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민주노동당 강령 비판 : 국가관을 중심으로

이 글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제2기 국가론 세미나*1)중 토론용으로 제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전문과 16개의 세부 강령으로 비교적 방대한 양의 민주노동당 강령**2) 중 주로 ‘국가관’과 관련된 내용에 한정하여 비판하여 보겠다.

글에 앞서 한 가지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강령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조직되어 있지 않아 각 세부 강령 간, 전문과 세부 강령 간 중첩되거나 모순된 내용이 적지 않고, 또 상투적인 단어가 자주 사용되어 일관된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강령으로부터 민주노동당의 ‘국가관’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1) 현재 국가 성격 규명을 통한 국가 권력 획득의 방법론 2) 이를 통한 당면 투쟁 과제 3) 국가 권력 획득 이후 이행기 과정에서의 대체적인 계획 등을 살펴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문과 세부 강령에 단편적으로 드러나 있는 ‘국가관’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전문―상투어와 공문구의 의미

전문에서 민주노동당은 “정치권력의 획득 없이는 사회의 개조도, 민중의 생존이나 민족의 자립도 불가능하다.”면서 정치권력 획득이 민주노동‘당’으로서의 목표임을 분명히 하지만, 정치 권력을 어떻게 획득할 것이며, 정치 권력을 획득한 이후의 계획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서술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전문에서뿐 아니라 전 강령에 걸쳐 드러나 있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특징이다. 전문에 나와 있는 정치 권력과 관계된 서술 부문은 직접 민주주의 실현과 억압적 국가기구 완전 폐지(정치 강령 때 비판)이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은 부르주아 정당을 비롯하여 ‘온 세상이 다 아는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이며, 사실상의 공문구이다. 정치 권력 획득이 제일 목표일 수밖에 없는 정당의 전체 강령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집약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전문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 권력 획득의 경로 대신 ‘일반적인 흰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국가의 억압적 본질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거나 또는 이 문제를 교묘히 회피하여 서구 사민주의 정당과 같은 개량주의적 정치권력 획득의 진로를 예정해 놓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까?



2. 정치강령―부르주아 정당의 강령의 복사판

정말이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 및 강령***3)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정치 강령에서 “억압적 국가기구를 전면 철폐”가 유일한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국가 정보원, 기무사” 따위가 단지 “냉전과 분단 시대의 잔재와 군사독재의 해악”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러한 국가 기구를 “민주적으로 개조”한다면,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일소된, 소위 발전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일수록 이러한 정보기구, 관련 법조항 등은 오히려 더 억압적인 형태로, 더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강령은 일부의 국가 기구만이 억압적이다라는 외관을 풍겨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 들어설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고 있다. 최근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국가기구의 탄압****4)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 권고안을 낸 적이 있다. 단! 관련 사안들은 충분히 형법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제와 함께!

그리고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매우 중요한 항목 중 하나로 다루고 있는데, 이것 역시 지방자치도시의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는 보수정당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운영에 민중이 유리된 이유가 과도한 중앙 집권화 또는 제도의 미비에서 발생되었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국가의 기본적인 억압적 성격에 대한 인식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5)이다. 최근 지방자치제도의 강화는 지역 간 격차의 증대와 지역경쟁력강화 이데올로기만 낳았을 뿐, 노동자계급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허울좋은 국가 기구 개편에 불과하다.



3. 통일강령―계급의 사상(捨象)

통일강령에서는, 통일관련 당사국을 하나의 공통된 이해를 가진 집단화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일국가 내의 계급 대립, 통일과 관련된 노동자계급의 이해문제는 거의 사상되어 있다. (단, 정부 당국이나 재벌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주체의 통일을 이룩하자는 극히 추상적인 명제를 제외하고는) 따라서, 20세기의 냉전은 ‘통일로 나아가려는 길’을 막은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었으며, 사회주의권의 해체, 미국을 중심으로한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강화가 오히려 이들에게는 “민족의 의지와 역량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또한 통일 당면 과제에서도, “사회 통합적 접근”, “종속적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배제적 경제구조를 전면 수정하여 … ‘국민경제’구도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계급 문제의 사상, 민중=민족=국가라는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강령은 결국 자본의 북한 진출을 활성화하고, 평화 중재자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무현정권의 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오직 ‘대규모’, ‘대폭’ 등의 수식어에서의 차이만을 나타낸다.



4. 국방강령―부국강병론

“합리적인 군축을 통한 21세기 통일 대비형 국가 건설”이 부제(副題)이다. 군대란 결국 계급 착취의 도구이며, 자본주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억압 체제의 대표체 아닌가? 보수정당과 한 치의 글자가 다를 바 없는, 현재 억압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실용적 국방 구현에 민주노동당이 가세하고 있다. 이들의 무시무시한 강령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무기 구입처를 미국 중심에서 다른 여러 나라로 다양화한다.”

“병력을 감축하고, 우리 군을 과학화, 현대화, 정예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 군을 정예 병력으로 실질적인 방위 능력을 갖추게 만들 것이며, 안정성을 갖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지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군 병력을 충원하면서 군의 전문화를 이룬다.”

“유사시에 예비군을 실전에 배치할 수 있도록 전투력을 강화한다.”

도대체 이들은 군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투쟁, 군 감축 투쟁은 이들이 이야기한대로 보다 효율적인 군대로의 재편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군대로 표현된 자본주의 국가 기구에 맞선 투쟁, 이윤극대화를 위해 강요되는 민중의 죽음에 맞선 투쟁, 인권유린과 인신 구속에 맞선 투쟁,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체제에 맞선 투쟁이었다. 만약 제국주의적 전쟁이 발생할 경우 강령대로라면, 이들은 민중들을 “정예화”시켜 “실전에 배치”하는데 앞장설 지도 모른다.



5. 외교강령―부르주아 국가와 노동자계급의 일체화

국가란 “하나” 또는 “민족”이며 하나다라는 구호는 외교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국제적 분쟁이 “여전”히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라고 안타까워 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국제적 협력을 능동적”으로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누구”의 국제적 협력인가? 부르주아 국가 간 외교는 결국 국가라고 표현된 자본 간의 이익다툼, 이익이 관철되는 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없이, 한국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역할과 임무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이들은 강대국, 약소국 등으로 표현되는 부르주아 국가관을 그대로 답습하여, 결국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이야기하는 부르주아 국가 간의 “국제적 협력기구의 결성” 또는 “국제기구의 혁신”을 되뇌인다.

물론, 진보를 표방하는 당이니만큼 마지막인 “다섯째”에 “인류의 지속적인 평화”가 “전지구적 자본주의 재생산구조의 결과이자 현상임을 직시”한다고 서술한다. 그래서 “전세계의 진보세력과 연대”를 다짐한다. 과연 진보세력과의 연대와 부르주아 국가 간의 협력강화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는 무력사용의 포기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는”다고 한 표현이다. 앞서의 국방강령에서 주장하였던 “군의 현대화, 정예화”와 “무력 사용의 포기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는” 적극적 차원의 행동이 병행할 수 있을까?



6. 사회복지강령과 보건의료강령―공동체주의 국가관

민주노동당은 국가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통치하고 지배하기 위한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계급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기관으로 이해한다. 즉, ‘원래’의 국가는 국민에 대해 이러저러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이러저러한 모순을 없애고, 사회구성원들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강령에 서술을 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국가는 …의 책임을 지닌다”는 식으로, 오로지 자신들이 상정해놓은 ‘원래’의 국가가 지녀야 하는 책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되풀이 하며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 안에서만이 아니라 계층을 넘어서도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체 식구로서 함께 손잡는” 연대를 실현코자 한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의 복지영역에 대한 개입이 생산영역에서의 모순을 이익집단의 이전투구라는 외관으로 옮기기 위한 도구라는 것, ‘종교적․정치적 환상의 베일 속에 가린 착취를 보다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우며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착취’로 바꾼 부르주아 체제에 대하여 정치적 환상의 베일을 드리우게 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 정권의 복지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구안 즉, 이러저러한 행정적 체계에 대한 요구안을 내어놓고 있다.

이밖에 보건의료강령, 과학기술강령 등에서도 “국가와 사회는 … 제거해야 한다.”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은 공공 이익에 봉사하는 연구개발 활동을 육성하는데 있다.”는 식으로 그들이 상정한 원래의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일들을 차례로 나열해놓고, 국가 기구의 구성을 이러저러하게 다르게 함으로써 이 문제들이 극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7. 종합

강령에 표현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의 국가관을 종합해보면, 정치, 통일, 외교, 국방 등의 강령에서는 국가를 노동자계급과 동일시하는 국가주의, 심지어 부국강병론이 당당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의 강령에서는 중립적 국가관, 공동체주의적 국가관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국가관은 민중적인 화려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가란 계급화해의 수단이며, 초계급적이다라는 부르주아적 국가관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민중 투쟁사의 계승자”를 자임하는 정당의 강령에서 이같은 국가관을 발견한다는 것, 그리고 강령 공표 후 별다른 논쟁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부르주아 국가관이 그만큼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이러한 국가관을 유지한 채 부르주아 체제에 결정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투쟁을 결코 전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강령논쟁을 통해 “우리의 이론 상황이 처한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 자체가 민주노동당 운동이라는 실천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6)라고 자위하는 기회주의적인 자세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에 정면으로 맞선 투쟁이다. 《노사과연》



이론


민주노동당 강령 비판 : 국가관을 중심으로


이진수|회원 



*) 2기 국가론 세미나에서는, 맑스 ․ 엥겔스 원전과 레닌 저작을 중심으로 한 1기 세미나에 이어, 현대 자본주의 국가와 관련된 이슈와 쟁점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http://www.kdlp.org/index.php?menu=kdlpis_3&main_act=content&content=prin, _1 ... 16


***) 한나라당 및 열린우리당의 강령 중 정치 강령 부문을 직접 확인해보라. 공문구로 가득찬 이들의 강령과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크게 차이가 없다.

   열린우리당: http://www.uparty.or.kr/board/?section=info_creed&m=list&category=112

   한나라당: http://www.hannara.or.kr/vhannara/intro/poly.jsp


****) “올해 구속 비정규직 노동자 92명 달해”, “손해배상액수도 1,498억원” 레이버투데이, 2005년 12월 23일자.


*****) 중앙집권제의 해체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미신은 꽤 오랫동안 존재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레닌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를 중앙집권체의 파괴로 오해”하는 것을 경계할 것과 이행기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전국적 통일체 건설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국가와 혁명』논장, pp. 68-72.


*)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과 우리의 자세”, 장석준, 2001. http://www.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35&art_no=342&jact=art_read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9호 (200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