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1)

[편집자 주: 이 글은 92세를 일기로 지난 1월 1일에 세상을 떠난 해리 맥도프(Harry Magdoff, 1913-2006)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논문 "Imperialism Without Colonies"(1970)을 그의 저서 Imperialism: From the Colonial Age to the Present, Monthly Review Press, 1978, pp. 117-47에서 3회에 나누어 번역하는 것이다. 페인트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이미 10대 말인 1932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전국 청년․학생동맹'(Nation-al Students League and the Youth League Against War and Fascism)에 참여, 그 전국적 기관지 [학생평론](Student Review)의 편집인을 맡는 등 활동을 하다가 뉴욕시립대학(City College of New York)에서 쫓겨났고, 1936년에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48년까지는 미국방성 산하기관과 상무성 등 미 정부기관에서 일했으나, 1948년 미 의회의 '비미국적 행위 조사위원회'에 소환된 후 해고되었고, 그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제국주의와 미 자본주의의 위기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다가 1969년에 Monthly Review에 합류, 폴 스위지(Paul Sweez-y, 1910-2004)와 함께 공동편집인을 맡아왔다. 그의 저서 [제국주의의 시대](The Age of Imperialism, 1969)는 지난 1980년대에 한국에도 번역․소개되었다. 미국의 대부르주아 신문 [뉴욕타임스](2006. 1. 9.)가 784단어로 구성된 그의 부음기사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3달러 95쎈트를 지불하라며 인터넷에 보여준 처음 50단어는, 흥미롭게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 "15살에 맑스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유력한 사회주의 경제학자, 저술가, 평론가―어떤 사람들은 쏘련 간첩이라고 말한다―가 된 해리 맥도프가 1월 1일 버몬트주 벌링톤의 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92세였다. 그의 아들 프레데릭(Frederick)은 그의 죽음을 ...라고 발표했다...."]



지난 19세기 후반에 돌연히 고조된, 거의 모든 열강에 의한 공격적인 식민지 추구는, 의문의 여지없이, '새로운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극적인 증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새로운 제국주의의 본질인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은,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의 관례적인 동일시는 그 주제에 대한 올바른 연구에 장애가 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식민지주의는 근대적 형태의 제국주의 이전부터 존재했고, 제국주의는 식민지주의가 사라진 후에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주의 자체는 고대로부터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 5세기 동안의 식민지주의는 자본주의적 사회경제체제의 발생 및 성숙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식민지 소유까지는 이르지 못한 정치적․경제적 지배를 포함한) 식민지의 추구와 획득은, 봉건제를 해체시키고 자본주의를 확립시킨 상업혁명의 중요한 속성이었다. 전세계의 전(前)자본주의적인 국지적 거래양식들은 시장의 냉혹한 힘에 의해서 파괴된 게 아니었다. 대신에, 이들 전통적인 거래양식을, 서유럽의 필요와 이익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계시장으로 바꾸는 데에 기초를 놓은 것은 우세한 군사력이었다. 대포와 그 대포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선박의 발전에 기초한 해군력의 비약적 성장이, 식민지를 병합하고, 무역항을 열게 하고, 새로운 무역관계를 강요하고, 광산과 농장을 개발하는 데에 이용되는 공격력을 창출해냈다. 우세한 해군력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식민지주의는 주로 해안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고, 남과 북의 아메리카주만이 예외였는데, 이는 거기에는 주민이 성겼던 데에다가 기술력이 원시적이었고, 또한 유럽의 전염병에 극히 취약했기 때문이었다.*1) 19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이들 식민지와의 경제적 관계는, 유럽적 관점에서 보면, 수입 지향적이었고, 식민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내밀한 물건이나 재부(財富)를 획득하려는 본국들의 욕망이 주요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 기간 동안에 유럽의 정복자들은 아메리카로부터의 귀금속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신들이 갈망하는 향신료나 열대농업생산물과 교환할 만한 것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다.

본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산업혁명과 철도의 발전의 영향을 받아 바뀌었다. 산업혁명과 철도의 발달로 인해 이해의 중심이 수입에서 수출로 이동했고, 토착산업의 몰락과 거대한 지역들로의 침투, 국제적인 은행거래의 새로운 국면, 자본수출을 위한 기회의 증대가 초래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야금술에 기초한 대공업의 발전과 유기화학의 산업에의 응용, 새로운 동력원, 새로운 통신 및 해양교통수단이 그러한 변화들을 더욱 심화시켰다.

여러 식민지들 간의 지리적 그리고 역사적 차이나 서로 다른 시대에 그 식민지들이 봉사한 상이한 목적을 고려하면, 모든 식민지주의를 하나의 단일한 모델에 꿰맞추려고 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의 시도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 물론 다양한 식민지 경영의 경험에는 하나의 공통 요소, 즉 본국의 이익을 위한 식민지의 착취가 존재한다.**2) 나아가, 식민지 및 반식민지 세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들은 기본적으로 팽창하고 있고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필요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에도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본의 발전단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식민지 본국들 자체의 중상주의적 자본주의, 경쟁적 산업자본주의 및 독점자본주의라고 하는 발전단계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어떤 일정한 시점의 식민지 세계의 경제나 정치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간들과 결부된 차이들을 인식하고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국주의를 식민지주의와 동일시하게 되면, 식민지-본국 관계의 역사적 변이(變異)가 혼란스러워질 뿐 아니라, 최근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형, 즉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제국주의를 평가하는 것도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왕왕 경직되고 정적이며 몰역사적인 개념 모델들을 창출, 복잡하고 역동적인 현상들을 다루는 데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자주 이러한 모델들의 기초가 되는 보다 공통적인, 잘못된 개념들을 일부 검토하고자 하는데, 이는 그것이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라는 주제를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한 잘못된 개념은 두 가지가 특히 일반적인데, 과잉자본의 수출 및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관련한 논쟁에 기반한 이 두 개념 모두 자본수출의 절대적 역할과 연관되어 있다.


1. 과잉자본의 압력


독점자본주의 시대(즉, 거대기업이 지배하고 있고, 경제가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때)와 결합되어 있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본수출의 급증이다. 자본수출과 제국주의적 팽창의 결합은 자본 수출업자 측에서는 안전하고 우호적인 환경을 위해 명백히 필요하다.

그러나 19세기 마지막 4/4분기에 자본의 해외이동이 폭증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주 만나게 되는 설명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국내에서는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자본에 의해서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해외로 배출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독점의 성장이 갈수록 투자를 어렵게 한다는 주장은 강하게 제기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본수출이 기본적으로 자본과잉의 압력에 의해서 자극되는 것은 아니다.***3)

그 문제에 대답하는 열쇠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를 세계체제로서 이해하고 바라보는 데에 있다. 강력한 국민국가들의 존재와 민족주의의 중요성이 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라는 개념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민족주의는 그 체제의 국제주의의 '분신'이다. 성공적인 자본가계급은, 국내시장을 개발하고 충분한 산업기반을 건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똑 같이 중요하게, 경쟁관계에 있는 국민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해외 거래 및 투자의 기회를 확보하고 방어하기 위해서도 국민국가의 힘을 필요로 한다. 개개의 자본주의 국가는 자신에 대한 방위와 특혜적 무역 채널, 국제적으로 거래할 자유를 원한다. 보호주의와 강력한 군사정책, 해외시장을 위한 드라이브는 모두 동일한 정책의 부분들이다.

세계적 규모로 거래를 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은 자본주의 경제학의 일부가 되었다. 경쟁의 압력이나 기술적 진보, 그리고 생산력과 유효수요 간의 거듭되는 불균형은 시장 확대를 위한 끊임없는 압력을 창출한다. 사업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은, 재부에 대한 한없는 욕망과 얽혀서, 기업가로 하여금 갈수록 거대한 자산을 축적하도록 촉진하고,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지구의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도록 한다. 훼방을 놓는 것은, 교통 및 통신상의 기술적 제약 외에, 토착민들의 저항과 다른 자본주의 국민국가와의 경쟁이다.

이렇게 보면, 자본의 수출은, 외국무역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기업의 정상적 기능이다. 더욱이, 자본수출의 확대는 자본주의의 지리적 확대와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중상주의적 자본주의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본은 그 본래의 국경을 넘어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농장과 광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해외 은행업이 성장하여, 해외투자활동을 원활하게 했을 뿐 아니라 유럽과의 무역에 투자하였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국내의 투자 기회가 줄어들긴 했지만, 자본수출의 주요한 추진력은 과잉자본의 압력이 아니라 수익성이 있는 곳에서의 자본의 활용이었고, 그것은 물론 당시의 기술이나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정치적 조건, 그리고 본국의 자원에 의해서 제약되고 있었다. 예컨대, 이윤을 창출하는 이들 많은 기회에 강제로 참가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충당할 수 있는 기존의 인력이나 경제적 자원의 부족 역시 투자 기회를 제한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역관계에서의 반전(反轉)은 산업혁명과 대량생산공업의 영향 때문에 발생한다. 자본가적 기업은 필사적으로 해외시장을 찾아 나서고, 반면에 교환할 물건이 없어 시달리는 것은 이제 해외지역이다. 그 결과, 공업화된 국가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많은 나라들은, 대개 수입이 수출을 초과했기 때문에, 빚을 지게 된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중심부 국가에서 자본을 빌릴 기회와 필요가 증대한다. 자본수출은 그리하여 상품수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의 수출자본에 대한 수요가 진짜로 폭증한 것은 철도의 발달 때문이었다. 세계의 거대한 지역에 철로와 철도 장비를 공급한 것은 영국의 공업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차관과 주식자본 역시 이러한 수출을 가능하도록 자금을 공급했다. 나아가, 장기간의 국제무역과 자본수출의 역사 속에서 발전한 금융기관들은 해외사업을 추구하는 데에서 기득권을 획득했다. 자신들의 성장 충동에 따라서 그들은 자본을 해외에서 이용할 새로운 기회를 추구했고, 그러한 투자를 위해서 정력적으로 국내 자본을 모집하고 자극했다.

중요한 점은 자본수출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1)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세계적인 활동과, (2)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발전한 제도와 경제구조의 산물이다. 그것은 과잉자본 자체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때로는 해외로부터의 이자 및 이윤의 회류[回流]에 의한) '과잉자본' 문제가 결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때때로 자본은 그러한 과잉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일단 정교한 국제화폐시장이 존재하면, 그것들은 다양하게 이용될 것이다. 단기자금들이, 예컨대, 여러 화폐시장의 변화하는 자금사정에 따라 국경을 넘어 이동할 것이다. 화폐는 보다 일반적인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즉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영향력과 특혜적인 대우를 획득하기 위해서 대부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의 주요한 지지대는, 세계시장에서 활동할 자신들의 필요를 추구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생성되는 국제적인 무역 및 투자의 네트워크이다. 그 때문에, 국내의 과잉자본이 때때로 해외로의 자본이동의 주요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더 타당한 설명은, 우리가 보기에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국내 경제상황과 해외시장의 상황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4)

그렇다면 왜 근대 제국주의는 자본수출의 급작스러운 고조와 결부되어 있는가? 그 대답은, 내가 보기에는, 자본주의의 이 후기 단계와는 물론 위의 분석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첫째로, 새로운 제국주의는 국제무역 및 국제금융에서의 영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여러 산업국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들 여타의 국가들도 똑같은 목적 ― 대외무역의 확대와 특혜적 시장을 위해서 자신들의 자본수출을 확대한다. 그리하여, 영국이 극소수 가운데의 지배적인 자본 수출국가 아니라, 새로운 수많은 수출국들이 등장하고, 그 결과 자본수출액은 거대하게 팽창한다. 둘째로, 선진산업국가들 간의 격화된 경쟁과도 결부되어 보호관세장벽이 성장하고, 이러한 관세장벽을 뛰어넘는 하나의 수단이 해외투자이다. 셋째로, 자본주의의 이 새로운 단계는, 석유나 철광석, 비철광석과 같은 원료의 거대한 신규 공급을 요구하는 산업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해외의 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데에 거액의 자본을 요구할 뿐 아니라, 해외 국가들이 그에 필요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교통 및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대부자본도 요구한다. 넷째로, 주식회사나 주식시장, 기타 금융기관들이 성숙함에 따라 자본을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용하도록 보다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거대기업의 발전이 독점의 성장을 촉진한다. 시장을 통제하고자 하는 이들 기업의 욕구와 그 실행능력은 해외로의 자본팽창을 위한 또 다른 주요 동기를 제공한다.

이 시대의 미국의 해외투자와 관련한 여러 사실들은 ‘과잉’ 자본의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심장하고, 그것들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인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해준다. 만일 자본수출의, 주요 이유 그것은 아닐지라도, 주요 이유의 하나가 너무나 많은 국내 자본의 압력이라면, 해외에서 수익성 있게 이용될 수 있을 만큼의 최대한의 자본이 미국으로부터 유출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1957년도의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자본구조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이 해는 그러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이다. 해외투자에 관한 다른 통계조사는 1966년에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그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 본거지를 둔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자산의 60%는 미국 거주자가 소유하고 있고, 40%는 미국 비거주자, 라틴 아메리카 등에 투자된 유럽 및 캐나다의 자본을 포함한 주로 현지 거주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표 1. B를 보라).


표 1 : 1957년 현재 미국의 해외 직접투자 기업

  A. 순자산, 부채, 총자산의 비율

 

 총자산

  순자산

부채자산

10억 $

  %

10억 $

  %

10억 $

  %

 미국 거주자 소유

 $24.0

100.0

 $19.7

 82.3

 $ 4.2

 17.7

 현지 거주자 소유2

  15.6

100.0

   3.2

 20.6

  12.4

 79.4

 합계

 $39.6

100.0

 %22.9

 58.0

 $16.6

 42.0

  B. 미국 및 현지 거주자 소유자산의 분배비율

 

  총자산

  순자산

 부채자산

 미국 거주자 소유

   60.5

   86.0

   25.4

 현지 거주자 소유2

   39.5

   14.0

   74.6

 합계

  100.0

  100.0

  100.0

  미국 및 현지 거주자 소유자산 (4사5입 때문에 자세하게는 합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1. 금융 및 보험투자는 제외되어 있다.

2. 보다 정확하게는 비(非)미국 거주자. 소유자들은 주로 미국의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거주자들이지만, 미국에 본거지를 둔 다른 지역의 기업에 유럽 및 캐나다의 기금 유입도 있을 수 있다.


출처: U,.S. Business Investments in Foreign Countries (Washington, D.C.: U.S. Department of Commerce, 1960), 표 20에서 계산.


이들 자료는 흥미롭게도 비비 꼬여 있다. 순자산과 부채자산을 구분하면, 미국 거주자는 순자산의 86%와 단 25%의 부채자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반영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회사들이 자신들의 해외자산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하고 이윤의 ‘영속적인’ 흐름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 채용하는 관행이다. 적절한 시기에 기업의 이윤으로부터 상환될 (장기 혹은 단기의) 부채 자본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필시 현지의 부자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모국의 필시 긴급한 ‘과잉’ 기금은 해외기업에 필요한 부채 자본을 위해서는 거의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서 말한, 자본 자산의 60에서 40%의 지분도 미국으로부터 공급된 자본 기금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가들의 잡지인 [해외 비즈니스](Business Abroad)가 미국 기업들의 해외투자 관행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보자.


자본투자 가치를 계산함에 있어서, 예컨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는 상표나 특허, 노하우와 같은 무형자산은 실제 투자 자본의 두 배로 계상한다. 일부 회사들은 노하우나 설계도 등등을 자본 투자의 3분의 1로 계산하고, 그리고 3분의 1은 기계류나 설비를 제공함으로써 현물자산으로 공급한다.*****5)


그리하여, 미국 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60%의 자산의 상당 부분은 현금 투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식, 상표 등등에 대한 평가액이나 본사에게 가격을 정한 자신들의 기계를 대표할 뿐이다.*6)

현지의 자본을 사용하는 이러한 현상이, 주로 보다 부유한 해외 국가들에 투자할 때의 특징적 관행인지 물을지도 모른다. 대답은 ‘아니다’이다. 현지 자본에 의해서 공급되는 부분이 유럽 국가들에서는 보다 크고(54%),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보다 작은(31%)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부채 자본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관행은 미국의 자본이 투자되어 있는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표 2를 보라).


표 2 : 각국의, 미국 직접투자기업 자산의 분배비율 (1957년도)1


      소유

  총자산

  순자산

 부채자산

 캐나다 내

 

 

 

  미국 거주자

   62.0

   78.5

   37.2

  현지 거주자2

   38.0

   21.5

   62.8

    합계

  100.0

  100.0

  100.0

 유럽 내

   

   

   

  미국 거주자

   46.2

   83.9

   11.1

  현지 거주자2

   53.8

   16.1

   88.9

    합계

  100.0

  100.0

  100.0

 라틴 아메리카 내

 

 

 

  미국 거주자

   69.1

   92.9

   24.9

  현지 거주자2

   30.9

    7.1

   75.1

    합계

  100.0

  100.0

  100.1

 아프리카 내

 

 

 

  미국 거주자

   51.5

   80.7

   23.9

  현지 거주자2

   48.5

   19.3

   76.1

    합계

  100.0

  100.0

  100.0

 아시아 내

 

 

 

  미국 거주자

   62.4

   94.1

   13.1

  현지 거주자2

   37.6

    5.9

   86.9

    합계

  100.0

  100.0

  100.0

    주 및 출처: 표 1과 동일.


미국의 해외직접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기금의 흐름과 관련한 사실들은 훨씬 더 충격적이다. 우리는, 1957년부터 1965년까지 이들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이용된 기금원(基金源)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이 정보가 한정된 기간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입수 가능한 여타 증거에 의하면, 이 기간이 변칙적이었다고 간주할 어떤 이유도 없다.**7)

이들 자료는 문제의 기간 동안에 해외직접투자의 확대와 조업을 위해서 약 840억 달러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총액 가운데 가까스로 15% 이상만이 미국으로부터 투자되었다. 나머지 85%는 미국 밖에서 조달되었다. 20%는 현지에서 조성된 기금에서, 그리고 65%는 해외기업의 조업 자체에서 발생한 현금에서 (표 3. A를 보라).


표 3 : 미국의 해외직접투자기업의 기금원: 1957-1965

  A. 지역 전체 요약

 자금원

조달된 자금

    10억 $

    비율

 미국으로부터 조달

    $12.8

     15.3

 해외에서 조달

     16.8

     20.1

 해외기업의 조업에서 조달

     54.1

     64.6

  순수입에서 조달

    (33.6)

    (40.1)

  감가상각 및 감모상각에서 조달

    (20.5)

    (24.1)

 합계

    $83.7

    100.0

  B. 지역별 분배 비율

 지역

조달된 기금의 비율

미국으로부터

미국 외부에서1

  합계

 캐나다

    15.7

    84.3

   100.0

 유럽

    20.2

    79.8

   100.0

 라틴 아메리카

    11.4

    88.6

   100.0

 기타 전체

    13.6

    86.4

   100.0

1. 해외의 비미국 거주자 및 해외기업의 조업에서 조달한 기금을 포함한다.

출처: 1957년 자료―표 1과 동일; 1958-1965년 자료는, Survey of Current Business, 1961년 9월, 1962년 9월, 1965년 11월, 1967년 1월호에서.


여기에서 다시 패턴은 부국과 빈국이 유사하다. 무언가 다른 게 있다면, 부국에서보다 빈국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자본조달 비율이 더 낮다. 미국으로부터의 자본조달 비율은 캐나다 내의 기업의 경우 16%, 유럽 내의 경우 20%, 라틴 아메리카 내의 경우 11%, 그리고 기타 국가들 내에서는 14%이다. 이들 격차로부터 너무나 많은 결론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이 기간 동안에 유럽 내에 있는 기업의 급속한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많은 자금이 미국으로부터 왔다. 하지만, 해외투자를 위해서 필요한 자금의 아주 작은 비율만이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그것은, 해외투자의 주요 원인은 본국의 너무나도 많은 자본의 압력이라는 이론에 기초해서는 거의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번 역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1)



해리 맥도프

번역: 편집부




*) Carlo M. Cipolla,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Early Phases of European Expansion, 1400-1700 (New York: Pantheon, 1965), "Epilogue."


**) 명백히, 식민지 취득의 목적들은 한결같지 않았다. 어떤 식민지들은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서의 군사 전략적 가치 때문에 추구되었고, 어떤 것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제국들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 추구되는 등등, 한결같지 않았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공통 요소는 식민지 경영의 경험 자체 속에 있다. 획득 과정의 계획적 혹은 우발적 특징에 상관없이, 식민지의 경영(과 반식민지 지역의 조종)은 본국의 경제적 이해에 봉사하도록 그 주변부 지역들을 개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거나 결과적으로 개조하게 되었다.


***) 과잉 문제에 대한 분석은 바란(Paul A. Baran)과 스위지(Paul M. Sweezy)의 [독점자본](Monopoly Capital, 1966)에 잘 전개되어 있다. 하지만, 바란과 스위지가 제기한 문제와 우리가 여기에서 검토하고 있는 문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들은 '경제잉여'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지, '과잉자본'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경제잉여' 라는 용어는 반드시 자본이 '너무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필요생산비용을 초과하는 잉여이다. 그 중의 일부가, 과잉자본을 자본수출과 결부시키는 이론의 의미에서도 역시 잉여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일 뿐 아니라 별개의 문제이다. [독점자본] 속에서 바란과 스위지는 독점의 침체유도경향(stagnation-inducing tendency of monopoly)과 관련한 투자와 고용의 기본적 동학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유출되는 투자보다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수입(income)이 더 크기 때문에, 자본의 수출은 침체경향을 상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자본의 수출은 투자 배출구와 관련한 과잉의 문제를 완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격화시킨다. 바란과 스위지는 자본수출의 '효과'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 그 '원인'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출 효과를 다룸에 있어서, 그들은 그 모든 관련 사항들을 분석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경제적 잉여의 본국에서의 처분에 미치는 그 효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 자본수출이 증대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영국의 자본수출과 상품수출 간의 상호관계에 관해서는, Yorkshire Bulletin of Economics and Social Research ( 1965년 5월)에 실린 A. G. Ford, "O-verseas Lending and Internal Fluctuations, 1870-1914," 및 A. J. Brown, "Britain in the World Economy, 1820-1914"를 참조할 것. 자본의 과잉 및 부족에 관해서는, 위 논문 속에서의 A. J. Brown의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관찰에 주목할 것.

      "... 틴버전(Tinbergen) 교수는, 이 기간(Business Cycles in the United Kingdom, 1870-1914, Amsterdam, 1951)의 영국에 관한 괄목할 만한 계량경제학적 연구에서, 자본수출과 단기이자율 간에는 명백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고 있으며, 화폐가 많아서 해외에 대부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해외에 대부했기 때문에 화폐가 부족하다고 시사하고 있다."


*****) Business Abroad, 1966. 7. 11. p. 31.


*) 모든 요소들을 풀어 보다 더 현실적인 상(像)을 얻기는 어렵다. 첫째로, 모든 순자산이 본래의 투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중의 일부는 재투자된 잉여다. [해외 비즈니스]의 자료는 아마 본래의 투자에만 해당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투자를 저평가하게 하는 반대경향도 존재한다. 일부 산업, 특히 채취산업들에서는, 아직 여전히 생산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자산들을 감가상각 처리해 버리고 있다.


**) 국제수지의 적자를 축소하기 위해서 정부가 투자 자본의 유출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해외직접투자는 최근 증대했음을 주목하라.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지만, 갈수록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차입하기가 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회사들이 예정된 해외 필요자금의 84%를 해외에서 조달했음에 비해서 금년엔 91%를 해외에서 조달할 것이다. ... 해외에서의 자금조달이 아주 쉬워졌기 때문에, 사실 미국으로부터의 달러 유출에 대한 연방정부의 통제는 해외 자금 계획에 단지 작은 장애일 뿐이다.” (1969. 8. 9., p. 38.)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0호 (200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