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한 번 읽고

이제 막 한 번 읽은 입장에서 「자본론」에 관해 떠드는 것은 정말 낯간지러운 일이다. 누구나 위대한 것을 접하면 겸허해질 터, 1년 반 동안 거의 매주 훌륭한 책을 접하면서 또 거기에 성실하지 못했다면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숙련자들의 도움으로 험한 산을 한 번 올랐다고 해서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닐 테고, 그저 좋았다는 한 마디 밖에 할 말은 더 없을 테니 말이다.

친구 손에 이끌려 노사과연을 찾은 게 작년 초여름이었다. 친구는 도중에 사라졌지만 결국 내 책장에는 「자본론」 다섯 권과 수료증 하나가 꽂혔다. 한번은 시니컬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왜 「자본론」을 보냐고 물어왔다. 나는 게임의 구성 원리, 혹은 게임의 목적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공부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선배는 게임의 구성 원리와 목적을 알지 못해도 게임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니,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런 것일지 모른다. 이 자본주의라는 세상이 돌아가는 내적 원리, 혹은 우리가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목적 따위를 아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알아야 한다는 주관적인 신념만을 가지고 ‘자본’ 읽기를 시작했고 그 첫 번째 회전을 마친 셈이다. 누구의 말처럼 죽더라도 왜 죽는지 알고자 하는 게 사람의 심리라면 나는 거기에 충실한 것일 테다.

어쨌건 「자본」 혹은 「자본론」은 말들이 많은 책이다. 「자본론」을 읽었다는 사람보다 「자본론」은 어떻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건 「자본론」이 3천 페이지에 달하는 ‘쉽지 않은 책’이라는 데 기인하는 듯하다. 「자본론」은 20세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의 정수이며 ‘자본’에 대한 최고의 책이자 그 주류적 시각들의 최대의 적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으니 소문과 입담들만 무성한 것이다.

그런 말들 중에서 초보인 나로서도 꼭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자본론」의 핵심은 1권의 상품 장(제1장)이며, 그것만 읽으면 된다는 말이다. 나도 「자본론」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몇 년 전부터 그런 말을 들어왔으며, 그 말을 믿었고, 몇 가지 해설서들을 주워 읽으면서 「자본론」을 읽지 않았지만 「자본론」의 핵심은 파악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론」을 읽지 않은 것과 「자본론」1권을 읽은 것, 그리고 3권까지 읽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론」은 3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으며 그것을 읽어가는 과정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자본론」은 1권 상품 장만 읽으면 된다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자본론」을 읽어도 다 읽기가 힘들며, 1권의 서두만으로도 충분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것만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과연 「자본론」의 핵심이 1권의 상품 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엥겔스도 1권은 독립적인 저작이라 간주될 수 있다고 1권의 영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품에서 시작하는 맑스의 분석은 뒤로 갈수록 그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마지막인 3권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게 된다. 즉 1권에서는 자본이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부터 고찰되며 3권에 가서야 현실의 자본의 운동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론」은 이론적인 텍스트라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초기 자본주의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들은 「자본론」을 1권 밖에, 그것도 완전히 읽어 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기가 쉽다. 여기에서 나는 「자본론」은 낡은 것이 아니라는 낡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자본론」 1권과 2권의 통찰은 각각 탁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자본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즉 여러 가지를 전제하고 여러 가지를 배제한 상황에서의 분석이다. 이를테면 1권에서는 자본의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서는 만들어진 상품이 모두 판매된다거나 하는 전제 하에서 자본이 고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만약 「자본론」의 독자들이 3권에 이르게 된다면 1, 2권과는 다른 「자본론」의 현대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론」을 읽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별다른 지장이 없는 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방대한 분량, 쉽지 않은 내용의 「자본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게다가 오해 없이 읽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나도 그랬고 팀 동료들도 그랬지만 「자본론」을 읽는데 한 시간에 10여 쪽을 넘기가 힘들며, 그렇게 읽어도 정확하게는커녕 그 내용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전까지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자본론」의 성격상 「자본론」을 다룬 책은 많지만 실제로 「자본론」을 읽어 나가면서 참고할만한 과외 선생님 격의 참고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하여 「자본론」 읽기를 기왕 설정해 놓은 다른 수많은 해야 하는 일들 중에 하나로만 대한다면, 책은 조만간 책상 한 구석에 처박히게 되고 ‘1권의 상품 분석’ 운운하는 말을 하게 되기 십상이다.

조금 일반화가 심할 수도 있지만 「자본론」을 실제로 접한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이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자본론」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혼자 읽기 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읽을 것을 권한다. 공부로든 일로든 혹은 놀이로든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기왕 같이 읽을 거면 숙련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점에서 나의 노사과연 세미나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자본론」을 공부하는 곳이 노사과연 하나는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노사과연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엄숙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은 분위기 속에서 자칫 흐려지기 쉬운 「자본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지속하게 해준 좋은 요건을 노사과연은 가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 역할의 팀장(사실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과 「자본론」을 이미 접해본 사람, 나처럼 「자본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시너지 효과는 생각보다 상당하다. 게다가 대학 학부생과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노동자 등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좋은 요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과연은 학생 노동자 할 것 없이 어떤 사람이든 들어설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리고 뒤풀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 노사과연을 단지 공부하기 위해 다니는 곳으로만 한정지으려 했고, 뒤풀이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잘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본론」이 죽은 텍스트가 아니요 이 사회와 나의 삶에 맞닿아있는 책인 만큼, 「자본론」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과 의문들이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자본론」 읽기는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는데, 세미나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만큼 거기에서 모든 의문들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의문들, 그리고 세미나가 끝난 뒤에야 떠오르는 생각들을 해소하는 데 뒤풀이는 정말 큰 기여를 했다.

물론 모임이 책을 대신하여 읽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맑스는 1권 제1판 서문에서 "무엇이건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며 따라서 또 독자적으로 사색하려는 독자들"에게는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하고 "이 책을 어렵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1권 프랑스어판 서문에서는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절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엥겔스는 3권 서문에서 “과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이용하려는 저서를 저자가 쓴 대로 읽는 법과 더욱이 저서에 없는 것을 읽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경고했다. 「자본론」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렵고도 반드시 새겨야할 말일 것이다.

지금까지 도움을 준 팀장님과 세미나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거듭 드린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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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 「자본론」 3권 세미나 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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