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

  불세출의 사상가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지적에 대해 “제일 황당”하다고 하며 반동진영에서 그를 “좌파”라고 한다는 것을 논거로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좌파”와 반동적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자신의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채만수,『노동자 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 노사과연, pp. 549-630 참조)를 통합시켜 새로운 사상과 이론을 창조해냈다. 이제 앞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증명해내는 것뿐이다.


  그는 또 “좌․우파 정책을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을 하고, 서로 모순된 것을 조화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좌파”와 “신자유주의”라는 대립물을 통합했다. 말 그대로 대립물의 절묘한 통합이다. 변증법이란 모순, 즉 ‘대립물의 통일’을 다루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철학이다. 그러므로 그가 “서로 모순된 것을 조화시켜가”겠다고 했을 때 그는 변증법에 대해 들어 본적은 있어 보이고 최소한 귀동냥으로 배운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어설프게 이용한 변증법은 ‘대립물의 조화’는 특수하고 상대적이지만 ‘대립물의 투쟁’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모순은 ‘비적대적 모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 모순’도 있다고 하며, ‘비적대적 모순’과 ‘적대적 모순’은 해결방법도 다르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 법칙의 온전한 표현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이다.


  “사물들과 사물들의 개념적 모사를 그 연관, 연쇄, 운동, 생성과 소멸 속에서 본질적으로 파악하는 변증법”, “자연, 인간, 사회 및 사유의 일반적 운동법칙과 발전법칙들에 대한 과학”으로서의 변증법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혁명적이다. 하지만 변증법은 세상에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는 것 같”아 보여 세상의 변화를 원치 않는 반동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때때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칼 맑스,『자본론』제1권 제2판 후기)


  변증법을 혁명의 유용한 무기에서 무기력한 말장난으로 전락시키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은 그것을 절충주의로 대체하여 궤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대립물의 양 측면과 상호작용을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즉 “양쪽 모두”라고 하거나, 같은 과정의 다른 단계에 속하는 특수한 것을 무시하고 모두 한 덩어리로 뭉뚱그리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이것의 아주 천박한 예다. (그는 정치에서는 좌파, 경제에서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한다.) 자신이 진보적임을 자처하고 싶고 또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그는 신자유주의자인 자신의 본질을 은폐하고자 이른바 수구․반동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자신을 좌파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그가 좌파의 성격을 병아리 오줌만큼이라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철저한 신자유주의자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권좌에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표가 천박하고 후진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 다른 것은 일절 아니다.


  그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것이 나쁜 것이냐.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획일적인 이론 안에 현실을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현실을 해결하는 해법에 좌파 이론이든 우파 이론이든 해결하는 열쇠로 써먹을 수 있는 대로 써먹자는 것이며, 그것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이론에 현실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좌파 이론’이면 어떻고 ‘우파 이론’이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제공한다고 한다면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 그대로 문제의 핵심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그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 문제들(예를 들어, 주택․부동산 문제, 양극화 문제, 저출산 문제 등)의 근본적 원인이 한국자본주의 자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자본주의가 지양되어야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따라서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연하게도 노동자계급의 반대편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숫자가 줄지 않을 것이고 갑자기 줄이는 것은 어렵다”, “비정규직 숫자를 줄이는 것은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정책으로 받쳐나가야 한다.”) 아무튼 그는 자기 나름대로 한국사회의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즉 그는 이른바 개혁적 부르주아지에 대해 인민들이 정치적 환멸을 느끼도록 하는 것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추가: 그런데 아무리 그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그가 “좌파” 운운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좌파의 가치가 아무리 똥값이 되었다고 해도, 몰염치한 일이고 듣기에도 역겹다. 왜냐하면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은 “망월동이나 모란묘원에 누워 있는 희생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전유하면서 탐욕과 출세욕을 실현해가고 있는 정치적 야심가들”에 불과한 파렴치한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노사과연》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2호 (200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