중앙위원 선출만으로 끝났다. 하지만 “러시아 전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것은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하였고 또 러시아 각지의 사회민주주의자 조직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위원회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된 조직 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단일한 강령, 규약, 전술도 없었다. 당연히 사상과 조직 면에서 당은 통일되어 있지 못했다. 더욱이 제1차 대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위원 2명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당은 유명무실화 되었고 경제주의자들의 준동에 의해 혼란은 더욱 악화되었다.



2


레닌은 당의 창당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고 또 당이 커다란 문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당원임을 자처하였고 당의 통일과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전국적 정치신문의 발간’에 관심을 두고 이것을 위해 노력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그런데 그가 처음에 관심을 둔 것은 ‘정치신문’이 아니라 ‘당기관지의 재발간’이었다. 레닌은 유형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분트 중앙위원회’(다른 조직도 아닌 ‘분트’의 중앙위원회였다!)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발간될 예정이었던 당기관지(『라보차야 가제타』)의 편집인이 되기로 하였고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협력자로 글들을 기고한다.***3)

그가 보낸 글 중 하나인 「우리의 당면한 임무(1899)」에서 우리는 레닌이 왜 그토록 ‘당기관지’에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당의 분열과 혼란 때문이었다. 그는 앞서의 혼란한 상황과 이에 따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당은 건전한 발판 위에서 힘을 모으고,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 자체 내로 후퇴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통일을 완수하고 그것에 적합한 형식을 개발하고 편협한 지역적 고립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당면한 가장 긴급한 임무이다.****4)


그는 이러한 “가장 긴급한 임무”의 실천적 해결을 위해 “우리는 규칙적으로 발행되고, 모든 지역적 그룹들을 밀접하게 연결시킬 당기관지의 창설을 우리의 당면한 목적으로” 본다고 하며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이 다가오는 시기 전체를 통해서 이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가장 큰 약점은 “편협한 아마추어적 성격”에 있고 “당 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다른 활동형태, 즉 지역적 선동, 시위, 보이코트, 스파이들의 색출, 부르주아지와 정부의 개별적 대표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 항의 파업 등등” 등은 “당 전체의 기관지를 통한 그것들의 통일이” 있어야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기관지”의 필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하여”서였다!*****5)



3


레닌은 당기관지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이념적․정치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넘어 조직적 통일까지 이루려고 했다. 그러나 당기관지였던 『라보차야 가제타』를 재발간하는 것은 일단 실패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당기관지의 재발간이 불가능하자 그것 대신 ‘정치신문’을 발간하기로 한다. 그는 유형지에 있었음에도 ‘정치신문’ 발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른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교류하였고, 1900년에 유형이 끝나자 ‘정치신문’의 발간을 위한 실제적인 노력에 착수한다. 그는 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토론을 하고 정치신문발간에 대한 지지를 확보한다. 그는 러시아 국내에서 신문 발행을 지원하겠다는 많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약속을 받은 후, 해외로 나간다. 이것은 신문의 안정적 발간을 위한 조치였고 그는 국외에서 신문 발행을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00년 12월에 ‘정치신문’ 『이스크라』제1호가 드디어 발간되게 된다.*6)



4


『이스크라』제1호가 발간되기 몇 달 전 「『이스크라』편집국의 선언-편집국의 이름으로(1900.9)」(이하 「편집국의 선언」)가 소책자로 출판된다. 레닌은 이글에서 당시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주요한 특징을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광범위한 보급’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분열상과 아마추어적 성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도출되는 “실천적 결론”으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단결하여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단일한 깃발 아래 투쟁하는 강력한 당의 결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을 가능한 가장 확고한 기초위에서 부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활동계획을 세워야 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중앙당 기관을 선출하여, 그것이 당기관지의 발행을 재개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을 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혼란의 시기에는 그런 단순한 방법도 거의 쉽지 않다.”고 이에 대해 비관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당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것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단결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던 이유로, 그러한 단결은 선포될 수 없으며 대표자 회의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현재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지배하는 불화와 혼란-솔직해지자!-을 제거할 수 있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은 당강령에 의해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모든 운동의 핵심지들 사이의 접촉을 확립, 유지하고, 운동에 대한 완전하고 시기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러시아의 모든 지역들에 우리의 신문들과 정기간행물들을 규칙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한 조직이 건설되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우편이 확립될 때에야 비로소 당은 건전한 기초를 보유하고, 하나의 실체가 되어 강력한 정치세력이 될 것이다.**7)


그는 당을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단결이 필요하고, 이 단결을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해 “우선” “강고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며,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통일은 당강령에 의해 강화되어야 한다”고 한다.***8) 그리고 운동을 통일시킬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들이 『이스크라』를 발행하는 것은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히 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는 이러한 임무의 반쪽, 즉 철저하게 혁명적인 사회민주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는 공동의 문건을 창출하는 임무에 우리의 노력을 바치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 운동의 긴급한 요구이자 당활동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예비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강조-인용자)****9)


즉 그는 자신들이 하는 것은 임무의 수행을 위한 “공동의 문건”을 창출하는 것이고 그 활동의 정당성은 그것이 “당활동 재개를 위한 예비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신문’ 『이스크라』는 이렇듯 특정 당파의 기관지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통일시키기 위한 “공동의 문건”, “당활동의 재개를 위한 예비수단”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레닌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를 위해 몸으로 노력했다. 이 글의 마지막 절은 이것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는 국제사회민주주의의 수많은 뛰어난 대표자들의 기고와 노동해방단(G.V. 플레하노프, P.B. 악셀로드, V.I. 자술리치)의 밀접한 협력 그리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독립적 그룹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여러 조직들의 지원을 약속받았다.*****10)



5


「편집국의 선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말했듯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통일은 여전히 창출되어야 하며, 이 목적을 위해 오늘날의 “경제주의자들”, “베른쉬타인주의자들”과 “비평가들”이 제기한 원칙과 전술의 기본문제에 관해 공개적이고 전면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통일할 수 있기 전에, 통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확고하고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통일은 순수하게 허구가 될 것이며 그것은 지배적인 혼란을 은폐하고 혼란의 근본적인 제거를 방해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출판물을 단순히 여러 견해들의 창고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우리는 엄격히 규정된 경향의 정신으로 그것을 수행할 것이다. 이 경향은 맑스주의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일관된 발전을 옹호하며, 에두아르트 베른쉬타인, P. 스트루베와 다른 사람들이 유행시킨 모호하고 기회주의적인 “수정”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모든 문제를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토론할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신문의 지면에서 동지들 사이의 논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존재하는 차이의 깊이를 분명히 하고, 모든 각도에서 논쟁되는 문제를 토론하고, 혁명운동의 다양한 견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전문분야”의 대표자들이 필연적으로 빠지는 극단과 투쟁하기 위하여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모든 견해들이 펼쳐지는 공개적인 논쟁은 필요하며 바람직하다. 사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명백하게 다른 견해들 사이의 공개적 논쟁의 부재와 기본문제들에 대한 차이를 은폐하려는 노력을 오늘날 운동이 지닌 약점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11)


여기서 「편집국의 선언」에 표현되어 있는 『이스크라』의 편집방침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스크라』는 “공동의 문건”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권을 강력히 사용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편집국의 선언」은 자신이 적대하는 ‘이론적 경향’과 ‘이론적 적’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며 이들과 “확고하고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정당한 일인가? 절대적으로 정당하다. 하지만 이것은 저절로 정당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정당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에 대한 “논쟁을 위한 공간”을 약속하며 경계선을 긋는 것도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라는 보완에 의해서만 정당한 것으로 된다. 이것이 이 문제에서 핵심이다.**12)

레닌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플레하노프와 “불꽃”이 “거의 꺼질 뻔했”을 정도로 논쟁한다.***13) 그는 ‘정치신문’ 발간을 협의하기 위해 플레하노프를 만났을 때 “출판물들의 목적과 강령을 설명한 편집국의 선언(“편집국의 이름으로”) 초안을 준비”한다. 앞서 본대로 레닌은 ‘정치신문’이 “엄격히 규정된 경향의 정신” 즉 “맑스주의”로 “수행할 것”임을 명확히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당의 통일을 강조한다. 초안은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그에 의해 작성되었다.****14) 그런데 이런 그의 태도는 플레하노프에게 심각하게 비판받는다.*****15)

레닌과 아르세니예프는 플레하노프에게 “스트루베에게 모든 가능한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우리들 자신도 그에게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며 플레하노프와 대립한다. 그리고 분트에 관해서도, 분트를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플레하노프에게 반대한다.*16)

그 스스로 또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스트루베나 경제주의에 대해 비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를 주장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들과의 통일을 열망한다.



6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레닌은 189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가장 주요한 임무라고 한다.(「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1897)」) 레닌이 유형지에 있는 동안 당은 창당되지만 검거와 분열로 유명무실화 된다. 레닌은 ‘당기관지’의 재발간을 통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사상적․조직적으로 통일시키려 하지만 실패한다.(「우리의 당면한 임무(1899)」) 그는 당의 중앙당 기관을 건설하고 당기관지를 만드는 것이 당을 강화하는 것이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며, 이 악순환을 끊는 수단으로 ‘정치신문’을 발간하려고 한다. 그는 러시아 국내와 국외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논쟁하고 설득하여 ‘통일로 가기 위한’ “예비 수단”으로서의 “공동의 문건”인 『이스크라』의 발간에 성공한다.

『이스크라』는 발간되고 3년간의 노력의 결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를 1903년 7월 개최한다. 대회에는 분트와 경제주의자들을 포함한 26개 조직을 대표하여 51표의 의결권을 가진 43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 대회는 결국 또 다른 분열로 나아가지만 그것은 기존의 분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 점이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17) 《노사과연》




이론

무엇을 배울 것인가?

―레닌의 『이스크라』 발간 노력으로부터 배운다



신양식|회원




*)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 『레닌저작집 1』전진, p. 50. 그리고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동지들, 사업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각해 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노동계급운동을 조직하고 혁명적 그룹과 그들 상호 간의 결합을 강화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선전과 선동 문헌을 제공하고 나아가 전 러시아의 분산된 사회민주주의 그룹과 노동자 써클을 단일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으로 통합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강조-원문)” (레닌, 같은 글, p. 61)


**) 참가한 조직과 인원은  ‘페테르스부르그 투쟁동맹’ 1명, ‘모스크바 투쟁동맹’ 1명, ‘에카스테리노슬라프 투쟁동맹’ 1명, ‘키에프 투쟁동맹’ 1명, ‘『라보차야 가제타』그룹’ 2명, ‘분트 3명’이었다.


***)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1차대회에서는『라보차야 가제타』를 당 기관지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경찰의 공격으로 파괴된다. 1899년 이것을 재발간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레닌은 글을 세편(「우리의 강령」, 「우리의 당면한 임무」, 「긴급한 문제」) 보내나 신문의 재발간은 실패한다.


****) 레닌, 「우리의 당면한 임무」, 『레닌저작집 1』, 전진, p. 81.


*****) 레닌, 앞의 글, p. 83. 그는“러시아의 특수한 상황”을 “당기관지의 창설”의 또 다른 이유로 주장한다.

   “모든 힘을 규칙적으로 나타내고 규칙적으로 전달되는 기관지의 확립에 집중할 필요성은 다른 유럽 나라들의 사회민주주의의 상황과 다른 과거 러시아의 혁명당들의 상황을 비교할 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다. 신문은 차치하더라도 독일, 프랑스 등의 노동자들은 의회활동, 선거 시의 선동, 대중 집회, 지방 공공단체(도시와 농촌)에의 참여, 노동조합(직업동맹, 길드)의 공개적 지도 등 운동을 조직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활동을 대중적으로 표현할 다른 많은 수단들을 갖고 있다. 그 모든 것, 정말 그 모든 것 대신에,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때까지 혁명적 신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것 없이는 전체 노동계급운동의 광범한 조직화는 불가능하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베테랑 리프크네히트의 말은 우리 활동의 표어가 될 만하다. [Studieren, propagandieren, organiseren](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중심축은 오직 당기관지일 수 밖에 없으며 당기관지이어야 한다. (강조-원문)” (레닌, 앞의 글, p. 84) 길게 인용한 것은 레닌이 언급한 “러시아의 특수한 상황”과 우리의 특수한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의 중심축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 우여곡절의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플레하노프와의 문제였다. 레닌, 「어떻게 하여 “불꽃”은 거의 꺼질 뻔 했는가」, 『레닌저작집 1』, 전진, pp. 120-131.


**) 레닌, 「『이스크라』편집국의 선언-편집국의 이름으로」, 『레닌저작집 1』, 전진, p. 135.


***)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 제1차대회(1898)에서는 당강령을 채택하지 못했다. 레닌은 당시에 이와는 별도로 강령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사회민주당의 강령 초안과 해설(1895)」, 「우리 당의 강령 초안(1899)」) “우리 당이 모든 다른 당들보다 앞서 있는 것은 엄밀한 그리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강령이 있기 때문이다.”(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레닌저작집 3-2』, 전진, p. 159.) 오늘날 우리 운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레닌, 「『이스크라』편집국의 선언-편집국의 이름으로」, 『레닌저작집 1』, 전진, p. 135.


*****) 레닌, 앞의 글, p. 136.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현재 각종 매체의 범람 속에 있다. 어느 조직이든 그것이 운동을 하는 단위라면 자신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야 하고 그를 위한 매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 많고 어떤 의미에서 너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도 “공동의 문건”(여기에는 『이스크라』의 형식만이 아니라 『자리아』의 형식도 있을 수 있다. 또 이와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있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1) 레닌, 앞의 글, p.135.


**) “우리는 모든 러시아의 동지들이 우리의 출판물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여기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모든 그룹들이 운동에 관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교환하고 그들의 경험을 말하고 그들의 견해를 표현하고 정치적 문건에 대한 필요성을 지적하고 사회민주주의적 편집물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오직 이러한 방법으로만 진정하게 사회민주주의적인 기관지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그러한 출판물만이 운동을 정치투쟁의 높은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레닌, 앞의 글, p. 136.)


***) 그는 협의회(노동해방단[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리치]와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레닌, 아르세니예프, 마르토프]과의)이 결렬될 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플레하노프는 아르세니예프가 그의 스트루베에 대한 거부 때문에 화를 낸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레닌, 「어떻게 하여 “불꽃”은 거의 꺼질 뻔 했는가」, 『레닌저작집 1』, 전진, p. 130.)


****) “선언은 우리가 당의 일원으로서 당의 통일을 위해 일하기 원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레닌, 같은 글, p. 121.)


*****) “이것은 그들 사이의 논쟁을 허용하고 논조가 온건하며 [경제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평화적으로 끝낼 가능성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등, 기회주의적 정신으로 쓰여졌다(플레하노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것이다.”(레닌, 같은 글, p. 121.)


*6) 레닌, 같은 글, pp. 120-2. 투칸-바라노프스키에 대해서도 그랬다.


**) 마지막으로 세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 “우리가 통일할 수 있기 전에, 통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확고하고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통일은 순수하게 허구가 될 것이며 그것은 지배적인 혼란을 은폐하고 혼란의 근본적인 제거를 방해할 것이다.”라는 레닌의 문구에 대해. 이 문구는 갈갈이 분열되어 있는 우리 운동에서 자주 보아온 것이다. 흔히 자신의 조직적 분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어진다. 그러나 레닌이 이것을 사용했던 것은 사상․이론적 선긋기이지 조직적 선긋기가 아님이 명확하다.

   둘. “서유럽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 러시아 혁명운동의 역사, 우리 노동계급운동의 경험 등은 우리가 우리 당의 목적의식적 조직과 목적의식적 전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정통해야 할 자료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만들어진 전형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행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러시아 노동계급운동은 서유럽과는 매우 다른 조건하에서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과거에 있었던 러시아의 혁명당들과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따라서 과거의 러시아의 대가들로부터 혁명의 기술과 비밀조직을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필요성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독자적으로 우리 자신의 조직을 구체화할 의무를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된다.”(레닌, 「우리의 당면한 임무」, 『레닌저작집 1』, p. 82. 이것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주장이 아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주장이다.

   셋. 다음의 두 문건을 검토하기를 요청한다. 「노동운동 위기돌파를 위한 과제와 좌파현장활동가들의 연대를 위해」,『전국좌파활동가 토론회』(2005.9.10)/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좌파활동가 통합은 무엇을 할 수 있나?」,『노동자정치신문 창간9호』.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8호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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