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레닌의 "『요하네스 베커, 요제프 디츠겐,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등이 프리드리히 조르게 등에게 보낸 편지』러시아 번역판에 부치는 서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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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레닌의 「『요하네스 베커, 요제프 디츠겐,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등이 프리드리히 조르게 등에게 보낸 편지』러시아 번역판에 부치는 서문」(이하 『편지』, 「서문」)을 검토하는 것을 그 첫 번째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검토를 통해 일종의 교훈을 얻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며, 이에 기초한 문제제기가 마지막 목적이다.

레닌이 「서문」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책의 러시아 번역판이 출판되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레닌은 그 글을 그 책의 출판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레닌이 썼던 대부분의 글이 그러하듯이 레닌은「서문」을 러시아 혁명을 위해, 그에 도움이 되도록 썼다. 그런데 우리는 러시아혁명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서문」은 그것으로 우리에게 유용하다. 또한 레닌의 많은 글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서문」에서 맑스주의가 주는 교훈을 올바르게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철두철미한 맑스주의자였던 레닌은 맑스-엥겔스로부터 배운 유물변증법을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자신의 많은 글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기회주의적 왜곡과 잘못된 이해에 맞서, 혁명의 전 과정을 통해 무자비하고 비타협적인 이론투쟁을 전개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시작하자. 모든 맑스주의자가 투쟁형태의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근본적인 요구는 무엇인가? 첫째로, 맑스주의는 운동을 어떤 하나의 특수한 투쟁형태에 구속시키지 않음으로써 모든 원시적 형태의 사회주의와 다르다. 그것은 가장 다양한 투쟁형태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들을 “수정”하지 않고, 단지 운동의 과정에서 저절로 등장하는 혁명적 계급들의 그런 투쟁형태들을 일반화하고 조직하며 의식적 표현을 부여한다. 모든 추상적인 정식과 모든 교조적 처방에 절대적으로 적대적인 맑스주의는 진행 중인 대중투쟁에 대한 주의 깊은 태도를 요구하는데, 왜냐하면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대중들의 계급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경제적․정치적 위기가 첨예해짐에 따라, 그 대중투쟁은 새롭고 보다 다양한 방어와 공격방법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는 그러므로 확실히 어떤 투쟁형태도 거부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 아래서도 맑스주의는 주어진 시기에만 가능한 기존의 투쟁형태에 자신을 한정하지 않으며, 주어진 사회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주어진 시기의 참여자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투쟁형태들이 불가피하게 생겨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인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맑스주의는 만약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대중투쟁으로부터 배우며, 연구하느라 틀어박힌 “체계화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투쟁형태들을 대중들에게 가르치라는 주장을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다―예를 들어 카우츠키는 사회혁명의 형태들을 설명하면서 말했다―다가오는 위기는 우리가 지금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투쟁형태들을 도입할 것임을.

두 번째로, 맑스주의는 투쟁형태의 문제에 관한 절대적으로 역사적인 검토를 요구한다. 이 문제를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분리시켜 다루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에서의 실패를 드러낸다. 경제적 진화의 상이한 단계에서, 정치적, 민족적․문화적 생활조건 등의 차이에 따라, 상이한 투쟁형태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주요한 투쟁형태가 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투쟁형태들은 그 차례에 따라서 변화를 겪는다. 어떤 특수한 투쟁수단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주어진 발전단계의 주어진 시기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자세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맑스주의적 입장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인도해야 하는 두 개의 주요한 이론적 명제이다.*1)


유물변증법의 방법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이 글은 ‘게릴라전’과 관련하여 투쟁형태라는 주제를 다룬 것이다. 이 짧은 인용에서도 우리는 레닌이 언제나 ―‘게릴라전’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을 때라도― 유물변증법의 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레닌의 이 언급이 단지 투쟁형태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역시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모든 추상적인 정식과 모든 교조적 처방에 절대적으로 적대적인 맑스주의”와 “문제에 관한 절대적으로 역사적인 검토를 요구한다”는 말은 이 방법론의 핵심적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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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편지』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 아메리카 및 독일의 노동계급운동에 관해 말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교훈적이다. 그런 비교는 우리가 한편으로는 독일,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과 아메리카가 자본주의 발전의 상이한 단계들과 그 나라들의 정치 생활에 대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의 지배의 상이한 형태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 더 큰 중요성을 획득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의 모범, 상이한 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의 독특한 특징들에 적용된 문제의 다양한 사항들, 다양한 측면들을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는 능력을 보게 된다. 노동자당의 실천적 정책과 전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공산당 선언』의 창조자들이 상이한 나라들에서 민족적 노동계급운동의 상이한 단계들에 따라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들을 규정했던 방식의 모범을 보게 된다.**2)


레닌에 따르면 우리는 편지들에서 “과학적 관점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의 모범, 상이한 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의 독특한 특징들에 적용된 문제의 다양한 사항들, 다양한 측면들을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는 능력”과 “노동자당의 실천적 정책과 전술의 관점에서” “상이한 나라들에서” “상이한 단계들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들을 규정했던 방식의 모범”을 보게 된다고 한다.***3)

레닌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영국과 아메리카와 독일의 “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의” “상이함”에서 비롯하는 “노동계급운동의 상이한 단계”에 대해 맑스-엥겔스가 “상이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를 규정한 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3


레닌은 비교대상의 하나인 “영국과 아메리카 노동계급운동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이렇게 규정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딪칠 어떤 커다란, 전국적인, 민주적인 과제들의 결여; 부르주아 정치가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종속;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그룹들, 한줌의 사회주의자들의 분파주의적 고립; 선거에서 노동대중 가운데서의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성공조차 없다는 것 등”****4)


또한 이들 나라, 즉 “영국과 아메리카”는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도 없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의원들도 없고, 선거나 신문 등에서 체계적이고 꾸준한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없는 나라들”이고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내보이지 않았”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역사적 임무들이 거의 전적으로 현존하지 않았던 나라들”이며 “정치의 장은 노동자들을 속이고 부패시키고 매수하는 기술에서 세계에서 당할 자가 없는 승리한 자기 만족한 부르주아지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던 나라들이라고 한다.*****5)

이런 나라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권고, 지시, 교정, 경고 및 칭찬”은 무엇이었는가?


영국과 아메리카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보낸 그들(맑스와 엥겔스-인용자)의 호소 가운데 가장 일관된 것은 노동계급운동과 결합하여 그들의 조직들에서 편협하고 거만한 분파주의적 정신을 근절하라는 것*6)


이었고,


이런 나라들(영국과 아메리카-인용자)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모든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분파주의를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으로 뒤흔들어 놓기 위해서 노동계급운동과 결합하라고 가르쳤다.**7)


왜냐하면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과 아메리카 사회주의에서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노동계급운동으로부터 그것의 고립이다. 영국 사회민주주의 연합과 아메리카 사회주의자들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비평들의 요지는 그들이 맑스주의를 도그마로, “완고한 정통”으로 환원시켜 버렸고 또 그들이 맑스주의를 “행동의 지침이 아니라 신조”로 간주하며, 이론적으로는 절망적이지만 그들과 나란히 행군하고 있는 살아 있는 강력한 대중적 노동계급운동에 적용할 능력이 없다는 것***8)

 

이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미국 노동자들이 선거에서 헨리 조지****9)에게 표를 던지던 시기에 이것을 우려하는 미국의 그의 동지가 헨리 조지를 철저히 비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았으며,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순수한 강령을 토대로 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당이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썼다.(1886년 12월 28일). 나중에, 노동자들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들 자신의 오류에서 배우게 되겠지만”, 그러나 “노동자당의 전국적인 공고화―어떤 강령을 토대로 하든―를 늦추거나 방해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든, 나는 커다란 실수라고 생각한다….*****10)


그는 “아무리 빈약한 강령을 가지고 있더라고 독립적인 노동자당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당시 미국의 노동자조직(노동기사단)의 “가장 취약한 측면”이 “정치적 중립성”이더라도 “새로 운동에 들어가고 있는 모든 나라에게 중요하고 위대한 첫 발걸음은 어쨌든 항상 그것이 뚜렷한 노동자당인 한에서,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정당으로서의 구성이다”라고 하였다.*11)



4


영국과 아메리카와 대비되는 독일의 운동의 객관적 조건은 무엇인가? 독일은 당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나라, “의회적 형태들로 치장한 군사독재”(『고타강령 비판』에서 맑스의 표현)가 지배했었고 아직도 그러는 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오래 전에 정치 속으로 내던져졌고 또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던 나라**12)


였다. 


그러한 나라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것은 노동계급운동의 임무와 범위에 대한 의회주의적 속류화와 속물적 퇴화였다.***13)


따라서


그들(맑스와 엥겔스-인용자)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속물주의, “의회주의적 백치병(1879년 9월 19일자 편지에서 맑스의 표현) 및 쁘띠부르주아적인 지식인주의적 기회주의에 굴복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일관되게 설파했다.****14)


레닌은 「서문」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편지를 길게 인용하며 그들이 “10년 이상 동안 독일 사회민주당 내부의 기회주의에 대해 체계적으로 굽힘없이 싸웠으며, 또 지식인주의적 속물주의와 사회주의 안의 쁘띠부르주아적 관점을 공격”했다는 사실과 “당의 우익에 대해” “끊임없는 전쟁” “기회주의에 대한 무자비하고 격노한 전쟁”을 벌였고 그들이 “좋은 예절”과 관계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5


레닌이 「서문」에서 영국과 아메리카와 독일의 차이를 그토록 날카롭게 대비하는 것은 그 편지에서 얻는 교훈이 “러시아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전술의 긴급한 문제들과 결합되어 있”어서이다. 그 “편지들과 익숙하게 하려고 한 최초의 시도”는 플레하노프가 발간한 잡지와 멘셰비키가 발간한 다른 잡지에 의해 이전에 이루어졌다. 그들은 영국과 아메리카의 교훈만을 강조하고 두 번째의 권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레닌은 “아메리카와 러시아의 대비”로부터 “폭넓은 결론을 끌어내기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최대의 피상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영국과 아메리카에서 얻은 교훈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독립적 정당을 결성하기 전에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정당을 결성했고 부르주아 정치가들에게 투표하는 전통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당면한 임무들이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것인 나라들이나 역사적 상황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맑스의 역사적 방법을 우롱하는 것*****15)


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적-부르주아 신문이 “모범적인 충성심, 의회적 합법성, 이웃나라 독일 노동계급운동의 겸손과 중용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나팔을 불어대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시기의 러시아의 상황에서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가장 철저히 배울 교훈은 후자라는 것을 주장한다.



6


영국과 아메리카 운동과 이와 대비되는 독일 운동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언급과 이것을 분석하여 러시아 혁명에 적용한 레닌의 경험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의 운동에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답은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은 맑스와 엥겔스가 살던 시대의 영국과 아메리카, 독일 그리고 레닌의 러시아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한국사회는 당시 뚜렷이 대비되는 조건들이 서로 혼재되어 있어 이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결코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16)

하지만 당시 대비의 근거가 되었던 조건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 운동의 상황을 돌아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들이다.


(1)한국 사회의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적인 임무에 직면했는가? 아니면 한국사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나라인가?

(2)노동자계급이 부딪칠 어떤 커다란, 전국적인, 민주적인 과제들을 한국사회는 결여하고 있는가?

(3)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정치가들에 대해 완전히 종속되어 있고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가?

(4)노동자계급으로부터 그룹들, 한줌의 사회주의자들이 분파주의적으로 고립되어 있는가?

(5)선거에서 노동대중 가운데서의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성공조차 없었는가?

(6)한국은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도 없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의원들도 없고, 선거나 신문 등에서 체계적이고 꾸준한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없는 나라로 보아야 하는가?

(7)한국노동자계급운동의 현재적 과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계급운동과 결합하여야 하고 분파주의적 정신을 근절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에 대한 속물주의, 의회주의적 백치병 및 소부르주아지적인 지식인주의적 기회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인가?

(8)엥겔스가 무엇보다도 강조한 ‘독립적인 노동자당’―“모든 나라에서 주요하고 위대한 첫 발걸음”―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 ‘독립적인 노동자당’의 결성이 그것이 “아무리 빈약한 강령”을 갖고 있더라도 중요하고, ‘독립적인 노동자당’의 “전국적 공고화―어떤 강령을 토대로 하든―를 늦추거나 방해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든” “커다란 실수라고 생각한다”는 엥겔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9)엥겔스가 헨리 조지에 대한 비판을 요청받고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한 것, 또 미국노동자계급에 대한 헨리 조지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 11월에 진실한 노동자당에 대한 100만 또는 200만 명의 노동자들의 표가 원리적으로 완벽한 강령에 대한 10만 표보다 현재 무한히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이 그 “반동적 사회주의자”와 함께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를 권고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17) 등등.


이상의 여러 질문에 자신있게 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은 현재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의 전략․전술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운동의 역사를 통해 이들 문제에 대해 접근해 보는 것은 노동자계급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이것을 요청하며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이글의 마지막 목적이다.



7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덧붙이겠다.

레닌은 국제노동운동의 상황을 언급하며 『편지』의 의의를 지적한다. 즉 이것은 이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기회주의와의 투쟁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 의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국제 노동운동이 심각한 대소동과 동요를 내보이고 있고, 기회주의의의 두 극단, 즉 “의회주의적 백치병”과 속물적 개량주의가 혁명적 생디칼리즘이라는 다른 극단을 출현시킨 현재의 순간에―영국과 아메리카와 독일 사회주의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교정”들의 일반적인 노선은 예외적인 중요성을 획득한다.***18)


다른 하나,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배워야 할 교훈이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태도, 즉 기회주의에 대한 무자비한 또 격노한 전쟁을 벌이는 태도에 대해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에게 이 교훈들을 가르치는 것은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서간집에 들어 있는 어떤 특정한 구절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경험에 대한 그들의 동지적이고 솔직한 비판, 즉 외교술이나 사소한 고려들과는 거리가 먼 비판의 정신 전체와 실체이다.****19)


그것의 예로 덧붙이는 레닌의 인용, “어떠한 논평도 필요치 않”은 하나의 전형적인 구절,


“… 여기에서 가장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은” 하고 엥겔스가 1889년 12월 7일 런던에서 편지를 쓰면서 말하기를, “노동자들의 골수깊이 뿌리박힌 부르주아적 ‘존경심’이다. 그 각각의 계층을 의문 없이 인정하고, 또 각각 그 나름의 긍지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더 나은 자들’ 그리고 ‘우월한 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수많은 계층으로의 사회의 분열은 부르주아가 아직도 자신들의 미끼를 물게 하기가 상당히 쉽다는 것을 발견할 정도로 오래되고 굳게 확립된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존 번즈가 자기 자신의 계급과 함께 하는 자신의 인기보다는 추기경 메닝, 시장,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부르주아지와 함께하는 자신의 인기를 더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코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샹피옹―퇴역 중위―은 부르주아와 내통하였고, 특히 보수적 분자들과 함께 교구목사들의 교회에서 사회주의를 설교했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최선의 인물이라고 여기는 톰 멘조차도 자기는 시장과 같이 점심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을 프랑스인과 비교하면 혁명이 이런 측면에서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는가를 깨닫게 된다.”*****20)


혹시나 해서 강조하는데 여기는 영국이다. 《노사과연》



이론


레닌의 「『요하네스 베커, 요제프 디츠겐,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등이 프리드리히 조르게 등에게 보낸 편지』러시아 번역판에 부치는 서문」**21)을 읽고



신양식|회원




*) 레닌, 「게릴라전」, 『레닌저작집4-2』, 전진, 1991, pp. 40-1.


**) 레닌, 「서문」, p. 425.


***) 우리에게는 이들 편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 없이 레닌의 글만으로도 충분히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


****) 레닌, 앞의 글, p. 427.


*****) 레닌, 앞의 글, p. 434.


*) 레닌, 앞의 글, p. 433.


**) 레닌, 앞의 글, p. 434.


***) 레닌, 앞의 글, p. 425.


****)헨리 조지에 대해 맑스는 오래전에 “이론적으로 그 사람은 완전히 후진적”이라고 하고 그를 “급진적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그”라고 규정했다. 엥겔스 역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헨리 조지 사상의 불합리성과 반동적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또 자주 이야기 했다.”(레닌, 앞의 글, p.426)


*****) 레닌, 같은 글, p. 426.


*1) 레닌, 같은 글, pp. 426-7.


**) 레닌, 같은 글, p. 434.


***) 레닌, 같은 글, p. 434.


****) 레닌, 같은 글, p. 433.


*****) 레닌, 앞의 글, p. 427.


*6)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독립적 정당을 결성하기 전에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정당을 결성했고 부르주아 정치가들에게 투표하는 전통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러시아의 상황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조건으로 쉽게 배제할 수 있다.


**) 레닌, 앞의 글, pp. 425-6.


***) 레닌, 앞의 글, p. 434.


****) 레닌, 앞의 글, p. 435.


*****) 레닌, 앞의 글, p. 436.


* 레닌, 「『요하네스 베커, 요제프 디츠겐,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등이 프리드리히 조르게 등에게 보낸 편지』러시아 번역판에 부치는 서문」, 『레닌저작집4-2』, 전진, 1991, pp. 422-439.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7호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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