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비정규직 문제의 현주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1년 계약’ 합의 파기와 합의 사실 부정을 중심으로

지저분한 이력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웬 비정규직?”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를 그 설립목적으로 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비정규직 850만 시대에 나름대로 성실하게(?) 부응하고 있다. 사업회는 설립 초기부터 사료관 등에서 상시업무에 일용직과 계약직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부정하는 노동정책을 실시해왔다.

사업회 비정규직의 큰 특징 중 하나는 8~9개월 단기 계약이다. 주로 사료관에서 ‘전문요원’이라는 형식으로 채용되어 온 비정규직들은 매년 3~12월까지 계약을 하고, 계약 종료일까지도 차기년도 근무 여부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계약을 종료해왔다. 계속 일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경우 응시를 해도 채용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1~2개월을 무작정 채용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사료관 ‘전문요원’ 시스템을 타부서에서도 도입하여 직위와 보수 책정 근거도 불명확한 상태의 비정규직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을 한다 하더라도 기존에 사업회에서 근무한 경험과 경력이 급여와 직급 등에 전혀 반영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사업회에서는 비정규직들에게 월급도 많이 주고, 월차도 주고, 노사협의회에도 참여시킨다고 기회만 되면 떠벌린다.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전문요원’들의 임금은 올해로 4년 째 동결인데 말이다.


“2004년 7월~2005년 12월 / 비고-2005년 1~2월 근무기간 제외”


내가 사업회에서 일한 경력이 이력서에 기재되는 방식이다. 비고 난을 채우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러기는 왠지 찜찜하다. 이런 방식으로 4년차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한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는데, 그 노동자의 이력서가 어떤 방식으로 기재될 것인가를 상상하면 소름끼친다. 



‘계약직’은 정규직이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궤변

2004년 함세웅 신부의 이사장 취임 이후, 정규직 TO로 1년 계약직을 채용해왔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신규채용자에 대해 계약직으로 임용한 것은 사업회 구성원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의 요구와 업무 적합성 평가기간으로 수습기간(3개월)이 짧다는 의견을 반영한 조치"라고 하여 실소를 짓게 했다.

또, 사업회는 “기념사업회의 구성원은 직장인임을 넘어서서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일을 해야 한다. 새로 채용되는 직원들이 이 정신을 실천하는 모범적 자세로 1년씩의 계약직을 수용하여 정부산하기관의 소위 ‘철밥통’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는 이사장의 말도 안 되는 발언[2006. 3. 13 <“최근 사태에 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입장” 中에서>]을 자랑스럽게 문건으로 만들어 배포까지 하였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렇게 해서 채용된 1년 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이라고 박박 우기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노사협의회 선거인 명부에 1년 계약직들이 정규직 명단에 올라가 있어 비정규직 명단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또, 지난 2월 24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발전을 위한 부산지역 초청 간담회> 자리에서는 사무처장이 “계약직과 비정규직은 다르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사업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안팎의 문제제기로 결국 올해 2월, 사업회는 3급 이하의 1년 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사업회에는 학습지교사나 덤프노동자와 같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있었다. 다른 직접고용 노동자와 동일한 형식과 내용의 업무를 수행함에도 ‘업무위탁’이라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6개월 이상 근무를 하다가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그만두어도 실업급여 혜택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직증명서 발급이 되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었으며 4대 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과도한 의료보험료를 내고 산재문제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2005년 12월, 이 부분에 대해 사업회 비정규직들이 사업회 측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여 “2006년도부터 내용과 형식이 불일치하는 현재와 같은 업무위탁은 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해당 업무의 경우 직접고용 방식으로 채용할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바 있다.



‘노동자’ 정체성을 고민하다

사업회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했던 사람들 모두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연말이면 불안하고 억울한 심정을 공유할 뿐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지는 못한 채 몇 년이 흘렀다. 특히, 논문 준비 중인 대학원 수료생이거나 졸업자의 경우 한시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의식과 함께 스스로 학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노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힘든 면도 있었다.

그러나 2005년도에는 20명가량(근무 조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직률도 높다) 되는 사업회 비정규직들이 목소리를 모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구체화하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측이 먼저 제공 했다.

2005년 10월, 사업회 측에서 비정규직들에게 노사협의회 참여를 제안하면서 그 참여 여부를 놓고 비정규직들의 전체 토론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것을 사업회는 두고두고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노동자인지 모르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만큼 자본가에게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논의는 자연스럽게 사업회 비정규직들의 심각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관한 성토로 흘렀다. 참여해보자는 의견과 함께 계약종료 두 달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실질적인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 노사협의회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또, 노조설립에 관한 제안도 나왔었다. 진지한 토론 끝에 일단 참여해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해보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비록 우리는 내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사업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내년에 일을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보다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가 노사협의회 참여를 결정하게 된 주요한 이유였다. 또, 우리는 근로자위원 후보 등록 하루 전날 준비과정에 대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된 점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고 비정규직의 비율 고려와 함께 비정규직들의 현실적인 의사개진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위원이 2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전달했다. 전자는 사과와 해명을 받았고, 후자는 선거관리위원회 측의 간곡한(?) 요청에 1인을 수용했다.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 1인을 선거관리 위원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정규직들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한 번 연기된 선거가 진행되었고, 내가 비정규직 근로자위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노사협의회가 그렇지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들이 이 노사협의회 참여를 통해 나누게 된 고민의 계기들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노동자인지 아닌지, 비정규직인지 아닌지,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일만 해 온 우리들을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장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또, 같은 사업회 비정규직임에도 다른 팀과 부서에 누가 있는지 관심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비정규직들이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2006년 봄. 우리의 분노는 더욱 컸는지도 모른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안, ‘고용승계’와 ‘1년 계약’

12월 15일 제1차 노사협의회가 열렸다. 이 날 안건 제출을 위해 우리는 그 전 날 점심시간에 대회의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비정규직 전체 토론을 진행했다. 2층 대회의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서에 미리 이용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수차례 ‘대회의실 사용 신청서’에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 간담회’라고 적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기간 동안 사업회 직원들이 이렇게 자율적이면서 조직화된 모임을 갖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비정규직 요구안 마련을 위해 전체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고용과 기타 요구에 관한 기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뜨거운 토론을 전개한 끝에 우리는 <고용승계, 1년 계약 보장, 상시업무가 비정규직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문제와 ‘특수고용’문제, 비정규직의 위상>에 관한 4개 요구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15일 노사협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회의 일주일 전에 안건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이 되지 않았다. 회의 공고가 회의 사흘 전에 되었는데 말이다. 이때, 노사협의회 사용자위원인 문국주 상임이사가 자신이 ‘간담회’를 주선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공언했고, 이날 제출한 안건은 노사협의회의 성과물인 그 ‘간담회’에서 논의하고 그 결과를 노사협의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치열한 논의의 결과치고는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고, 개인적으로도 이 날을 떠올릴 때마다 보다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슴 한쪽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사업회 측에서 그 위상과 형식이 어떠하든 ‘간담회’라는 이름을 갖는 자리를 먼저 제안했던 의도를 현 상황에 와서야 간파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1년 계약’ 합의를 이루어내다

사업회와 노사협의회 위원들의 불성실하고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한 우리는 이사회가 열리는 12월 19일 독자적인 행동을 결의하게 된다. 그 후 근로자위원들의 중재에 의해 노사협의회의 성과물로서의 ‘간담회’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22일 ‘간담회’에 참여했다. 이 날 ‘간담회’의 쟁점은 ‘고용승계’와 ‘1년 계약’이었다.

사업회 측에서는 우리들의 절실한 고용승계 요구와 관련하여 “사업회 특성상 한정된 인력비로 한정된 인력 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며 아직 국회에서 예산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끼리 의견일치를 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현재 사업회에서 비정규직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료관에서는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답변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사업회는 ‘1년 계약’ 부분에 대해서는 선뜻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희망자에 한해 1년 계약을 실시한다. 그러나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2개월분에 해당하는 임금과 퇴직금을 준비해야 하므로 2006년도 채용 인원은 줄게 될 수 있다. 또, 정해진 계약기간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손해배상 등을 물을 수 있기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실시하도록 하겠다.”는 치졸한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2006년부터 ‘1년 계약’을 실시한다는 답변을 했다.

비록 우리들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고용승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1년 계약’이 시행되면 두 달 간의 공백 없는 연속 근무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가능하게 되므로 다음 해에는 누가 와서 일하든 그 사람들부터는 ‘고용승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 내부 논의를 통해 이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실무논의 과정에서 그 의사를 밝혀 마침내 ‘1년 계약’ 합의를 이루어냈다.

12월 31일, 계약종료일까지 고용승계 문제로 사업회 측과 논의를 진행하였으나 이 부분과 관련한 성과는 얻지 못하였고, ‘1년 계약’ 합의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우리는 짐을 쌌다.



‘1년 계약’ 합의한 적 없다???

그러나...


6. 근무 조건

○ 계약 기간 : 2006. 3. 22 ~ 12. 31(약 9개월)

○ 2006년의 근무경력을 합산하여 향후 근무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 퇴직금 지급>


2005년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이들은 2006년 3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뜬 사료관 ‘전문요원’ 채용 공고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12월, 사업회 측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에 2006년 입사자부터 ‘1년 계약’을 실시한다는 합의가 이렇게 한 순간에 일방적으로 파기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과와 해명을 기대하고 사업회 측에 전화를 하였으나 사업회는 ‘1년 계약’ 합의를 한 적이 없다 했다.

“1년 계약 부분을 합의한 적이 없다. 비정규직들이 1년 계약을 건의해서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만을 했을 뿐이다. 관련 부처와 노무사 문의 결과 예산 때문에 1년 계약은 어렵게 되었다. 퇴직금 때문에 1년 계약을 요구한 것이니 퇴직금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 10개월과 1년 계약의 차이가 퇴직금 밖에 더 있냐”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3월 20일, 피켓을 들고 사업회에 나와야했다.


1. 1년 계약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합의 사실 자체를 부정한 것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진상규명

2. 1년 계약 합의 이행

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재고와 대안 마련

이 우리의 요구였다.


22일 사업회 측에서 면담 요청을 하여 면담이 이루어졌으나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당시 사업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갖고 나온 총무팀장은 “‘합의’에는 기본적인 절차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2005년 12월 당시 사업회에서는 모든 조건과 제도․예산에 문제가 없을 경우 1년 계약을 실시하겠다고 이야기 했었다. ‘간담회’에서는 합의를 할 수 없다.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과는 어렵다. 이날 첫 출근 한 사료관 비정규직들의 근로계약서 작성 시 내년 예산이 확보되고 행정자치부 장관 승인을 받게 되면 1년 계약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넣겠다”고 통보하고 2005년 비정규직 측에서 항의를 하는 중에 자리를 떠났다.

실제 근로계약서 상의 계약기간 난에는 다음과 같은 말장난이 들어있었다. 2005년 비정규직들의 일인시위 이후 사업회는 노무법인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는 등 웃지 못 할 행태를 보이기도 했는데, 이 말장난 역시 그 노무법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계약기간은 계약일로부터 12개월로 한다. 다만, 2007년 근무 부분에 대한 계약 부분은 관련 예산의 확보와 2007년 사업계획에 대한 “갑”의 이사회 및 행정자치부장관의 승인을 전제로 유효하다. 2007년도 1월 및 2월의 임금은 “갑”이 예산을 배정받아 지출이 가능한 시점에 지급한다.



‘1년 계약’ 합의 파기와 거짓말의 본질

처음 일인시위를 하면서 며칠이면 사업회 측의 사과와 진상을 듣고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는데, 예상을 깨고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업회의 태도를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 문제가 단순히 예산 문제로 빚어진 해프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싸움을 ‘명분 싸움’이라고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작년 초에 입사하여 1년을 근무했던 계약직들이 올해 초 사업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내외부 요구의 결과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사업회에서 1년 계약직 근무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사업회는 올해 3월에 입사한 사료관 비정규직들이 1년을 근무할 경우 올해 초 1년 계약직을 정규직화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규직화 시켜주어야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다. 이와 함께 기간제로 2년 고용 시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 법안도 고려했을 것이다. 예산 문제를 검토하는데 노무사까지 불러서 할 이유가 없다. 사업회 비정규직 인건비는 사업비에서 지출을 하고 있는데, 기존에 사업비에서 인건비를 지출하면서도 1년 단위로 연속계약을 한 선례가 있다. 또, 작년 ‘간담회’ 당시 사업회 측에서 선뜻 ‘1년 계약’을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비정규직 측에서 “나중에 예산문제로 못하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고 까지 물었었고, 사업회 측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확언을 했었다. 그 전 날, 사업회 측의 관련 업무 담당자들의 심도 있는 회의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사업회 측에서 ‘1년 계약’을 합의한 것은 예산문제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100%의 확신을 갖고 진행된 것이 맞다. 합의를 해놓고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정보들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 되겠다 싶었던 거다.

이번에 9개월로 공고를 내어 채용한 사료관 비정규직 업무의 경우 사업회 설립 이후 채용을 계속해 왔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인 채용을 요하는 상시업무로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이 마땅한 업무이다. 이에 대해 작년 12월, 간담회에 참석했던 사료관 담당자는 “외국의 아키비스트들은 자원 봉사로...”云云하며 “사료관은 이후에도 계속 비정규직을 쓸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이번 ‘1년 계약’ 합의 파기는 1년 계약이 실시되면 이와 같은 사료관 비정규직 고용 방침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실리를 계산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치졸하고 졸렬한 작품이다. 이번 사료관 ‘전문요원’ 채용 과정에서는 말 잘 듣고 저항하지 않는 비정규직을 채용하려는 사업회 측의 의도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로 내가 일했던 팀의 성원 전체를 새로운 사람으로 뽑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으나 자신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조차 만들지 못해 실패했다.

사업회가 최근 노무관리에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것을 생각하면 이번 일이 그다지 놀랍거나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함세웅 이사장은 취임 이후 전 직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가 하면 상임이사가 직원을 개별적으로 불러 “개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사직을 요구하고, 작년 말에는 사업회를 비방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는 이유로 직원을 직위해제 시키기도 했다. 사업회의 노동정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사례들이다.



‘노사 간의 합의’를 다시 생각하며

어느덧 사업회 2005년 비정규 노동자들의 일인시위가 4주 차에 접어들었다. 4월 3일에는 사업회 상임이사가 건물 안에 부착된 피켓을 갈기갈기 찢고 이를 갖고 올라가는 일이 발생했다. (대체 그 찢어진 피켓을 가져가서 뭘 했을지 궁금하다.) 뿐만 아니라 이에 항의하는 일인시위자를 모 본부장이 무력으로 제지하여 일인시위자가 상해를 입기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과를 요구하자 그런 사실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제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이러한 일인시위 탄압은 4월 7일, 상임이사가 피켓을 뜯고 안내데스크에 2005년 비정규직 일인시위자의 건물 출입금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또 한 차례 반복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사업회가 노사협의회 성과물인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노사협의회의 성과물이든 아니든 ‘노사간의 합의’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며 불가피하게 변동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상황을 사전에 공유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 최소한 문제제기가 들어왔을 때에는 사과를 하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회는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고 문제제기가 들어오니까 합의를 한 적 조차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작년 12월 당시, 우리는 ‘1년 계약’ 합의 내용을 문서로 작성할 것을 사업회 측에 요구 했었다. 그때 이를 거부하며 “왜 우리말을 못 믿냐?”며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짓던 사업회 담당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노사 간의 합의’는 소중한 것이다. 특히, 사회 소수자인 비정규직들과의 약속은 더욱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업회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니라 할지라도 ‘노사 간의 합의’는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함부로 파기하고 거짓말로 둘러대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크레인 점거 등 고된 투쟁을 통해 노사뿐만 아니라 순천시장까지 참여했던 ‘확약서’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본 바 있다. ‘약속’은 지키지 않고,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이들은 “이만하면 사업회도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고 한다. 사업회 측에서 ‘1년 계약’에 관한 대안을 내놓았으니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나 ‘1년 계약’과 관련된 사업회의 대안이 말장난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이번 문제제기는 단순히 ‘1년  계약’ 이행 부분에 있지 않다. 불안정한 물적 조건도 힘겨웠던 우리들이지만,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데에서 오는 인간적 모멸감이었다. 우리는 작년에 ’1년 계약‘을 요구하면서 ’퇴직금‘의 ’퇴‘자도 꺼낸 적이 없다. 우리들이 원했던 것은 돈 몇 푼(그것도 1년 근무를 하면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이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였기에 “10개월과 1년 계약의 차이가 퇴직금 밖에 더 있냐”는 사업회 측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서러웠다.

사업회가 비정규직들과의 합의를 이렇게 쉽게 파기하고 합의한 적조차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을 대등한 논의 주체로 보지 않고, 우리 비정규직들과의 합의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회의 대담하고 기만적인 행위가 금년도 지원자들은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비지원자들은 생활과 생계 등의 사정 때문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조건을 악용한 데에 있기에 우리는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업회의 거짓말들은 우리들의 문제의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소박하다.

그것은 바로’노사 간의 합의‘는 소중하며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합의 한 적 없다고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다!!! ≪노사과연≫


현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비정규직 문제의 현주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1년 계약’ 합의 파기와

합의 사실 부정을 중심으로



연정 | 前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근무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2호 (200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