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선 늘면 구조조정,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 부산지하철노동조합 2007년 투쟁 참가기 ―

구조조정 저지한 2007년 투쟁


구조조정 저지한 2007년 투쟁,

그러나 왠지 시원섭섭한 개운치 않은 투쟁


파업 이튿날이 훌쩍 지나갔다. 이틀 낮밤을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머리도 아프고 눈도 따갑다.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보다. 잠결에 사람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타결.....”하는 얘기도 귀에 들어온다. 누워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노조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18일 새벽, 02시 30분이나 됐을까? 교섭단이 들어왔다. 뒤따라 확대쟁의대책위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정말 타결 된 건가? 3시 30분에 교섭보고대회가 있을 거라 한다.

교섭보고대회가 시작됐다. 몇 군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하다. 그러나 그 뿐이다.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갑자기 잠에서 깬 조합원들은 아직 실감나지 않는 분위기다.

멀리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잔디구장을 가득 메웠던 조합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2007년 투쟁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승리의 환호성도, 패배의 눈물도 없이 ..... 파업은 끝났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곧 판단할 것이다. 이번 투쟁의 성과를 그리고 잘못과 그 한계를 조합원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랬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2007년 단체교섭 투쟁이 5월 18일 새벽 2시 파업 돌입 46시간 만에 (잠정)합의타결로 마무리됐다.

임금총액 기준 2% 인상과 2호선 양산 연장구간 78명(채용 57명, 전보 21명) 배치가 주요 내용이다. 임금 부문에선 정부의 총액 2% 가이드라인을 뚫지 못했고, 인력 부문에선 공사의 구조조정 공세를 어느 정도 막아냈다.

기존 2호선 관리역체제1) 전환 음모 분쇄에 이어 2호선 양산 연장구간의 관리역체제 도입을 사실상 저지했다. 장산차량분소를 없애고 그 인원을 3호선 중수선에 배치하려던 음모도 분쇄했다. 이 같이 2007년 투쟁은 공사의 구조조정 공세를 저지한 첫 사례란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4개 지부가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쳐 함께 한 결과라는 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원섭섭하다할까? 아무튼 개운치 않다. 왜 일까?



샅바 싸움에서 기선을 잡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2007년 투쟁은 공사의 도발로 앞당겨 시작됐다.

공사는 지난 1월 30일 인원충원 없이 2호선 양산 연장구간을 개통하겠다고 통보했다. 2호선 17개역과 개통구간 4개역을 3개역씩 묶어 7개의 관리역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존 인력의 전환배치를 통해 연장구간 소요인력을 확보하겠다고 나왔다. 여기에 역무자동설비분소의 근무형태 변경으로 8명을 확보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시작되는 3호선 전동차 중수선 업무 소요인력도 기존의 장산차량분소를 없애고 그 인원을 활용하겠다고 나섰다.


노동조합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노동조합은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연장구간 소요인력은 신규채용 해야 한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본사에서 현장간부결의대회와 조합원 결의대회를 잇달아 열고 공사를 압박해 들어갔다.

이미 현장은 술렁이고 있었다. 2월 13일 본사에서 열린 조합원 결의대회에 500여명이 참석했다. 통상 200명 안팎이던 본사집회에 여느 때와 다른 관심과 열기가 느껴졌다.

12일부터 조합원 ‘깃 달기’ 투쟁이 시작되고, 지부 운영위원 이상 간부들은 13일부터 ‘쟁의복 입고 근무하기’ 투쟁에 돌입했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2월 15일 정기대의원대회는 투쟁 다짐대회로 바뀌었다. 애초 5월 쯤 잡고 있던 2007년 단체교섭도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에 따라 3월 6~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요구안을 확정하는 등 단체교섭 준비에 들어갔다. 이는 물론 양산연장구간 개통을 빌미로 한 직제개악을 막지 못한다면 올해 교섭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3월 13일 시청 앞 2차 조합원 결의대회엔 더 많은 조합원이 모였다. 서면을 거쳐 본사까지 거리행진도 했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집행간부에게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듯했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신속하게 대응하고 나서자, 기세 좋던 공사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2호선을 관리역체제로 전환하려던 계획을 유보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공사가 양산 연장구간 인력 수급에 대해 수정안을 내놨다. 노동조합이 초반 샅바싸움에서 기선을 잡은 것 같다.


3월 2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교섭 국면으로 들어갔다. 교섭은 처음부터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공사는 개통구간 신규충원 및 현장 부족인원 충원 요구에 대해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면서도 경영진의 조직 최소화 방침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경제성장률(4.4%)과 물가상승률(2.6%)을 보탠 노조의 총액 7% 임금인상 요구도 동의한다면서도 정부지침인 2% 인상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정수당 산식 개선, 직급보조비 전 직급 확대 적용, 퇴직수당, 대우수당, 대학생 학자금 등의 문제도 정부지침과 예산 문제 등을 들어 반대했다. 해고자 복직 등 현안문제도 인식 차이만 드러냈다.


노조는 4월 11일 쟁의발생 결의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쟁의발생 결의는 보기 드물게 대의원 100%가 참석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4월 20일 야간 3차 조합원결의대회에는 1300명의 조합원이 운집했다. 승무와 차량은 참가 가능 조합원 90% 이상이 참석했고, 기술은 전체 조합원의 45%가 참석했다. 조직이 취약한 역무도 20% 넘게 모였다. 집행부도 놀라고, 조합원 스스로도 놀랐다. 함께 진행된 파업 찬반투표도 최근 들어 가장 높은 투표율(91.12%)과 찬성률(77.85%)로 파업을 결의했다.

IMF 이후 10년 넘게 당하며 살아온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만큼 절박하고,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호선 늘면 구조조정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은 호선이 늘고, 구간이 연장될 때마다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어 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부산지하철은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쳤다. 2인승무(기관사와 차장)의 1인승무(기관사 단독) 전환, 차량 중수선과 기술분야의 외주용역 도입, 역무 서무제 폐지 등 모든 분야에 인원감축이 진행됐다. 바로 2호선 1단계 개통 소요인력 확보가 목적이었다.

2002년 2호선 2단계 개통 때는 역 매표업무를 민간위탁으로 전환시켰다. 2005년 3호선 개통 때는 한명의 인원충원도 없이 오히려 기존 정원에서 32명을 줄이는 화려한 성과(?)를 과시했다. 역사 설비의 유지보수는 모두 외주용역에게 맡겨졌고, 매표업무는 무인화 됐다. 1호선 중수선도 외주용역에 넘어갔다. 3호선 역은 조당 2명이 근무하는 관리역체제로 운영됐다. 이 과정에 노사합의는 파기됐다. 주5일제 대비해 노사가 합의한 소요인력 218명은 슬그머니 3호선에 투입했다.

물론 노동조합이 손놓고 있은 건 아니다. 구조조정이 밀어닥칠 때마다 투쟁에 나섰지만, 참담한 패배의 맛만 다셨다.

그 결과는 지하철 가운데 가장 슬림화된 조직으로 나타났다. 노동조건은 당연히 최악이었다. 1998년 이후 1,428명의 인원이 줄었고, 전국 지하철 가운데 최소 인원으로 운영되는 부산지하철이 됐다. ㎞당 37.6명으로 가장 슬림화 되었다고 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45.5명보다 적다. 돌발 상황에서 아예 대처할 수 없는 인원이다. 단지 사고가 나지 않길 빌 뿐이다. 현장 조합원들 가슴엔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파업을 선택하다


파업 찬반투표와 3차 조합원 결의대회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교섭에서 투쟁 쪽으로 무게추가 넘어가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4월 24일 9차 교섭에서 공사 쪽에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하며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25일 저녁부터 26일 아침까지 현장확대간부 200여명이 함께하는 시청 노숙투쟁이 진행됐다. 부산시는 시청광장으로 통하는 시청역 통로를 봉쇄했다. 졸지에 시청역 대합실이 잠자리로 변했다.

노동조합은 파업 돌입을 전제로 준비를 갖춰가고 있었다. 4월 30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내부적으로 D-day도 5월 16일 새벽으로 정해졌다. 현장활동도 5월 15일 조합원 비상총회 조직에 맞춰졌다.


마침내 5월 15일. 어둠이 내리는 노포차량기지 잔디구장에는 조합원 비상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총회는 15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낮에 조정회의가 늘어져 늦어진 교섭이 저녁 9시 30분에 열렸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18일 오후 5시까지 직권중재회부를 보류한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지만, 아직 조합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조합원들 사이에는 이미 조건부 중재회부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11시쯤 됐을까? 교섭단이 잠시 정회하고 무대에 섰다. 교섭 보고와 함께 조건부 직권중재 사실도 공식 공개됐다. 야간문화제도 끝나고, 천막 배정과 함께 조합원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16일 새벽 3시, 교섭단이 돌아왔다. 대책회의를 간단하게 마친 뒤 3시 20분쯤 임은기 수석부위원장이 기자를 모아놓고 브리핑을 했다. 최종 교섭 결렬로 파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노조는 양산연장구간 소요인력으로 88명 신규채용과 본사업무개선으로 남는 31명의 기존 운영구간 투입 그리고 해고자 2명 복직을 최종 제시했고, 공사는 양산연장구간 73명 배치와 해고자 복직 1명을 내놓고 줄다리기를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지막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고, 공사는 그 때까지 내놨던 수정안을 모두 철회하고 교섭장에서 철수했다. 이렇게 파업은 시작됐다.


16일 아침, 파업 대오는 2200여명으로 불어 있었다. 당장 아침밥 준비가 문제됐다. 2000명분만 주문된 상태라 나머지 200명분을 준비해야 했다. 결국 김밥으로 대체됐다. 기술의 신호지회는 조합원 100%가 파업대오에 참석했다. 노조 전체로 볼 때 2800 조합원 가운데 최대 80% 가까운 조합원이 파업에 참석했다. 사실 공기업의 파업 조직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공기업이 파업에 들어가면 보통 조합원 50% 안팎 참석한다. 부산지하철은 이번 파업투쟁에 이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파업 첫날 오후 2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민주노총 부산본부 주최로 시청광장에서 파업지지 집회가 열렸다. 서면까지 행진한 뒤 마무리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비 때문에 천막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결국 노포창 여기저기에 분산 수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16일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17일 오후 2시 실무교섭이 열렸다. 실무교섭에서 진전이 있을 경우 본 교섭도 열릴 것이라 했다. 노포창에서 밤 10시부터 본교섭이 진행됐다. 교섭은 자정을 넘어서도 계속됐다. 18일 02시를 전후 해 잠정합의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파업 돌입 46시간만 이었다. 2007년 파업투쟁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정부지침은 여전히 높았다


잠정합의안이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노동조합에선 잠정합의안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선 잠정합의안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악의적 비난 글도 있지만, 나름의 논리를 가진 비판 글도 눈에 띤다. 파업투쟁의 성과가 미약하다는 게 비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럴 거면 뭣 땜에 파업했냐는 불만 글도 있다. 파업 이튿날 문화제 때 젊은 조합원을 감안해 B-boy와 여성 댄서를 무대에 올린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집회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튼 잠정합의안은 5월 29일 대의원대회에서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또 집행부는 조합원 신임투표로 올해 투쟁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난 4개월 가까운 투쟁 결과로 나온 잠정합의안을 살펴보는 것이 쓸데없지만은 않을 것 같다.

먼저 임금부문에서 노조는 공사가 제시한 총액 2%(기본급 2.2%) 인상을 받아 들였다. 정부 가이드라인을 넘지 못한 것이다. 노조는 처음에 제시한 7% 요구에서 4%로 낮춰 수정 제시했지만, 정부가 정한 총액 2%라는 인상 가이드라인을 넘기기엔 힘에 부쳤다. 의미를 찾는다면 정부 가이드라인 넘기가 개별(기업별) 노조만으론 역부족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일 게다. 다만, 임금 인상분을 호봉급에 정률로 적용하기로 한 것은 나름의 성과이다.

일용직 조합원의 임금 인상도 공사가 처음 제시한 일급 700원에서 1000원으로 인상 폭을 높이긴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특히 월급제와 호봉제 도입을 요구만 했을 뿐, 관철 노력이 부족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 인력부문은 노동조합이 처음 요구했던 수준에 못 미치지만, 나름의 성과가 보인다.

노조는 공사로부터 2호선 양산 연장구간 소요인력으로 처음 제시했던 59명에서 19명 늘어난 78명까지 양보를 받아냈다. 신규채용도 27명에서 57명으로 늘렸다. 3호선 중수선 소요인력으로 6명 신규채용도 확보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짭짤한 성과이다.

그러나 드러난 숫자보다 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공사의 구조조정을 막아냈다는 점이다.

공사는 2호선 양산 연장구간 개통 소요인력을 가능한 신규충원 없이 구조조정과 전환배치 등으로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합원들의 강한 반발과 노조의 발 빠른 대응 때문이다. 공사는 기존 2호선 역을 관리역으로 돌리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공사의 구조조정 공세가 처음으로 주춤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양산 연장구간의 역 인력운영을 관리역 체제로 하려던 계획도 사실상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 3호선도 관리역 체제를 폐지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뿐만 아니라 장산차량분소를 없애 3호선 중수선 소요인력을 확보하려던 공사의 기도를 막아냈다.

이렇게 올해의 투쟁은 지난 10년 넘게 이어져 온 공사의 구조조정 공세를 막아낸 원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셋째, 현안 요구안에서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2명의 해고동지 복직이 그렇고, 교대근무자의 주간근무 때 지정휴일 1일 추가 부분이 그렇다. 인력 부문이 워낙 중요했고 거기에 많은 역량을 기울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현안 요구 관철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완전히 벗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승무가 별도 인력 8명을 확보해 건강검진과 체련대회 행사를 근무 날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건 지부의 노력 결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올해 투쟁의 가장 큰 성과는 4개 지부의 ‘하나 됨’이다. 그리고 공사의 구조조정 공세를 처음으로 막아냈다는 것이다. 한계는 정부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깨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상대가 정부란 점에서 결론은 나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개별 노동조합이 정부를 상대로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노동조합이 추진하고 있는 산별노조가 이러한 고민과 한계를 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부분이다. 또한 내부의 단결과 달리 여전히 취약한 지역 연대를 비롯한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적 의식을 높여내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노사과연>


호선 늘면 구조조정,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 부산지하철노동조합 2007년 투쟁 참가기 ―



이영호 ∣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대의원





1) 관리역 체제 ― 몇 개역을 묶어 관리하는 역 운영 체제. 인력운영의 유연화를 극대화시킨 체제이다. 관리역에 지원인력을 두고, 산하 단위 역에는 최소 인원만 배치된다. 단위 역에 휴가 등으로 근무인원이 빌 경우 관리역에서 지원인력이 투입된다. 현재 부산지하철 3호선이 관리역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단위 역에 조별 2명씩 6명이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