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소동에 대하여

4월 2일, 노동자․농민의 죽음을 불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의 타결을 선언하던 그때에 국회에서는 4년 가까이 끌던 이른바 국민연금 개혁 관련 법안들이, 정부․여당(열린우리당)의 안도,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연합 수정안도,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주요 일간지 등 언론에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좌절됐다”며, ‘무책임한 정치권’, 특히 열린우리당 탈당파를 포함한 이른바 범여권을 질책․비난하는 소리가 높게 일었는데, 이번 부결 사태를 일부에서 “유시민 파동”이라고 부르고 있고 또 유시민 장관 본인이 그 직후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에 대한 상당수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사태를 그렇게 결정지은 주요 요인의 하나라니 자못 흥미롭다.1) 사태가 그렇게 귀결된 데에는 그 외에, “외견상으로는 기초연금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대립이 뇌관”이 됐지만, 실제로는 여․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 즉 “당장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표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작용됐을 것,”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 대선 당략의 향배를 쥐고 있는 노인 표를 최대한 유입하려는 데에만 주력”했기2)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일 것이다.

첫째, ‘연금 개혁’이니, 그 ‘좌절’이니 하고 거창하게 떠들어대지만, 그것이 사실은 특정인에 대한 호오(好惡)의 감정에 의해서 그 향방이 결정될 만큼 그다지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혹은 적어도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렇게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것.

둘째, 다수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각 정당이 표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작용”된 결과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처럼, 부르주아 정치의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가 무언가를 해가고 있다면, 그것은, 비근한 예로서 비정규직 관련 법률들이나 한미 FTA의 문제처럼, 사실은 유권자 대중의 의사와는 대립되는 것이든지, 적어도 그와는 무관한 것일 것이라는 것.

셋째, 평소 진지한 표정으로 근엄을 떠는 국회의원, 지도적 정치인 나리들이 사실은 선거에서의 당락에 대한 계산에만 몰두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공적인 일을 다룸에 있어 특정인에 대한 호오의 감정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 혹은 사실은 바로 그러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들을 꿰차고 있다는 사실, 등등.



연금 문제의 배경 (1)

  ― 이른바 고령화(=노령화) 사회론


그건 그렇다 치고, 연금 개혁 문제 자체로 돌아가, 우선 이른바 개혁의 방향이나 내용,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논쟁’ 이전에, 왜 혹은 어떤 배경에서 ‘연금’이라고 하는 문제 자체가 사회적인 의제로 대두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보자.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른바 고령화 사회론 혹은 노령화 사회론이라고 할 수 있는 논의로서, 사회의 노령화 혹은 고령화가 연금 문제가 제기되는 기본적인 배경이라고 선전하는 논의이다. 국민연금제도를 주관하고 있는 국가의 견해가 전형적으로 그러하다. 예컨대, ‘당신을 위한 국민연금 써비스’(nps4u, National Pension Service for You)라는 역겹고 야바위스러운 이름을 가진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홈페이지를 보면, “고령사회의 위기”라는 표제 하에 국민연금이 필요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10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의학기술에 따른 수명 연장과 생활여건의 향상에 따른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은색물결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령화로 인한 복지비용의 증가와 경제성장의 둔화로 고령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 현시대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가장 큰 위험으로 핵무기가 아닌 고령화를 꼽고 있을 만큼 고령화문제는 심각해졌다.

고령화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낮은 출산율과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노령화로 인해 점차 고령사회로 변하고 있다. ... 이런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비용의 증가는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고, 노동인구의 감소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사회적으로 고령사회에 대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고령사회 문제는 정부․기업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노후준비 문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적인 노후대책의 두 기둥이었던 가족부양과 평생직장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은 노후대비는커녕 현재를 살기에도 힘들게 하고 있다. 또한, 지금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는 퇴직금 등의 목돈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이자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노후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자꾸만 증가하고 있다.3)


연금관리공단의 이러한 주장 가운데, “생활여건의 향상에 따른 노인인구의 급증”이라는 인식과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은 노후대비는커녕 현재를 살기에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인식 사이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노동인구의 감소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사회적으로 고령사회에 대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과 “평생직장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즉 일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조기은퇴를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 어떻게 호응되는지도 역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전통적인 노후대책의 두 기둥이었던 가족부양과 평생직장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이렇게 담담하게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좋은 것인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전통적인 노후대책의 두 기둥이었던 가족부양과 평생직장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그 원인 혹은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서, 아무튼 ‘고령화’ 혹은 ‘고령사회’를 연금제도가 불가피한 기본적 배경으로 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같은 홈페이지의 “알기 쉬운 국민연금”이라는 해설문에서는 같은 얘기를 다음과 같이 보다 더 명확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5. 국민연금제도의 실시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 노령인구의 급속한 증가입니다.

   ○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난 반면, 출산율은 낮아져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 노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반면에 노인부양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 핵가족화의 급속한 진행에 의한 부양의식 약화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연대하여 부양비를 마련해야 되고 본인도 소득능력이 있을 때 스스로 노후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도래되고 있습니다.

☞ 사회적 위험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각종 사고의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고, 기상이변 등으로 풍수해 등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고 발생시 사전 대처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4)


 게다가 ‘노후생활’에 대해서는, 그것이 안락한 것이든, 고달프고 불행한 것이든, 그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바로 소득 비례 적립식 연금제의 기본적 사고방식의 표현일 것이다. 공단의 얘기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나라 노인 중 젊었을 때 ‘미리 노후를 준비해 두었다’는 비율은 20%내외로 추산되며 공적연금으로 노후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은 8%에 불과하고 70%이상의 노인들은 생계비를 자녀들에게 의존하거나 이것마저 여의치 못한 노인들은 빈곤하게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노인들이 공짜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서성이다가 무료 점심을 얻어먹고 하루 용돈 5,000원이면 부자취급을 받으며 생활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노후를 대비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노인들에게는 평균수명의 연장이 장수의 축복이 아니라 빈곤하고 고달픈 노년생활의 연장이 될 수도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이 고달픈 생활의 연장이 아닌 장수의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부터 노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바로 지금부터 노테크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5)


이렇게 ‘노후생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국가의 사고는 예의 “알기 쉬운 국민연금”이라는 해설문에 가면 더욱더 노골적인 형태로, 게다가 노동자 대중 일반에 대한 모욕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러나 또한 앞뒤 맞지 않는 횡설수설로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2. 공적연금은 왜 필요합니까?

☞ 연금분야에 대한 정부개입이 각국에서 보편화된 것은 개별근로자나 시장을 통해서는 퇴직에 대비한 적절한 저축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체로 지금까지 많은 논자들이 공적연금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근로자의 근시안적 사고(미래통찰력의 결여)이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미래의 경제적인 욕구까지 고려하여 퇴직을 대비한 저축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들이 퇴직할 때 경제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인식할 수는 있으나 그 때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리게 된다. 정부개입은 사람들이 퇴직했을 때 적절한 소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근로 중에 버는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도록 원조할 수 있다. 그러나 퇴직에 대비한 연금보험료 기여를 강제하지 않으면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근로자는 적절한 퇴직소득을 보장하는 수준의 저축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빈곤으로 추락할 것이다.

둘째, 성실한 자에 대한 보호이다. 미래를 대비해 저축한 자(성실한 자)를 미래를 대비해 저축하지 않은 자(근시안적이고 불성실한 자)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는 구성원들에 대해 최저의 소비수준을 설정하고 주로 공공부조를 통해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에 어떤 근로자들은 퇴직에 대비하여 추가적인 저축을 하는 대신 여기에 의존해서 최저생계를 보장받으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성실한 소득활동 및 저축을 하는 사람들은 조세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퇴직비용까지 지불하는 셈이 된다. 정부는 노인소득보장비용을 사회성원 전체가 고루 부담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근로기간 동안 일정소득수준 이상의 자들이 공적연금 기여를 하도록 강제하여 대부분이 공공부조에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소득재분배이다. 소득재분배는 사회통합을 증진시키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형성하기 위하여 사회가 시장에 의한 소득분배를 변경하려는 집합적 결정을 할 때 발생한다. 생애소득이 낮은 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연금제도는 시장에 의한 소득분배를 변경하는데 사용되는 주요 수단 중의 하나이다.6)


위의 장황한 이야기를 정말 ‘알기 쉽게’ 말하자면, 노동자들은 각자의 노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고 “근시안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즉 자발적으로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너무나도 멍청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국민연금’이라는 저축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라는 국가의 기관이 그 홈페이지에 싣고 있는 내용이니만큼, 이것이 국민연금의 필요성에 대한 이 국가의 공식적 견해, 솔직하면서도 심히 비뚤어진 공식적인 견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배경과 관련한 정부의 이러한 고령화(=노령화) 사회론은 물론 고도의 숨겨진 목적의식을 가진 허위 이데올로기이다.7)

그것은 무엇보다도 ‘노후 빈곤’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 대중의 빈곤 일반을 노동자 개개인의 “불성실” 탓으로 돌리면서,8) 한편에서는 빈곤의 사회적 원인을 은폐․면책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연금기금 적립이라는 국가개입에 의한 강제저축, 사실은 임금의 전반적이고도 강압적인 감축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문제를 몰역사적으로 논함으로써 자본주의 자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의 역사성, 즉 그것이 초역사적이고 절대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경과적인 사회체제일 뿐이라는 사실도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과 관련한 국가의 이러한 견해9)가 어떻게 기만적이고 또 어떻게 노동자 대중을 모욕하고 또 강압적이든, 노동자들에게 있어 국가란 으레 그러한 것이라는 사실만을 상기하면서 들어 넘기기로 하자.



연금 문제의 배경 (2)


최근의 소동 속에서 연금제도가 필요한 이유 혹은 배경을 다소라도 역사적 관점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이번 소동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측이다. 예컨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의 이태수 교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등 국민연금 가입자 단체가 지난 4월 13일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긴급 토론회’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국민연금제도 개혁의 올바른 방향과  해법”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글에서 “한국의 국민연금은 한국 사회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과도기에서 노인부양 문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라는 시각에서 설계된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10)

이 교수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면 이렇다.


농업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지금의 60대 이상 노인들은 노후를 위해 사적연금이나 공적연금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지금의 60대 이상 노인들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할 때에는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늙으면 자식들이 돌봐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업사회의 노인부양방식에 익숙한 그 세대는 그것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30-50대는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하였고 자식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노후를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대들은 공적연금이나 사적연금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노후소득을 확보해야 한다.


이 교수의 이러한 견해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가 필요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관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만, 앞에서 본 관료적 견해에 비해서 그 기본적 고찰 방법이 훨씬 과학적이고 그 내용이 훨씬 풍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역시 불충분할 뿐 아니라 사실은 비과학적이다. 물론, 국민연금제도의 필요성이나 그 배경에 대해 정색을 하고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연금의 이른바 기여율은 높이고 그 급여율은 낮추기 위한 ‘논거’로서 제시되는, 현 제도 하에서는 “세대 간의 부담이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가운데 제시된 의견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우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라는 인식은, ‘산업사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든, 물론 역사적 사회변화의 한 측면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그 변화의 주요하고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생산양식, 그 생산관계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는, 그것을 부당하게 사상(捨象)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과도기에서(의)” 문제라고까지 얘기하게 되면, 더욱 심각한 오류 혹은 혼란을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논리상 문제의 과도기를 지나 ‘산업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그 필요성이 해소되게 된다는 의미인데, 그러한 ‘산업사회’란 과연 어떠한 사회인가 하는 것이 해석 난망한 문제로 대두되기 때문이다.

혹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과도기”라는 표현으로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봉건적 사회로부터 ‘산업’ 즉 공업을 위시한 제 부분의 사회적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로의 ‘과도기’ 사회로서의 자본주의 사회를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발제문의 성격이나 전체 논지로부터 미루어봤을 때, 그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렇게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로의 ‘과도기’로서 규정하는 것 자체가, ‘과도기’라는 개념의 성격상, 허용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올바르게 표현하자면, 국민연금이라는 범사회적 노령연금 문제가 제기되게 된 배경은 자본주의의 발전․성숙에 따른, 전통적 대가족(제도)의 (사실상 완전한) 해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성숙에 수반하여 전래의 가족 공동체가 이미 철저히 파괴․분해되어 되어 있어서 가족․가정을 넘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노인 부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혹은 적어도 그 해결을 그 차원에서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이라는 공적연금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태수 교수가 예의 발제문에서 “지금의 30-50대 세대들은 현재의 노인세대를 사적으로 부양해야 하고, 공적연금 혹은 사적연금을 통해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부담’double payment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얘기할 때, 그의 염두에도 바로 가족제도 혹은 그 형태의 그러한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가족제도 혹은 그 형태의 이러한 변화 그것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문제나 그 과도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의 발전․성숙에 수반한 문제인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국민연금이라는 공적연금제가 필요하게 된 배경이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성숙에 따른 가족 형태의 변화였기 때문에 그 사회적 부양 방식 또한 자본주의적으로, 즉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여 모색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 형태의 국민연금이다.

그런데 이번 국민연금 관련 법률의 개정 소동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제출된 논의만을 보자면, 연금 문제와 관련한 이 측면, 즉 그 형태와 방식의 자본주의적 성격에 관한 문제의식은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 그 이른바 기여율과 급여수준이 얼마이든, 소득비례 보험료 납부와 그에 따른 연금, 그리고 그를 위한 기금적립이라고 하는 방식의 갖는 사회․역사적 성격에 대한 어떤 비판적 문제의식도 제출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전제하는 한, 연금의 ‘개혁’은 그 성격상 결코 문제의 해결일 수 없고 공허하고 시끄러운 논쟁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성숙에 따른 대가족(제도)의 그러한 해체는 물론 역사적으로 불가역적(不可逆的)인 과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노인부양’의 문제를 반드시 기본적으로 소득 비례 기금적립 방식을 통해서, 혹은 반드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뒤에서 간단히 얘기하겠지만, 사적소유라고 하는 제한을 벗어던질 때에만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쟁점들


우선, 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의 ‘개혁’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오게 된 동기는 현재의 보험료율과 보험지급률로는 2040년대 말에 연금기금이 고갈되기 때문에 보험료율(소위 기여율)은 높이고 지급률(급여율)은 낮추는 ‘개혁’을 통해서 연금기금 재정의 안정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적어도 ‘정치권’에 대해서만 보는 한, 가장 왼쪽에 서 있다는 민주노동당조차 그 수사(修辭)야 어떠하든 지급률을 낮추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모두가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던 토론회의 발제자만이 직접적․명시적으로, 그리고 그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단체들은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위의 문제의식을 논박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기금고갈을 전제로 하여 설계된 것이다. ... 따라서 국민연금의 기금고갈 자체는 제도 설계시부터 예정되었던 것이며 특별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면 큰 문제가 생기니 빨리 연금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논리도 보험수리적 재정안정화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은 특정 시점에서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노인세대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과방식이건 부분적립방식이건 그리고 완전적립방식이건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노인을 부양하는 여러 가지 수단 중의 하나인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지 노인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총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특히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은 특정 시점에서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노인세대에게 배당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대단히 과학적이며,11) 정부․여당, 자본 측의 ‘기금고갈→연금개혁=재정안정화 필요’라는 주장을 논파하는 데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이 교수는 이러한 과학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현행 국민연금에 내재되어 있는 보험료의 점차적 인상계획은 ... 노인부양의 세대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장치” 운운하는 약간의 혼란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기로 하자.

아무튼 이렇게 ‘정치권’은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아니 실제로는 그 고갈의 시점을,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불과 10여 년 연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다만 그것을 연장하기 위한 방식, 계수상의 차이를 두고 대립하였다. 정부와 ‘여당’은 보험료율을 현행 소득의 9%에서 점차 올려서 2018년에는 12.9%로 올려야 하고 지급률은 현행 60%에서 2008년부터 50%로 낮춰야 한다며, 그에 ‘반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지급률은 40%로 낮추되 보험료율은 현행 9%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여당’에 비판적․대립적인 측만이 아니라, 정부․‘여당’ 자신도, 국민연금 가입대상 연령 인구의 60% 정도나 그에 가입하지 않고(못하고) 있다는 사실, 곧 국민연금의 광범한 ‘사각지대’ 때문에 그것을 방치한 채 연금기금의 ‘재정 안정화’만을 주장해서는 그것이 어떤 대중적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기된 것이 기초(노령)연금의 문제이고, 이를 두고 또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정부와 ‘여당’은 65세 이상 노인의 60%에 대해서 평균소득의 5%를 지급해야 한다며,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80%의 노인에 대해서 그 지급액을 5%에서 시작하여 점차 증대시켜서 2018년까지10%를 지급해야 한다며.

하지만, 5%면 현재의 기준으로 월 89,000원이라니, 5%든 10%든 그것이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연금이라기보다는 작은 용돈이요 생색내기에 불과하기는 매양 마찬가지이다. (이 2018년 이후 기초연금 10%의 지급이 민주노동당이 국민연급 지급률을 40%까지 낮추는 데에 찬성하는 구실이었다.)

아무튼 4년 가까운 장기간의 논의와 대립 끝에 지난 4월 2일에 관련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었는데, 국민연금법 개정안 자체는 정부․‘여당’의 법안도 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수정안도 모두 부결되고, 기초(노령)연금법안만이 정부․‘여당’의 안이 통과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청와대(정부)는 그 법안이 자신들이 제안한 것임에도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도, 지급률을 낮추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얻어낸 것 없이 기초연금 5%를 지급해야 하는 덤터기만 썼다는 계산에서일 것이다. 특히 이 기초연금의 재원은 필경 증세를 통해서 마련될 것이기 때문에 독점자본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터이다.

아무튼 여론의 비난도 있고 하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의 통과를 목표로 4월 19일과 20일에 국민연금법의 개정 내용에 대해서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국민연금의 경우 보험료율은 현행의 9%를 유지하되 급여율은 점차 40%까지 낮추며, 기초연금의 경우 급여대상은 65세 이상 노인의 60%로 하고 (혹은 60%로 하기로 ‘노력’하기로 하고), 급여율은 내년부터 평균소득의 5%(월 89,000원)를 지급하되 점차 늘려 2028년에 10% 수준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두 당 간의 이러한 합의에 대해서는 좌․우 양쪽 모두에서 비판이 거세다.

“가입자 단체와 민주노동당은 ‘노후 소득 보장 없는 정치적 야합’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으며,12) 상대적으로 좌측에 있는 「한겨레」(2007. 4. 23.)는, ‘사설’을 통해서, “이대로[합의안대로] 되면 평균 가입기간을 기준으로 전체 가입자의 60%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연금을 받게” 되어 “‘용돈 연금’을 만들어 버렸다”며, “하려면 제대로 하고, 못하겠으면 ... ‘용돈 연금’ 만들 바엔 차라리 손 떼라”고 호통치고 있다.

「중앙일보」(2007. 4. 21.)의 “책임감 없는 정치인 손에서 망가진 연금법”이라는 ‘사설’도 “정치권의 무책임과 뻔뻔스러움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단일안은 연금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스러운 ‘용돈연금’에 불과하다. 연금재정의 안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연금기금 고갈 시기를 현행보다 고작 14년 늦출 뿐이다. 반면 기초노령연금으로 세금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2030년대에는 38조원이, 2050년대에는 134조원이 필요하다. 째깍째깍 시한장치가 숨어 있는 폭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미래세대에게 넘긴 셈이다. 열심히 일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느니 차라리 정부에서 생활비 보조를 받는 게 낫다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최악의 법안이다.


역시 재벌의 신문다운 논조다! “민망스러운 ‘용돈연금’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말치레일 뿐, 아니 이 역시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기로 한 데에 대한 에두른 비난이며, 역시 관심은 이른바 “연금재정의 안정”과 “기초노령연금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세금 부담”, 즉 자본이 부담한다고 상상하는 세금 부담이다. 세금 부담을 자신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째깍째깍 시한장치가 숨어 있는 폭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미래세대에게 넘긴 셈”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때문에 “한마디로 최악의 법안”이라고 혹평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의 신문 「중앙일보」는 “기초노령연금으로 세금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앙앙불락이지만, 명색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기초(노령)연금의 지급대상과 지급률이 60%(그것도 ‘노력’!)와 평균소득의 ‘5%에서 점차 올려 2028년(!)에 10% 수준’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된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애초 4월 2일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65세 이상 전체 노령인구의 80%에게 평균소득 5%에서 시작해 오는 2018년까지 10%(현재 기준 약18만 원)를 기초연금으로 지급”하자고 한 데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응을 「프레시안」은 “열린우리당-정부, ‘포퓰리즘 수정안’ 비판”이라는 소제목 하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내기로 한 수정안에 대해 "재정 마련 방안 없이 대국민 선전용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성토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2일 국회 브리핑실을 직접 찾아와 "수정안대로라면 정부 재정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키게 돼 우리나라 전체 재정구조를 개편하지 않는 한 시행이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가 함께 제안하는 수정안은 겉보기에는 바람직한 듯하지만 그 제안의 내용은 매우책임성이 부족하다"며 "이러한 대안을 내놓으려면 재원대책을 마련할 새로운 세목 등을 제안해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장영달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편으로는 감세를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원 대책 없는 무대책 법안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 선거가 가깝다고 선심 쓰듯 무책임한 법안을 남발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진표 정책위의장도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세균 당의장도 "국회연금법이나 기초노령연금법은 엄청난 예산 수정을 수반한다"며 "예산부수법안은 국회에 사전 필요 절차가 규정되어 있으며 재원 대책 등 예산안도 붙이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갖추지 않은 수정안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13)


이들의 반응과 재벌신문의 반응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기금고갈→후 세대 희생’ 론의 사기성


현행대로라면 2040년대에 연금기금이 고갈되고, 그렇게 되면 부당하게도 후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전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연금 개혁’ 소동의 동기임은 앞에서 본 대로이다. 지난 4월 2일에 국민연금법 개정안들이 부결되자 「연합뉴스」는, 이러한 주장에 근거하여, “현행 연금 체계로는 2047년이 되면 기금이 고갈된다”며, “이는 현 세대가 후 세대의 희생을 토대로 노후 보장을 받는 것과 다름없(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전쟁’을 우려하기도 한다”14)고까지 쓰고 있다. 물론 「조선일보」도 지지 않고 이렇게 쓰고 있다.


연금개혁이 늦어지면 연금 파탄도 파탄이지만 당장 하루 800억 원씩의 잠재부채(걷는 것보다 더 지급되는 돈)가 국민들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일 년이면 29조 원이다. 언젠가 국민 혈세로 모두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법이 처음 국회에 제출된 2003년 10월에 법이 통과만 됐더라도 지난 3년치 잠재부채 87조 원은 지지 않아도 될 빚이었다.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이 나라정치인들이 한 일이다.15)


「중앙일보」가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기로 하는 등의 여야 합의를 가리켜서 “째깍째깍 시한장치가 숨어 있는 폭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미래세대에게 넘긴 셈”이라고 일갈했음은 이미 보았는데, 같은 글에서 “자손들 어깨에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운운하기도 한다.

저들의 주장은 진실일까?

이에 대해서는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후세대의 보험료가 40%까지 높아진다는 ‘황당한’ 시나리오까지 제시”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국민연금이 후세대를 ‘갈취’하는 부도덕한 제도인가” 물은 후 “전혀 그렇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지금의 30~50대 대부분은 월급에서 부모 생활비를 부담하며, 동시에 자신의 노후를 위해 연금보험료를 납부한다. 이것을 ‘이중부담’이라 한다. 하지만 현재의 30-50대는 미래에 국민연금을 받게 되므로 그 후세대는 ‘이중부담’의 딜레마가 없거나 적다. 현세대보다 노인부양비 총금액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인부양 비용이 현세대보다 적은 후세대가 보험료를 더 부담하는 것은 세대간 공평성의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며, 이는 후세대를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대가 짊어져야 할 ‘의무’이자 ‘부채’다.

국민연금 적립기금 198조 원 중 약 30%에 해당하는 59조 원이 현세대가 낸 보험료에서 나온 투자수익금이다. 이 투자수익금은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상당히 덜어준다. 또한 1998년에 연금 수준을 70%에서 60%로 이미 낮추어 후세대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었다. 미래 세대의 과중한 부담을 낮춘다는 개혁 논리는 사교육비 등으로 허리가 휘는 현세대에게 더욱 많은 부담을 강요하는 불공평한 처사다.

후세대의 노인부양비 총량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연금을 깎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재의 급여 수준의 60%를 유지해도 2050년에 국민연금의 총급여액은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지 않는다. 유럽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의 10% 안팎을 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앞으로 43년이 지난 뒤에도 연금지출이 현재 유럽의 노인부양비 수준에 미달하는데 이것이 무슨 ‘치명적인’ 재앙인가?

...

하루에 800억 원의 연금 부채가 생긴다는 논리도 참으로 황당하다. 정부안대로 연금개혁을 하면 잠재부채가 없어지나? 액수만 조금 줄 뿐이지 천문학적인 잠재부채는 그대로 남는다. 과거 잠재부채란 개념으로 국민연금을 공격할 때 보건복지부는 공적연금에서 잠재부채란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잠재부채 때문에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16)


동일한 논지는 김 교수의 견해에 입각한 것으로 보이는, 앞서 언급한 이태수 교수의 발제문에도 보인다. 예컨대 그는, “가족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노인부양비(즉 부모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생활비)를 합쳐서 보면 현세대의 노인부양 부담이 미래세대에 비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모두 “세대간 부담이 불공평”하기 때문에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지급률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급여 수준의 60%를 유지해도 2050년에 국민연금의 총급여액은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지 않는다”느니, “후세대의 노인부양비 총량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연금을 깎는 것이 맞다”느니 하는 이러한 반론은 사실 어딘가 구차스럽고 또 사리에도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 GDP의 7%를 넘느니 안 넘느니 하는 계산 자체가 명백히 추계(推計)에 의한 것일 뿐 아니라, “후세대의 노인부양비 총량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연금을 깎는 것이 맞다”는 주장은 현재를 사는 노인의 생계비(연금) 규모가 현실의 생계비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시 추계치에 불과한 “후세대의 노인부양비”의 경중(輕重)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사회에서의 ‘노인부양’의 문제라는 문제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고 있다면, 이러한 구차하고 사리에 합당하지 않은 반론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현세대의 연금 보험료 부담이나 적립된 기금 자체의 크기 여하가 후세대의 부담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사고나 주장 자체가 사실은 철저히 기만적이고 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적립된 연금기금이 얼마만큼 거대하고, 그리하여 얼마만큼의 연금이 지불되든, 연금수령자가 실제로 먹고 사는 것은 연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에 생산된 필요 소비수단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한 예컨대 한국은행권이나 예금통장을 먹고 입는 사람은 없다. 쌀을 비롯한 식료품을 먹고, 의복을 입고, 주택에서 기거한다. 어느 세대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서, 나아가 노동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병자, 중증장애인 등을 부양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지는 부담은 그들이 소비해지 않으면 안 되는 소비수단을 생산하는 부담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기금을 어느 규모로 적립하느냐 하는 문제와 어느 시기, 예컨대 2050년에 우리 사회에서 생산하는 필요 소비수단의 양이 얼마만한 크기이냐 하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물며 과소생산이 아니라 과잉생산이 문제로 되어 있는, 한국사회를 포함한 발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앞에서, 이태수 교수의 발제와 관련, “문제의 본질은 특정 시점에서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노인세대에게 배당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대단히 과학적이며, 정부․여당, 자본 측의 ‘기금고갈→연금개혁=재정안정화 필요’라는 주장을 논파하는 데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교수가 “현행 국민연금에 내재되어 있는 보험료의 점차적 인상계획은 ... 노인부양의 세대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장치” 운운하거나, “재정안정성, GDP 대비 연금지출 총규모 관점에서 봐야”17) 운운하는 것은 혼란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험료를 인상하고 안 하고는 “특정 시점에서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크기나 그 일부의 노인 세대에의 배분하고는 사실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연금이 소득 비례 기금적립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후세의 노인층이 소비해야 할 소비수단의 생산의 크기나 그것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후세 젊은 세대의 부담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전제한 위에서 미래에 생산되는 소비수단에 대한 청구권, 그 명의를 축적해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선 지금 당장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는 그들의 임금, 혹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를 빌면, 그들의 가처분 소득을 강제로 축소시키는 것이고, 그만큼 노동자계급 전반의 생활수준 낮추고 있을 뿐이다. 그 반대 측면은 물론 자본의 이윤율의 상승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또한 증권․자본시장을 떠받치는 주요한 기둥이자 경제위기시에 독점자본의 파산을 막는 재원이다.

후세대의 노인층 부양이 본질적으로 연금기금의 규모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지되고 생산과 소비가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발달한 사회에서의 노인을 포함한 노동 무능력자의 부양문제를 생각해보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생산(물론 가장 넓은 의미의 생산)에서 은폐한 노인들이 사회에 의해서 부양받는 데에 소득 비례 연금 적립과 같은 청구권 명의의 축적은 전혀 불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연금 개혁’ 소동을 거치면서 명백해진 것처럼, 어떤 실현 가능한 ‘개혁’을 하든 기금의 고갈 시기를 연기할 수 있을 뿐이지 그 고갈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 보험료율과 지급률을 둘러싸고 커다란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에 그것을 전제한 연급설계야말로 노인부양의 본질적 장애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한마디] 국민연금의 목적은?


이번의 소동 속에서 국민연금의 목적 혹은 취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제출되고 있다. (그것도 대체로 ‘진보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노후빈곤 예방이라는 제도의 근본 목적 ...” (김연명)

“노후빈곤의 예방과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취지...” (복지학과 교수 등 94명의 성명)

“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존재한다...” (박원석)

“국민연금의 목적은 노후빈곤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태수)

모두 훌륭하게 들린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목적을 이렇게 이해하고 선전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고, 무비판적이며, 관념적이다. 국민연금의 목적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이 사회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사과연>


국민연금 개혁 소동에 대하여



채만수 | 소장



1) 「조선일보」(2007. 4. 9.)의 ‘사설’ “집권세력의 무책임이 만든 ‘유시민 파동’” 참조.


2)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 좌절 ... 정치권 비난여론 비등”, (www.donga.com, 2007. 4. 2.).


3) www.nps4u.or.kr/notech/tech_aaa_01.html


4) www.pds4u.co.kr/info/index_05.html 중 ‘알기쉬운국민연금/국민연금제도/사회복지의 이해’. “사회적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 운운으로 일종의 ‘위험사회론’이라고나 해야 할 논의가 추가되어 있지만, 이는 전통적으로 여타 재해보험의 영역으로서 연금과 관련해서는 부수적인 기능일 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자.


5) www.nps4u.or.kr/notech/tech_aaa_01.html.


6) www.pds4u.co.kr/info/index_05.html 중 ‘알기쉬운국민연금/국민연금제도/사회복지의 이해’.


7) 앞의 인용문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른바 고령화(=노령화) 사회론은 소위 ‘저출산론’과 짝패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우리 사회보다 수세대 앞서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에는 ‘고령화 사회론’이나 더구나 ‘저출산론’ 따위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러한 인식이 존재할 여지조차 없었다는 사실도 공적연금(국민연금)의 필요성을 ‘고령화 사ㅚ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보여준다.


8) “미래를 대비해 저축한 자(성실한 자)를 미래를 대비해 저축하지 않은 자(근시안적이고 불성실한 자)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운운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에 분열과 불화․대립을 조장하려 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9)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서는 이외에, ‘국민연금 홍보실’ 명의의 “주요쟁점에 대한 국민연금 문답집”(2003. 3)이나 “국민연금이 알고 싶다 ―국민연금 문답 30가지―” 같은 두툼한 홍보 문건들이 인터넷 상에 있지만, 특별히 달리 인용할 가치나 내용은 없다.


10) 이 발제문은 인터넷 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발제자인 이 교수 자신이, 그 글의 첫 번째 각주에서 김연명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과)의 미발표문인 “국민연금제도 개편안의 문제점과 기초연금제 도입”의 내용을 활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데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국민연금 개혁 논리의 허구성”이라는 김 교수의 「한겨레」(2007. 7. 20.) 기고문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발제문의 주요 내용은 김연명 교수의 견해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11) 더 정확하게는,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은 ...”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은 ...”이어야 하지만.


12) 조혜정 기자, “연금법 결국 ‘정치적 흥정’ ... 노인빈곤 외면”, 「한겨레」, 2007. 4. 21.


13) 채은하 기자, “‘한나라-민노-시민단체’ 국민연금 공동전선―유시민, ‘즉흥적 정략의 산물’ 맹비난”, <www.pressian.com> 2007. 4. 2.


14)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 좌절 ... 정치권 비난여론 비등”, (www.donga.com, 2007. 4. 2.).


15) 이준 논설위원, “하루 800억 연금 빚 외면한 여야”, 「조선일보」, 2007. 4. 10.


16) 김연명, “국민연금 개혁 논리의 허구성”, 「한겨레」, 2007. 4. 20.


17) 박원석(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유시민식 연금개혁 실패는 예고된 것이었다 ― ‘하루 잠재부채 800억 원 주장’의 실체”, <www.pressian.com>, 2007.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