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보다 더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게 하자!



간교한 반동으로서의 현대 사민주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그에 따른 엄청난 파괴와 살육, 대공황, 그리고 지난 1970년대 이후 거듭되고 있는 주기적․만성적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제국주의 침략전쟁들과 저항전쟁들. 이토록 심각하고, 사실 치명적인 전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는 아직 여전히 건재하다. 아니, 거꾸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로 반동의 시대가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상환의 대량 체납․불이행 사태를 계기로 세계적인 금융경색․금융위기가 급격히 조성되면서 전반적인 과잉생산의 폭발, ‘대공황’으로의 전개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는 와중에도, 그에 따른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있을지언정, 세계와 역사의 혁명적 변혁에 대한 전망을 얘기하는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이토록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직 건재하며 변혁의 전망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이유․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거기에는 다양한 물질적․사회적 이유와 원인, 객관적․주체적 이유와 원인이 있어서 쉽사리 한 두 마디의 말로 재단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정확히, 전반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광범한 연구․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반적인 이유와 원인은 보다 광범한 연구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변혁을 추동하고 담당해야 할 노동자계급, 혹은 그 운동 측의 주요 원인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 가장 큰 원인은 필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혼란과 지체, 그 조직적 표현으로서의 혁명적 전위정당의 부재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해방, 곧 체제전환의 객관적 조건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전반적인 위기의 재격화에서, 즉 만성적인, 그리고 주기적으로 거듭되는 심각한 과잉생산공황과 그에 상응한 반동적 신자유주의에서 명확한 것처럼, 이미 충분히, 아니 너무나도 농숙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바로 이 정치적 혼란과 지체야말로 사실은 노동자계급이 오늘날 그 해방을 달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독점자본의 착취와 억압 아래 신음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한편, 노동자계급이 이렇게 정치적 혼란과 지체에 빠져 변혁의 전망을 상실하고 있는 데에는 노동자계급을 정치적 포로로 잡고 있는 사민주의 정당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등등 서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이 그들이지만, 최근에는, 주지하는 것처럼, 예컨대, 브라질의 집권 노동자당(PT) 같은 신흥 부르주아 국가의 ‘노동자당들’도 다투어 그 대열에 합세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노동자계급정당임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사상․이념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까지 철저히 독점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 하에 종속시키는, 그리하여 독점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영속화시키는 독점부르주아계급의 좌파정당(서유럽 등 선진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우) 내지는 소부르주아 정당(신흥부르주아 국가들의 경우)이다. 물론 이들은 노동조합운동 상층부의 관료화, 관료주의적 타락과 한 짝을 이루고 있고, 그들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오늘날 이들은 당연히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들이다. 이들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피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대개의 경우 ‘개혁’ 등, 대중의 색깔 혼란을 유발하는 기만적 깃발을 들고 그것을 집행한다. 예를 들면, 이제는 빛바랜지 오래고 대중의 조롱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만,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이나 ‘신노동당’(New Labor Party)이라는 깃발,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neue Mitte)라는 깃발, 기타 여러 정치개혁․제도개혁의 깃발들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에 영국의 노동당을 시발로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등이 연달아 집권하자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 ‘유럽의 좌파열풍’이라는 담론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사민주의 계열의 이들 정권들이 수행한 일이라곤, 국내적으로는 보수당 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있던 신자유주의 개혁을 집행하는 것이었고, 대외적으로는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벌이는 일이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정권이 IMF 등의 지시 이행에 충실한 신자유주의의 집행자라는 사실도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주지하는 것처럼, 저들은 이미 제1차 대전에 즈음하여 ‘조국방위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배반하고 독점자본의 정치부대가 되어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혼란과 지체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 노동자계급운동을 탄압하고 그 지도자들을 학살하는, 그리하여 역사를 반동적으로 지체시키는 주요한, 어쩌면 결정적인 주체였다. 그리하여, 신흥 자본주의 국가의 그것들까지를 포함하여, 이들 현대 사민주의 정당들은, 인류와 역사․사회의 진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반동을, 그것도 극히 간교한 방식으로 반동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당연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저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극복하지 못하고, 수많은 ‘선진 노동자들’조차 저들의 깃발에 쓰여 있는 ‘진보’․‘개혁’․‘노동’․‘노동자’라는 거짓 구호에 현혹되어, 그리고 독점자본의 집요한 이데올로기 공작에 놀아나, 혼란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그 반동의 주체로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현혹되고 그렇게 이데올로기 공작에 놀아나고 있는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 역시 온갖 반동적․반공적 소부르주아적 사상․이론을 이런저런 ‘맑스주의’니, 이런저런 ‘사회주의’니, ‘코뮨주의’니 하는 등의 거짓 깃발로 장식하면서 그러한 경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참으로 역사의 희비극이요,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과제들이다.



‘낡은 이념의 벽을 무너뜨리자’고 나선 민주노동당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1980년대 말의 이른바 ‘합법정당’ 운동에서부터 면면히 그 조직과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온 민주노동당은1), 그 동안 공공연히 ‘유럽의 진보정당’과 ‘브라질의 노동자당’을 그 지향으로 삼더니, 드디어는 “‘뼈에는 이념이 없다’는”, 다른 사람도 아닌“ 스페인 파시스트 프랑코의 말”2)을 당당히 인용하면서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그것도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서의 첫날 일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역시! 권영길”이라는 커다란 구호가 상단부를 장식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첫 현충원 참배에 즈음”한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말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시 “노동자 여러분”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선거홍보물에서, “신뢰받는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를 자임하는 대신에, “권영길 후보는 당과 국민이 인정한 ‘신뢰받는 국민의 지도자’입니다” 하고 천명하고 있는 데에 우리는 그나마 작은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아무튼 계속 들어 보자.


오늘(16일) 저 권영길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서 현충원에 참배를 왔습니다. 아마도 민주노동당 차원의 단독 참배는 오늘이 처음일 것입니다.


문맥으로 봐서 “단독 참배는 아마도 처음일 것”이지만, 이전에도 참배를 해왔다는 뜻이다. 당의 정체성․계급성에 딱 어울리게 말이다.

아무튼 역시 계속 들어 보자.


‘민주노동당이 현충원에 처음이라는 이야기’가 뭐 중요하냐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낡은 이념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남북간 대립과 갈등도 종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현충원에 친일 경력자, 독재자 및 그 부역자 등이 있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현충원을 외면해왔습니다.

진보진영 혹은 민주노동당 가슴 속에도 여전히 이념의 대립과 미움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먼저 그런 자세를 다시 잡아야 합니다. 말로는 서로 화해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 우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심지어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마저도 ‘뼈에는 이념이 없다’는 말로 망자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 진보진영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결심을 오늘 이 자리에서 했습니다.

남북간 이념 대립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했고, 이것이 바로 씻어내고 치유해야 할 비극입니다.

남북간 갈등도 풀어야 하지만 남남 갈등, 아직도 계속되는 갈등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개인적 화해가 아닌 역사적 화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이것이 이 사회의 대표적인 ‘노동자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의 역사의식․사회의식이고 그 인식이다. 아니, 바로 그 당의 역사의식․사회의식이고 그 인식이다. 보도된 사진에 의하면, 실제로 그 참배의 현장에는 권영길 대통령 후보뿐 아니라 문성현 당 대표, 천영세 국회의원 등등 당의 핵심적 인사들과 지지자 ‘30여 명’이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이 현충원 참배를 둘러싸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어떤 치열한 비판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3)

“진보진영은 그동안 현충원에 친일 경력자, 독재자 및 그 부역자 등이 있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현충원을 외면해왔다”는 저들에게 국가의 계급성 등을 따져 물어봤자 필시 입만 아픈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실제로 그 강령에 드러난 몰계급적 국가론을 내가 비판4)한 데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의 핵심 이데올로그 중의 한 사람은, “그람시나 풀란차스가 마치 땅 위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고색창연한 테제들에 만족하기까지 한다”5)고, 즉 맑스나 엥겔스, 레닌 등의 국가에 관한 ‘고색창연한 테제들’은 마땅히 수정되고 폐기되어야 한다고 응수한 바 있다.

저들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계급적 착취와 억압, 그리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저항이 남북 간 이념대립과 전쟁, 소위 ‘남남갈등’이라는 이 사회 내부의 계급대립․계급투쟁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남북간 이념 대립”이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했다”며, ‘진보진영이 먼저 자세를 바로잡고, 먼저 손을 내밀어 서로 화해하고’ “낡은 이념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회의 대표적인 ‘노동자 정당’이라는 집단이 그러한 도착된 역사의식, 도착된 현실인식, 낭만주의적 환상을 유포하면서 노동자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지의 몰계급적이고 환상적인 이른바 ‘상생’의 이데올로기, 계급 화해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정치적으로, 사상․이념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독점자본에 예속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남북 간 갈등도, 남남갈등도 풀어야 하고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과 대립은 결코 주관적 변덕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 그리하여 ‘화해’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적 억압과 착취를 둘러싼, 그에 기초하고 그로 인한 갈등이고, 대립이며, 투쟁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화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억압과 착취의 사회질서, 계급을 철폐함으로써만 ‘풀을 수’ 있고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과학의 기초이다.

그런데도 명색이 노동자정당이라는, 노동자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노동당이, “낡은 이념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며, “역사적 화해”를 역설하다니! 그 타락, 아니 애초부터의 그 소부르주아적인 계급적 성격, 그 반동성을 이보다 더 명확히 드러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파시스트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의 파쇼언론은 행여 ‘낡은 이념의 벽’에 작은 구멍이라도 날까봐 광기의 눈을 번뜩이며 맘껏 설쳐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 ‘수구․파쇼’를 경계하는 자칭 ‘민주․개혁․평화 세력’이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자유주의적 소부르주아 세력이 있음으로 해서 이 반동적 체제는 탄력성을 가지고 그 생명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재앙


이러한 사회의식․역사의식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이 사회 노동자계급의 대표적 정당으로서 자리 잡고 있고, 그 지위를 강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사회 노동자계급의 일종의 정치적 재앙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그것이 창당된 이래, 특히 지난 총선에서 국회에 의원을 진출시킨 이래, 단 한 번도 노동자계급정당다운 정치적 면모, 그러한 정치적 실천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저들의 강령 자체부터 소부르주아들의 “어지러운 ... 혼란스러운 서술들”6)일 뿐이며, 저들의 정책, 공약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계급적 착취와 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고스란히 온존시킨 채 그로부터 발생하는 극단적인 폐해를 공상적으로 치유하려는 것, 혹은 그러한 주장을 통해서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 그 계급적 착취와 억압을 영구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은 반발하고 싶겠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노선이 착취와 억압을 폐절하는 노선이 아님을 모를 턱이 없다.)

일반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주류로서의 소위 ‘자민통 계열’, 혹은 ‘NL’의 몰계급적 노선을 비판하지만, 사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의 대통령 후보를 두고 권영길 의원과 경합하고 나선 심상정, 노회찬 의원의, 사민주의적 성격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공약’을 일별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을 구성하고 있는 사실상 모든 정파의 문제이다.

저들의 대선 ‘공약’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사실상 그것들은 그 표현에서부터, 진지한 노동자 활동가라면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상업광고업에서 발전했고 정치적으로는 야바위꾼으로서의 부르주아 정치가들에게나 어울리는 속물적 상투어들, 공상적 상투어들의 나열이다. 대중의 정치의식, 계급의식을 제거․마비시키기 위해서 본질적으로 그들을 탈정치화시키면서 선거를 인기투표화하는 정치쑈로서의 부르주아 정치행사, 부르주아 선거관행을 비판하고 그에 대항하는 대신에,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중에 영합하고 그들을 기만․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독점부르주아지 지배에 봉사하면서 잉여가치의 분배에 젓가락을 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소위 의정활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들은, 부르주아 정권․정당의 정책과 담화가 어떤 (숨겨진) 목적과 의도를 가진 것이고, 그것들이 정책으로서 실현될 때 어떤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래할 것인지, 특히 노동자계급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대중적으로 폭로하는 대신에,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적․혁명적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대신에, 언제나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그리고 정치적 면피를 위한 실용주의적․위선적 언설과 대응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처음 ‘합법정당’ 운동을 벌일 때 스스로 “연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했던 것처럼, 총원의 2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의원단으로서는 부르주아 국가의 정책의 목표와 그 대중기만성을 폭로하는 것 이외에는 저들이 의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실상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그러한 작업을 하는 대신에, 예컨대, “한반도시대 국가비전” 운운한다든가, “사회복지세, 고용안정세, 투기불로소득 과세, 국방비 감축 등 국가재정방안도 제시” 운운하는 식으로, 소부르주아 대중의 환심을 겨냥한, 그리고 노동자들을 소부르주아 대중으로 전락시키려는 허황한 공상적 정책들, 공상적 공약들을 떠벌리면서 ‘국가 경영’의 일익을 담당하려 나서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이고, 민주노동당이다.

분명 불치의 과대망상증이든가, 아니면 독점부르주아지와의 야합․역할분담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저들의 깃발에 ‘노동’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지만, 저들은 어떤 면에서도 결코 노동자계급의 정치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가야 할 것이다. 저들을 비판하고 저들과 투쟁하되, 저들의, 예컨대, 국립현충원 참배를 중단시키고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다 더 당당하게 참배할 수 있도록, 그들이 보다 더 당당하고 분명한 어조로 독점자본에 봉사하도록,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부대가 아님을 스스로 보다 더 분명하게 천명하게 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2003년의 노동자 열사정국에 이어 벌어진 2004년의 소위 탄핵정국에서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의 안정화를 위해서, 즉 철저하게 반노동자계급적이고 반동적인 독점부르주아지 정권의 안정화를 위해서 ‘탄핵 무효’, ‘탄핵 반대’ 소동에 적극 동참하고, 그에 힘입어 대거(?) 의회에 진출하는 대성과를 거둔 집단, 바로 그러한 집단이다. (‘국제사회주의자’ 집단인 ‘다함께’는 “코로닐로프의 반란” 운운까지 하면서 그렇게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의 안정화를 꾀했다.)

이제 저들로 하여금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도록 하자. 보다 더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저들이 둘러쓰고 있는 ‘노동자’의 가면을 찢어버리자. 그것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이 저들에게 베풀 수 있는, 그리고 베풀어야만 하는 coup de grâce(온정의 일격)일 것이다. <노사과연>


민주노동당

―보다 더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게 하자!



채만수 | 소장


1) ‘사회적 공화주의’니, ‘제7공화국’이니 하고 떠들고 있는 사회당 역시 별반 다르지 않지만.


2) 2007년 9월 16일 오후 1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국립]현충원 참배 기자회견” <보도자료>.


3) 우리는 지난 호에서, 민주노동당 주류에 속한 한 논객이, “[김근태․천정배 등이 과연 반신자유주의 중도좌파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 인용자] 반신자유주의 중도좌파가 독자세력화해 민주노동당과 합당, 진보정당을 하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인다면, 이번 기회에”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즉 진보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진보대연합의 최선책”이라고 주장하고, 또 “중소기업 회생 없이 비정규직문제 해결 없다”며, “대대적인 중소기업 회생을 추진해야” 하고, 그 일환으로 심지어 “대기업노조 무쟁의선언 등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과감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소부르주아정당은 그렇게 독점자본의 정당으로 발전해 갈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 문제를 장황하게 다루는 것은 민주노동당 내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정당, 제2의 열린우리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과연 언제까지 당을 같이할 것인가를 묻고 싶기 때문이다”라고.(권정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현상태”, 「정세와 노동」 제26호, 2007년 7․8월, pp. 121-24.) ―그러나 역시 허망한 질문인 것 같다.


4) 채만수, “민주노동당 강령 비판”, 「진보평론」제3호, 2000년 봄, pp. 173 이하 참조.


5) 장석준, “이제 출발이다: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과 우리의 과제”, 「진보평론」 제4호, 2000년 여름, pp. 207-08.; 이 기회를 빌어 참고로 말하자면, 민주노동당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그 “강령”을 내가 그 문면에 따라 비판한 데에 대해서, 장석준은, “민주노동당은 결코 ... 단일한 주체가 아니”며 “‘강령’이라는 텍스트는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기는커녕 상호 갈등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극히 모순적이며 분열적인 텍스트”로서, “어떤 한 주체의 확신에 찬 테제들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주체들 사이의 어지러운 대화과정이 잠시 멈춰 선 중간 정차역 같은 것”인데도, “그[나를 가리킨다: 인용자]는 ‘강령’을 마치 단일한 입장에서 비롯된 테제들의 집합인 것처럼 상정한 채 자신의 비판을 풀어낸다”며, 내가 “자신[역시 나를 가리킨다: 인용자]이 비판하려는 텍스트의 성격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우선 잘못된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제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 자신 역시 핵심적 당인(黨人)의 한 사람, 핵심적인 이데올로그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강령”이란 것이 그 지경인 데에 참으로 커다란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할 것인데도, 기괴하게도 그는 그 수치스러워 해야 할 그것을 도리어 비판의 무기로 들이대는 특이한 재주를 가졌다. 하기야, 무릇 정당의 강령에 대한 ‘고색창연한’ 관념을 버리고 강령이란 본래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기는커녕 상호 갈등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극히 모순적이며 분열적인 텍스트”이며, “어떤 한 주체의 확신에 찬 테제들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주체들 사이의 어지러운 대화과정이 잠시 멈춰 선 중간 정차역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해버린다면, 그의 ‘비판’이 천만 번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강령’이 제정․공표된 지 7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것이 “중간 정차역”을 떠나 얼마나 더 어떻게 전진했는지, 혹은 좌익의 재사(才士) 장석준은 그것을 그렇게 전진시키고 통일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자못 궁금하다. 역시 참고로 얘기하자면, 다름 아니라 장석준 그야말로 지난 2002년의 대선을 평가하면서,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 2004년 총선을 기약하는 가장 촉망받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우리 사회가 ... 유럽의 길, 현재의 브라질의 길로 향할 교두보를 확보했다”(「진보정치」 제115호, 2002. 12. 23.-31.)고, 즉 저 반동적인 사민주의의 길을 향할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던 자이다.


6) 장석준, 같은 글, p.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