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마당] 노동자의 비극은 소유계급의 부의 원천

밖에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는 시간이네요. 비는 어떤 사람에게는 막걸리 한잔과 노래 한소절을 연상케하는 낭만적인 모습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물에 떠내려 버리는 수마와 같은 모습입니다.

얼마전 그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정리해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도 3개월이 지나갑니다. 아직은 잘 다니고(ㅎㅎㅎ) 있지만 정리해고 당한 뒤로, 이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중소․영세 기업 미조직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 더 나아가 장애인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가! 이런 생각이 새삼스럽게 머리 속를 맴돌고 있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이유로, 회사이전에 따른 비용부담의 증가로 인하여 더 이상 고용이 어려워 부득히 이런 결정했다고 사장은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사장은 이런말을 하곤 했었다. “가족처럼 잘 지내자고”, 또한 자기를 가장에 비유하며 월급이 밀려도 참아 달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노동자에게는 생존수단을 빼앗는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것을 가장이라는 자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할 수 있을까? 가족처럼 잘지내자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허울좋은 헛소리이며 노동자를 속이는 기만에 찬 소리이다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난 취업한 운 좋은(?) 장애인 노동자이다.

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지난해 7월~12월 전국 4,295개 사업체와 1만5,546명 장애인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도 장애인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상시노동자 1인 이상 사업체 모두 295만8천개 중에서 장애인고용 사업체는 모두 6만4천개로 추정되며, 전체 사업체 상시노동자 934만5천명 중 장애인노동자는 12만4천명, 장애인고용률은 1.33%로 나타났다. 지역별 장애인고용률은 제주(2.68%), 강원(2.59%), 충북(2.27%), 대전(2.23%) 등의 순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 2%를 넘겼으나, 서울(0.9%)이 가장 낮은데다 유일하게 1% 미만의 고용률을 보였다. 이처럼 이땅에서 장애인으로 노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일인가?

또 사업체 규모별로 300인 이상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1.09%로 의무고용율 2%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외에 4인 이하 사업체가 1.59%, 5~9인 1.10%, 10~49인 1.37%, 50~99인 1.49%, 100~299인 1.42%, 50인 이하 1.22%로 나타나 대부분의 장애인 노동자의 경우 중소영세기업에서 미조직 노동자로 열악하게 노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도 노동조합이 없고 인원수가 적은 사업장에 다녀서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나온 것이 가슴 한 편에 작은 상처로 되어 남아 있다. 어쩌면 이 아픔이 나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땅의 미조직 중소영세기업 사업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느끼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고 조직노동자를 질투하거나 시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조직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조직화하기가 힘든 노동자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써주었으면 한다. 단위사업장을 넘어 전체 노동자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혜안을 가졌으며 한다. 또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이땅의 변혁을 함께 이루어 내는 변혁의 주체로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파견근로는 노동자를 이중착취하는 것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인력파견을 하였다. 즉 원청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뽑아서 파견하는 하청 기업으로서, 원청으로부터 수수료와 매달 관리비로 일부를 이윤으로 가져간다. 원청에서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면 100원의 임금이 필요하다면, 파견근로인 경우 동일한 노동자를 50원으로 고용할 수 있으며, 여기서 다시 하청업체가 10원을 가져간다. 즉 100원으로 돌아와야 할 임금이 40원만 들어오는 이중의 노동착취를 당하는 것이다.

혹자는 파견업체가 취업할 일자리를 대신 찾아 주었기 때문에 그 수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원청업체는 이윤을 확대하여야 하므로 파견근로는 이중의 착취가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하여 더 많은 노동자가 고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 말이 정당성을 찾을 수도 있게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100이상 받을 수 있는데 40이하로 받는다면 분명 엄청난 착취인 셈이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 분명 세상을 보는 입장도 사람에 따라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계급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쉽게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부터 분명 해결해야 할 것들이라고 믿는다.

엥겔스의 고전에서 한 답을 찾아본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우리 노동자들을 밤마다 몰아넣고 있는 전염병의 발원지인 가장 악명 높은 동굴과 굴들, 이것들은 제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 이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곳을 최초의 어느 지역에서 산출한 이러한 경제적 필연성은 두 번째 곳에서도 그런 곳을 산출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현존하는 한, 그러한, 주택문제나 노동자의 운명과 관계되는 다른 어떤 사회 문제라도 개별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반대로 해결은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폐지, 노동자 계급 자신에 의한 모든 생활 수단 및 노동 수단의 전유에 있는 것이다.”1) <노사과연>



노동자의 비극은 소유계급의 부의 원천



이원진 ∣ 회원



1) 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 4권, 박종철출판사. p.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