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은 해방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

―3차에 걸친 범국본의 총궐기투쟁을 보며―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밀리고 밀려온 노동자ㆍ민중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일까?

노무현정부는 한편으로는 극우정당인 한나라당의 공세에 취약해졌고, 한편으로는 대대적인 민심의 이반에 직면하여 청와대와 여당으로, 친노파와 반노파로 사분오열하며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정국운용능력은 향후 1년간 더욱 약화될 것이고, 그만큼 지배체제도 취약해져갈 것이다. 지난 11월 30일 비정규법안을 허겁지겁 통과시키고, 다시 노사관계로드맵을 통과시키려 서둘고 있는 이유는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 노동자, 소부르주아지의 공세


“비정규직확대법안” 무효화, “로드맵법안” 철폐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한미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 그리고 여기에 결합한 소부르주아의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만 바라보며 끌려 다니고, 말로만 투쟁하는 민주노총의 문제는 이번에도 여전해서 정세를 추동하는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세는 농민을 중심으로 하고 노동자와 소부르주아가 연대하고 있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총궐기” 투쟁에서 추동되고 있다. 1차 투쟁에서 충북, 강원, 광주 등에서 농민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서울의 시위도 2차ㆍ3차 총궐기 투쟁에서 규모도 확대되었고 “과격”해져갔다. 쌓이고 쌓인 노동자ㆍ농민의 분노에다 급격히 몰락하고 있는 소부르주아의 분노가 더해져서 여기저기서 자생적으로 폭발하며 투쟁을 고양시켰다.



투쟁을 이끌 지도부가 없다


그러나 이 투쟁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범국본의 총궐기 투쟁은 소부르주아적인 지도부에 의해서 심각하게 왜곡되어 버렸다. 현재에는 고작 “촛불집회”“문화행사”로 투쟁이 축소ㆍ억압되고 있다. 다음 글은 그 심각성을 짐작하게 해준다.


총궐기 집행부는 모든 선의의 가능성을 제쳐두고 타협을 통한 안정적 집회를 선택했고 집회 내내 위축된 자세로 일관했다.

(...) 또한 일부 집행부는 상투적이고 관성적인 집회가 아님을 인지하고 비상한 각오로 총궐기에 참가했던 대중들을 향해 끊임없이 질서를 지키라고 훈계하는 가관을 연출하며 순식간에 총궐기에 참여한 동지들을 경찰의 지시에 따라 발걸음을 제약당하는 마리오네트(marionette, 마디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조정하여 연출하는 인형)로 만들어버렸다. 운동의 자세가 아닌 흥정의 도모를 위해 패를 돌리는 거간꾼이 되어버린 일부 집행부의 기만을 더 이상 방관한다면 앞으로 이어질 총궐기 국면에도 전망은 없다.1)



전투적인 운동이 사라지고 타협과 흥정에 물든 지도부를 가지고는 전진할 수 없다. 문제는 정말 심각해 보인다. 그들은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집회를 주장한다2). 12월 6일의 집회가 당국에 의해서 금지되자 국가인권위원회와 “집회ㆍ시위의 자유”니 “헌법”이니 “인권”이니 “기본권”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헌법이라는 자본가계급의 무기를 가지고 자본가계급과 어떻게 싸우겠다는 것인가! 그 법을 누가 만들고 누가 해석하고 누가 집행하는 지를 보라!



우리는 주장한다


우리는 무장해야 한다. 촛불을 버리고 무장해야 한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끝임 없이 흔들리는 소부르주아 같은,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기회주의자 같은 촛불을 버려야 한다.

말로해서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무엇하러 집회ㆍ시위를 하겠는가? 보도에서 평화적으로 노래나 부르다 가면 아무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문에 의견광고라도 내려해도 돈이 없다.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마비시키고 시청ㆍ도청을 점거해야 부르주아신문은 우리의 주장을 거론한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전투력이 필요하다. 또한 집회하다 맞아죽지않기 위해서라도 무장은 필요하다.

정부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자본의 꼭두각시가 되어 한미 FTA를 강행하고, 비정규법안을 통과시켰고 로드맵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가장 효과적으로 싸우는 것은 바로 독점자본의 이윤을 타격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전국의 도로를 마비시켜 유통을 마비시키고, 파업으로 생산을 마비시켜 자본의 숨통을 조이면 자본은 자신의 꼭두각시인 정부에게 물러서라고 명령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혹은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서 “폭력시위”와 “교통혼란”, 그리고 파업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한미 FTA저지” “비정규악법철폐, 로드맵저지”라는 당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투쟁은 당장의 눈앞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투쟁은 해방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

도로는 노동자ㆍ민중의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평상시 도로는 그리고 “교통”은 무엇인가? 도로에는 무엇이 달리고 있는가? 두 종류의 상품이 달리고 있다. 물질적 상품과 노동력이라는 상품(노동자의 출ㆍ퇴근)이다. 상품은 곧 (상품)자본이기 때문에 도로에서 달리는 것은 바로 자본이다. 우리는 자본의 운동을 위해, 자본의 이윤ㆍ탐욕ㆍ착취를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래서 교통을 마비시키는 것은 자본의 운동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파업투쟁시 공장을 점거하여 생산을 마비시켜 자본가를 타격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동자의 생산물인 공장을 노동자가 영원히 점거(접수)하듯이, 노동자의 생산물인 도로도 영구히 점거할 것이다. 우리는 그 연습을 지금부터 하여야 한다.

전투경찰과 싸우고 권력이 집중된 도시의 중심부와 권력기관을 점거하는 것자체가 권력과의 투쟁, 정치투쟁이다. 전투경찰을 박살내고 억압적 권력이 작동하는 도심과 권력기관(모두가 이른바 “공권력”이다)을 무력화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ㆍ민중들은 자신의 힘과 자신감과 해방감을 느끼고, 투쟁의 궁극적인 목적을 ―부르주아권력의 타도와 권력획득―을 깨닫게 된다. <노사과연>


1) 완군(문화연대), 참을 수 없는 총궐기의 비겁함과 ‘배반’의 실천, http://www.

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8042&page=5&category1=3



2) 「경찰의 소위 ‘22일 집회 사전 기획설’에 관한 범국본 입장」, 2006.11.28.

―경찰은 27일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강원연합 사무실에서 압수한 서류에 근거해 지난 22일 집회에서 일부 지역 집회 주최 측이 폭력행위를 사전 계획한 정황이 포착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범국본은 22일 대회를 전국 각지에서 평화적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범국본의 계획은 서울 집회 양상에서 명확히 확인되었고, 지방의 경우에도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쇠파이프, 화염병 따위의 소지를 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