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현실과 과제

올해 들어 프랑스의 거리는 바리케이트와 화염병과 돌로 무장한 시대위대들로 넘쳐나고 있다. 80여개 대학의 절반 이상이 마비되었고, 지난 3월 중순 이후 거리에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참가한 대규모 투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 투쟁은 프랑스 보수당 정부가 내놓은 “최초고용계약법”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촉발되었다. 최초고용계약법은 26세 미만의 노동자들은 고용 후 처음 2년간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정리해고를 맘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자본가 정권은 이 법을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 해소 대책으로 내놓았다. 그야말로 청년고용을 빌미로 한 저임금 고수익화 전략이자, 청년비정규직 활성화 방안이다.

이 법안이 예고되자 학생과 노동자들은 법안 철회를 외치면서 강력한 투쟁에 들어갔다. 그리고 투쟁이 전국적으로 전체 계급으로 확대되자, 우파들은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이 투쟁을 정리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번 투쟁은 단순히 이 정리해고 법안 하나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미 90년대 말 계속되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시간단축이라는 노동자계급과의 대타협으로 무마해보고자 했지만, 95년 공공부문과 실업노동자들의 대규모 겨울총파업 투쟁에 부딪친 이후로 계속 갈등을 빚어왔다. 02년 보수당이 집권하자마자, 곧바로 퇴직연금을 개악하는 등 노동복지를 축소시키고, 이미 2년 전에도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노동법을 개악했다. 게다가 계속되는 공공부문 사유화와 구조조정으로 05년에도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10년만에 대규모 총파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작년 10월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방화투쟁과 강경진압 사태 역시 우연이 아니다. 청년실업자들의 폭동은 프랑스에서도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위기)의 자본주의적 모순의 폭발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서 미국에서도 이민법,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법제도 개악을 둘러싸고 사회적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쟁점 1: 이제는 ‘생산을 멈추지 않는 파업’으로?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계급갈등이 폭발하고 남한에서도 오랜만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지난 3월 철도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저지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외치면서 임단투 파업에 돌입했다. 물론 개량주의 지도부는 4일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복귀선언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본조의 파업 지침 없이도 온갖 형태로 현장파업을 진행하면서 현장조직력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KTX승무원 동지들은 정규직화를 외치면서 본조의 파업철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50명이 단호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현장투쟁에 밀려 지도부가 4월 재파업을 선언했지만, 며칠만에 개량주의 지도부는 구조조정에 대한 애매한 수용합의서를 던지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도 없이, 노사합의를 해버렸다.

이렇게 남한에서도 작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에 이어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실제로 자본에 대한 타격을 가하자, 최근 파업예방 대책으로 ‘가상파업’이 검토되고 있다.

가상파업은 정상적으로 근무하면서 노사합의 될 때까지 양측 모두 임금과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99년 이탈리아 항공사의 가상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종사와 승무원이 단협을 위해 4시간 동안 가상파업을 했는데, 실제 파업과 달리 모두 근무를 하고 대신 항공요금 수익은 어려운 이웃돕기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서도 05년 유아원 교사들이 임금인상을 위한 가상파업을 벌였다.

이처럼 가상파업은 생산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파업으로, 노사 모두 일하되 타결까지의 생산에 대한 혜택을 포기하고 적립했다고 노사 합의 뒤에 회사 계좌로 편입되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파업은 이미 파업이 아니다. 파업을 노동자들이 하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노무제공과 생산을 멈춤으로써 자본의 이윤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여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상파업은 부분적으로 노자가 임금과 이윤을 포기해야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부가 협조적, 개량주의적일 경우 이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수익이 미미한 경우 사회기부활동을 통해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도 얻게 된다. 즉 자본에 대한 타격은 미미하고 노자간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본질은 숨어버린다.

또한 가상파업은 노동자들 간의 연대투쟁도 어렵게 한다. 생산을 멈추는 파업은 그것이 연대파업의 효과를 발휘하여 자본가들을 연쇄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철도 노동자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하루이틀만에 철도자본 뿐만 아니라, 물류화물이동과 관련된 사적자본에게까지도 타격을 가해 온 나라 자본가들이 난리가 났던 것을 기억해보면 실제 파업의 효과를 알 수 있다. 이에 비해서 가상파업은 개별 노조주의를 더 강화시키게 된다. 물론 국가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국가 재원 마련 혹은 사회적 환원의 효과도 있어서 나름대로 가상파업의 활용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한국노총의 상층 관료들은 이 가상파업이 나름대로 노동귀족론 공격을 피해갈 수 있다는 식으로 어느정도 호응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 상층 관료들은 직접적인 가상파업보다는 오히려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대화로 원활하게 풀어가면 되지 않느냐는 개량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가상파업이 높게 평가되어 확산될 경우,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요구와 투쟁은 이 가상파업에 맞춰져 가상의 요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이중착취, 혹은 초저임금, 그리고 원청의 사용자성이 부정되거나 그나마 특수고용노동자들처럼 노동자성 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단호한 투쟁을 통해서만 요구가 관철되거나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생산을 멈추지 않는 파업이 확대된다면 정규직 자신의 이해요구 관철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마저도 ‘이기주의적인 투쟁’으로 매도당하고 연대투쟁의 조건조차도 더 열악해질 것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 겨우겨우 연기시킨 비정규직 확대 법안 개악은 또다시 4월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3,4월 연이어서 화물연대, 덤프연대와 대우창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민주노총은 국회 일정에 따라서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연기시키기도 하고 철회하기도 했다. 화물연대가 03년 전국적인 파업투쟁을 벌이자 이에 놀란 자본과 정권은 긴급하게 수습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700여대의 화물트럭들이 삼성자본을 점거하자,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정권과 자본은 이들의 요구를 재빨리 수용하면서 투쟁을 끊었다.

철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개량주의 지도부에 대한 포섭으로 파업을 철회시켰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에는 이제 다시 오랫동안 투쟁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남았다. 생산을 멈추는 파업은 어느 정도 무마를 시켰고, 이제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하이닉스매그너칩 사내하청노동자들, 현대하이스코 하청노동자들, 대우창원 하청노동자들의 투쟁과 중소영세사업장과 한국노총 소속의 쫓겨난 노동자들만 거리에 남겨졌다.



쟁점 2: 비정규직 보호와 양극화 해결을 위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리주의와 양보교섭?

몇 년 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 통계상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가 설정하는 ‘비상용직’이라는 개념은 고용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임시직(고용계약이 1개월- 1년 미만인 노동자)과 일용직(1개월 미만 계약직 노동자)만을 포함한다. 즉 1년, 2년 단위의 직접고용 혹은 용역업체 계약직 노동자들과 사내하청업체의 ‘정규직’ 노동자들, 즉 이중계약 이중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설정하는 상용직 노동자들의 상당수도 비정규직인 것을 포함하면 남한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1500만 임금노동자들 중 적어도 1300만명은 될 것이라 본다. (정부나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들은 56% 정도를 비정규직이라고 잡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삼성 계열사를 제외한 500인 이상 사업장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가릴 것 없이 적어도 노동조합은 조직되어 있을 것이고 거기에 삼성계열사 종업원 규모 16만명을 더해도 다 합쳐도 200만명은 안될 것이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정규직이라 보더라도 비정규직은 최소 1300만명은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악화에 더 극심하게 시달리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도는 덜하지만 언제 비정규직과 실업자로 퇴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러한 고용 양극화는 곧 임금 양극화를 의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는 물론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체 노동자 간 임금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대-중소기업 근로자 임금비율은 2000년 64.9%였으나 2001년 62.8%, 2002년 61.6%, 2003년 60.1%, 2004년 59.8%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정책과제’) 특히 임금의 중간수준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확대되고 있다. (저임금근로자 비율은 2003년 27.5%에서 2004년 26.3%로 개선되는 듯 했으나 지난해 26.8%로 다시 높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

정권과 자본은 이처럼 노동자 간 양극화를 큰 문제로 이슈화시키는 한편 이를 통해서 오히려 노자간의 양극화는 은폐시키려고 한다. (노자간의 양극화에 대해서는 ‘노동자정치신문’ 창간12호, 2006.1월호를 참조할 것.)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파업투쟁을 핵심으로 들면서,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중간수준의 일자리 창출과 숙련노동력을 위한 교육훈련 정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부 자본이 제시하는 양극화해소 대책은 현재 가장 큰 쟁점인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확대 법개악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비정규직을 확대 양성화시켜서 오히려 합법적으로 이중착취, 고도의 착취를 하겠다는 제도 정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장선에서 해고 규제 완화라는 노사관계로드맵과 함께, 중고령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시킬 수 있는 평생학습과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양보교섭(정년보장을 전제한 임금삭감- 임금피크제)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양보교섭과 노자협조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주체 조직화 및 연대의 관점 없이 일방적으로 대신해서 불법파견을 조사하고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부분)정규직화나 직접고용을 요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쌍용자동차 집행부와 같이 진성도급화를 요구하는 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노동부는 불법파견의 기준들을 사전에 도급업체 사장들에게 내려보내 법기준을 피해가게 하고, 또한 불파 판정시 완전한 ‘합법적’ 도급화―진성도급―를 위해 시정할 사항들을 지침으로 내려 불법파견 대응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의 정규직 대리주의로 그칠 경우 비정규직 투쟁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살펴보자.

이미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외주화와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에 관한 투쟁은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 이전부터 이미 몇 년간 현장투쟁단이라는 투쟁체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05년 노동조합 임단투를 전개했다. 소수의 선도투쟁을 넘어서 대중적인 현장의 파업투쟁으로 생산을 멈추었고, 정규직 현장노동자들의 분노까지 함께 묶어 위력적으로 현장파업을 성사시켰다. 정규직노조가 이미 임투를 정리했고 현장파업지침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연대와 함께 현장의 위력적인 대중파업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기아 자본은 긴장하고 곧바로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고소고발과 폭력을 자행했다.

기아 정규직 노조 내에서도 비정규직 투쟁을 둘러싸고 입장이 분화되었다. 노자협조주의 세력들은 원청 자본과 정규직 노조의 대리교섭 및 대폭적인 양보안을 갖고 비정규직 지도부와 현장을 향해 조속한 양보 타결을 강요했다. 또한 원하청 연대회의의 3대원칙(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한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을 들먹이면서 지금 타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연대할 수 없다는 협박도 일삼았다. (기아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는 ‘노동자정치신문’ 창간11호를 참조할 것.) 심지어 기아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 조차 제대로 조직하지 않아 이 조차도 총원대비 절반도 안 되어 부결되었다.

한편 정규직 노조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 주체들의 조직화가 미진할 경우 당사자 주체의 투쟁 없는 불법파견 판정 투쟁이 갖는 한계도 이미 드러났다. 대우차 노조 창원지부 전 집행부가 헌신적으로 불파 투쟁을 하여 대부분 불파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청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 주체로 조직되는 순간 곧바로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정규직 집행부를 노사협조주의 세력들로 갈아치워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가로막기도 했다. 그 후 최근에는 대우창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투쟁에 대해서 정규직노조의 요구도 맞지 않다면서 지역본부를 압박하여 지역집중집회를 취소시키는가 하면 (그 후 전국적인 비판으로 결국 지역본부는 연대투쟁을 하고 있다), 정규직 창원지부와 본조는 아예 대우차 공장을 뒤흔들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한다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접으라고 노조 소식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협박하는 반동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우 정원투 소식지 및 사내하청대표자회의 선전물 등을 참조.)

게다가 현대자동차의 경우 원하청 연대를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강조하던 이상욱 집행부는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을 대신한 교섭 운운하면서 결국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구조조정과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05년 여름 비정규투쟁이 격렬한 시기에 류기혁 동지가 자결했을 때에도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류기혁 열사는 열사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현대차 정규직 민투위 집행부 조차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연대하지 않았다.

물론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독자적 대중파업투쟁은 물론이고 열사투쟁 조차도 불법파견 투쟁과 연계시키지 못한 점 등의 한계는 별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정규직의 형식적 연대는 왜 필연적으로 양보교섭과 사회적 합의주의로 연결되는가?

작년 초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장기간의 투쟁 끝에 노동자들은 다 조합을 탈퇴하고 결국 2명의 간부가 남아서 지역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연대 결의 하에 그룹 본사를 점거하고 지역 동지들과 함께 단식점거투쟁을 단행했다. 그런데 상급단체인 화섬연맹과 화섬산업노조 지도부가 보인 태도는 결사 연대투쟁에 돌입한 것에 긴장하면서 자본에게서 재빠르게 대표성을 인정받아 물밑교섭으로 개인택시라는 위로금으로 투쟁과 노조 조직을 정리해버리는 반동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울산플랜트 노동자 투쟁에서도, 그리고 현대하이스코 투쟁에서도 금속노조와 지역본부가 애매한 재취업 확약서로 투쟁을 한방에 정리하는 등의 반동적인 태도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정규직 혹은 상급단체 조직의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이 정부 자본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어떻게 백기투항 하는지가 폭로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투쟁 당사자들은 현장에서 강력한 반발을 했지만 현장의 일부 개량주의자들과 상급단체의 협박으로 눈물을 머금고 분노를 삭이고 있다. 그리고 일부 정규직 활동가들이 상층중심의 양보교섭과 개량주의적 해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문제제기 하면서 관료주의적 산별노조들과 현장활동가들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강력한 동맹파업, 연대투쟁으로 화답한 경우도 없지 않다. 충북지역본부의 노동자들은 지역에서 꾸준한 학습토론과 연대투쟁으로 이미 우진교통 노동자 투쟁에 이어 하이닉스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현장 동맹파업, 꾸준한 폭력투쟁으로 자본을 타격하는데 앞장서왔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들과의 전투적인 연대투쟁의 기풍은 결정적으로 민주노총의 이수호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려 할 때 간부들뿐만 아니라 각 현장에서의 조합원 연서명과 선전활동을 조직하면서까지 사회적 교섭 반대투쟁을 대중적으로 조직했다. 게다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는 단상점거를 하면서 강력하게 저지하는 등 계급투쟁의 원칙과 모범을 보여주었다.



쟁점 3: 합법적인 비정규직과 불법적인 비정규직, 그리고 애매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직접 고용된 임시직(일용직 포함), 계약직과 간접 고용된 파견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로 드러나기도 하며, 또한 위임(용역)이나 도급에 의한 사업자간 계약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사내하청 내의 재도급, 3차, 4차 하청노동자로 계속 중간착취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가장 큰 과제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노동3권 쟁취이다. 물론 이미 비정규직이 급증하기 시작한 90년대 말부터 계속 ‘비정규직 철폐’ 혹은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슬로건으로 투쟁이 조직화되었지만, 최근에는 유력한 투쟁전술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경우 불법파견 대응투쟁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직접고용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동일적용(대우) 및 정규직화 투쟁을 전술로 채택하였다.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경우 철도 새마을호 승무원 투쟁이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전원 직접 정규직화 쟁취를 투쟁 목표로 걸었고, 그 결과는 특채 형식을 통한 단계적 정규직화였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투쟁 이후의 현장 재조직화, 투쟁 주체 발굴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계를 보였다.

한편 불파 투쟁의 경우 작년 한해 투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전개되었지만, 진성도급화라는 자본과 정권의 대책에 불파 자체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특히 주체가 조직되어 투쟁을 하는 과정과 성과를 재하청노동자들과 함께 적용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즉 불파 투쟁을 계기로 하여 현장 주체들을 적극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현장투쟁을 벌여내면서 현장주도권을 갖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여 오히려 불파투쟁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투쟁 조직화에 매진해야 한다.


그에 반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다 포함해서 아예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노동자성 인정여부가 가장 큰 과제로 존재한다. 정부나 자본가들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중간에 존재하는 특수한 계층’이라고 표현하면서 완강하게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유사근로자’ 혹은 ‘준근로자’, ‘독립도급근로자’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나 금융상품 외판원, 학습지교사나 레미콘기사 등 100만여명의 다양한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은 계약형태가 사업자 간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3권은 물론이고 근기법조차 적용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유사근로자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노동조합은 부분적으로 인정받아도 결국 파업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임금 역시 성과급 형태이므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실제 파업을 하는 경우는 직접 무임금까지를 감수하면서 파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파업을 전개한 화물연대, 레미콘, 덤프연대의 경우 파업은 직접 본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물론 자본가들에게도 이윤의 타격을 미치기 때문에 그러한 독자 파업이 전개될 경우 자본가들은 시급하게 파업을 정리하려 한다.

특히 03년 화물연대 파업을 시작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전국적이고 독자적인 투쟁이 전개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부각되었다. 아직도 노사정위 등을 통해서 수차례 번복하면서 근기법 적용도 배제하자는 논의 속에 있다.

화물연대, 덤프연대와 같이 실제 파업투쟁을 위력적으로 전개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투쟁하는 경우 파업이 자본의 이윤에 실제 타격을 가하기 때문에 이러한 각오와 투쟁 결의로 조직되는 노동조합의 투쟁력은 강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 과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자본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파업을 전개할 때만이 가능하다. 단 실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임금은 대 고객관리를 경유한 개수임금제(성과급) 형태를 띠기 때문에 동시에 기본임금 쟁취를 해가는 과제도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쟁점4: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지속에 따른 생존권 보장 문제

― 계약해지 탄압을 이겨내는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나 가장 바닥까지 내려와서 참다참다 결국 고용-생존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닥쳐서야 비로소 조직된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해지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언제나 가장 극렬한 투쟁이 된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부의 선도투쟁이 아니라, 대중투쟁과 연계되어 확대되는 순간, 자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제대로된 파업이 된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원청자본의 이윤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하청 자본의 동시 공격에 맞선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되어야만 진정한 투쟁이 된다.

실제로 정규직의 구조조정 형태들이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직접적인 정리해고보다는 모듈화 형태의 외주화나 분사 도급화, 이주노동자나 임시직 채용 등으로 구조조정 과정과 연계되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은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으로 하나의 투쟁으로 인식되어야만 제대로 성사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약자를 도와주는 투쟁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야 공동투쟁은 가능하다. 그것은 정치투쟁, 법제도 개선투쟁과 개악저지투쟁을 현장투쟁과 결합시키는 문제에서도 동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투쟁이 제대로 되어도,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단련과 독자적 파업이 성사되어도 가장 큰 자본의 칼날은 바로 계약해지이다. 직접적인 정리해고 협박 만큼 동일한 칼날이 바로 업체 계약해지에 따른 자동해고다.

계약해지가 통보되는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동력이 일단 급격하게 약화된다. 대우차 비정규직 노조도 그러했고, 기아차도 그러했다. 다른 비정규직들도 동일하다. 3-6개월 정도는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투쟁에 합류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투쟁을 계속하는 노동자들은 강력한 투쟁결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계 위협에 시달린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가 되어도 노동조합의 해고자 기금을 생계비로 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생계를 유지하면서 해고자 복직투쟁과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산별노조가 되면서 현장 지회들은 그나마 해고자 생계기금도 고갈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투쟁주체들은 그러한 생계보장을 기대하기 힘들고 오히려 자생적으로 생계투쟁과 복직투쟁을 병행해야만 한다. 따라서 현 시기 산별노조 어쩌구 하면서 산별노조가 되면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도 조직화되어 대표성도 인정받고 현장의 위기나 전임자 금지 등의 악법들도 비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산별투쟁이 아닌 산별교섭만 강조하는 것은 완전한 사회적 합의주의 노조 발상이다. 오히려 비정규직까지 대표하는 투쟁하는 산별노조가 되려면 현장파업권 보장뿐만 아니라 투쟁으로 해고되고 계약해지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에 대한 대책과 동맹파업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공동투쟁이 아닐까?



비정규직 투쟁 과제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 투쟁이 거의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방식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그것은 투쟁이 극한에 달하면 상급단체와 함께 민주노동당이 나타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 한번 하고, 정부(관변 해당 지자체 등) 한번 면담하거나 혹은 의견서를 전달하는 청원식 해결발상이다. 특히 그걸로도 안되면 국회 환노위 등으로 가져가서 선처를 구하거나, 모아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발의안을 제출한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이 지금껏 성장한 동력과 그나마 단협과 법제도 개선이 되어 왔다면 그 성과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과 목숨을 걸었던 열사투쟁들의 피와 땀 속에서 쟁취되었던 것이다. 결코 자본과 정권이 노동자들의 입법청원에 답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투쟁에 밀리고 이를 수습하고자 하는 양보안으로써 개선이 이뤄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투쟁을 전국적으로 결집시키고 더 확대시켜 투쟁의 힘으로 법제도들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회 앞에서 압박하고 국회의원 진출을 통해 입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환상을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심어주고 있다.

비정규직 법 개악에 맞선 투쟁을 작년 상반기 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 국면으로 전환시키면서 의회주의로 몰아넣었던 것을 기억해보자. 비정규직 법 개악 저지국면은 아니라면서 권리보장 입법화를 강조했지만, 노동운동의 역사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면서 노동조건과 단협 개선, 법제도 개선 투쟁을 쟁취해왔다는 점을 되새겨 보자.

민주노동당과 의회는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투쟁에서 유일하고 강력한 투쟁전술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의회를 활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부르주아 정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의 계급성을 폭로하고 국가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자본주의체제 내에서의 개량만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제3의 길이나 사민주의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수정 보완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한 수정주의 발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이라는 점이 이미 서구 역사 속에서 현실로 밝혀지고 있다.


2005년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연대회의(전비연)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동안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을 강조하면서도 독자적인 힘과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정규직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 독자적인 조직력과 파업투쟁을 전제한 공동투쟁의 원칙과 현실적 과제를 확인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전비연 조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비록 그동안 연대회의체로서 서로 정보교환과 연대 교류에 머무르기도 했고, 상징적인 점거농성 등으로 민주노총의 양보교섭에 항의하는 태도도 보여주었지만, 이제 실제적인 독자적 투쟁의 힘을 기반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정규직에 공동투쟁을 촉구하고 전국적인 노동운동의 문제에 개입하는 핵심으로 서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운동 내에도 관료주의화와 사회적 교섭에 기대는 우경화의 태도들이 똑같이 존재하는만큼 투쟁과제와 함께 근본적인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입장에선 정치적 과제 또한 막중하다.

특히 정규직이 공투라는 명분하의 비정규직 투쟁을 통제하려는 것에 대해서 공투의 관점과 독자적 조직화, 파업의 확대 및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 추진에 대한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항상 사회적 교섭은 사회적 약자라는 비정규직 보호를 명분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규직 대공장 노동조합의 양보가 곧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여 자신의 현장에서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실제로 얼마나 공세적으로 전개해 가느냐와 연결된 문제이다.

결국 현 시기에는 파견법 철폐와 변형제 철폐, 정리해고제 철폐투쟁을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새로운 공동투쟁의 원칙도 정립해야 한다. 정규직과 투쟁전술 및 요구안이 합의되지 않을 시 투쟁 시기 등을 포함한 전술에 대해서 정규직이 합의가 되지 않아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세적 투쟁에 대해서는 엄호하고 지지하는 연대투쟁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특히 계약해지 시 정규직도 즉각 동맹파업에 돌입한다는 원칙이 적어도 공동투쟁의 핵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노사과연≫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현실과 과제



허은영 | 회원, 전국노동자정치협회회원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2호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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