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현 상태


이글은 노동자계급이 지금 어떤 정치적 상태에 처해있는가를 서술하는 글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정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일 것이고, 그 투쟁의 목적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며, 다른 말로하면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의 수립을 위한 투쟁이 될 것이다. 한편 자본가계급의 정치는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투쟁, 노동자를 지배ㆍ억압하는 정치일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혁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지 자본주의의 개량에 머물 때 레닌은 이를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정치라고 했다.

혁명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 레닌의 말이다. 한편으로는 쏘련의 몰락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사상적 억압으로 혁명이론의 발전이 취약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 정치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계급 대중의 많은 부분이 극우정당인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서는가 하면, 87년 7ㆍ8ㆍ9 대투쟁의 성과로 만들어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정치를 점점 더 노골화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실현하고자는 정치부대들은 이론적으로 혼란스럽고 조직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2007년 대선을 맞아 부르주아 정치권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진영도 제법 분주하다. 대선을 맞아 노동운동진영이 드러내고 있는 정치적 색조를 노동자계급의 정치라는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내용의 현 상태를 개략적으로나마 파악해보고자 한다.

먼저 선거에 대한 엥겔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하자.


보통 선거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프랑스에 있었지만, 보나파르트 정부가 그것을 악용함으로써 평판이 좋지 못하였다.(중략)

독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중략). 그들은 선거권을 이용하여 천 배의 대가를 가져왔으며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모범을 되었다. 그들은 선거권을, 프랑스 맑스주의자 강령에 있는 말대로 하자면, ― 이제까지 기만의 수단이었던 것을 해방의 도구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비록 보통 선거권이 다음과 같은 것, 즉 삼년마다 우리의 수를 헤아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정기적으로 확인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급속한 표수의 증가를 통해, 바로 그만큼 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증대시키고 적들의 위축을 심화시켰으며 따라서 우리의 가장 좋은 선전수단이 되었다는 것;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힘과 모든 적대당들의 힘에 대해 정확히 보고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우리의 행동의 균형을 맞추게 하기 위한,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는 기준을 제공하였다 ― 우리를 때에 맞지 않는 소심함과 동시에 때에 맞지 않는 무모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 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이득을 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러나 보통 선거권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였다. 선거 선동을 통해 보통 선거권은 우리에게, 아직 우리와 멀리 있던 인민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정당들로 하여금 우리의 공격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와 행위를 모든 인민 앞에서 변호하도록 강요하는,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보통 선거권은 제국의회의 우리 대표자들에게 연단을 열어 놓아서, 그 연단에서 우리의 대표자들은 신문이나 집회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권위와 자유를 가지고 의회 내의 적대자들과 의회 밖의 대중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선거 선동과 사회주의자들의 의회연설이 지속적으로 사회주의자법을 어기고 있는 마당에 그 법이 정부와 부르주아지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1)


엥겔스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수립이라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선거를 바라보면서, 선거에서 다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선거결과를 통해 “자신의 힘과 모든 적대당들의 힘”, 즉 계급의 세력관계를 파악하여 우리의 힘에 알맞은 전술을 수립하여야 한다. 둘째, 선거연단을 (그리고 당선된다면 의회연단을) 선동의 공간으로 이용하여 적대당을 공격하고 광범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고 투쟁의지를 고양하여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가?



Ⅰ. 전진의 선거만능주의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이하, 전진)은 “2007년 대선강령 (2007년 5월 16일)”에서 주장한다.


6장. 다른 정치는 가능하다! - 다른 세상을 향한 정치


차기 국회는 제헌의회로!

- 새로운 세상을 위한 새로운 헌법 -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면 곧바로 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제체 재구성을 위한 전면적 헌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

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체제의 전면적 재구성을 위해서는 헌법도 전면적 재구성이 불가피하다. 절차상으로는 헌법 개정이 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 제정에 준하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게 될 18대 국회는 사실상의 제헌의회가 되는 것이며, 민주노동당 집권 직후에 치러질 18대 총선은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가 되는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는 집권 직후에 곧바로 사실상의 제헌의회를 구성할 것임을 선거강령으로 제출한다.


모든 권력을 민중대표자회의로!

- 정치권력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과 분배의 주체 -

제헌의회에서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헌법에 의해 정치권력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과 분배의 주체인 민중대표자회의를 구성한다.


이들에 따르면 민중대표자회는 선출된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로 구성되며, 자본주의 사회의 의회와 같은 입법기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정, 입법, 사법을 포괄하는 최고 권력기관이 된다. 해당 지역의 행정과 사법, 관료기관들을 선출하고 소환하며, 가칭 ‘경제기획위원회’를 비롯한 각급 경제기획기구들을 통제하며 그에 대해 책임진다. 생산수단 사회화 진척 정도에 따라, 생산과 분배의 주체로서 정치와 경제를 일체화한다.

전진은 혁명을 이렇게 진행한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하여,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이 헌법에 의해 민중대표자회의를 구성하며, 민중대표자회의는 정치권력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과 분배의 주체로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선거를 통해 너무나 쉽게 해결된다. “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제체 재구성을 위”해서는 단지 “전면적 헌법 개정 작업”이 필요할 뿐이다. 법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체제 재구성을 위”해서는 부르주아국가기구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 독점자본의 몰수와 국유화,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을 통한 의식화와 조직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부르주아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무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선거를 통해, 그리고 헌법 개정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재구성된 사회경제체제 및 정치체제”란 결코 “새로운 세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전진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4장. 경제의 미래는 공공성의 확대에 달려있다.

4-3. 일정 자산규모 이상의 대기업은 ‘사회적 기업’으로 그 성격을 변화시킨다.


대규모 기업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들 기업들을 공공성이 관철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켜 나간다. 먼저, 자산 10조원이상 그룹에 속하는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부터 1차적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켜 나간다. 또한, 미래적 가치, 공공적 가치가 큰 기업으로서 국민경제의 계획과 조절을 위해 필요한 경우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며, 정부가 요구하는 ‘투자계획협약’에 응하지 않는 사기업 역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사회적 기업’은 공익이사가 이사회의 과반수를 의무적으로 지배하도록 하고 나머지 이사회는 주주대표로 구성하는 기업이다. 공익이사는 노동자 대표, 소비자 대표, 지역주민 대표, 연관업체 대표 등의 이해당사자들로 구성하되, 이들 공익이사의 선출은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선출되는 현재의 사외이사 선출과는 달리 공공성과 민주성의 원칙에 따른다. 또한 (가칭)‘경제기획위원회’나 연기금을 통해 해당 ‘사회적 기업’의 소유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주주대표의 공공성도 강화하도록 한다.

“대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그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회화(몰수와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익이사를 노동자 대표, 소비자 대표, 지역주민 대표, 연관업체 대표 등의 이해당사자들로 구성하는 것이라 한다. 노동자 대표, 소비자 대표, 지역주민 대표를 놀고먹는 이사 자리에 앉혀 타락시켜서 대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겠다니! 이것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가 아니라 그 맹아도 될 수 없다.



Ⅱ. 해방연대(준)―과학에서 공상으로


노동해방실천연대(준)는 전진처럼 선거를 통해 혁명을 하겠다는 황당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보세력과 노동자계급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 뿌리인 자본과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정치기조를 대중투쟁과 대선투쟁 모두에서 분명히 하여야 한다.

반자본주의를 분명히 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투쟁주체의 기회주의적이고 불분명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사회의 객관적 현실은 체제문제, 인간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체제와 그 대안체제문제가 당면문제가 될 정도로 자본주의체제가 그 한계를 극단적인 형태로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자본자체의 한계-이윤을 위한 생산- 때문에 위기의 악순환구조에 빠져 있고 위기의 악순환구조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인간적 삶은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민중과 함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을 찾고 투쟁해야 할 만큼 노동자, 민중의 삶은 절박한 처지에 몰려 있다.

...

노동자계급이 제출하는 요구는 현시점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있는 그대로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적 의식을 촉발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

노동자, 민중에게 헛된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만들어내는 원인(자본주의체제 자체의 문제)을 분명히 밝히고 그 원인을 제거할 대안(사회주의지향의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현실의 모순과 그 극복의 방침을 명확한 형태로 폭로하고 제시하여야 한다.2))


“자본은 자본자체의 한계―이윤을 위한 생산―때문에 위기의 악순환구조에 빠져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정치기조를 대선투쟁에서 분명히 하여야 하고”, 선거연단을 활용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여”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적 의식을 촉발” 시키며 “그 원인을 제거할 대안(사회주의지향의 대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야 한다고 한다. 동의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은 자본의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때문에 자본은 이윤을 낳는 자본으로서, 자기증식하는 가치로서 운동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다. 과잉생산이 거의 일상화 되고 있고, 과잉생산공황이 주기적으로 거대하게 폭발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이 사회적 생산력을 사회로부터 위임받아 사적으로 소유한 부르주아들은 생산력을 관리할 능력을 이미 잃어버렸고, 생산력은 낭비되고 파괴되고, 사회에 적대하고 있다.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서만 기능하여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한편에서는 공장이 놀고 있고 한편에서는 노동자가 놀고 있다. 한편에서는 상품이 썩어가고 한편에서는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다. 사회가 발전시킨 이 생산력을 부르주아로부터 탈취하여 사회의 공동 소유로 바꾸는 것, 국가권력을 장악한 노동자계급이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전화시키는 것, 그리하여 이윤을 위한 생산을 인민을 위한 생산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것만이 해결책이고 역사의 필연이다.

이것이 “자본은 자본자체의 한계 때문에 위기의 악순환구조에 빠져 있”다는 말의 의미일 것이고, 선거연단을 활용하여 이것을 선전선동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는 것이고 “사회주의적 의식을 촉발” 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해방연대는 “사회주의지향의 과도적 요구”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중간단계를 설정하고,“인간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공상으로 빠져든다.


1. 사회주의 지향의 과도적 요구(?)

먼저 경제문제에 대한 요구를 보자.


② 요구는 사회주의지향의 과도적 요구가 되어야 한다.

요구는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라는 객관적 조건과 현재의 취약한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여 사회주의지향의 과도적 요구가 바람직하다. 현재의 주체적 조건에서 선거강령을 최대강령적 내용으로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요구를 최소강령적 내용, 개량요구만으로 설정하는 것도 만성적인 위기상황이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맞지 않다. 따라서 대중의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되 대중의 의식을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으로 인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요구는 그 자체로 최대강령적 요구가 아니지만 이러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폐지라는 사회주의적 의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요구가 될 것이다.3)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 “대중의 의식을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으로 인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 및 노동자 통제, 사회화된 기업에서 전면적인 노동자 통제 실시, 기업의 경영정보 공개, 노동자의 자주적 통제기관으로 공장/직장위원회 건설” 등의 요구가 그것이다.4)

이들은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폐지라는 사회주의적 의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요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만약 기간산업(자본주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산업은 대부분 독점자본이 장악하고 있으므로)이라는 의미를 독점자본으로 파악한다면5), 은행과 기간산업(독점자본)을 사회화(국유화)하고 노동자가 통제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주의적 요구가 된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요구를 한다면 이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폐지라는 사회주의적 의식이 고도로 발전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폐지라는 사회주의적 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는 사고는 앞뒤가 바뀐 그저 공상일 뿐이다. 만약 사회화의 대상과 의미를 “선행조치로 최근에 사기업화된 (민영화된) 공기업들을 모두 원상복귀시킨다”라는 의미로 한정한다면, 여기서 “사회주의적 의식의 발전”을 운운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사업장 전 노동자가 참여하여 노동자의 자주적 통제기관으로 공장/직장위원회를 건설하여, 이 기관이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여기서의 “기업”이란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기업을 말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공장/직장위원회를 구성해서 기업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가지기”위해 투쟁6)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의식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투쟁자체가 이미 상당히 발전한 사회주의적 의식을 전제하고 있고, 자본가들의 저항을 무력화할 만큼 조직적 힘의 성장을 또한 전제로 한다. 당연히 이러한 “가교 역할을 하는 요구를 통해” 사회주의적 의식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혁명화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이러한 요구를 한다면 그 현실적 내용은 노사협의회 수준을 넘지않거나 잘해야 개량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노조의 경영참여”요구와 동일한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에 관한 문제를 보자.

10.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를 이 땅의 지배자로 조직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들의 정치적 지배를 끝장내지 않는 한, 모든 바람은 공염불이 될 뿐이다.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단순히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 많은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일과 무관하다. 그것은 지금의 정치기구들을 대신할 새로운 권력기관을 창출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 권력기관을 세우는 것이다. 노동자 정부는 지금의 자본가 정권보다 수백만 배 민주적이면서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단호하게 행동하는 정부가 될 것이다. 고통과 원망으로 대를 이어 굴종할 것인가 노동자 정부수립으로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인가!7)


지금의 “정치기구들을 대신할 새로운 권력기관을 창출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 권력기관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대중적 권력기관”을 세우는가?


⑤ 민중대표자회의의 구성

사회화된 기업의 통제를 강화해가는 노동자들과 예산(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 인용자)통제 및 국가기관운영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이 충분치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 권력기관을 수립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에 의해 수립된 통제기관도, 그리고 민주적 개혁도 모두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 민중에 의해 성취된 모든 성과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사회를 더욱 평등하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 민중은 대중의 권력기관으로 민중대표자회의를 건설해야 한다. 민중대표자회의는 기업의 통제와 국가경제에 대한 개입으로 훈련된 민중역량을 우리사회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역량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민중대표자회의 지역, 계층별 대표자들로 회의를 구성하고, 이 회의에서 각급 정부기관에 파견할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한다.8)


“사회화된 기업의 통제를 강화해가는 노동자들과 예산통제 및 국가기관운영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이 충분치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은 대중의 권력기관으로 민중대표자회의를 건설해야 하고”, “민중대표자회의 지역, 계층별 대표자들로 회의를 구성하고, 이 회의에서 각급 정부기관에 파견할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한다고 한다.

대중의 권력기관으로 민중대표자회의가 있고, 여기서 “정부기관에 파견할 대표자를 선출”한다면 부르주아국가기구를 파괴하지 않고 그 국가기구의 대표자만을 바꾼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9). 혹은 민중대표자회의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책임지는 형태로 볼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기존의 부르주아국가기구의 파괴를 의미할 것이다(선거강령에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국가기관운영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이라는 표현을 볼 때 전자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가 문제에 대한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연단을 통해서 사회주의 의식에서 핵심 중 하나인 국가의 계급적 성격, 노동자계급과의 적대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 “대중의 의식을 사회주의의식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겠는가?


2. “인간성”이라는 관념으로 후퇴

그들은 주장한다.


③ 2007년 대선에서 노동자계급이 제기해야 하는 핵심적 요구

㉠ 자본에 맞서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것을 모든 요구를 관통하는 기본요구로 설정하자!

이제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공세에 대항하여 가장 강력한 무기, 자본의 최대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민중과의 연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자본에 대항하여 인간이라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한 요구를 과감하게 제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노동자계급은 자본과 인간다운 삶을 정면으로 대비시키고 민중을 대표하여 인간다운 삶의 요구를 전면화 하여야 한다. 2007년 대선투쟁을 87년의 노동자인간선언운동에 이은 제2의 인간선언운동을 전개하는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10)


그러나 “자본의 공세에 대항하여 가장 강력한 무기, 자본의 최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기치”를 내거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적소유를 신성시하는 자본의 인격화인 부르주아 인간인가? 아니면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사적소유를 철폐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인간인가? 사회적 존재로서, 계급적 존재로서의 인간 대신에 “인간 일반”을 기치로 세우는 것은 계급으로부터의 후퇴이고 관념으로의 도피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과 그 표현으로서의 현실의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것 대신에 인간일반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들이미는 것은, 노동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일깨우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본최대의 약점은 바로 자신이 몇 페이지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은 자본자체의 한계―이윤을 위한 생산― 때문에 위기의 악순환구조에 빠져 있”는 것이고 이것이 공격의 지점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음미해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현존하는 사회장치들은 비이성적이고 부정하다는 통찰, 이성이 어불성설로 되고 선행이 재난으로 되었다는 통찰이 싹튼다는 것은, 생산 방법들과 교환 형태들에서 은밀한 변화가 일어나 이전의 경제적 조건들에 맞게 만들어져 있던 사회 질서가 더 이상 그 변화들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징후에 불과하다. 이것은 동시에, 발견된 폐해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도 역시 변화된 생산관계들 자체 내에 ―그 발전 수준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수단은, 머리에서 고안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생산이라는 현존하는 물질적 사실에서 발견해야 할 어떤 것이다.(강조는 엥겔스)11)


해방연대(준)는 “대중의 의식을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으로 인도하는 가교”를, “인간성”이라는 무기를 고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Ⅲ. 노동자의 힘 ―선거에 대한 환상, 그리고 혼돈


그들은 말한다.


1. 2007년 대선투쟁을 노동자 민중의 20년을 여는 첫걸음으로 삼자!

2007년, 한국 사회의 이러한 전환기의 정점에 2007년 대선이 가로놓여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정치적 조건을 창출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지역 전체로 자본의 지배력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전략과 주체를 재편하는 시기로 볼 것이다. 반면,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적 지배질서의 안정적인 재편에 균열을 내면서 대안적인 정치ㆍ사회세력으로 발돋움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한 모순의 폭발을 관리하면서 노동자민중운동을 제도화시켜 나가는 체제내적 기제를 담당하게 될 지를 가름하는 장이 될 것이다. 따라서 2007년 대선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한국 경제와 사회의 발전 패러다임을 둘러싼 제정치ㆍ사회세력들 간의 격론과 격돌의 장이 될 것이다.12)


대선방침의 목표로서 첫째, 좌파의 정치세력화와 둘째, 이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재편구도에 파열구를 내는 것으로 하였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좌파의 정치세력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대선(그리고 이어진 총선국면)에서 좌파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여 각종의 전술을 구사하고 또한 이 목표에 맞게 각종의 전술들을 배치할 것이다. 이에 맞게 이번 대선방침의 취지를 “좌(左)판을 열자”는 것으로 하였다. “좌(左)판을 열자”는 의미는 좌파의 판(=좌판)을 열자는 것으로 현재 고립되고 분산되어 있는 좌파 정치세력들을 대선시기 공동의 정치행동을 중심으로 결집시켜 내고 좌파정치를 대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판을 형성시켜 내자는 것이다.13)


2007년 대선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20년을 여는 첫걸음”일 수도 없고, “좌파의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요술방망이도 아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재편구도에 파열구”를 낼 수도 없다. 대선은 단지 그들의 표현대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주체를 재편하는”, 쉽게 말하면 그저 지배분파 내에서 인물을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것이 있다면 엥겔스의 가르침처럼, 우리와 적과의 세력판도를 확인하는 것(그것이 비록 초라할지라도), 그리고 선거연단을 활용하여 작은 전진이라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당이 필요하고, 당이 아니라면 혁명적 내용을 갖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선거연단을 활용할 것이 아닌가.

그들도 물론 선거연단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2. 노동자의힘은 2007년 대선 국면에서 반신자유주의 반제반전 반자본 정치투쟁에 동의하는 세력들과 공동 정치전선을 형성한다.

1) ‘공동 정치전선’을 형성한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를 뜻한다.

-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이 연대하여 공동의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 반신자유주의 반제반전 반자본 정치활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 전체대중을 향해,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의 ‘정치적 연단’을 세운다는 것이다. 14)


그러면 ‘정치적 연단’에서 선전선동할 “공동의 정치적 내용”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것일까?


우리는 좌판을 엶과 동시에 ‘내가 민중후보다’운동을 통한 1만인의 정치선언과 정치실천을 끌어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업들이 제기되고 상호 결합될 것이다. 지난 2002년 민중경선의 좌파후보 추대를 위한 1만인 실천단이 제시되었다면, 2007년은 그 반대로 진행될 것이다. 정치선언과 정치실천에 기반한 ‘내가 민중후보다’운동이라는 좌파적 대중운동을 통해 대선공간의 좌파 연단을 창출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 선거 틀을 뒤흔들고 이 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힘은 정치조직과 부문운동을 망라한 (가칭)‘좌판(左판)을 열자! 내가 민중후보다! 운동’을 제안하고 수백의 후보단, 수천의 정치선언, 수만의 실천단 구성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서 좌파 후보, 노동자민중의 후보가 나설 수 있는 정치적, 운동적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대선방침 요체다! 15)


수백의 후보들이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낼터16)인데 도대체 “수백의 후보단, 수천의 정치선언”에서 어떻게, “공동의 정치적 내용”, 혁명적이고 통일적인 내용이 선전선동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을 좀더 따라가 보자.


현재 발생하고 있는 어떤 사안이라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권력과 체제의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사회의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의 정책의 필연적인 산물이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극복될 수 없다.17)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정책인가 아니면 위기의 시대의 자본주의체제 그 자체인가?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것이 “새로운 권력과 체제”를 세워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단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면 되는 문제인가?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선투쟁의 조건을 만들어 가고 이 속에서 좌파의 대선운동의 동력을 형성시켜 내는 일이다. 18)


“대선투쟁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과 “좌파의 대선운동의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 다른 것으로 선후의 문제란 말인가?

혼란스럽다.

분명한 것은 “계급적 좌파적 변혁적 좌파 혹은 반신자유주의 반제반전 반자본”을 수백 수천 번을 외치는 것으로는 현실운동을 한 발짝도 전진시킬 수 없다는 것이고, 선거연단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백의 후보단, 수천의 정치선언”을 통해 정치사상적 혼돈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거 시기에 선전선동할 “공동의 정치적 내용”부터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전진<준>과 해방연대<준>이 앞서나가고 있다)



Ⅳ. 자민통(민주노동당 우파)


민주노동당 내의 다수파이고 우파를 형성하며 이른바 자민통 계열로 알려진 정성희 (민주노동당 전 기관지위원장)은 글로 시작하자. 그는 “북미ㆍ남북관계가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치세력의 좌우를 구분한다.


현재 남쪽의 정치 역관계와 북쪽의 태도로 볼 때, 가장 확실한 평화와 통일의 비전을 갖고 있는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예비후보를 앞세운 민주노동당이나 김근태, 천정배 등 중도 좌파가 남북관계 발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오히려 한미FTA에 비중을 두지 않고 반 한나라당 전선을 주도할 능력이 좀 더 높으며,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손학규, 정동영 등의 중도 우파와 이해찬, 한명숙 등의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남과 북의 정치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19)


그에 따르면 김근태, 천정배는 중도 좌파(!)이고 손학규, 정동영 등은 중도 우파가 된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좌파가 될 것이고 우파는 한나라당일 것이다.

그는 각 “정치세력의 대선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반 한나라당 중도세력의 동태는 어떠한가. 내부 갈등과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광범위한 비 한나라ㆍ비 노무현 정서가 확인됨에 따라 개혁성향의 전국적 전망을 갖는 중도우파 성향의 후보가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영남 출신 유권자의 표를 흡인할 수 있는 중도통합 후보를 금상첨화로 여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김근태, 천정배 주도의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은 어렵다고 예상된다.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등 친노 그룹은, 막판 중도통합에 합류하거나 한나라당정권하의 독자 생존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중도우파가 반 한나라당 전선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고공행진을 꺽어야 하지만, 중도우파가 주도하는 남북관계, 한미FTA도 우리 노동자, 민중에게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20)


“손학규, 정동영 등의 중도 우파”가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는데 이는, “노동자, 민중에게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대안으로 진보대연합을 제안한다.


자주민중역량의 강력한 진보정치세력화를 통해 중도를 진보로, 보수를 중도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견인해 한국정치지형 전반을 좌경화함으로써 사회양극화 시대, 한반도 대변혁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21)


이들은 먼저 중도를(아마도 특히 “중도좌파”를) 진보로 견인하여 진보대연합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수순은 이렇다.


진보대연합의 최선책은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곧 진보신당 창당이다.

진보신당 창당을 통해 진보진영의 총 단결과 민중경선 방식의 단일후보 선출을 성공시킴으로써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에 실망한 진보 개혁적 국민 층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전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논의는 그 자체로 당 내부의 상당한 갈등을 수반할 위험이 있다. 만일 진보운동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고, 반신자유주의 중도좌파가 독자세력화해 민주노동당과 합당, 진보정당을 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인다면, 이번 기회에 진보대연합당과 진보대연합 전선 체의 건설을 앞당겨 진보운동을 확대, 재편함으로써 다가오는 한반도 대격변기를 맞을 태세를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22)


“반신자유주의 중도좌파가 독자세력화해 민주노동당과 합당, 진보정당을 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인다면”, 진보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도좌파란 김근태, 천정배를 의미한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반신자유주의란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진보신당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정당(“중소상공인의 당”)이라는 것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올바른 노선 정립과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다며 ”중소영세기업을 회생“시켜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중소영세기업 회생 없이 비정규직문제 해결 없다

지금이라도 대대적인 중소기업 회생을 추진해야 한다. 사회복지분야 등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중소영세기업을 살리지 않고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실업해소는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의 당이자 중소상공인의 당으로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쟁취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연계시킨 중소기업 회생 종합대책’을 내놓고 그 관철을 위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울산, 창원, 포항, 광양 등 전국 각 지역의 산업노동정책으로 구체화해 민주노동당 지역조직과 의원들, 대기업ㆍ중소기업ㆍ비정규직 노조, 시민단체들의 긴밀한 협조체계 속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연계한 중소기업 회생대책을 대전제로 노사정 연대 기금 조성과 사회양극화 해소, 원-하청 불공정거래 중단 등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연동된 대기업노조 무쟁의선언 등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과감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23)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취업해 있는 중소영세기업을 회생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중소영세기업이 회생되려면 이들에게 상품을 구입하는 대기업이 잘 되어야 할 것이다. 또 내수 소비재를 생산하는 중소영세기업이 잘 되려면 주고객인 대기업노동자가 많아야 하고, 이 또한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대기업이 잘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대기업을 잘 되어야 모두가 잘 되기 때문에, 이들은 벌써 “대기업노조 무쟁의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부르주아정당은 그렇게 독점자본의정당으로 발전해 갈 것임을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 문제를 장황하게 다루는 것은 민주노동당 내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정당, 제2의 열린우리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과연 언제까지 당을 같이할 것인가를 묻고 싶기 때문이다.



Ⅴ. 민주노총


민주노총을 집행부는 민주노동당 우파인 자민통 계열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우파와 선거전략이 동일하다.

이들 역시 선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대선-총선은 노동자 대반전의 기회”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영세 사업장의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 위주의 신자유주의 공약이 압도할 것이다. 안으로는 고용 위기, 밖으로는 전방위적 이데올로기 공세로 현장은 위축되어 있다. 80만이 하나가 되는 대선-총선투쟁은 현장의 활력과 기세를 불러일으킬 분수령이다.24)


이들은 대선에서 300만표, 총선에서 30석을 얻어 “대선ㆍ총선으로 민주노총 재도약”을 이루고 “사회적 고립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들 외에는 현실이 그 반대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선거투쟁(?)이 아니라 오직 노동대중의 현장에서의 경제적ㆍ정치적 투쟁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돌파하고, 전방위적 이데올로기 공세를 돌파할 때만이,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힘이 증가했을 때만이, 그 표현으로 대선 300만 표든, 총선에서 30석이든 오직 그 힘의 크기에 비례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투쟁을 회피하고 선거에 매몰되는 것은 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다.

어떻든 민주노총은 대선방침으로 민중참여 경선 전술, 진보대연합과 진보후보 선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진보대연합과 진보후보 선출에 대해 이영희 민주노총의 정치위원장은 “민중언론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열우당 제외’는 진보진영 대단결 하지 말자는 것”


기자 : 지난달 30일 정치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미래구상은 열린우리당까지 범위를 열어놓자고 했고, 민주노동당과 다함께는 열린우리당과 절대 연합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이영희 : 당장에 단일후보가 성사될 지 여부도 불투명한데, 선거연합 범위까지 논하기엔 머리 아프다. 대선정국에서의 역동성을 반영해 고민할 문제지 미리 걱정을 당겨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구상 측 발언이 내가 듣기에는 ‘미래구상만 들어가면 1%도 안 되고, 또 미래구상만 달랑 갈 수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모여 봐야 도로 민주노동당 아니냐’고 하지 않았냐. 지난달 당 중앙위에서 다함께가 내놓은 세부안 중 3번이 ‘한나라당과 열우당과 그 변종 등 주류 정치 세력의 일부여서는 안 됨’이었는데, 어찌 보면 진보진영 대단결 하자면서 하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를 발목 잡는 모순이다. (반(反)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서 다함께가 복잡한 기준을 제시했는데 우리 스스로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안건을 따로 제시했다. 진보진영 단결과 단일후보 마련을 위해 ‘노력한다’ 정도로 하고 내부 토론을 통해 다음 중앙위 때 진보 기준을 논의해보자는 것이다.25)


즉 이들은 노동자의힘과 사회당, 민주노동당, 미래구상에다 열린우리당 일부까지 모두 연합하는 것이 진보대연합이고, 진보대연합에서 단일진보(?)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좌(진보대연합)-중도(범여권)-보수(한나라당) 이렇게 3강 구도를 그리고 있다. 민주노동당 우파와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민주노총의 우경화와 투항의 끝은 어디일까!



Ⅵ. 맺으며


대선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진영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상태를 서술하였다. 그러다보니 부르주아 정치일정이라는 대선을 상대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한발 물러나 있는 노동자정치협회, 노동자해방 당 건설투쟁단 등을 다루지 못했다.

또한 대선에 대응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민주노동당 내의 분파인 “다함께” 등은 본인의 사정으로 다루지 못했다. “다함께”는 현재 민주노동당의 사실상의 부르주아정당화를 주장하는 자민통과 공동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자민통은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덜 위험한 반면, 이들은 맑스ㆍ레닌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해악이 더 크다. 조만간 이들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의 노동운동, 특히 노동자정치운동의 침체와 혼란은 혁명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례일 것이다.

맑스ㆍ엥겔스에서 체계화되고, 19세기 말 독일사민당에서 계승되었으며, 레닌의 러시아에서 결실을 맺은 혁명이론을 계승하고,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을 만들 때만이 반동의 시기를 넘어설 수 있는 전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현 상태



권정기 | 편집출판위원장



1) 엥겔스, 「“칼 맑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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