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상당히 오랜 기간 잊혀지지 않는 도시가 될 것이다. ‘황우석 신화’로 유명해지던 이곳은 그것이 ‘황우석 사기’로 바뀌어가던 작년 말부터 한동안 한국의 방송과 신문에 몇 번씩 보도되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무렵 이곳은 또다시 한국의 방송과 신문에 매일 등장하였다. 그것은 피츠버그에 근거를 둔 미식축구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가 2005-2006년 미국 프로풋볼팀의 최종 강자를 가르는 슈퍼볼에 진출했고 우승을 했기 때문이었다. 미식축구는 미국이외의 지역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는 운동경기이다. 한국에서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한국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미식축구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증가해서가 아니다. 고운정․미운정이 다든 피츠버그가 슈퍼볼에 진출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가 한국인인 ‘하인스 워드’라는 선수가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AFC(American Football Conference)에 속해있던 스틸러스는 정규시즌에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쿼터백의 부상 등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이 막바지까지 불투명했다. 그들은 마지막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컨퍼런스 6위로 와일드카드를 받아 가까스로 포스트오프에 진출했다. 그들은 ‘거리의 전사(street warrior)’라고 불리면서 자신보다 앞선 성적을 거둔 팀들을 그들의 홈구장에서 하나하나 꺼꾸러트리고 컨퍼런스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NFC(National Football Conference)에서 우승한 ‘시애틀 시호크스’와 슈퍼볼에서 맞붙게 되었다.


미국 인민대중들의 많은 수가 스포츠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츠버그에 사는 그들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포스트오프에 진출한 후 매주 금요일은 이른바 ‘스틸러스 데이’로 불리우며 노란색(금색)과 검은색으로 시내가 온통 물결친다.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아이들이 스틸러스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오기를 종용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스틸러스와 관련된 것들을 그리고 만든다. 어른들도 스틸러스 문양이 들어있는 옷과 모자 등 여러 가지 것들로 자신과 차등을 장식한다.


피츠버그 사람들이 스틸러스의 슈퍼볼 진출을 더욱 기뻐했던 것은 ‘제롬 베티스’라는 선수 때문이었다. 그는 ‘버스(the Bus)'라는 별명을 가진 디트로이트 출신의 선수로 올해로 은퇴를 할 예정이었다. 그는 프로선수 생활 13년 중 10년을 스틸러스의 선수로 보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미식축구선수로서의 꿈인 슈퍼볼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는 원래 한 해 전에 은퇴를 하려했다. 그리고 그때는 누구나 스틸러스가 슈퍼볼에 진출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슈퍼볼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프로초년병이었던 지금의 쿼터백이 너무나 잘못해 그들은 컨퍼런스 결승에서 패배하였다. 버스는 그렇게 은퇴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쿼터백과 그의 동료들은 눈물로 그의 은퇴를 만류하였고 그는 선수생활을 한 해 더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번 슈퍼볼이 열리는 곳은 그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였다.


그러나 정작 슈퍼볼 경기에서 베티스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러닝 백으로서는 빠른 편은 아니지만, 몇 명이 달라붙어도 뚫고 나가는 돌파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은퇴경기를 맞는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그래서 오히려 가장 눈에 띈 것은 하인스 워드였다. 그는 말 그대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그는 2쿼터가 끝날 무렵 골라인을 겨우 3야드를 남기는 37야드나 되고 수비의 방해로 받기 어려운 패스를 받아내었다. 이 패스의 성공은 다음 공격의 성공으로 이어져 피츠버그는 터치다운을 한다. 이것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는 역전(0:3에서 7:3)되었고 경기 내내 밀렸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여세를 몰아 스틸러스는 3쿼터에서 더 크게 점수를 벌려놓았다(14:3). 그러나 스틸러스는 4쿼터에서 쿼터백의 실수로 인터셉터를 당하고 이후 점수를 허용하여(14:10), 추격을 허락하고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43야드의 패스를 받아내며 터치다운을 한다(21:10). 스틸러스는 슈퍼볼에서 우승을 하였고 하인스 워드는 MVP를 받았다.


슈퍼볼이 끝난 다음날부터 피츠버그 사람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나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이 수선을 떨었다.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 경기의 MVP가 되고 이른바 미국의 ‘스포츠 영웅’이 되자 그는 ‘기지촌 출신 흑인 혼혈인’에서 순식간에 ‘한국을 세계에 빛낸 한국인 영웅’이 되었다. 이들 모자의 과거의 눈물겨운 삶은 현재의 영광을 위한 시련의 기간으로 미화되었다. 주미대사관에서는 그에게 명예 한국인증을 주겠다고 했고, 국회위원 정의화는(이자는 성폭행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최연희를 ‘급성알콜중독’이라며 옹호했던 자다.)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에게 국민훈장을 주자고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정부도 이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방송국들은 계획된 방송을 취소하고 특별방송을 준비해 방영했다. 또 이들은 모자가 한국에 올 것이라고 하자 그들을 출연시키려고 경쟁중이고, 항공사들도 그들을 자신의 비행기에 모시려고 경쟁을 하고 있다. 그들을 광고에 출현시키려는 소식들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또한 이들 모자는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하인스 워드가 뛰어난 선수라는 것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랑할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했고 성실했으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았다. 그러한 그의 태도와 인간성은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기에게 돌아오는 모든 찬사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돌렸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희생 덕택이고 자신은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그것을 다 갚을 수 없으며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이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모두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언제나 말해왔다. 그런 그가 “His Mother's Son(어머니의 아들, 진정한 아들)”, “The Smiling Assassin(미소짓는 암살자)”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와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고, 이것은 한국에도 이미 알려져 1998년 KBS에서 모자의 일화가 방영되었고 2000년 조선일보에도 실렸었다.(1998년 방영될 당시 제목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와 흑인아들 하인스 워드”였고 이번의 특별방송의 제목은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 어머니 슈퍼볼을 점령하다.” “흑인”이 사라졌고 “점령”이 추가되었다. 하인스 워드의 이름 앞에 한국인이라는 말은 차마 못 붙였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열광적 반응에 김영희씨는 고마워하기는 하지만 경계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흑인이나 혼혈이라면 언제 사람대접이나 해줬냐. 어렵게 살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잘 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 풍토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그녀가 미국에 오게 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하인스 워드가 흑인 혼혈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자신의 표현으로 “참혹”한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도 같은 한인들의 차별과 멸시를 이겨내야 했다. 이것은 그녀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하인스 워드에게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해야 했다. 그리고 1998년에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나왔을 때, 자신의 뒤에서 침을 뱉는 모멸을 견뎌야 했다. (아주 심하게 말하면 이런 천박한 풍토가 오히려 하인스 워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인스 워드의 성공으로 한국에서는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뼈아픈 각성을 촉구하고 있고, 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견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른바 ‘단일 민족 사상’, ‘순혈주의’ 등이 비판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지금 이것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는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고의 바탕에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빈곤에 대한 사회의 책임의 개인에게로의 전가, 가정에 대한 여성의 희생 강요 등이 깔려 있다.


하인스 워드는 아시아-아프리카 혼혈이라는 나쁜 조건과 가난이라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했다. 그는 지배계급 출신이 아닌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을 했다. 남들보다 몇 배나 뛰어난 사람들도 그러한 성공을 거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대중들의 영웅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성공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좋은 것은 자기와 연결시키고 나쁜 것은 자신과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이게 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의 성공을 통해 대리적 영광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전자(우리 연구소의 소장님이 전혀 못하는 것)는 이른바 ‘정치인’ 혹은 정치인스러운 사람들이 이 방법을 자주 활용하는 것에서 후자는 ‘황우석 소동’에서나 이번의 ‘하인스 워드’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시절을 내려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통 심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몇몇에게서 정도가 지나쳐 광적인 것을 볼 수 있다. 한 심리학자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성격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는 … 다시 말해서 형편없이 낮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그들의 열등감”이 그들을 “스스로의 성취를 통해 자부심을 고취하기 보다는 타인의 성공을 자신과 연결하여 자신의 자부심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취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 “열등감”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에 압도당하거나 지배계급의 거짓 선전에 현혹당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반동의 시기에 이것은 대중들을 사로잡을 것이고 더욱 극렬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들 대중들은 혁명기에 자신을 쥐고 있는 이른바 “열등감”을 순식간에 극복하고 독자적 행동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며 자신이 역사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알려주는 바로 그대로. ≪노사과연≫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1호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