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상은 살아있는 강철이어야 한다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제국주의론, 민족주의 및 기회주의의 온상


한국 사회의 1980년대를 달구었던 그리고 현재 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론은 기본적으로 쏘련의 교과서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시각이었다. 소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트로츠키주의 그리고 레닌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평의회의 견해도 제국주의적 틀을 넘어서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민주노총 및 민주노동당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민족주의자들은 1980년대 지금은 누구나 웃어넘길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에 입각해 있었다. 소위 민족해방계열(NL)인 이들은 설명력이 떨어지는 자신의 반(伴,semi)봉건사회론을 반자본주의사회론으로 바꿔치기하며 생명을 부지하려고 했으며, 이후에는 그마저 곤란하자 한국이 식민지인 이유를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기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현재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계급적 진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쪽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는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제국주의적 틀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자본주의가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제국주의에 종속이 심화된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 이후 현재 계급적 진영에서 한국 사회와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맑스-레닌적 전통에서 유물론적으로 발전시킨 견해는 없는 듯하다. 어쨌든 한 때 맑스-레닌에 이용해서 과학적으로 치장하려고 했던 식민지-제국주의적 관점은 더 이상 양성적으로는 체계화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악성종양처럼 계급적 투쟁의 영역에서 반미, 반전, 자유무역저지투쟁, 그리고 제국주의론의 파국론적 관점으로 만개하고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체계적인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감상적 신념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런 폐해가 바로 한국노동운동의 계급적 실천을 가로막고 민족주의적이고 계급협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상의 온상이다. 구체적으로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그리고 다시 민주노총위원장에 출마한 전수석부위원장이었던 이석행이 범자민통계열이다. 다시말해 1980년대 후반의 민족해방계열(NL)의 자주․ 민주․ 통일을 외치면 계급적 투쟁을 훼손했던 그 자민통이 2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민주노총을 장악하고 계급적 투쟁을 훼손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여전히 말아먹어 왔던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설명하는 민족해방계열 특히 자민통이 민주노총뿐만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주도세력이라는 것은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의 참담한 현실을 설명해는 것이며, 계급운동 진영의 현실적이자 이론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시다시피 2년전 당직선거에서 자민통은 자신이 최대정파인 장점과 선거의 취약점을 적절히 활용해서 대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1자리를 제외하고 사무총장, 최고위 8자리를 자기 정파 사람들로 싹쓸이하면서 당권을 장악했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 2년은 자민통의 노선과 활동방식이 당 내외적으로 시험 받은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자민통 최고위원들은 선출직을 제외한 주요 임명직에 자민통 당원들을 전진 배치하고 국보법 올인투쟁, 통일행사나 반미투쟁에 대한 집중, 전선체적 노선에 따른 대외적 연대투쟁 중시 등 자민통 노선을 구현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저는 20년이 넘게 흘러도 단 한치도 업그레이드 되지 못하고 있는 자민통 노선에도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보지만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노선을 관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데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는 최고위원들, 일장기를 불태우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호전적 쇼비니즘을 선동한 학생위원회, 지역주의에라도 기대어 표를 얻고자 지역주의 보수 정치인을 후원인에 앉히고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큰 소리치던 최고위원,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자민통 당원들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PD수첩이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프락치라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상케하는 쇼비니스트적 소설을 잠깐이나마 대문으로 장식했던 기관지위원회 위원장, 편집장, 기자들 역시 자민통이고 말입니다.”1)


그렇다고 해서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계급적 진영이 이들보다 나을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들 조차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를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 및 제국주의 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거론하면서 세계는 아직도 제국주의체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론하며 여전히 제국주의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10월에 핀 장미꽃을 가리키며 5월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이보다는 그들은 여전히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연연해, 맑스와 레닌의 과학적 사상을 발전시키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를 자본주의 발달을 반영하는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고, 레닌이래 맑스주의의 성장을 질식시키는 교조주의자들에 다름 아니다. 그들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집착하는 것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단계이며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레닌의 혁명적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스탈린의 전반적 위기론과는 달리, 오히려 기존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자본이 그 어느 때보다 팽창하고 있는 현실은 그들의 집착이 오류임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기존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에 직면하여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에 직면하여 이제 정말로 무엇이 문제였던가 냉정하고 또 냉정한 분석을 해야 할 마당에, 과학을 신념의 영역으로 바꾸는 교조주의자들이 과학적 사상의 생명력을 질식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수정주의적 조류로 흐르는 동지들에거 보여지는 것처럼 스탈린주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서 트로츠키를 수용하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며, 레닌에게 문제를 떠넘기면서 좌익평의회주의를 수용하는 식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론에 대한 교조적 추종이 아니라 과학적인 현실적 분석이 필요하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역사적 한계성에 대해서는 이미, 정세와 노동 8월호에 부분적으로 실었었다. 다시말해 자본주의 역사 발전의 한 국면에 타당했던 레닌의 현실적 분석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의 권위를 숭배하면서, 필자의 견해에 대한 비판을 해왔으며, 노사과연의 전성식연구위원도 그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명백히 달라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왜곡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시대의 차이를 무시하고 변화된 시대에 레닌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끼워맞추는 교조주의자들이, 실상 레닌이 당시 현실을 분석하여 체계화한 내용을 왜곡하는 반레닌주의자임을 폭로할 것이다. 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전성식연구위원의 견해에 대한 반박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할 것인데, 그것은 전성식연구위원이 교과서적인 교조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 교조주의자들의 레닌의 현실분석 왜곡 1: 분할된 독점적 시장을 위한 영토적 점령, 그것 없는 제국주의라는 망상


“자본주의 역사발달의 현시점은 레닌의 제국주의이론의 타당성을 1945년으로 제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저히 혁명적이고자 했던 레닌의 이론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이후 진행된 부차적인 현상들이 아직도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그대로 인정하려고 한다. 예컨대 후자와 관련해서 1945년 이후의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인 분위기에 밀려 이루어진 국가 기간산업의 대기업 국유화는 레닌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타당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1960년대까지 남아 있던 식민지들은 제국주의가 여전히 타당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1945년 이후에 레닌시대의 고유한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등이 사라졌으며 뿐만아니라 전세계적인 경쟁이 진행되었다는 사실 더 나아가 1970년대 후반에 다시 국유기업의 민영화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레닌의 개념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익기회주의 이론에 반대하는 원론적 이론가들 그리고 교조주의자들이 신식민지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현 세계자본주의를 제국주의 시대로 규정지을 수 없으며, 전지구적 무한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쟁의 중단으로서의 레닌의 독점을 개념 규정할 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일국내에서 대기업의 독점적 횡포가 있지만 동시에 그런 대기업은 전세계적 기업과 경쟁체제에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레닌이 말하는 독점이 아니라 맑스가 말한 자본의 독점적 경향에 따른 자유경쟁이 존재할 뿐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제국주의적 침략행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제국주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제국주의 시대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또한 이라크 침공이 제국주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인식해야 한다.”2)


필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요점은, 식민지가 사라지고, 자본주의 국가들간의 식민지 쟁탈전 등의 제국주의적 현상이 없어지고, 오히려 유럽공동체가 형성되어 확대일로에 있으며,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현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더 이상 (신)식민지-제국주의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이 강화되고 있는 현시점을, 레닌이 규정한 제국주의 즉, 사회혁명의 전야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러운 정세인식이라는 점이다.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거론하면서, 현재를 제국주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인식의 부족을 의미할 뿐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것을 가지고 현재를 여전히 제국주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전 세계가 식민지로 분할되어 수탈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 간에 식민지 쟁탈 위해 초래된 1・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던 시대를 동렬에 놓는 몰역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이라크에 대한 침략이 영토적 점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식민지 확장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 또한 그렇다. 다시말해 전세계가 식민지로 분할되었던 수많은 제국들이 존재하던 제국주의 시대와 제국이라고는 전혀 없는 현재를 동등하게 제국주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히려 현재 미국의 침략행위는 제국주의 시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시대이며,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여실히 드러내놓는 시대이다. 자본주의 역사에 전혀 무지한 몰개념적인 다함께류의 도덕적 감상주의자들만이 전세계의 식민지로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양차대전의 시기를 현재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동렬에 놓을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간 전쟁은 국민국가 형성시기의 전쟁, 맑스가 자본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초기 자본축적을 강화하기 위한 식민지 전쟁, 그리고 일국적 축적의 포화상태로 진입한 레닌이 정의한 ‘독점단계’의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1945년 이후의 베트남전쟁 및 현재의 이라크 전쟁 등 전쟁은 그 자본주의의 경제적 발달단계에 따라 다른 질을 가지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의 시대의 전쟁은 주기적 과깅생산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외부로 전가시키기 위한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압살하기 위한 계급전쟁이지, 독점적인 식민지 시장확보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는 점만을 지적하겠다3).

그리고 현재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가지고 제국주의시대로 규정하려는 것은 레닌의 견해와도 철저히 위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1873이전에 이미 영국 등이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73년 대공황을 지나서 1900-3년 이후를 제국주의 시대로 규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존의 계급적 진영이 견지했던 (신)식민지적 제국주의론에서는 영토적 점령 없는 경우를 현대의 제국주의로 선전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선 먼저 기존의 전통적인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제대로 극복되지 못한 교조적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적 견해를 살펴보자.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의 붕괴는 세 대륙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를 거준 것의 영향과 민족해방운동의 강력한 일격에 의해 성취되었다. 제국의 정치적 형태는 잔존하지 않으며, 식민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부르조아 및 수정주의 경제학 문헌들에 ‘제국없는 제국주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등과 같은 개념이 유포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타영토의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지 않는 제국주의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제국주의는 더 이상 상 전일적인 지배체제일 수는 없게 되었고…신식민지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들로 하여금 구식민지에서 착취의 규모와 강도의 증대를 가능케했다. …신식민지주의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대한 제국주의 적응형태이다.”4)


짜골로프라는 1980년대말 한국 계급적 운동진영에 널리 읽혀졌던 쏘련 관변경제학자의 분석은 위와 같다. ‘제국의 정치형태는 잔존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식민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영토적 점령없는 즉 식민지 없는 자의적인 제국주의론을 주장한다. 이런 점은 1980년대 당시 거의 모든 맑스주의자를 자처했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5). 레닌은 그 어디서도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를 얘기한 적이 없으며, 이것은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한 규정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시하고 왜곡하고 있는데, 이점에서 전성식 연구위원도 그러하다. 전성식 연구위원이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한 레닌의 제국주의적 규정을 보자.


“만약 제국주의를 가능한 한 보다 간단히 정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제국주의란 독점적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한다. 그런 정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독점적인 산업자본가 동맹들의 자본과 결합한, 독점적으로 소수인 최대 은행들의 은행자본이며, 다른 한편으로 세계분할이란 어떠한 자본주의 열강도 점령하지 않은 영토들에서 방해받지 않고 확대하는 식민지정책으로부터 구석구석까지 분할된 지구의 영토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려는 식민지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간단한 그 정의가 비록 근본적인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만약 그것으로부터 정의해야 하는 현상의 매우 본질적인 특징들을 하나하나 끌어내야 하는 경우에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정의란 모두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며, 완전히 전개된 어떤 현상을 둘러싼 모든 측면의 관계들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서 아래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특징들을 포함하는 제국주의에 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1)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2)은행자본이 산업자본과 융합하여 ‘금융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3)상품수출과는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4)국제적 독점자본가단체가 형성되어 세계를 분할한다. (5)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6)


제국주의 시대란 바로 독점에 입각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영토적 분할 혹은 점령이 없는 제국주의란 레닌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닌주의라는 작자들이 레닌주의를 그대로 지킨다는 미명하에 레닌주의를 왜곡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성식연구위원은 여타 교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레닌의 이런 세계분할에 대한 규정이 약화(?)되어도 타당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식민지가 사라진 현재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김의 주장을 검토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레닌이 언급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한 현상이 충분히 발전된 상태에서 그것의 모든 연쇄를 완전히 포괄할 수는 없다는, 모든 정의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잊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다섯 가지 기본적 특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번째 특질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7)


레닌은 당시의 현실적인 분석의 결과를 통해서 다섯가지 지표가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다섯가지 지표를 얘기하기에 앞서 가장 근본적인 정의를 세계분할과 연결시켜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정의에 내포되고 있는 특징을 단지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조주의자의 자기기만일 뿐이다. 불균등발전이론과 맞물려 영토적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내용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구성하는 핵심중에 하나이며, 열강간의 세계분할이라는 제국주의론의 한 장을 할애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에도 가볍게 ‘약화되었다’며 무시한다.


“최근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은 거대 기업가들의 독점적인 동맹들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독점들은 모든 원료산지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을 때에 무엇보다도 견고하며 우리는 자본가들의 국제적인 동맹이 경쟁자들로부터의 모든 종류의 경쟁 가능성을 제거하는 데에, 예를 들어 철광석 매장지나 유전 등등을 매점하는 데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지를 보았다. 식민지 소유 하나만으로도 경쟁자와의 투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우연들 - 상대방이 국가독점에 대한 법률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그러한 우연까지도 - 에 대한 독점의 승리가 완전히 보장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원료의 부족이 심하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전세계에서 원료산지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과 추구가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된다.”8)


레닌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조건 - 즉 ‘선진적’이고 ‘문명화된’ 식민열강들에 의한 자본수출과 세계분할 - 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유럽합중국은 자본주의하에서 불가능하거나 반동적이다.9)


그런데 약화되었다고? (영토적 점령이란 단순히 영토적 점령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의미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의 경제적 수탈을 위한 특징적인 방식이라는 점이다. 제국주의란 이처럼 식민지확보를 통해서 해당지역을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원료생산지와 생산물 판패처 그리고 해당지역 대중들에 대한 독점적인 공물 수탈지로서 역할을 한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시장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구호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세계시장에 대한 배타적인 분할이 존재하는 가? 오히려 정반대다. 세계시장이라는 공동의 판매처를 두고 초국적 자본과 일국의 중소자본 그리고 초국적 자본간에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동일한 시장으로의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 상호간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 자국 자본주의 주요국들 간에 상호 자본수출의 증대 상호 상품수출을 진행시킴으로써 동일산업에서의 무역의 증대라는 특유의 현상을 낳기도 하고 있다. 현재 자본의 구호는 전세계적 자본투자와 공동의 시장을 놓고 쟁탈을 벌이는 무한경쟁이다.)


도대체 레닌이 제국주의는 배타적 영토적 점령과 독점적시장으로의 식민지분할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성식 연구위원은 1980년대 교조주의 자기적응적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이 지극히 당연시하고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식민지 영토점령이라는 제국주의의 기본특징을 무시하고서 제국주의론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레닌의 현실분석과 원칙적 주장을 무시하는 교조주의자들이란 다름 아닌 반레닌주의자인 셈이다. 그런데 기존의 교조주의자들과 달리 전성식연구위원은 놀라운 파격적인 주장을 덧붙인다. 다시금 식민지 점령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은 (5)의 특질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을 의미할 뿐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과 일본이 전쟁에서 복구되며 전후 재분할의 상징인 IMF체제의 붕괴와 현실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재분할의 조짐이다."10)


그런데 이건 앞뒤도 맞지 않는 주장인데, 이미 세계가 식민지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분할되어 있는 경우에만 재분할될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서 분할되어 있지도 않는데, 어떻게 재분할될 수 있는가? 또한 그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앞으로 일어날 ‘재분할 조짐’을 가지고, 거꾸로 현재의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약화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전성식연구위원은 다른 교조주의자들처럼 레닌이 완전히 영토를 점령한 식민지 말고 반식민지도 존재한다는 말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이 마치 레닌이 단초로 남겨두었던 제국주의이론을 발전시킨 것처럼 말한다. 레닌주의의 희화화의 백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반식민지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이다. 아니 식민지라는 개념에 맞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데 반식민지는 무슨 놈의 반식민지인가. 레닌은 영토적 점령과 분할을 전제로 한 과도적 형태로 반식민지를 말했던 것이지, 결코 영토적 점령이 전혀 없는 반식민지 혹은 신식민지체제를 얘기한 적이 없다11). 아집이 낳은 망상이라고 하겠다.

지나가는 김에 말하자면, 현재를 제국주의시대는 아닌데 제국이라고 규정하는 네그리를 중심으로하는 사이비 맑스주의가 유행하고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자 한다. 속칭 탈근대론자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맑스와 레닌을 거론하고 있으나, 맑스주의의 기본인 노동가치론을 폐기하고 잉여노동을 통한 잉여가치 착취를 부인하면 맑스주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모순에 입각한 사적유물론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일고의 가치가 없는 자이다12). 탈근대론이 객관적으로 이미 지적사기라는 사실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빌붙어 부패하고 굴종해가는 왜곡된 사회과학의 정신병리현상이다.



2) 자본의 세계적 축적의 시대, 자본지배의 강화와 새로운 사회로 이행의 물적토대

-교조주의자들에 의한 레닌의 독점에 대한 견해를 왜곡하다.


사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특징은 영토적 점령을 통한 배타적인 시장으로서의 식민지분할이라기보다도 그의 독점단계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맑스시대의 자유경쟁시대의 자본주의가 1873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독점단계로 변화한다고 주장했었다. 레닌은 당시의 기업결합이라는 독점이 만연한 엄연한 현실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주의 역사의 특수한 국면, 즉 자본이 세계시장을 공동시장으로 놓고 초국적 경쟁하는 시기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특수한 위기국면을 체계화하였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은 이런 레닌의 구체적인 현실분석에서 나온 사실을 깡그리 무시한 채, 현재를 레닌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독점에 입각한 제국주의라고 강변한다. 레닌이 주장했던 독점단계에 대한 아래의 현실분석이 현재와 같은지 독자들이 판단해보라.


“독일의 경우 카르텔의 수자는 1896년에 약 250개였고 1905년에는 385개로 대략 1만 2천개의 기업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들 수자가 과소평가된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위에서 인용한 1907년도 독일 산업통계의 수치가 명백히 보여주듯이, 그 1만 2천개의 대기업만도 증기력과 전력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트러스트의 수자는 1900년에 185개, 1907년에 250개로 산정된다. 후자는 1904년에 총 노동자수의 70.6%, 1909년에는 75.6% 즉 3/4를 고용했다. 그리고 생산액은 109억 달러와 163억 달러, 즉 총생산액의 73.7%와 79.1%였다.”13)


그런데 우선 레닌이 말한 자유경쟁의 대립물로서의 독점이란, 그리고 독점인 한에서 자유경쟁의 중단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타 교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전성식연구위원은 필자의 ‘자유경쟁의 중단’이라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레닌은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므로 필자가 오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예컨대 다수의 기업들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하나의 트러스트 그리고 신디케이트 혹은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그 기업들간에는 자유경쟁이 배제된 것이고 중단된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그 경쟁중단이 바로 기업결합 독점의 목적이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은 레닌동지는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되풀이할 것이다. 단지 여기서는 레닌 스스로 언급한 자유경쟁의 배제와 중단 그리고 종식을 인용함으로써, 그들의 말꼬리조차 헛소리임을 지적하도록 하겠다.


“ 모든 면에 있어서의 반동화, 그리고 금융과두제의 압제 및 자유경쟁의 배제와 관련된 민족억압의 강화가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이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 - 민주주의적 반대세력이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1907년에 미국 트러스트와 독일 트러스트 사이에 세계의 분배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경쟁은 제거되었다.


“물론 독점은 자본주의 시대에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완전히 제거할 수는 결코 없다(바로 여기에 초제국주의 이론이 터무니없다는 원인들 중의 하나가 존재한다). 결국기술 개선의 도입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올릴 가능성은 변화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독점에 고유한 정체되고 타락하는 경향은 그것대로 계속 작용하며, 그것은 개별 생산분야들과 개별국가들에서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절정에 이른다.”14)



물론 레닌이 ‘자유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교조주의자들이 몰개념적으로 암기하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레닌이 의미하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 경쟁의 제거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경쟁제거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세계분할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그리하여 경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독점체들간에 세계분할이 다시금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 불과하다. 그리고 둘째로 레닌이 이런 말을 한 것은 교조주의자들이 망상하는 것처럼 당시 경쟁이 일반적으로 허용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로 당시 자본간 경쟁중단이 너무도 일반적이고 극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레닌조차 인용했던 힐퍼딩 등이 자본 전체간에 경쟁이 완전히 중단되고 전세계적 계획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제기했고, 위대한 혁명가인 부하린조차 경제적이라는 단서하에서는 힐퍼딩이 옳다는 주장할 정도로 경쟁이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5) 어쨌든 레닌의 말대로 당시 다수의 기업이 자유경쟁을 하는 대신에 생산량을 상호간 조절하고 이윤을 상호간 분배하며 가격을 상호간 담합하였다. 그리고 레닌 시대의 국제적 독점은 독점체들간에 세계적 시장분할을 통해서 그들 내부에서 경쟁을 종식시켰다.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 새로운 국면 혹은 단계로의 진입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맑스시대 자유경쟁이 일반적적인 상황과는 다른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레닌은 그것을 제대로 지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는, 제국주의시대 레닌이 불가능하리라던 유럽합중국이 완성되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카르텔 및 트러스트는 근본적으로 옛 이야기가 되었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지배했던 동일한 20년간(-45년 이후) 시장을 격리시켰던 관세와 무역장벽들은 사라졌다. 무역규제가 있던 곳은 신생국들 경제의 성장과 원활함을 증대하기 위한 법률이 있던 지역들에서 종종 있었을 뿐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양차대전 사이에 보였던 자급적 경제정책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1957년 로마조약으로부터 시작된 유럽공동체의 형성은 유럽 제조업자들에게 이전에는 미국에나 존재했었던 거대시장에 비견되는 거대하고 급속히 확대하는 국내시장을 창조했다.

무역장벽의 축소와 함께 전쟁전의 카르텔과 기업간 계약협정들을 붕괴되었다. 자유무역과 경쟁이라는 미국의 경제강령의 기본적인 교리가 해외로 퍼져나갔다. 전승국인 미국은 독일에서 카르텔을 해체하고 I.G.Farben과 VSt를 주요부분으로 분할했다. 그리고 1956년 영국의회는 기업협정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기업협정을 통한 시장장악의 법률적 경제적 효력에 대해서 처음으로 공격을 하였다. 곧 유럽공동체도 확대된 대륙시장에 대한 동일한 역할을 하는 일련의 법률을 발달시켰다.16)


위에서 인용한 경향은 더더욱 확대되어 전세계적인 아웃소싱과 전세계적인 자본간의 초국적 경쟁이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객관적인 독자라면 분명 레닌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제국주의요, 동일한 독점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눈을 감는 행위이며, 노동자계급대중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전성식연구위원은 자동차 업계 등 몇 개 산업부문의 소수거대기업을 거론하면서, 지금은 동일산업내의 기업들이 결합하는 트러스트 형태 및 다양한 사업부문의 기업들이 결합하는 콘체른(신디케이트) 형태가 지배적인 독점이며, 이는 레닌시대와 동일하다는 전형적인 기존주장을 되풀이 한다.17) 기업들간의 경쟁의 가속화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 등의 집중화과정과, 레닌 당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들이 인위적인 결합을 통해 생산량과 가격 그리고 이윤까지 통제하던 것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레닌의 독점이론을 왜곡하는 것이다. 논점의 핵심은 현대의 자본이 기업결합을 통해서 그리고 협정을 통해서, 시장을 자기네들끼리 분할하고 경쟁을 제한하고, 이윤을 분할하는 경쟁의 대립물로서의 독점인지 여부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동일한 하나의 자본이 사업다각화를 하는 재벌형태를, 다양한 사업부문의 자본이 경쟁을 포기하고 하나로 합치는 콘체른으로 보는 것은, 마치 일몰과 일출이라는 정반대의 것을 똑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피상적인 것이며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또한 레닌은 앞서 인용한 것처럼 당시 국제 트러스트에 대해서 말하면서 경쟁이 제거 혹은 종식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데, 현재 국제적 초국적 기업들간에 경쟁을 종식키니는 협약이 일반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의 더 큰 잘못은 두 시대가 전혀 다른 논리와 다른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점’이라는 단어로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3) 레닌주의적 견해에 대한 왜곡 3.

사멸하는 제국주의적 착취시대와 전세계적 자본이 강화되는 시대를 동일시하다.

이들의 폐해는 무엇보다도 레닌의 독점개념을 왜곡함으로써 결국, 레닌의 제국주의시대와 다른 현재 전세계 공동시장을 놓고 벌이는 초국적 자본의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세계적 축적시대의 차이에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다. 전성식연구위원이 독점의 예로 들고 있는 세계 자동차업에서 미국시장에 대한 일본자동차의 지속적인 잠식이 벌어지며, 그로 인해 GM과 포드가 몰락한다 안한다고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GM은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중국 및 한국을 비롯한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생산을 세계적으로 생산을 확대해가는 아웃소싱하고 있는 데, 이것은 다른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지다. 요컨대 제국주의 시대 독점과 같은 경쟁제한하는 기업결합은 사라졌으며, 독점적인 원료와 상품 판매처로서의 식민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적 경쟁과 축적의 새로운 시대이며,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적 축적은 새로운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주요 자동차업체의 세계화 현황(03년)

업체명

해외

자산순위

자산

판매

고용

해외

전체

해외

전체

해외

전체

포드

3

174

305

61

164

139

328

GM

4

154

449

52

186

104

294

도요타

8

94

190

87

179

89

264

VW

18

59

150

71

97

160

335

혼다

19

53

78

54

70

93

132

BMW

25

45

72

35

47

26

104

DCX

28

42

225

55

154

77

362

피아트

29

42

79

36

53

89

162

자료: UNCTA, World invest Report 2005


이런 점은 이미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이, 초국적자본은 ‘1968년에 세계 초국적 자본은 총 7,276개였는데, 1990년대 말 39,750개로 급증하였다. 세계적 자본의 집적을 주도하는 이들 초국적 자본에 의한 생산은 더욱 증대하고 있다. 세계 초국적 자본이 판매하는 매출액은 1980년에 3조 달러에서 1999년 14조 달러로 증가하였는 바, 전세계 수출의 2배를 차지하는 액수다. 그리고 이들 국제적 생산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1982년에 1/20에서 1999년에는 1/10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18) 아래서 초국적 자본의 해외자회사 수를 보라.


주요지역의 최근 모기업과 자회사의 수

국가/구분

모기업의 국가

자회사가 위치한 국가

%

%

선진국가

48,791

76.9

94,269

13.7

EU:

32,096

50.6

52,673

7.6

오스트리아(97)

896

1.4

2,464

0.4

벨기에&룩셈부르크(97)

988

1.6

1,504

0.2

덴마크(98)

9,356

14.7

2,305

0.3

핀란드(98)

1,200

1.9

1,491

0.2

프랑스(98)

1,695

2.7

9,494

1.4

독일(98)

8,492

13.4

12,042

1.7

그리스(91)

n/a

n/a

798

0.1

아일랜드(98)

39

0.1

1,140

0.2

이탈리아(97)

806

1.3

1,769

0.3

네덜란드(93)

1,608

2.5

2,259

0.3

포르투갈(99)

1,100

1.7

3,500

0.5

스페인(98)

857

1.4

7,465

1.1

스웨덴(99)

3,965

6.2

3,759

0.5

영국(98)

1,094

1.7

2,683

0.4

미국(97)

3,387

5.3

19,103

2.8

일본(98)

4,334

6.8

3,321

0.5

개발도상국가

12,518

19.7

355,324

51.5

중국(97)

379

0.6

235,681

34.2

중앙및동유럽

2,150

3.4

239,927

34.8

세계전체

63,459

100.0

689,520

100.0

자료: UNCTAD(2000)


지금 자본주의가 레닌이 말한 배타적으로 시장을 독점적으로 분할하는 국면과는 다르게, 세계공동시장을 놓고 초국적 생산을 벌이는 시대는 세계적 생산력의 증대를 수반하는 자본강화의 국면이다. 또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래 생산지를 이전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면서 노동자계급을 압박해가는 자본의 상승국면이다. 20세기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중국을 반식민지로 삼아 자본을 수탈하던 때와, 현재 수많은 초국적 자본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결과 세계 경제 4위로 도약하고 있는 상황이 동일하다는 말인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상황이 현재 ‘미제가 한국을 신식민지(?)’로 만들어 세계 10대 부가가치 생산을 하게 된 것이 동일하다는 말인가? 타조는 머리를 모래속에 파묻지만,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의 권위에 정신을 파묻고 자기위안을 삼는다.



2004년 세계 경제규모(단위, 억달러)

국가

미국

일본

독일

중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

캐나다

스페인

한국

총생산

124,857

45,713

7,973

22,248

22,014

21,058

17,661

11,302

11,265

7,930

자료: IMF. 단위 억달러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점은 이전에 식민지였던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 급격히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제국주의적(?) 초국적 기업들이 존재할 정도이다. 예컨대 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기차도, 영국의 자동차회사 MG로버사를 인수하고, 2004년 현재 이미 유럽과 미주 및 아시아 지역에 70개의 합작기업을 설립하였다. 이런 사정이 비단 중국뿐인가? 한국의 초국적 자본인 현대자동차은 미국 알라바마에 공장을 세웠고, LG전자가 미국의 최대 TV제조업체인 제니스를 인수했고, 삼성은 세계굴지의 초국적 자본임에도, 한국을 미국의 신식민지니 식민지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가능한가. 말레이시아도 그리고 인도도 그렇게 변했지 않은가? 이와 같이 개도국에서 축적된 초국적 자본의 존재는 제국주의-식민지 구도의 레닌시대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아래는 개도국의 상위 25개 초국적 기업 현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국적 자본의 국적이 개도국이건 선진국이건 모두 전세계적 생산 증대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현재 상위 25개 개도국 비금융 초국적 기업(단위 백만달러, 노동자수)

자산

판매

고용

자회사수

순위

기업

국적

산업분야

해외

전체

해외

전체

해외

전체

해외

전체

1

Htchison Whampoa Limited

홍콩

다양

59 141

80 340

10 800

18 699

104 529

126 250

1900

2350

2

Singtel Ltd.

싱가포르

통신

17 911

21 668

4 672

68 848

8 642

21 716

23

30

3

Petronas-Petroliam Nasional Bhd

말레이지아

정유

16 114

53 457

8 981

25 661

3 625

30 634

167

234

4

Samsung Electronics Co. Ltd.

한국

전자 전기

2 387

56 524

41 362

54 349

19 026

55 397

80

89

5

Cemex S.A.

멕시코

건설 장비

11 054

16 021

5 189

7 167

17 051

25 965

35

48

6

America Movil

멕시코

통신

8 676

13 348

3 107

7 649

8 403

18 471

12

16

7

China Ocean Shipping (Group) Co.

중국

운송 보관

8 457

18 007

6 076

9 163

4 600

64 586

22

56

8

Petroleo Brasilekro S.A.

브라질

정유

7 827

53 612

8 665

42 690

5 810

48 798

13

79

9

LG Electronics Inc.

한국

전기전자장비

7 118

20 173

14 443

29 846

36 268

63 951

134

151

10

Jardine Matheson Holdings Ltd

홍콩

다양

6 159

8 949

5 540

8 477

57 895

110 000

16

23

11

Sappi Limited

남아공

종이

4 887

6 203

3 287

4 299

9 454

16 939

115

456

12

Sasol Limited

남아공

화학

4 226

10 536

5 033

9 722

5 643

31 150

21

25

13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

중국

정유

4 060

97 653

5 218

57 423

22 000

1167129

119

204

14

Capitaland Limited

싱가포르

부동산

3 936

10 316

1 449

2 252

5 033

10 175

2

61

15

City Development Limited

싱가폴

호텔

3 879

7 329

703

930

11 549

13 703

228

275

16

Shangri-La Asia Limited

홍콩

호텔

3 672

4 743

436

542

12 619

16 300

29

31

17

Citic Pacific

홍콩

다양

3 574

7 167

2 409

3 372

8 045

12 174

2

3

18

CLP Holdings

홍콩

전기, 가스,수자원

3 564

9 780

298

3 639

488

4 705

3

11

19

China State Constructing Engineering

중국

건설

3 417

9 677

2 716

9 134

17 051

121 549

28

75

20

MTn Group Limited

남아공

통신

3 374

4 819

1 308

3 595

2 601

6 063

6

16

21

Asia Food & Properties

싱가폴

음식 음료

3 331

3 537

1 232

1 273

32 295

41 800

2

4

22

Flextronics International Ltd

싱가폴

전기 전자

3 206

5 634

4 674

8 340

80 091

82 000

92

106

23

Comphina Vale Rio Doce

브라질

광산

3 155

11 434

6 513

7 001

224

29 632

16

55

24

YTL Corp. Berhad

말레이지아

공공사업

2 878

6 248

489

1 060

1 518

4 895

24

115

25

Hon Hai Precision Industries

대만

전기 전자

2 597

6 032

4038

10793

78 575

93 109

25

33

자료:UNCTAD


세계시장의 분할과 생산량통제를 통해서 경쟁을 제한하는 그리하여 자본의 축적을 저지하는 반동적인 사멸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전세계로 생산을 팽창하는 진보성을 담보함으로써, 아직 자신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자본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현재 자본의 지배가 강력한 것은 바로 이런 물질적인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역시 제국주의 시대의 금권세력들에 기반한 기생적 착취의 방식과는 상이하다. 당시 금권세력 등은 식민지 정부에 강제적인 채권 발행의 차관형식을 통해서 조세를 약탈하는 비생산적인, 그리고 오히려 해당지역의 생산을 억제하기도하는 방식이 주도적이었다. 레닌이나 맑스 모두 이런 식민지적 착취 모두 기존 봉건적인 생산관계를 파괴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이식시키는 진보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제국주의의의 기생성과 반동성을 폭로했었다. 금융자본의 주도하에 국가적 폭력을 이용하여 한 나라의 국민 전제를 상대로 한 수탈, 그리고 그 공물에 입각해서 기생적으로 존재하는 제국주의의 시대와 현재의 초국적 자본에 의한 생산이 아웃소싱되는 시대는 상반된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약탈의 방식은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반동적인 것이기도 했으며, 결국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불가피하게 철회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미 맑스는 제국주의적 약탈적 방식이 결국 자본주의 발전 법칙에 따라 현지 생산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다.19)


“그 때까지는 인도를 자신의 영지로 바꾸어 버린 금권귀족과 인도를 그 군대에 의해 정복한 과두지배자들, 그리고 인도에 자신의 제품이 넘치도록 만든 공업가들, 이 3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었다. 그러나 공업계의 이해가 점점 더 인도시장에 의존하게 될 수록, 그들은 인동의 토착공업을 인도에서 새로운 생산능력을 창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도는 한편의 공업가 세력과 다른 한편의 금권귀족 및 과두 지배가 간의 싸움터가 되었다. 영국에서 자신이 우세함을 의시하는 공업가들은 이제 인도에서 이 반대세력들을 절멸시킬 것과, 낡은 인도통치기구 전체를 파괴할 것 및 동인도회사-독점체 인용자-를 최종적으로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0)


그리고 바로 맑스의 분석대로, 현재는 금융자본이 지배하던 레닌의 제국주의적 국면을 지나 초국적 산업자본 세력의 논리가 전세계적으로 관철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다. 다시말해 해당 국민의 조세와 공물을 수탈하는 기생적 착취의 시대인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에 의한 해당지역의 생산의 증대를 통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잉여가치의 착취, 즉 진정한 자본주의적 착취가 관철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으로서 사회주의의 전야라고 했던 제국주의 단계로 규정했던 상황들과 현재는 정반대로 자본이 환한 보름달의 정점에 있는 시기다. 물론 보름달은 기울지만 말이다. 현 시대에 대한 낡아빠진 제국주의와 다른 분석은 다른 실천적인 관점을 갖게 한다. 결론 부분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앞서 현재의 시대가 독점이 아니라면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자.


3. 자본주의 역사는 나선형으로 전진한다.

-일국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애벌레가 세계적 축적이라는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

이처럼 레닌시대의 경쟁제한으로써의 독점과 현재의 초국적 대자본간의 극한을 향한 무한 경쟁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무지요, 현실에 대한 외면이며, 레닌의 독점이론을 자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레닌은 경쟁제한을 목적으로 한 기업결합 없는 그리고 시장분할 없는 또한 협정 없는 그런 독점이론을 주장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들은 레닌의 독점이론의 이론적 한계에 교묘히 집착함으로써 레닌 자신의 독점이론을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소수의 대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현시대를 레닌의 시대와 같은 시대로 왜곡한다. 따라서 먼저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경쟁과 독점을 재정리하고 레닌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현시대를 규정지어보자. 레닌은 자본축적과 관련해서 자유경쟁과 독점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집적이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에 이르면 그 자체로 곧장 독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반세기 전 마르크스가『자본론』을 썼을 때, 자유경쟁은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여졌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이론적․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자유경쟁은 생산의 집적을 낳고 생산의 집적은 그 발전의 일정단계에서 독점에 이른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관변학은 이 마르크스의 저서를 묵계로써 매장해버리려 했다. 그러나 독점은 사실이 되었다. … 생산의 집적에 의해 독점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현 발전단계의 일반적․근본적 법칙이다.”21)


레닌의 이론은 이처럼 자유경쟁이 지배하던 단계가 아니라, 자유경쟁의 결과 이르게 된, 새로운 자본의 단계 즉 독점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이 지속하던 단계와 독점의 단계, 즉 경쟁중단이 일반화 된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보며, 자본축적의 어느 수준에서 자유경쟁의 단계에서 독점의 단계로 이행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다. 그런데 레닌은 자유경쟁의 결과 일정한 집적의 단계에 이르면 독점, 즉 그가 말한 기업결합을 통한 독점에 이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맑스는 레닌과 정반대로 결코 그런 기업결합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위배되어 붕괴되어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료가 등귀하는 시기에는 산업자본가들은 생산을 조절하기 위하여 서로 모여 연합체를 결성하려고 한다. … 원료생산을 공동으로 포괄적으로 장기적으로 통제한다는 사상-이러한 통제는 사실상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과 모순되는 것이며, 따라서 언제나 헛된 희망에 그치고 말든지 또는 기껏해야 직접적인 큰 위험과 궁지에 빠졌을 순간에 예외적으로 취하는 공동조치에 한정되고 있다- 은 수요와 공급이 서로 조절할 것이라는 신념에 자리를 양보한다.” 22)


더욱이 레닌이 독점시대의 출발시기로 잡는 1870년대를 지나 1890년 초반까지 살았던 엥겔스는 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레닌과 정반대로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독점은 자본주의 법칙에 맞을 수 없으며 단명하리라고 주장했다.


“첫째로 일반적 보호관세에 대한 새로운 열광인데, 이것은 수출능력있는 상품을 가장 많이 보호한다는 점에서 옛날의 보호주의와는 다르다. 둘째로 는 생산・가격・이윤을 조절하기 위하여 산업분야 전체의 공장주들이 결성한 카르텔(트러스트)에서이다. 이 실험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제 환경에서만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폭풍이 한 번 불어오면, 이 실험들은 모두 날아가 버릴 것이며, 생산이 조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업을 담당할 수 있는 계급은 확실히 자본가계급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그 때까지 카르텔들의 유일한 목적은 대자본가가 소자본가를 종래보다도 더욱 급속하게 삼키도록 배려하는 것이다.”23)


맑스와 엥겔스가 이런 기업결합을 통한 독점이 자본축적법칙에 전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파악한 이유는, 그것이 자본축적의 외적강제법칙인 경쟁24)을 그 자체로서는 배제하고 중단하고 종식시키려는 허망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일국적 축적이 그 포화점에 다다르고 그에 따라 위기가 심해지자, 위기시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리라고 했던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이 연장되고 일반화되었던 것인데, 이 시기가 바로 레닌의 독점이론이 탄생하고 적용됐던 시기이다. 항상 현실적이었던 레닌은 1873년 이래 맑스와 엥겔스의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어 현실에 직면하여 자유경쟁과 대별되는 독점이 만연한 시대를 자본주의 최종적인 단계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기업결합에 의한 독점에 대해서 맑스와 엥겔스의 관점과 레닌의 관점이 상이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맑스의 견해에 따르면 당연히 레닌의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의 구분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며, 그리고 실제 독점과 경쟁의 전체의 역사를 보더라도 레닌의 구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레닌은 자유경쟁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독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자유경쟁이 먼저이고, 독점이 나중이며, 독점과 자유경쟁은 상이한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경쟁이 지난 모든 단계는 이제 독점으로 간주하는 직선적인 인식이 당여하다는 잘못된 견해를 준다. 그러나 경쟁과 독점의 역사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점은 전성식연구위원이 1945년 이래의 시대를 레닌시대로 규정하려고 인용한 맑스의 글에 드러나 있다. 전성식 연구위원은 레닌과 맑스가 기업결합(독점)에 대해서 상이한 견해를 가졌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맑스를 동원해서 레닌의 경쟁과 독점의 구분을 옹호하려는 데만 골몰한다. 우리는 경쟁과 독점에 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대의 독점은 경쟁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 그러므로 원래적 의미로는 경쟁이 독점의 대립물이었던 것이지 독점이 경쟁의 대립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근대적 독점은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진정한 종합인 것이다.25)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제의 생산방식은 요컨대 고립분산적 경영이라는 낮은 생산력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 봉건제 말 자영농에 입각한 가부장적 자급자족 경제는 시장을 협소화한다. 이런 농촌을 배경으로 한 도시 길드 공업도 또한 장인과 도제를 주축으로 하는 낮은 생산력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협소한 시장은 장인들로 하여금 상호 생산을 제한하는 독점적인 길드(동업조합)를 결성함으로써 값비싸게 공업제품을 농촌에 판매함으로써 수농촌을 수탈하였다. 이들은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기술을 절대 공개하지 않고 비법으로서 그들의 직인 및 도제에게만 전수했다. 이것은 추가적으로 생산의 발전을 정체시키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동업조합에 소속된 장인들은 그들이 고용할 수 있는 도제의 수를 2명으로 제한함으로써 생산량을 통제하였고, 마찬가지 목적을 위해서 도제의 교육 연한을 5-7년으로 정하였다. 이 모든 것이 독점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 데, 그것은 한편으로 낮은 생산력과 그에 따른 협소한 국내시장의 결과였으며, 그런 독점은 다시금 생산력 증대를 저해하고 시장의 확대를 저해하였다. 이런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은 자본주의와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다.26) 바로 산업자본의 논리는 이런 독점의 폐기이자 그 대립물로서의 경쟁이었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은, 이런 산업자본이 완전히 성숙하기 이전 자본주의 초기 발전단계는 상업자본과 고리대자본에 의존해서 축적하게 된다27). 이 비생산적인 고리대(화폐자본)자본과 상업자본의 약탈적인 중세 봉건적 성격은 자본주의 축적의 어린시절에 국제적인 보호무역, 관세, 식민지, 식민지 쟁탈전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15년을 기점으로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독점이 끝나고 영국에서 1846년 곡물법이 폐지됨으로써, 레닌도 말했듯이 1860-70년대 자유경쟁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 요컨대 한편으로 자본주의 경쟁 그 자체는 독점의 대립물로서의 경쟁인 것이며, 다른 한편 그 독점을 내포한 종합으로서의 경쟁이다. 자본의 최후의 일각까지 독점화하려는 집중의 경향, 즉 경쟁이 영원한 것이며 독점은 일시적인 성격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바로 이 경쟁은 자본축적의 강제법칙인 것이다. 요컨대 근대적 자유경쟁은 그 자체가 독점을 내포하며, 독점이라는 극한을 향해가는 끊임없는 경쟁이다.

따라서 애초에 자본주의 근대적 경쟁을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로 구분하는 것자체가 형식논리학적인 오류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경쟁도 독점이요, 독점도 경쟁이라는 절충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예컨대 생명체는 끊임없는 죽음을 내포하면서, 죽음으로 향해갈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즉, 유기체는 끊임없는 신진대사를 통해 자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죽어가는 세포를 대체함으로써 생명체로서 자기를 유지한다. 따라서 생명이란 삶과 죽음의 종합으로써 끊임없는 신진대사라는 운동으로서의 삶이요 생명이지, 삶과 생명이 분리된 정식인 것은 아니며 또한 죽음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자본주의는 경쟁이 독점을 순간 순간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쟁의 법칙이 끊임없이 관철되어가는 경쟁단계의 자본주의다. 이런 독점과 경쟁의 종합으로서의 근대적, 즉 자본주의 경쟁은 맑스 당시 일국적 축적을 중심으로 하던 시기와 현재의 세계적 자본축적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 공히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시대를 독점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맑스시대를 독점자본주의로로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없는 오류인 셈이며, 자본주의 자유경쟁의 본성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다. 맑스의 주장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현실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경쟁, 독점, 이 양자간의 대립뿐 아니라, 양자의 종합을 또한 발견하는데, 이 종합은 운동이지 결코 정식이 아니다. 독점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독점을 낳는다. 독점자는 경쟁으로부터 만들어지고 경쟁자들은 독점자가 된다. 만약 독점자들이 부분적 결합의 수단을 이용하여 그들의 상호 경쟁을 제한한다면, 노동자간의 경쟁이 증가한다. 한 국가의 독점자들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성장하면 할수록 상이한 국가들의 독점가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필사적으로 된다. 종합은 그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독점은 경쟁의 투쟁 속으로 계속적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를 유지시킬 수 있다.28)


따라서 레닌이 규정했던 자본주의 경제를 자유경쟁단계와 독점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특수한 측면에서만 그리고 특수한 역사의 예외적 국면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레닌의 독점시기는 자본주의 경쟁이 정말로 제한되고 중단된 상황,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경쟁법칙이 거의 죽음을 맞이한 단계, 비유하자면 한 애벌레의 썩어가는 변태과정의 시기에 해당하는 특수한 예외적인 시기였으며, 마치 역사가 다시금 퇴행하여 자유경쟁의 대립물로서의 중세의 독점의 시대로 회귀했던 특수한 국면의 시기였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근대적) 경쟁이란 바로 그자체가 독점력을 행사하는 끊임없는 경쟁인 것이다. 앞서 맑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법칙은 독점이 주도적인 상황을 용납지 않는 바, 자본주의 하에서 경쟁은 영원하며 독점은 일시적이다. 혹은 독점과 경쟁을 단순한 형식논리학적 규정으로만 한다면, 독점은 봉건적이며, 경쟁은 근대적(자본주의적)인 것이다. 하지만 봉건제에 전형적인 독점의 시대에도 어찌 경쟁이 전혀 없었겠는가 마는, 그 봉건제 경제의 기본적 성격은 독점이며, 경쟁은 그 내부에 억압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에 경쟁은 근대적인 것이며, 경쟁내에 독점은 끊임없이 경쟁으로 해소되는 독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적 경쟁이란 경쟁이자 독점이지만 끊임없이 경쟁으로 향하는, 즉 규정적의미의 독점자체와는 정반대의 것으로서의 경쟁이다.

요컨대 현재는 맑스 당시의 일국중심의 경쟁단계에서, 소위 독점단계를 거쳐, 초국적 세계적 경쟁단계로 진입하였다. 맑스 당시의 일국중심의 경쟁단계에서도 경쟁은 독점과의 종합으로서의 경쟁이었듯이, 현재도 무한경쟁시대이지만 마찬가지로 독점적 성격을 일시적으로 가지는 자본주의 경쟁시대다. 다시 비유하자면, 생기 푸른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다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죽은 듯 썩어가며 생명을 유지하는 변태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생명 가득한 화려한 세계적 자본주의 나비로 핀 시기가 현재다. 이 나비는 애벌레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죽음의 변증법적 통일이면서도 생명을 화려하게 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나비는 최종적인 급격한 죽음을 향해서 마지막 생명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경쟁은 지속될 것인가? 다시말해 레닌시대의 경쟁제한으로서의 (봉건적) 독점이아니라, 집중을 향한 자본주의 근대적 경쟁의 지속적 결과로서의 끝 즉 자본주의 경쟁의 한계로서의 독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엥겔스가 주장하듯이, 일정한 산업부문 그리고 일정한 지역에서 하나의 기업이 존재하는 순간이다.29) 그런데 엥겔스 당시의 일정한 지역은 영국 등 한 나라였으나, 세계적 축적의 단계에서는 당연히 전 세계에서 하나의 기업이 살아남는 지점이 경쟁의 한계이며, 독점이다. 그러나 그런 독점은 자본주의의 체제에서는 오지 않으며, 그 이전에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 결론적으로 현시대를 독점단계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정반대로 규정하는 것이며, 특수한 국면에 지나지 않았던 독점의 시대와 제국주의시대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왜 교조주의자들이 독점문제에 고집하는 가이다. 독점반대의 계급적 본질은 바로 뿌띠부루조아적 반동성이다. 자본주의 발달의 필연성은 분산된 생산수단을 집중화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데,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들과 중소자본가들의 몰락은 불가피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역사의 진보란 이와같은 파괴적 수탈을 필요로 하지만, 그 과정은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며 생산력을 증대시켜가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러나 생산력증대의 과정에 따라 몰락해갈 수 밖에 없는 뿌띠부르조아지들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투쟁을 하기 보다는 허망하게 이 역사적 진보과정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운동진영내의 뿌띠부르조아적 세력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유력한 선동적 무기가 바로 독점반대이며 경제 민주주의다. 계급협조주의자들인 민주노동당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자본자체에 대한 반대를 회피하기 위하여, 오히려 역사적인 진보 과정인 거대기업으로의 집중화되는 것을 소위 ‘독점’기업에 대한 반대 투쟁에 몰두하면서 대중들에게 감상적투쟁을 선동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회주의 사민주의 정당의 대표적 강령인 독일 사회민주당의 1959년 고데스베르그 강령을 보면 경제민주주의가 뜻하는 바가 이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30). 그런데 이런 경제민주주의를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단체에서 주장하는 바이고, 또한 해외 초국적 투기자본도 바라는 바이다. 이것을 사회주의 강령인 냥 포장하는 것은 바로 노동계급을 현혹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의 필연적인 집중화경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진 반동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31)


결론에 대신하여-계급적이자 원칙적 관점이 더더욱 필요한 시기다.


바로 이렇게 현 자본주의 시대는 레닌 시대의 금권세력들에 의해 파괴와 수탈 그리고 기생적인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초국적 생산을 통한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전세계화하고 있다. 다시말해 반제의 문제가 사라진 그리하여 민족주의적인 문제가 진보적이었던 시대는 사라졌으며, 오히려 민족주의는 반동적인 성격을 띠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투쟁을 훼손하는 역할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제국주의론은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어 버렸고, 독점반대는 사회주의를 포기한 뿌띠부르조아적 사회민주주의의 구호로 전락하였다. 반면에 국민국가적 수탈이 아닌 계급적 착취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현시대는 , 또한 계급적 문제를 이 시대의 근본문제로 더욱더 바꾸어 가는 진보적 과정이다.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는 전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증대시키고 상호 결합시키는 물적토대를 만듦으로써,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의 실질적인 물적토대를 만들어가는 파괴적 진보의 과정이다.

또한 그 만큼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이 자본이 자신의 협소한 일국적 공간을 넘어서 세계적 축적공간을 공유함으로써 자본자체의 힘을 강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자본이 강화되는 시기에 자본에 투쟁하기를 회피하려는 계급협조주의의 기회주의적인 세력들이, 이제는 소멸해가는 민족문제를 끄집어내고, 낡아빠진 반동적 민족주의와 속빈 경제민주주의를 선동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투쟁을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현시대는 민족주의 및 일련의 뿌띠부르조아적 관점으로부터 계급적 관점을 더욱 명확히 하는 것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하겠다. 현실 운동의 한걸음 한걸음이 한다스의 강령보다 중요할 지라도, 잘못된 원칙과 관점은 노동운동을 한걸음도 전진시키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후퇴와 패배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현재는 제국주의시대와 달리 사회혁명의 전야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강화해가는 과정이라는 현실은 파국론적 관점이 배격되고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서 좌익모험주의도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맺기에 앞서 노사과연에 이런 계급적 원칙을 훼손하는 두 경우에 대한 비판을 추가하고자 한다. 전성식연구위원과 완전히 동일한 교조적 관점을 가진 신양식 회원은 레닌의 좌익소아병에 의거해서 병원노련의 보건의료산별노조 탈퇴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제국주의의 강도들이 존재하는 상황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 전개된 레닌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병원노련의 계급적 투쟁을 압살하려는 주장은 교조주의 폐해의 또 한 사례라고 하겠다.32) 이런 식의 레닌권위에 대한 추종은 현실에서 한국 계급적 노동운동을 질식시키는 행위이다. 그리고 채만수소장이 발표한 대동단결흐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분산성, 종파주의의 극복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정파적 이론과 그 대중적 실천을 통한 노선의 대중적 검증과, 그것에 대한 대중의 동의․지지․참여에 기초한 그 정파의 성장이 전위정당 건설의 기본적 방법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견지해왔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관적 사고였으며,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하는 여러 정파의 연합이 현실적인 노선일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 참으로 애매하고 추상적인 얘기지만, 서로 연합하고 그리하여 건설하려는 노력․투쟁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33)


이에 대한 상세한 반박은 불필요하다. 애매하고 추상적인 얘기라는 말로 자신의 무원칙을 가리고 있는데, 이것 또한 민족주의자들의 대동단결주의의 전형이며, 계급적 철저성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현시대 더더욱 배제되어야 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노사과연 운영위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글을 노동자대회에 배포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 괴테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다."라고 했었다. 그러나 푸른 생명의 나무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이론도 회색인 것만은 아니다. 영원한 것은 현실의 지속적인 운동, 즉 푸르른 생명은 현실의 운동뿐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이론이라면 현실의 변화하는 운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동안은 푸르를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의 변화를 무시하고 레닌의 권위를 이용하는 교조적 이론은 맑스-레닌주의를 회색 빛 화석으로 만들고 있다. 한편으로 위대한 혁명가 레닌의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 한국 계급진영의 과학적 사상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레닌주의의 원칙사수라는 명목하에 현실을 무시하는 교조주의는 반레닌주의인 바, 왜냐하면 레닌주의는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상은 이처럼 살아있는 생명이어야 하나, 물론 동시에 강철같은 원칙이어야 한다. 따라서 다시금 맑스의 계급적 원칙의 사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눈을 떠야 하며, 되도록 빨리 자신들의 독자적인 당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또 일순간이나마 민주주의적 소부르조아들의 기만적 공문구에 현혹되어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독자적인 조직화를 포기해서는 안된다.”34)




과학적 사상은 살아있는 강철이어야 한다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김두한 | 회원






















1) 이강토,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 2006. 1. 4, 장상환의 경제살리기 재인용

,http://blog.naver.com/sjang2005/20731196


2) 김두한, [20세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과 현재], 『정세와 노동』, 2006. 8.


3) 김두한, [기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재해석을 위하여],『한노정연 창립8주년 기념 심포지움 자료집』,“마지막으로 이제 전쟁은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의 전쟁도 아니며, 식민지 확장을 위한 전쟁도 아니며, 단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는 전쟁이다. 따라서 이 전쟁의 핵심은 자본의 위기와 위기가 초래하는 실업 등의 문제에서 전쟁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전쟁이거나, 전쟁을 통해 우익적인 정서와 사회안전과 질서 통제 기제를 만들려는 전쟁, 즉 노동계급의 저항을 억압하려는 순수히 자본주의적인 계급전쟁이다. 동유럽 코소보에서의 전쟁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제국주의적인 군국주의 책동을 벌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적 축적의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반동적인 정치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면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전쟁, 사회주의적 운동을 억압하는 전쟁을 벌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혹은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그리고 이것은 현재 자본주의가 세계적 집적과 함께 집중이 강화됨에 따라 더욱 ”그런 책동을 벌이려 할 것이지만, 그 마저도 세계통합화 과정에서도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4) 짜골로프, 윤소영 편, 『정치경제학교과서』, 새길. 1989.


5) “구식민지적 지배로부터 해방된 신생국 국민은…결코 다시 한번 영토적 점령과 국가주권의 상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제구주의 식민지배가 신식민지 지배로 이행했다는 사실은 직접지배에서 간전지배로 후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격과 임무], 『신신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 1』, p.25. “이리하여 2차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종속국 지배는 그 이전의 시기와는 다른 모습을 취한다. 그 차이는 ‘직접지배’와 ‘간접지배’의 차이가 아니라 ‘영토적 지배’의 유무로 나타나는 차이이다.” [성격과 임무비판]. 『신신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 1』, p.124. “다른 한편 [비판]처럼 식민지를 단지 영토적 지배로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납득하기 곤란한 것이다. 이렇게 봄으로써 [비판]의 말대로 신식민지라는 개념의 입지점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물론, 레닌 역시 자주 사용하던 반식민지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린다.” 이진경, [성격과 임무 개괄적 평가],『신신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 1』, p.175.


6) 레닌, 박상철 역,『제국주의론』, reltih.cafe24.com/reading/imperial.hwp


7) 전성식, [독점과 제국주의], 『정세와 노동』, 2006, 10.


8) 레닌, 상동.


9) 레닌, 조권일 역, 『레닌과 사회주의 혁명』, 태백, p. 8.


10) 전성식 상동


11)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정책에 대해 언급하려면, 금융자본 및 그것에 부합한 세계정책은 경제적, 정치적 세계분할을 위한 열강들의 투쟁으로 귀착되어 국가 종속의 수많은 과도기적 형태들을 낳는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그런 시대에는 식민지를 지배하는 국가들과 식민지라는 두 주요 국가그룹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들의, 즉 정치적으로 공식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실제로는 금융적, 외교적 종속의 그물에 얽힌 종속국가들도 전형적인 것이다. 그런 형태들 중 하나 - 반식민지 - 를 우리는 이미 지적하였다. 또 다른 한 형태는,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이다.≫”, 레닌, 박상철 역, 상동


12) 네그리의 이런 주장을 간단히 인용해보자. 독자가 아래의 정치경제학적 용어로 포장된 정신나간 내용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인용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제국의 무-장소 non-place로 인도된다면, 우리는 강력한 무-장소를 구축하고, 그것을 탈근대적 공화주의의 지형으로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가?…한편으로, 착취관계는 공장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체 지형을 점하는 경향을 보이며서 어디에서나 팽창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관계는 사회적 생산과 경제적 생산을 서로 외재적일 수 없게 만들면서, 완전히 생산관계에 스며든다. 생산력과 지배 체계 사이의 변증법은 더 이상 결정적 지위를 지니지 못한다. 노동력이 지닌 바로 그 특질들(차이, 척도, 그리고 결정)은 더 이상 파악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착취 또한 더 이상 국지화되거나 양화量化될 수 없다. 사실상 착취 및 지배의 목적은 특정한 생산활동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생산능력, 즉 추상적인 사회활동과 그것의 포괄적인 권력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추상적 노동은 장소없는 활동이며,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추상적 노동은 이동적이고 유연한 노동자 대중의 욕망이며 노력이다. 그리고 추상적 노동은 동시에 지적이고 정서적인 노동자 대중의 지적인 에너지이자 언어적이며 소통적인 구축물이다. 사용가치에 규정되는 내부와 교환가치라는 외부를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분리할 수 있다는 환상에 항상 근거해 있던 사용가치의 어떤 정치학도 이제는 확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 창조성이 지닌 보편성, 즉 자유, 욕망, 그리고 산노동의 종합은 탈근대적 생산관계의 무-장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제국은 노동이 착취당하는 세계적 생산의 무-장소이다” 안토니오 네그리, 윤수종 역, 『제국』, pp. 279-281.


13) 레닌, 남상일 역,『제국주의론』, 김두한, 상동, 재인용.


14) 레닌, 박상철 역, 상동.


15) “우리의 의견으로는 힐퍼딩이 그의 {금융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완전히 옳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카르텔화가 현실적으로 한계를 가지는 가에 관해서 제기된다. 문제는 카를텔화에 대한 절대적 한계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되어야 한다. 오히려 카르텔화의 범위를 계속적으로 확대하려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독립기업은 점점 더 카르텔화된 기업에 의존적으로 되어가고 마침내는 합병된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서 하나의 보편적 카르텔이 출현한다. 여기서 모든 자본생산은 모든 영역에서 있어서 생산의 크기를 결정하는 하나이 중심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조정된다.’… 마찬가지로 힐퍼딩이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경제학적으로 말해서, 모든 생산을 관리하는, 따라서 공황을 제거하는 하나의 보편적 카르텔은 가능할 수 있다.’ 김정로 편 , {제국주의론}. 지양사, 1987. p.132.


16) 알프레드 챈들러, 『Scale and Scope』, p. 608.


17) “레닌 시대 다른 주요한 독점체의 형태는 트러스트였다. 트러스트는 동일산업부문의 기업들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잃고 거대기업에 결합함으로써 형성된 독점체다. 개별기업들이 자신의 독립성을 잃는다는 것이 카르텔과 가장 중요한 차이이며 동일산업부문내의 기업들의 합병이라는 것이 콘체른과의 차이이다. 이런 방식의 통합ㆍ합병은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성식, 상동.


18)[Transnational Corporations], vol,.9.no.3. p.105.


19) 김두한, [기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재해석을 위하여],『한노정연 창립8주년 기념 심포지움 자료집』,“우선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자체적인 자본주의의 발달을 억압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간의 대립으로 인한 시장의 제한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일국적인 자본의 집중이 독점으로 향하자, 자국 독점자본에게 시장이 더욱 필요해지자, 오히려 더욱더 독점적인 식민지 확대 정책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식민지 정책이 결코 자본의 축적을 발달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양차대전의 결과 그리고 노동계급의 혁명의 결과로서만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국주의 정책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반동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요컨대 식민지는 일국적 독점에 다다르게 성장한 세계적 자본주의에게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상부구조(이자 토대)였다. 그런데 일국의 독점자본가들은 이것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위기시에 이런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만개시켰다.”


20) 칼 맑스, [동인도 회사- 그 역사와 성과], 『뉴욕데일리 트리뷴 』, 1853 7. 11. 주익종 역, 『식민지론』, 녹두, p. 55.


21) 레닌, 남상일 역,『제국주의론』, 김두한, 상동, 재인용.


22) 칼 맑스, 김수행 역,『자본 3권』,1994. p. 138.


23) 칼 맑스, 상동. p.138.


24)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에 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를 추진시키는 동기로서 그의 의식에 도달하는 방식을 여기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하다. 즉 경쟁의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이 파악된 후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은 천체의 외관상의 운동은 감각적으로 직접 인식될 수 없는 천체의 진정한 운동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 칼 맑스, 김수행 역, 『자본 1권』,p.404

“이 특별잉여가치는 소멸해 버린다.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결정의 법칙은 새로운 방법을 채용하는 자본가로 하여금 자기의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 이하로 판매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고 또 바로 이 법칙이 경쟁의 강제법칙으로서 이 자본가의 경쟁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칼 맑스, 상동, p. 407.


25) 칼 맑스, 『철학의 빈곤』, 전성식, 상동, 재인용.


26) “농촌에서이 봉건제도와 도시에서의 길드제도는 고리대금업과 상업에 의하여 조성된 화폐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이러한 제한들은 봉건적 가신단의 해체와 농촌주민의 수탈 및 추방과 함께 제거되었다. 새로운 매뉴팩쳐는 해안의 항구또는 구도시와 길드의 통제 밖에 있는 농촌지역들에 건설되었다.”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 1권, p. 944.


27) “그런데 중세는 두 개의 독특한 자본형태를 물려주었다. 즉 아주 당양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 성숙되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시대 이전에도 어쨌든 자본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고리대자본과 상인자본이 그것이다.”


28) 칼 맑스, 『철학의 빈곤』, 전성식, 상동, 재인용.


29) “어떤 일정한 산업부문에서 거기에 투하된 모든 개별 자본이 단일 자본으로 융합된다면 집중은 극한에 도달 할 것이다. 일정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본 전체가 한사람의 자본가 또는 하나의 자본주의적 기업의 수중으로 통합될 때에만 이러한 극한에 도달할 것이다.” 칼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1권, p.791.


30)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자유로운 경쟁이 진실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유시장체제를 지지한다. 하지만 시장이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곳에서는 경제분야에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능한 최대한의 경쟁과 필요한 만큼의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대규모의 기업이 지배하는 분야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사라지게 된다. 힘이 모자라는 기업은 발전의 기회가 적어지게 되며, 어느 정도 예속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소비자의 위치는 경제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 카르텔과 기업합병으로 더 늘어난 힘은 대규모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국가에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권한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경제적인 힘은 정치적인 힘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발전은 자유와 정의,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사회적인 안정을 인간 사회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사회정의 확립을 저해하지 않는 한 사회의 보호를 요구할 수 있다. 중소규모의 기업들은 대규모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강력해져야 한다. ⋯오늘날 소유형태보다는 경제력이 더 중요한 문제다. 경제력의 건전한 관계가 다른 방법으로 보장될 수 없을 경우에는 공공소유가 적절하면서 필요하게 된다.” 김유 편역, 상동, [독일 사민당 고데스베르그 강령], p.141,


31) 김두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대하여-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정당],『현장에서 미래를』,2004. 6.


32) 신양식, [보건의료노조의 분열에 대하여 - 문제점과 극복을 위한], 『정세와 노동』 2005. 8.


33) 채만수, [노동운동의 정치적 지체에 대하여 ―다시 전국노동자대회를 맞이하며― ], 『정세와 노동』, 2006. 11.


34) 칼 맑스, [동맹에 보내는 중앙 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