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노동자 인권문제를 통해 본 한국의 민주주의

1. 들어가는 말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나와서 어디로 가지?”


서사극의 창시자이자 풍자시의 대가인 독일의 좌파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시 「바이마르 헌법 제2조」의 한 대목이다. 1987년에 개정된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2항도 이렇게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반쪽의 분단국가로 출발한, 그러기에 퍽이나 불우했던 대한민국 민중에게 그래도 자부심을 느낄만한 헌정사의 쾌거는 있었다.

바로 4.19 혁명과 6.10 항쟁 이후에 만들어진 헌법이 그것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가기위한 완전한 의미의 혁명헌법이 아니라 기성 권력과의 타협의 산물로써 인권의 기준에서 봤을 때 빈약하기 그지없지만, 당시 수천, 수만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헌법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척도는 그럴싸한 법조문에서 찾기 보다는 헌법이 구현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6.10 항쟁 이후 “민주화 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몇 차례 지켜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최소한의 민주주의 개혁과제(서구 부르조아 민주주의 국가 수준)조차도 달성하지 못한 허탈감에 빠져 있고, 그나마 쟁취해 낸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시민적 권리’조차 언제 회수 당할지 모를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의 여파로 새롭게 부활한 한국의 노동운동이 오랜 세월 피터지게 투쟁해서 쟁취한 노동기본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의 십자포화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다.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당연히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한 결과이다. 신자유주의는 대다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고용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고,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이제 벼랑 끝에 내몰려 더 이상 내 줄게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3.07%)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면서 반격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연대가 집중되지 않는 상황에서 산발적인 투쟁으로는 지배계급이 쌓아놓은 높디높은 성벽을 무너뜨리기란 좀체 쉽지가 않다.

경제위기가 도래할수록 국가 권력은 그 본색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하는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법 앞의 평등”“양심에 따라서”라는 표현을 자주 써가며 고상한 척하는 사법부조차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진 채 맨 얼굴을 드러낸다. “민주화 세력”의 적자임을 자부해 온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 구속된 노동자 수가 오히려 더 늘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다.1)한국에서 노동조합은 여전히 “불순한 세력”로 매도되고 있고, 노동운동가로 활동 하려면 해고와 구속을 각오해야만 한다.




2. 신자유주의 “고용유연화” 정책에 따른 노동기본권의 추락


송파와 광진구를 가로지르는 올림픽 대교 위 아찔하게 올려다 보이는 75M 주탑 위에서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3명의 건설노동자가 한 달 넘게 고공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너무나 기본적이게도 건설노동자의 노동3권을 완전하게 보장하고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는 것이다.2) 검찰은 2003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지역건설노조가 현장에서 건설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정당하게 지급받은 노조 전임비에 대해 ‘폭처법’상 “공동 공갈” 혐의를 적용해서 잇달아 구속하고 있다. 검찰은 범죄와 수사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짜 맞추는 ‘표적수사’를 자행하고 있다. 심지어 건설업체의 노무 담당자가 검찰에게 “협박당한 사실이 없다”고 여러 차례 진술했지만 검찰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붙잡아 놓고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검찰의 ‘표적수사’로 인해 민주노총 이태영 부위원장과 8명의 지역 건설노조 전·현직 간부들이 구속되었고 경기건설노조 활동가 10여명이 수배상태에 놓여 있다.3)

 오랫동안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던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조직하면서 조금씩 지옥 같은 노동현장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 이제 검찰이 나서서 그 싹을 잘라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형식상으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지만 건설현장에는 뿌리 깊은 다단계 하청구조가 자리잡혀있고, 판례나 노동부의 유권해석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의 “사용자성”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원청과의 단체교섭, 현장을 점거하는 파업이 모두 불법으로 몰려 탄압받고 있으므로 법에 보장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실효성이 없어지고 만다.

노무현 정권과 법원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형법상으로는 ‘업무방해죄’, 민사상으로는 ‘손해배상ㆍ가압류조치’로 몰아 끝장내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올 들어 구속한 노동자 216명(9월 30일 현재/구속노동자후원회 집계)가운데 187명(87%)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적용된 혐의 별로 보면 “업무방해”가 129명(60%)으로 제일 많았고, “폭력”이 93명(43%)으로 두 번째를 차지한다. (구속노동자들은 대부분 여러 혐의가 충첩되어 있으므로 수치는 중복됨.)

전체 노동자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 기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고, 노조의 무기인 파업은 형법상 “업무방해” “폭력”혐의를 비껴갈 수 없다. (건설 일용직 노조는 여기에 “공갈ㆍ협박”이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청기업이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각종 민사상 ‘가처분 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신종 노조 탄압수단으로 등장한 민사상 ‘손배가압류’는 노조의 재정과 노조 활동가들의 가정까지 파탄내면서 활동가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4) 이러한 상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규직 노조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기존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를 제약하던 “직권 중재”는 없어지지 않고 더욱 개악되고 있으며 검찰과 법원은 파업권의 행사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규정과 절차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국가가 관리해 오던 공공부문을 과감하게 사유화하고, 사회복지도 축소하고, 기업투자를 제한하던 각종 독점금지조치들을 폐기하거나 개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전투적인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독점적 요소이므로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시장영역, 정치영역에서 자본의 독점구조도 깨어져야 마땅한데 IMF 시기를 거치면서 30대 재벌그룹의 서열이나 면면은 달라졌지만 더욱 비대해졌고 족벌경영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경-법-언 유착은 과거보다 훨씬 더 노골화 되어 나라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시키고 노동3권의 팔·다리를 잘라버리려는 그들의 시도는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 공급의 주체인 노동자들의 공급통제를 좌절시킴으로써 노동시장에서 완전한 “계약자유의 원칙”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모두가 노예나 진배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3. 사전형벌로써 남발되고 있는 구속제도


형사절차에서 인신구속은 예외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도로 허용되는 게 일반적인 원칙이다. 즉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있어 원활한 재판절차 진행이 어려운 경우를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2001년 11월 대법원이 법관, 검사, 변호사를 상대로 실시한 형사재판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61.6%가 구속사유의 존재여부를 판단할 때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외에 “실형을 선고받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를 구속사유로 보고 있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사안의 중대성을 구속의 중요한 근거로 삼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은 아예 노골적으로 자유형이 규정된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증거인멸 및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추정하거나 “유죄의 혐의가 강력하고 죄질이 중하면 구속이고 아니면 불구속”이라고 하면서 구속여부를 양형기준과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5)

2002년도 [사법연]』에서 추출한 자료에 따르면 피의자가 구속된 이후 구속적부심, 검찰의 구속취소, 보석, 집행유예, 선고유예, 벌금 등으로 제1심 선고 이전에 석방되는 경우가 전체의 64.3%나 된다. 이것은 검찰이나 법원이 굳이 구속할 이유가 없는 가벼운 범죄 혐의자에게까지 구속을 남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6)

이로 인해 한해 평균 6만여 명에 이르는 피의자가 헌법에 보장된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방어권을 제약 당한 상태에서 지옥 같은 구치소(교도소) 생활을 짧게는 한달, 길게는 6개월까지 살아야 한다. (완전 생징역이다.) 그들 대부분이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검찰이 구속을 남발하는 이유는 우선 피의자의 방어권을 무력화시키고 수사단계에서 쉽게 자백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공판절차가 수사기관이 작성한 각종 조서의 임의성과 신빙성, 성립의 진정만을 따지는 ‘조서 재판’으로 변질된 데도 원인이 있다. 이런 구조 아래서 구속영장실질심사는 범죄유무를 따지는 실체재판이 되고 있고 본 재판은, 단지 수사절차에서 피고인이 진술한 자백의 임의성을 확인하고 구속의 형벌효과를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속이 “사전형벌”로써 남발되는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구속노동자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거나, 정부나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사건 혐의자들을 일단 구속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믿는 법조권력 전반의 공모된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7) 검·경은 최근 비정규직, 장투 사업장 노동자들의 결사적인 고공농성 투쟁이 이어지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무조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있다. 경찰 또한 거리시위나 농성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위해 악랄한 ‘싹쓸이 연행’을 잇달아 자행하고 있는데, 이는 영장청구절차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긴급체포를 남발하는 경우로써 사실상 ‘임의동행’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이나 긴급체포 모두 인간이 가진 천부적 권리인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게 되고, 노동자, 서민들의 경우 이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생계가 파탄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례성, 최소성, 합리성’이라는 형사절차의 기본원칙을 철저히 지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정치인, 경제인들은 대단히 신중하게, 노동자, 서민들은 그야말로 “검사, 판사 맘대로” 잡아들인다. 

   


4. 노동자, 민중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사이비 민주주의 체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7월 13일부터 9일간 포스코 본사 농성투쟁으로 구속된 포항지역건설노조 조합원과 민주노총 간부 등 58명 전원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 이지경 위원장에 대해 3년 6개월을 비롯해서 각 분회 초급간부마저 실형 1년 6개월이라는 중형, 나머지 31명에게는 3년이라는 집행유예를 내렸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은 지난 82일 동안 진행된 파업과정에서 포스코와 국가권력이 저지른 온갖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면죄부를 주고, “마녀사냥”으로 끌려 온 포항건설노조를 단두대에 올려놓고 ‘계급사법’의 더러운 칼날로 내리친 ‘사법살인’이었다. 올해 포항건설노조에게 가해지고 있는 탄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압축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포스코 본사에 들어간 것은 명백한 불법 폭력행위"라면서 "범행 동기를 참작하더라도 공무방해와 폭행, 교통방해, 상해 등 죄질이 무거워 엄벌에 처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건설노조 파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고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포스코가 파업이후 통근버스를 동원하여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한 사실(포스코 점거농성의 직접적 원인)을 뚜렷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포스코가 포항건설노조의 파업이 있기 전부터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노조까지 와해시키기 위해 정·관계·지역유지·언론 등 유력인사들을 만나 사실상 불법을 공모한 증거가 명백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건설 노동자들의 요구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라는 것이었고, 파업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평균연령 50대의 일용직 노동자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파업은 일생일대의 결단이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또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건설노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서 포스코에 실시간으로 보고해 온 사실. 5.13 지방선거에 대다수 노동자들의 표가 없었으면 당선될 수도 없었던 포항시장 박승호가 당선증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건설노동자들에게 “본떼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두 차례나 돈을 주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관제시위를 한 사실 (명백한 직권남용). 건설노동자들도 포스코 경영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국민이건만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들에겐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물난리 와중에도 2만 5천명이나 되는 경찰병력을 빼내 포스코 건물을 에워싸고, 2500여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을 굶기거나 더위로 질식시켜 죽이려 했다는 사실. 이와 같은 반인권적인 정권의 폭력만행에 공분해서 거리로 나온 가족과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짓밟고 끝내 하중근 열사, 임산부의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까지 죽음으로 몰아 간 사실.

이것들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식으로 크고 작은 모든 권력이 포스코와 한몸이 되었기에 포항건설노동자들의 유린당한 인권은 어디에서도 구제받을 길이 없었고 그 순간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1987년 6월과 9월 사이, 우리는 거리와 공장에서 최루탄과 몽둥이에 맞고, 식칼에 찔려가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목 놓아 부르짖었다. 한 밤중에 영장도 없이 들이닥친 보안 경찰(또는 군인)들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가 밤새 고문을 한 후 “체제를 전복하려는”“좌익용공집단”의 일원으로 둔갑시키곤 했던 야만적인 인권현실이 바뀌어 지기를 바랬다. 노동조합 활동 하면 “빨갱이”로 몰려 해고를 당하는 것은 물론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구속당하는 지긋지긋한 공안탄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군사독재는 물러났고 정치적 박해와 인권유린을 당했던 ‘민주화 인사’들이 권력의 노른자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왔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한해 평균 200명이 넘는 노조 활동가들이 불법의 누명을 쓴 채 수배당하거나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빈민들을 상대로 살인적인 ‘대테러 작전’을 벌이지 않나, 경찰의 잔혹한 집회 시위 진압으로(심지어 군대까지 동원된) 인해 노무현 정권 들어서만 세 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2004년 노무현과 열우당은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단 한 줄의 독소조항도 바뀌지 않았고 그 위력은 되살아나고 있다.8)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한 새로운 ‘국가보호법제’9)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한국에서도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지고 있다.10)

외견상 대한민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모습을 본 뜬 ‘대의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운명은 권력의 주소가 어디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처럼 “의회제도는 전 사회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데 기여”하지만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지배적인 사회를 표현할 뿐”이다. “민주주의가 그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고 정말로 모든 주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도구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이자마자, 민주주의적 형식 또한 부르주아 지배계급과 국기기구의 대표자들에 의해 압살”당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속박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은 법률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결핍으로 인한 빈곤”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인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로지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통해 자본가 권력 지배의 원천인 생산수단을 장악함으로써 가능해 질 것이다. <노사과연>



구속노동자 인권문제를 통해 본

한국의 민주주의



이광열 |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1) 노무현 정권은 올해 9월30일까지 866명의 노동자를 구속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집계.) 이 수치는 김영삼 정권이 집권 5년 동안 구속했던 노동자 632명보다 훨씬 많고, 김대중 정권의 892명에는 못 미치고 있으나 아직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으므로 노·정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이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2) 김호중 의장은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십여년간 건설일용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자 조직하고 투쟁했던 건설노조 간부를 언론을 동원해 두 번 죽이는 건설자본과 검찰의 파렴치함에 분노하고 항의하기 위해서 시작한 농성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ILO권고안 이행, 구속동지 석방, 수배해제 등 지역건설노조에 가해지는 탄압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 농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3) 올해 파업 등 노조활동 과정에서 구속된 건설노동자를 모두 헤아리면 8월 31일 현재 117명이며 작년까지 합하면 무려 168명이나 된다.


4)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한해 동안 사측(대부분 원청기업)이 비정규직노조(또는 개인)에게 청구한 손배가압류 청구액은 무려 1,498억원이나 된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잠시 주춤했던 손배가압류가  2005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5) 이호중(외국어대 형사법 교수)[수사 및 공판절차에서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민주주의법학연구회(편),[민주법학]29호 게재 논문 4쪽)


6) 이호중 전게논문 5쪽에서 인용


7) 이호중 전게논문 1쪽에서 인용


8) 노무현 정권들어 국가보안법으로 127명이 구속되었다. (민가협 집계) 최근(8월 18일) 한국민권연구소 최희정 연구원은 인터넷 게시물이 문제가 돼 국가보안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제 7조 2항, 5항 위반으로 구속됨


9) “국가보호법제”의 예로는 안보를 이유로 온갖 자유를 억압하는 보안법 체제, 정치적 타자의 내면에 대하여 무한 공격을 가하는 심정형법, 9.11 이후에 새로운 억압적 전통인 테러방지법을 들 수 있다.


10) 이미 국회 정보위원회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조성태외 20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이 계류되어 있고, 노무현은 지난 9월 17일 “테러 대응체제에 관한 제도를 지금 확보할 필요가 있고, 국정원이나 중심기관을 두고 그 기관의 제도적 권한을 뒷받침”하는 국정원 중심 테러방지법의 입법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 

10) 이미 국회 정보위원회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조성태외 20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이 계류되어 있고, 노무현은 지난 9월 17일 “테러 대응체제에 관한 제도를 지금 확보할 필요가 있고, 국정원이나 중심기관을 두고 그 기관의 제도적 권한을 뒷받침”하는 국정원 중심 테러방지법의 입법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