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문제에 대하여* ―「프랑스에서의 내전」과 『국가와 혁명』을 중심으로

김은 레닌이 맑스에 의거하려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김은 “레닌의 견해를 그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맑스와 비교”하면서 레닌을 비판하고 있다.1) 이 글2)은 김이 지적한 레닌의 오류부분을 검토하면서, 김이 주장한 것처럼 레닌의 맑스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김의 레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 빠리 꼬뮌의 교훈


레닌은 『국가와 혁명』의 제3장 1절에서3) 맑스가 파리코뮌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국가론과 연관하여 검토하고 있다. 레닌은 맑스의 노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맑스가 그의 표현대로 ‘하늘을 휘저었던’ 코뮈나르드의 영웅적 행위를 단지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비록 대중혁명운동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맑스는 그 혁명을 아주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서, 세계 프롤레타리아라 혁명의 발전으로서, 그리고 몇 백 가지의 강령이나 논의보다도 더욱 중요한 실천적인 발걸음으로서 규정지었다. 맑스는 그러한 경험을 분석하고, 그 혁명으로부터 전술적 교훈을 얻으려 했으며. 그 혁명에 비추어서 자신의 이론을 재검토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4)


맑스와 엥겔스는 빠리 코뮌의 실천을 이론화하여 「공산당 선언」의 내용을 수정한다. 그것은 「공산당 선언」의 “유일한” 수정부분인데, 두 사람은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밝힌다. 왜냐하면 그 수정은 빠리 꼬뮌의 투쟁에서 피로 얻은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교훈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25년 동안 상황이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이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크게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히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저기 몇몇 군데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선언』자체가 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원칙들의 실천적 적용은 언제 어디서나 당대의 역사적 상황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Ⅱ장 끝에서 제시된 혁명적 방책들에 특별한 중요성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이 부분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게 서술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25년에 걸친 대공업의 엄청난 발전, 그리고 이와 함께 진전된 노동자 계급의 당 조직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우선 2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 및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으로 2개월간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빠리 꼬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강령은 몇몇 군데에서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꼬뮌은 “노동자계급이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프랑스 내전. 국제 노동자 협회 총평의회의 격문』, 독일어판, 19면을 보라. 거기서는 이점이 보다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5)


레닌은 이 부분을 매우 강조한다. 왜냐하면 맑스와 엥겔스가 그 수정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정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었고「공산당 선언」을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수정의 의의를 깨닫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였다.6)



2. 부르주아 독재(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민주주의)7)


김은 이 문제에 관해서 아주 올바른 관점을 견지한다. 김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것이 절차적이고 형식적이며 공허한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인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국가체계나 정치체계가 어떠한 형태를 취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자본가계급의 독재이며,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적합하고 발전된 국가ㆍ정치형태라는 사실도 김은 잘 이해하고 있다.8)

김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지와 함께 자본가계급의 국가기구도 분쇄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계급을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가계급에 대한 독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고 인정함으로써 무정부주의와 자신을 경계 지운다.9) 또한 김은 노동자계급을 지배계급으로 조직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서 기존의 국가기구를 장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야 한다는 맑스의 교훈을 잊지 않음으로써 기회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둔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의 원리’를 포함하며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 혹은 ‘다수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봉건제―우리에게는 군사독재―와 비교하여 그 진보적ㆍ역사적 의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10)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부르주아 독재는 자본가계급만의 민주주의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강제적 억압이며,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평등과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로 착취계급에 대한 강제적 억압이며, 착취계급에 대해서는 그들의 평등과 자유의 침해이다.11)

계급이 존재하는 한에서는 국가의 존재는 필연적이고 국가는 지배계급에게는 민주주의이고 동시에 피지배계급에게는 독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점점 더 완벽하게 되는 것, 다른 말로 민주주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 이것은 국가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으로 국가의 사멸과 함께 민주주의는 사멸하게 된다. 



3. 김의 레닌 비판(1)


레닌의 『국가와 혁명』3장은 빠리 꼬뮌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다룬다. 그는 앞서 본 것처럼 3장의 1절에서 맑스의 ‘기존 국가기구의 타도와 파괴’와 관련한 문제를 검토하였다. 2절에서 그는 맑스의「프랑스 내전」을 분석하는데,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떤 방식으로 지배계급으로 조직화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와 같은 조직화가 가장 완벽하고 지속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전투에서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식의 문제에 대한 방안”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빠리 꼬뮌의 경험을 분석하며 쓴 이 글에서 다루었다. 레닌은 “꼬뮌의 첫 번째 훈령은 상비군을 폐지하고 그것을 무장 인민으로 대체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계급지배 자체를 제거하려는 공화국”을 “지속적인 제도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조처라는 맑스의 분석을 인용한 후, 이어진 다음과 같은 맑스의 꼬뮌에 대한 묘사를 역시 인용한다.


꼬뮌은 빠리의 다양한 구에서 보통 선거권을 통해 선출된 시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책임이 있었고 어제든지 소환될 수 있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당연히 노동자들이거나 노동자계급의 공인된 대표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이제까지 국가 정부의 도구였던 경찰은 즉시 자신의 모든 정치적 속성을 벗어 버리고 책임이 있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꼬뮌의 도구로 전환되었다. 다른 모든 행정 부문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꼬뮌의원들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공직은 노동자의 임금으로 수행되어야 했다. 국가 고위 관직의 권리 주장과 판공비는 이 고위 관리들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 옛 정부의 물리적 권력의 도구인 상비군과 경찰을 일단 제거한 꼬뮌은 억압의 정신적 도구인 성직자 권력을 분쇄하고자 하였다… 사법 공무원들은, 차례로 충성을 맹세하고 또 파기하였던 역대의 모든 정부에 대한 자신의 굴종을 은폐하는 데 불과하였던 저 외견상의 독립성을 상실하였다. 그 밖의 모든 공직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앞으로는 선출되고 책임이 있고 소환될 수 있게 되었다.(강조-원문)12)


레닌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러므로 코뮌은 분쇄된 국가기구를 ‘단지’ 보다 안전한 민주주의―상비군의 폐지, 모든 관리의 선출과 소환―로 대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단지’라는 말은 실제로는 일련의 기관들을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유형의 다른 기관으로 방대하게 대체시켰음을 뜻한다. 이것은 정확히 ‘양이 질로 전환’한 좋은 실례이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완벽하고 철저하게 도입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하였다. 또한 (특정계급을 탄압하기 위한 특수한 폭력이었던) 국가는 더 이상 본래적 의미의 국가가 아닌 것으로 전화하였다.13)


그리고 꼬뮌은 부르주아 계급을 억압하고 그들의 저항을 분쇄해야 하는데, 그것을 단호하고 철저하게 하지 못했던 것이 꼬뮌이 실패했던 하나의 이유라고 레닌은 설명한다. 하지만 특권을 가진 소수로 구성된 특수기관이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국가권력은 사멸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점과 관련하여 맑스가 강조했던 다음과 같은 빠리 꼬뮌의 조치들은 특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즉 관료들의 모든 특혜, 모든 금전적 특권을 폐지하고 모든 국가 공무원들의 급료를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낮춘 것 등이다.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의 전환, 억압자들의 민주주의에서 피억압자들의 민주주의로의 전환, 또한 특정계급에 대한 억압수단인 ‘특수한 폭력’으로서의 국가에서 노동자ㆍ농민과 같은 대다수 인민대중의 일반적 폭력에 의한, 억압자에 대한 억압으로의 전환을 더욱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의 사상 가운데, 아마도 국가문제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이와 같은 특히 인상적인 논점이 가장 완전하게 간과되고 있다!(강조-원문)14)


그리고 그는 소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단순하고 자명한 민주주의적 조치들이 “노동자와 대다수 농민들의 이익을 완전히 통일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교량역할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김은 레닌을 비판한다. 김은 “레닌이 대표자의 낮은 임금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원시적 소박성’을 가진 민주주의 핵심으로 지적한 것은 부당하다”고 하며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국가기구에 대한 직접적 통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15)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김의 오해일 뿐이다. 일단 앞서 본 것처럼 「프랑스에서의 내전」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강조한 것은 맑스가 먼저이다. 고위 국가 관료들의 제반의 특권과 금전적 특혜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하나인 관료체계의 상징이다. 따라서 “기존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분쇄해야” 하는 사회주의 혁명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소박하고 원시적인 민주주의의 요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충실한 맑스주의자인 레닌이 이를 강조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레닌은 절대로 “노동자의 임금”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것은 “관료들의 모든 특혜, 모든 금전적 특권”의 폐지와 동시에 적용된 꼬뮌의 조치의 하나로 레닌은 그것만큼 강조한 것이다. 다음의 레닌의 주장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모든 관리는 예외 없이 선출되고 언제라도 소환할 수 있으며, 그들의 급료는 일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삭감되었다.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민주주의적 조치들은 노동자와 대다수 농민의 이익을 완전히 통일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교량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조치들은, 이미 성취되고 있든 준비 중에 있든 간에, ‘수탈자에 대한 수탈’과 관련해서만, 즉 생산수단의 자본제적인 사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의 이행과 관련해서만 진정한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강조-원문)16)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레닌은 급료의 노동자적 수준 보다 관리의 선출과 소환을 더욱 강조한다. 그리고 그 조치들조차도 “수탈자들에 대한 수탈”과 “생산수단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의 이행”을 바탕으로 해서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17)



4. 김의 레닌비판(2)


레닌은 제3장 3절에서 ‘의회제의 폐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그는 다음의 맑스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꼬뮌은 의회 단체가 아니라 행정과 입법의 업무를 겸하는 단체이어야 했다. …18)

보통선거권은 삼 년이나 육 년마다 지배계급의 어떤 구성원이 의회에서 인민을 대표하고 짓밟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대신에 꼬뮌을 구성하는 인민에게 봉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다른 모든 고용주의 경우에 개인적 선택권이 자기 사업에서 노동자, 감독관, 경리를 찾는 데 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9)


레닌은 이 인용을 통해 “의회주의에 대한 모든 비판을 ‘무정부주의’라고 매도하고” 있는 사회배외주의자와 기회주의자들을 비판한다.20)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국가라는 문제를 다룰 경우, 그리고 의회제도를 국가의 한 기구로 간주할 경우, 이 영역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의회제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회제도 없이 어떻게 한단 말인가?21)


그리고 “꼬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맑스의 가르침이 완벽하게 망각되어 왔”다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의회제도를 벗어난다는 것이 대의기구나 선거원칙을 폐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잡담실과 같은 대의기구를 ‘실행(working)'기구로 전화시킨다는 의미이다. “꼬뮌은 대의기구가 아니라 실행기구, 행정기관이면서 동시에 입법기관이어야만 했다.”22)


레닌은 여기서 “꼬뮌은 대의기구가 아닌 실행기구, 행정기관이면서 동시에 입법기관이어야 했다”라는 맑스의 말을 매우 강조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레닌이 그렇게 한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의기구가 아닌 실행기구’  ― 이 말은 현재의 의회주의자들과 의회내의 ‘애완견’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급소를 한방 먹이는 말이다. 미국에서 스위스, 프랑스에서 영국, 노르웨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회주의 나라들을 살펴보라. 이 나라들에서 ‘국가’의 실질적인 업무는 막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장관, 국장 및 참모진들에 의해 수행된다. 의회에는 ‘평범한 인민’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잡담이나 늘어놓는 업무가 맡겨졌다. 정말 그렇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인 러시아 공화국에서조차도, 심지어 진짜 의회가 성립되기 이전에 의회제도의 그러한 모든 죄악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스코벨레프나 쩨레텔리, 체르노프나 아프크센쩨예프 무리들과 같은 썩어 문드러진 속물주의의 영웅들은 아주 혐오스런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방식에 따라 소비에트를 오염시키고, 그곳을 단순히 말장난이나 하는 곳으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소비에트에서 ‘사회주의’ 각료들은 미사여구나 늘어놓고, 여러 가지 결의나 해가면서, 순박한 대중들을 우롱하고 있다. 정부 자체 안에서는 한편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사회주의혁명당원들과 멘셰비키가 수지맞고 명망있는 지위라는 ‘파이’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의 ‘관심’을 ‘묶어 두기’ 위하여 일종의 영구적인 술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장관들이나 군대의 참모들이 ‘국가’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23)


즉, 이른바 부르주아 국가기구로서의 의회가 부르주아지를 위해 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비판과 러시아의 당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였던 것이다.24)

레닌이 “대의기구가 아닌 실행기구”라는 사실을 강조한 다른 이유는 그것 자체가 “노동자계급의 정부”로서 꼬뮌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꼬뮌은 부르주아 사회의 타락하고 부패한 의회제도를, 의견의 자유와 토론의 자유가 속임수로 전락되지 않는 기구로 대체했다. 왜냐하면 의회의 의원들 자신이 일해야 하고, 그들 자신의 법률을 집행해야 하며, 실제로 얻어진 결과를 스스로 검증하고, 자신의 선거구민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의제도는 존속한다. 그러나 특수한 제도, 입법과 행정의 분업, 의원들의 특권적 지위로서의 의회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의제도 없는 민주주의, 특히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말뿐인 것이 아니고, 부르주아의 지배를 타도하고자 하는 열망이,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 그리고 샤이데만이나 레긴, 셍바, 방데르벨드 같은 자들처럼) 노동자들의 표나 얻으려는 단순한 ‘선거’ 구호가 아닌, 우리의 진실되고 성실한 열망이라면 ― 우리는 의회(제도) 없는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고 또 생각하여야만 한다.(강조-원문)25)


그런데 김은 이 부분에서 레닌에 대한 비판을 한다. 김은 “꼬뮌을 구성하는 인민에게 봉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다른 모든 고용주의 경우에 개인적 선택권이 자기 사업에서 노동자, 감독관, 경리를 찾는 데 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맑스의 주장을 인용한다. 그리고 “맑스 주장의 핵심”은 “노동자계급 대중이, 고용주가 그 고용인을 통제하듯이, 국가기구의 관리들을 통제하는 것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이며, 그것이 바로 지배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화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레닌은…이런 사실보다는 맑스가 ‘의회를 말장난이나 하는 곳’이 아니라 활동하는 기구라고 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레닌을 비판한다.26)

그러나 이것은 김의 오해다. 앞서의 인용에서 본 것처럼 레닌에게 있어서 꼬뮌은 “대의기구가 아닌 실행기구”(김의 표현으로는 “활동하는 기구”)이고 ‘입법기관이면서 행정기관’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권적 지위”는 모두 사라지고 동시에 “의회의 의원들은 … 자신의 선거구민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것을 포함한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관리들이 통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김의 레닌비판(3)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의회(제도) 없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서 맑스가 꼬뮌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관리들의 기능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 관리들을 ‘모든 고용주들’의 노동자에, 즉 일상적인 자본주의 기업의 ‘노동자들, 십장들 및 회계원들’에 비유한 것은 아주 교훈적이다.27)


레닌은 맑스의 이러한 비유를 공상주의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매우 높게 평가한다.28)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국가’ 행정의 기능을 단순화한다. 그것은 ‘지배’(bossing)를 폐기하고, 모든 문제를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서) 조직하는데 한정시킬 수 있게 한다. 그것은 곧 사회 전체의 이름으로 ‘노동자들, 십장들 및 회계원들’을 고용하는 것이 될 것이다.29)


김은 레닌의 이러한 주장은 맑스가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오해를 한 것이고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맑스가 그런 비유를 든 것은 “국가기구의 대표를 선택하는 선택권한 그리고 경질권한의 힘이 노동자계급 대중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데 레닌은 이것을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노동자들 십장들 그리고 재정관리인을 고용한다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사회이기 위해서는 바로 고용권한 경질권한 등 일체의 선택권이 노동자계급 대중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 고용권한에 대해서 레닌은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30)

만일 말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역시 김의 오해다. 레닌은 그것에 관해서 확실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단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무장한 노동자들의 철권으로 이러한 착취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현대국가의 관료기구를 타파하게 된다면, 우리는 ‘기생충’이 제거된 훌륭한 메커니즘, 단결한 노동자들 자신에 의해 잘 운영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기술자와 십장들과 회계원들을 고용할 것이며, 그들 모두에게, 확실히 모든 ‘국가’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임금을 지불할 것이다. … 전체 경제를 우편업무와 같이 조직해서 모든 관리들뿐만 아니라 기술자, 십장 및 회계원들이 ‘노동자의 임금’ 만큼만 받게 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와 지도 하에 두는 것 ― 이것이 우리의 당면목표이다. 이것이 의회제도를 폐지하면서도 대의기구를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노동자계급을 이러한 제도들의 부르주아적 타락으로부터 구하는 길이다.(강조-원문, 밑줄-인용자)31)


그런데 레닌이 말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사실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상주의의 배제와 관련한 문제이다. 김은 “‘재정관리인들이 고용’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삼천포로 빠진다”라던가 “국가기구에 의한 고용의 문제에 ‘노동자’와 그들의 감독자인 ‘십장’ 모두가 포함되어 있는 점이다. 노동자계급은 국가기구의 고용인에 불과한 또 다른 형태의 임노동자일 뿐이다”라고 쓰며 레닌을 비판하고 있다.32)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레닌이 “무정부주의적 몽상”이라고 비판한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레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공상가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통치(=관리)와 예속(=복종)을 일시에 없앨 것을 ‘꿈꾸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임무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이와 같은 무정부주의적인 몽상은 맑스주의와 전혀 무관한 일이며, 실제로는 단지 인민이 변화할 때까지 사회주의 혁명을 지연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우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인민, 즉 복종과 통제와 ‘십장과 회계원들’을 필요로 하는 현 상태의 인민과 더불어 사회주의 혁명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복종은 모든 피착취 노동인민의 무장한 전위, 즉 프롤레타리아트에게만 향해져야 한다. 국가 관리들의 특수한 ‘지배’를 ‘십장들과 회계원들’의 단순한 기능, 즉 이미 평균수준의 도시거주자들의 능력 안에 있으며, ‘노동자의 임금’만으로도 충분히 수행될 수 있는 기능으로 대체하는 것은 당장 시작될 수 있고, 또 시작되어야만 한다.

우리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토대로 하고 노동자로서의 우리들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대규모 생산을 조직할 것이고, 무장한 노동자들의 국가권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엄격하고 강철같은 규율들을 수립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관리들의 역할을, 책임성 있고 소환할 수 있으며 간소한 급료를 받는 ‘십장과 회계원’의 역할로 (물론 모든 종류와 유형과 수준의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는) 축소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으며, 여기서부터 착수해야만 한다. 그러한 출발은 대규모 생산에 기초하여, 자연스럽게 모든 관료제의 점진적인 ‘사멸’, 하나의 질서 ― 아무런 단서 없는 질서, 임금노예제와 유사한 그 어떠한 것도 배태하지 않는 질서 ― 의 점진적인 질서가 하나씩 순차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차츰 습관화되면, 마침내 인민의 특수한 부분이 담당하는 특수한 기능으로서의 국가기구는 사멸할 것이다.33)


레닌은 “복종과 통제와 ‘십장과 회계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에 반해 김은 이를 비판한다. 누구의 주장이 더 정당한 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6. 김의 레닌비판(4)


레닌은 제3장 4절에서 ‘전국적 통일성의 조직’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그는 맑스를 인용한다.


빠리 꼬뮌은 물론 프랑스의 모든 대규모 산업 중심지의 모델 노릇을 해야 했다. 꼬뮌적 사물의 질서가 일단 빠리와 이차적인 중심지들에 도입되자마자, 낡은 중앙 집권적 정부는 지방에서도 생산자들의 자치 정부로 대체되어야 했을 것이다. 꼬뮌이 더 완성될 시간을 갖지 못했던 전국적 조직에 대한 개략적인 구상 속에서는, 꼬뮌이 가장 소규모적인 촌락에서도 그 정치 형태로 되어야 한다는 것과 농촌의 상비군은 극히 짧은 복무 기간을 가지는 민병대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 모든 지역의 농촌 공동체는 지역 중심의 대의원 의회를 통해 자신들의 공동 업무를 관장해야 했으며 이 지역 의회는 다시 대의원들을 빠리의 국민 대의원단에 파견해야 했다; 대의원들은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고 자기 선거구의 정해진 훈령에 묶여야 했다. 여전히 중앙 정부에 남겨질 소수이긴 하나 중요한 기능은 의도적으로 변조되고 있는 것처럼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꼬뮌의, 즉 엄격히 책임이 있는 관리들에게 맡겨져야 했다. 국민의 통일성은 파괴되지 않고, 반대로 꼬뮌 헌법에 의해 조직되어야 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해 독립적이고 군림하려고 하면서도 그러한 통일의 구현체임을 주장한 국가 권력의 절멸을 통해 현실로 되어야 하는데, 국가 권력은 국민의 몸에 붙어 있는 이상 생성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낡은 정부 권력의 억압적이기만 한 기관을 잘라 버리는 것이 중요한 한편, 그것의 정당한 기능은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권력으로부터 떼어 내어 사회의 책임 있는 공무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했다.(밑줄-인용자)34)


레닌이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베른슈타인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베른슈타인은 이 문장을 이용하여 “정치적 내용에 관한 한” “그것의 모든 본질적 측면에 있어서 프루동의 연방제와 지극히 흡사하다”고 썼고, “맑스와 ‘쁘띠부르주아’ 프루동은 다른 모든 점에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이 점들에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하였다. 레닌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우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맑스와 프루동은 “국가기구의 ‘분쇄’라는 입장에 서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업고) 연방제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기 때문인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도 완전히 잊어 버”린 베른슈타인이 혼동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레닌은 맑스가 여기서 주장하는 중앙집권제에 대한 반대는 연방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 존재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맑스는 중앙집권주의자였다. 위에서 인용한 맑스의 진술에는 중앙집권주의로부터의 조그마한 이탈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국가’에 대한 속물적인 ‘미신’에 물들어 있는 자들만이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를 중앙집권제의 파괴로 오해할 수 있다.

지금 만약에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들이 국가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아주 자유롭게 스스로를 꼬뮌으로 조직하며, 자본에 타격을 가하고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며, 사적 소유인 철도와 공장과 토지 등을 전체 국민, 전체 사회에 이전시키는 데 있어서 모든 꼬뮌의 활동들을 통일시킨다면, 그것이 곧 중앙집권제가 아닌가? 그것이 곧 가장 일관되고 민주적인 중앙집권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적 중앙집권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35)


김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원시적’인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로서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확대는 당연히 자치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그 직접적 민주주의에 대해 그리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통일임을 주장하는 국가기구’의 절멸을 주장하고 있다.36)


그리고 앞서의 인용을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레닌을 비판한다.


레닌은 맑스의 지방자치에 뭔가 거북해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맑스의 지방자치에 대한 옹호가 중앙집권 자체의 폐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해 긍정한다. 그러나 이런 긍정은 사실상 레닌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레닌은 맑스의 이런 주장을 지방분권을 비판하는 논거로만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들 전반은 결국 노동자계급의 자체의 직접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부언하면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은 특히 경제적 노동자관리에 대한 극도의 혐오로 나타난다.37)


김이 말하는 지방자치가 연방제를 의미한다면 김의 주장과는 달리 레닌은 그것을 ‘확실히’ “거북해”한다. 그것은 레닌이 “하나의 원칙으로서의 연방제는 논리적으로 무정부주의라고 하는 쁘띠부르주아적인 시각에서 도출된다”고 명확히 주장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는 맑스의 것도 아니다.38) 반면에 지방자치가 ‘자유롭게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이라는 의미라면 김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앞서 살펴본 많은 인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레닌은 그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39)



추가 : 『정세와 노동 』제17호에 실렸던 필자의 글 「독점과 제국주의」의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자 한다.


주27)에서 나는 “맑스는 집적과 축적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 하지만 … (집적을 축적의) 현상형태로 주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자본론 1권 읽기] 세미나에서 이것을 검토한 결과, 그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서 토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맑스는 집적을 가장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했으며 축적이나 집중 모두 집적에 포함된다. 이것은 “단순한 집적”을 “축적과 동일한 의미의 집적”으로 집중을 “형성된 자본의 집적”으로 설명하고 “진정한 집중”을 “축적 및 집적과 구별”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29의 내용을 참조하라.)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집중’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집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레닌이 개념을 이렇게 사용했던 것도 맑스가 사용한 범례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주44)에는 “물론 이러한 환상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깨졌다. 장기호황은 장기불황으로 전화했고 독점자본주의체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했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귀결되게 되었으며 현재에 이른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명백한 내용적 오류다. “독점자본주의체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화했고”가 삭제되지 않아서 일어난 것인데 아무튼 독점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했고 이는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전면화 되었다. <노사과연>



국가문제에 대하여*

―「프랑스에서의 내전」과 『국가와 혁명』을 중심으로



전성식 ∣ 회원, 연구위원


* 이글은 『정세와 노동』(통권15호)에 실린 김두한동지의「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에 대한 두번째 비판의 글이다. 첫 번째 비판으로는 지난 16호에서 ‘독점과 제국주의’의 문제를 다루었다.

* 이글은 『정세와 노동』(통권15호)에 실린 김두한동지의「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에 대한 두번째 비판의 글이다. 첫 번째 비판으로는 지난 16호에서 ‘독점과 제국주의’의 문제를 다루었다.

1) “레닌이 … 지적한 것은 부당하다.”(p. 79.), “그러나 레닌은 이것을 오해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바꿔치기 하며 모순에 찬 주장을 한다.”(p. 80.), “레닌은 … 어처구니없는 삼천포로 빠진다. 레닌의 오류는 부분적인 오류도 부차적인 오류도 아닌 그의 근본적인 생각이었다.”(p. 80.), “레닌의 혼동”(p. 81.) 등.


2) 러시아혁명과 관련된 부분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은데 이점 양해 부탁드린다.


3) 제3장의 제목은 「제3장 국가와 혁명; 1871년 파리코뮌의 경험」이며 1절의 제목은 “꼬뮈나르드의 시도를 영웅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이다.


4) 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pp. 52-3.


5) 1872년에 쓰인 「공산주의당 선언」의 서문의 내용이다. 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 pp. 369-70.


6) “맑스의 생각은 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타도해야 하며, 단순히 기존국가를 장악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기회주의자들은 “맑스가 여기서 강조한 것이 권력 장악과 반대로 완만한 발전 개념 따위였다”고 주장한다.(레닌, 앞의 책, p. 53.) 이것은 요즘처럼 속물적 국가주의․애국주의가 횡횡하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7) 이 부분과 관련해서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레닌,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소나무, pp. 28-39.


8) “최고의 국가 형태인 민주 공화제는 현대 사회의 조건들 하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이 되어 간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유일하게 최후의 결전을 치를 수 있는 이 국가 형태-이 민주 공화제는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재산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민주 공화제에서 부는 자신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한층 더 확실하게 행사한다. 한편으로는 관리를 직접 매수하는 형식-가장 전형적인 표본은 아메리카이다-으로 행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주식 거래소의 동맹이라는 형식으로 행사한다.”(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6』, p. 190.)

8) “최고의 국가 형태인 민주 공화제는 현대 사회의 조건들 하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이 되어 간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유일하게 최후의 결전을 치를 수 있는 이 국가 형태-이 민주 공화제는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재산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민주 공화제에서 부는 자신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한층 더 확실하게 행사한다. 한편으로는 관리를 직접 매수하는 형식-가장 전형적인 표본은 아메리카이다-으로 행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주식 거래소의 동맹이라는 형식으로 행사한다.”(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6』, p. 190.)

   “전세계에 걸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운동과 노동자당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폭력, 박해, 압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세의 봉건적 방식이다.…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운동에 대항하여 채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노동자를 분할하고 대오를 분쇄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개별 대표자나 일정 그룹을 설복하기 위해 매수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봉건적이지 않은 순수한 부르주아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의 발달되고 문명화된 관습과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현대적 방식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체제는 부르주아사회의 특색, 즉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부르주아적 특색이며, 거기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광범하며 명쾌한 계급투쟁이 최고의 교활함과 결합되어 있는, 즉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영향력을 임금노예 사이에 확산시켜 임금노예제도를 거부하는 투쟁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려는 계략 및 구실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레닌,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 인텔리의 투쟁방법」, 『러시아 반종파투쟁』, 미래, pp. 239-40.


9)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놓여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으니, 이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강조-원문)”(맑스, 「고타강령초안비판」, 『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4』, 박종철출판사, pp. 385-6.)


10)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승인하는 하나의 국가, 다시 말해서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항하여 강제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대중의 한 분류가 여타 다른 부류에 대하여 권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체 이상이 결코 아닌 것이다.(강조-원문)”(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p. 104.)


11)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증명을 원하는가? 다음의 글들을 읽어 보라. 이광열, 「구속노동자 인권문제를 통해 본 한국의 민주주의」, 『정세와 노동』제17호. 2006년 10월, pp. 97-105. 권정기, 「최후변론」, 『현장에서 미래를』제92호, 2003년 11월호, pp. 156-158.


12) 맑스, 「프랑스에서의 내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4』, pp. 64-5. 『국가와 혁명』의 인용문 대신 원문을 인용했으며 이것은 『국가와 혁명』의 한글 번역본이 세 종류(논장, 새날, 돌배게)가 있어서이다.


13) 레닌, 『국가와 혁명』, 새날, p. 60.


14) 레닌, 앞의 책, p. 61.


15) 김두한, 「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정세와 노동』제15호, 2006년 7․8월, p. 79.

15) 김두한, 「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정세와 노동』제15호, 2006년 7․8월, p. 79.

   레닌은 ‘원시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그것은 베른슈타인주의자나 카우츠키주의자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이 이것의 의미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레닌, 앞의 책, p. 62.)


16) 레닌, 앞의 책, pp. 62-3.


17) 이와 관련해서는 채만수, 「국민발의권ㆍ국민소환권 운동과 그 ‘비판’에 대해서」,『현장에서 미래를』제98호, 2004년 5월, p. 22를 참조하라.


18) 맑스, 「프랑스에서의 내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 p. 64.


19) 맑스, 앞의 글, pp. 65-6.


20) 하지만 그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맑스는, 특히 상황이 명백하게 혁명적이지 않은 경우에, 부르주아 의회제도라는 ‘돼지우리’조차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정부주의와 어떻게 단호하게 결별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의회제도를 어떻게 진정으로 혁명적인 비판, 프롤레타리아적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레닌, 앞의 책, p. 65.)


21) 레닌, 앞의 책, p. 65.


22) 레닌, 앞의 책, p. 65.


23) 레닌, 앞의 책, pp. 65-6.


24)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이중권력 상태에 있었던 러시아는 4월 시위에 의해 임시정부의 무력함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부르주아지들은 임시정부에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를 참여시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레닌은 이를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의 배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순박한 백성들을 속이기 위한 혁명적-민주주의적 어구와 자본가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관료제와 관료주의 ― 바로 이것들이야말로 ‘성실한’ 연립정부의 본질이다.”(레닌, 같은 책, p. 67.)


25) 레닌, 앞의 책, p. 67.


26) 김두한, 앞의 글, pp. 79-80.


27) 레닌, 앞의 책, pp. 67-8.


28) “맑스에게는 새로운 사회를 급조하고 발명한다는 의미의 공상주의자의 흔적은 전혀 없다. 그렇다. 그는 낡은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의 탄생, 전자의 후자로의 이행의 형태를 자연사적 과정으로서 연구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운동의 실제 경험을 연구했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적인 교훈을 얻어내려고 노력했다.”(레닌, 앞의 책, p. 68.)


29) 레닌, 앞의 책, p. 68.


30) 김두한, 앞의 글, p. 80.


31) 레닌, 앞의 책, p. 70.


32) 김두한, 앞의 글, pp. 80-1.


33) 레닌, 앞의 책, pp. 68-9.


34) 맑스, 「프랑스에서의 내전」, 『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 4』, p. 65.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인용한 부분은 밑줄 부분이다. 김은 자신의 글에서 이 부분 전체를 인용했다.


35) 레닌, 앞의 책, pp. 73-4.


36) 김두한, 앞의 글, p. 81.


37) 김두한 앞의 글, p. 82.


38) “자신의 견해가 왜곡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했던 것처럼, 맑스는 꼬뮌이 전국적 통일성을 파괴하고 중앙의 권위를 폐지하려고 했다는 비난이 의도적인 기만이라고 특히 강조했다. 맑스는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사용했다. [부르주아적이고 군사적이며 관료적인 중앙집권제에 대항하고, 의식적이고 민주적이며 프롤레타리아적인 중앙집권제]를 위해서 [전국적인 통일성을…조직하여야 했다.]”(레닌, 앞의 책, p. 74.) 맑스가 했다는 이 말의 출처가 어딘지는 찾지 못했다.


39) 다만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 글 범위를 넘는 내용임으로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