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한미 FTA,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비정규직의 확대를 위시한 이른바 노동시장의 자유화 정책을 저지하는 문제와 더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저지라는 문제가 지금 정세의 주요 초점으로 되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정규직의 확대를 위한 법률의 입법저지투쟁이 상대적으로 노동자계급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비해서, 한미 FTA를 저지하려는 투쟁에는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자계급이나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은 물론 여러 문화․지식인단체들이 두루 결합하고 있고, 그만큼 그 투쟁의 힘은 갈수록 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저지투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일단은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한미 FTA를 저지하려는 이 운동과 투쟁에 이렇게 광범한 계급․계층이 결합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광범한 계급․계층의 이해관계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 운동과 투쟁에 그만큼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회 이데올로기가 반영되면서 그것이 자칫 역사적 진보성을 상실 혹은 망각한 운동과 투쟁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예컨대, 문제를 '한국 대(對) 미국'의 이해득실이라는 식의, 국가주의적․애국주의적 시각에서 재단하는 관점이 그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이러한 국가주의적․애국주의적 관점이 결코 예외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외적이기는커녕, 사실은 지금 광범하게 퍼져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지배적인 관점이다.

실제로, 한미 FTA의 추진이 발표된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는 논의들은, 그것의 당위성․시급성을 강변하는 정부나 자본, 보수언론의 그것들도, 그것을 반대하고 비판하면서 저지를 다짐하고 있는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진보진영'의 그것들도 모두, 한미 FTA가 초래할 한국의 경제적, 산업부문별 이해득실을 타산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고, 나아가 곁가지로 '외교적, 군사안보적' 측면을 거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미 FTA 그것이 '국익'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이 '국익'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한미 FTA를 추진하는 측도, 그것을 저지하려는 측도 기본적으로는 '국익'이라 동일한 전제 위에 서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1) 적어도 그들의 '공식적' 언설 속에 드러나는 것은 그렇다.



한미 FTA는 국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국익'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 한미 FTA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 혹은 국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정부나 독점자본 측의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반대 측의 주장은 어느 쪽이 옳은가?

객관적․결과적으로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 당장 단언할 수 없다. 지금 가늠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 독점자본 상호 간의 경쟁과 대립을 포함한 수많은 필연적․우연적 요소들이 상호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그 결과가 만들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저들의 주관적 의도와 동기에 관한 것뿐인데, 그러한 한에서 말하자면, 지금 노무현 정권이나 재벌 등 독점자본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은 명확히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저들의 주장은 진실이며, '국익에 해롭다'는 반대진영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나의 이런 주장은 한미 FTA를 저지하려는 투쟁에 나서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살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컨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이대면서 반박해 올지도 모른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인용자] 아무튼 한국 정부의 말처럼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입은 2배 이상 증가한다. 그래서 ...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가 대미 무역적자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측의 주장처럼 수출로 먹고 살기 때문에 FTA를 한다고 하더라도, 대미 무역적자국이 되기 위해 FTA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출만 알고 수입을 모른다면 덧셈만 알고 뺄셈은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2)


보자. 그는 말한다. "대미 무역적자국이 되기 위해 FTA를 할 수는 없다!"고. ―그러나, 좀 과장해서 대꾸하자면, 마찬가지로 "대미 무역흑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FTA를 저지할 수는 없다!"

그는 말한다. "수출만 알고 수입을 모른다면 덧셈만 알고 뺄셈은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러나 어찌 저들이 수출만 알고 수입은 모르겠는가?

수출만 알고 수입을 모르는 것은,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수출만이 아니라 수입도 독점자본을 살찌운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저들 정부나 독점자본이 아니라, 바로 한미 FTA를 저지하겠다고 나선 '진보적' 지식인들 아닌가?

내가 '한미 FTA는 국익을 위한 것이다'고 말할 때, 이는 곧 그것이 삼성, 현대, LG, SK 등등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독점부르주아 국가의 국익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독점부르주아지 자신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국익' 곧 '계급․계층을 망라한 범국민적 이익'이라는 식의 사고는 소위 '국민통합'을 위해서, 즉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 계급적 지배도구로서의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이 유포하는 허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 사회과학의 기초 중 기초이다.

그런데도, "한미 FTA는 국익에 도움이 되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노무현 정권이나 자본 측의 주장을 '허위․기만'이라며 규탄하고 있는 저 '진보적' 학자․교수․평론가 등의 지식인들은 지금, 독점부르주아 국가의 국익은 독점부르주아지 자신의 이익이라는 진실 대신에, '국익' 곧 '계급․계층을 망라한 범국민적 이익'이라는 환상을 좇고 있고, 그러한 허위의식을, 그러한 반동적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대중에게 선전하고 있다. 이는 분명 기회주의를 넘어 지적 범죄행위이다.

한미 FTA 저지투쟁의 과정은 동시에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인민 대중의 정치의식․계급의식이 고양되는 과정이어야지, 그들의 의식을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에 매몰시키는 과정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 FTA 문제는 독점자본과 그 국가의 문제이다

노무현 정권에 의한 한미 FTA 드라이브가 생생히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국가란 과연 지배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집행위원회이며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를 서둘러 추진하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농민이나 기타 소생산자, 중소자본가들에게 미칠 치명적 악영향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삼성이나 현대, LG, SK 등등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지키고 증대시키기 위해서 절실히 요구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이다. 저들은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에게 끼칠 악영향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지만, 그것이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진하는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정부는 또 무역자유화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내용을 담은 '무역조정지원법'을 연내에 제정해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결정"***3)하면서까지, 즉 한미 FTA가 초래할 인민 대중의 비극과 저항이 폭동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할 법률적 장치를 미리 마련하면서까지 한미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종속성'이란 그 국가, 그 정부가 한국에 기반을 둔 토착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등 제국주의 본국에 기반을 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도 복무하는 기구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의한 한미 FTA 드라이브가 생생히 보여주는 것은 또한, 따라서 어떤 부르주아 정권도 본질적으로 반노동자적․반인민적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어쩌면 한국민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제․사회정책은 한결같이 신자유주의적, 따라서 반노동자적․반인민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저들이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의 확산을 꾀하는 등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것이나, 저들이 한미 FTA 등을 추진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평택 미군기지의 확장을 강행하는 것 등은 그렇게 동일한 친독점자본, 반노동자․반민중 노선의 구체적 사안별 표현일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과잉생산과 독점자본간 경쟁이, 따라서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FTA란 WTO 체제 내에서의 상품 및 자본시장의 독점과 배제 전략에 다름 아니고, 이는 당연히 전반적인 과잉생산․과잉축적에 의해서 자극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블록(bloc)경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FTA는, 지난 1930년대의 블록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전반적․만성적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전반적 위기를 해소시키거나 경감시킬 어떤 조건이나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폐지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 따라서 그 위기를 격화시킬 뿐이다.

한미 FTA 문제는 이렇게 독점자본과 그 국가의 문제, 독점자본 및 그 국가 대(對) 노동자․인민의 문제이지, 한국 대 미국의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한미 FTA는 한국의 독점자본의 이해와 미국의 독점자본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허구적인 국익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미 FTA 저지운동의 작금의 국가주의적․애국주의적 선전은 지양되어야 하고, 한미 FTA와 국가의 계급성을, 그리고 현시기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적 성격을 명확히 폭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저지투쟁은 그것을 독점자본의 지배와 착취에 반대하는, 미국의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사과연≫



정세


한미 FTA,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채만수 | 소장





*) 자타가 '맑스주의자'임을 공인하는 학자들조차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저명한 정성진 교수 역시 이렇게 말한다. "이번 '국정브리핑' 칼럼(2006년 3월 27일치)에서 신경철 씨는 한미FTA는 협상만 잘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 그러나 이와 같은 신경철 씨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른 기만적 주장이다." (정성진, "협상만 잘하면 뭐가 잘된다는 말인가", <민중언론 참세상> 2006. 4. 4.)


**) 이해영,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미 FTA, 그 새파란 거짓말], 한미FTA저지 교수학술단체공대위․문화연대, 2006. 3., pp. 15-16.


***) 노주희 기자, "'노정권의 한미FTA 올인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PRESSian> 2006. 2. 22.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2호 (200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