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대대적이고 단호한 투쟁만이 열쇠이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100일(10월 8일)을 기하여 「한겨레」 신문은 아주 흥미 있는 사설을 싣고 있다. “비정규직, 노사정․시민사회 연석회의로 풀자”는 제목의 10월 9일자 사설이 그것이다.

그 동안 「한겨레」는 이 사회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내지는 소부르주아지의 세계관과 정세관을 대변해왔고, 그 때문에 여느 문제, 여느 때 같았으면, “으레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지”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KTX 승무원들의 투쟁을 둘러싼 지난 9월 말의 이른바 ‘노․사․공익 협의체’ 추진1)이나, 특히 “대의원대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노사정위원회가 아닌 “다른 형식이라면” 민주노총도 ‘노사정 대표자 협의 틀’에 “참여하겠다”는 이석행 위원장의 발언을 이끌어내고 있는, 10월 4일 한겨레신문사 주최의 “노동장관․두 노총위원장 좌담”(「한겨레」 2007. 10. 10.) 등등,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민주노총이나 한겨레의 최근의 움직임에 비추어 볼 때, 이 날의 사설은 단순히 한 신문사의 의견을 개진하는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기 부르주아지의 정책목표, 노무현 정부 혹은 이상수 노동부와 함께 「한겨레」가 깃발을 들고, 노동운동을 거세시키고 철저히 체제 내에 포섭시키려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놓아 가고 있는 포석의 하나인 것이다. 1997년 말-98년 초 김대중 정권 초기에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 그렇게 바람을 잡아갔듯이 말이다.

이 사설은 우선 ‘비정규직법’의 취지 혹은 목적과 관련하여, 정부 즉 자본 측의 선전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노동자들과 사회에 허위의식을 심어주고 그것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쓰고 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 어제로 꼭 100일째다. 평가를 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드러난 상황은 그렇지 않다. 법의 취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의 핵심적 목표는 두 가지였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정규직에 견줘 차별하는 것을 막고,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해 비정규직을 줄여 나간다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법의 목표가 무색한 상황이다.


이렇게 정부 측의 선전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거짓이고 음모일 뿐이다. 왜냐하면,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전후하여 “지금껏 드러난 상황”, “속출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법의 취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도, “법의 목표가 무색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애초에 그 입법이 제기되었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되고 경고되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입법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 입법을 강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10월 4일의 좌담회와 관련하여 「한겨레」는, “애초 <한겨레>는 노사정 대표가 참석하는 좌담회를 만들려고 했지만, 이수영 경총 회장은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며, “‘민주노총과 나란히 좌담에 참석하기 어렵다’2)는 등의 이유를 댔지만, 현행 비정규직법 후속 대책에 소극적인 경영계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라고 쓰고 있다.

“현행 비정규직법 후속 대책에 소극적인 경영계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 ―다름 아니라, 현행 비정규직법의 취지와 목적이 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겨레」 역시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법의 취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 속출” 운운하다니! 참으로 후안무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후안무치한 발언은 물론 정부와 그 입법이 결코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비정규직, 즉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입법을 강행했다는 것을 강변하려는 것이고,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정부와 투쟁을 벌이는 대신에 정부를 지렛대로 삼아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세․방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설교하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문제의 사설에서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음흉한 목적을 숨겨 달성하기 위한 사탕발림으로서가 아니라, 솔직 단백하게 사실 그 자체로서 그것이 바로 입법의 취지․목적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랜드 사태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업무를 외주화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가고” “계약해지”해도, 즉 무단히 해고해도, 법은 “속수무책”이며, “노동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바”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시정을 신청했다가 도리어 계약해지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있지만, “비정규직 개인이 차별시정을 하도록 한 제도 자체가 문제였다”는 사실 말이다.

「한겨레」는 “그동안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누차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지만 “상황은 좀체 나아지는 게 없고” “도리어 악화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당연하다. 「한겨레」가 한탄하듯이 “사업자 쪽이 ...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그렇게 ‘교묘히 피해’가게 함으로써 그러한 것들을 합법화시키려는 것이 본래 입법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수많은, 그 강한 경고와 반대를 무릅쓰고 그 입법을 강행했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렇게 예정되고 의도한 바대로, “업무를 외주화해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가고” “(고용)계약(을) 해지”해도 법은 “속수무책”이며, “노동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 바”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겨레」는 “정부의 의지가 특히 중요하다”며,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풀 수 없고” “결국 노사정은 물론, 우리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지속적으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며, 다시 바람을 잡으며 음모를 꾸미고 있다. “노사정․시민사회 연석회의로 풀자”며 말이다.

이미 그 반노동자적 목적과 기능이 충분히 폭로되었지만, 여기에서 다시 ‘노사정위원회’든, ‘노사관계개혁위원회’든, 10월 4일의 좌담회에서 얘기된 “(노사정위가 아닌) 다른 형식”의 “양대 노총과 정부, 경영계가 모이는 ‘틀’” 혹은 “노사정 대표자협의 틀”(「한겨레」 2007. 10. 10.)이든, 그러한 소위 ‘사회적 합의’를 위한 틀들이 어떤 목적에서 추진되는가를 다시 확인하자. 노사정위원회가 추진․구성될 당시 대통령의 최고위 정책 참모를 지낸 ‘좌파 교수’ 최장집의 입을 통해서.

김대중 정권 초기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활발하게 노․사․정 합의기구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기관지 「노동사회」 제52호(2001년 3월)에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동의 동의를 구하려 만든, 제도적 개선을 위한 고안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는 문제들을 노동의 동의를 얻어 관철시켜 사회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장치입니다.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동의 동의를 구하려 만든 고안물”!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는 문제들을 노동의 동의를 얻어 관철시켜 사회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장치”! ―그것이 바로 노․사․정 대화기구, 혹은 그 협의틀이고, 이른바 사회적 합의기구인 것이다.

그런데 그 노사정위원회의 폐해폐악이 익히 폭로된 이 마당에 「한겨레」와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다시 “양대 노총과 정부, 경영계가 모이는 틀”이니, “노사정 대표자협의 틀”이니, “노사정․시민사회 연석회의”니 하면서 바람을 잡고 있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사정위 참여는 대의원대회 의결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노사정위가 아닌) 다른 형식이라면 참여하겠다”고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사정위 참여는 대의원대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대회 개최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며, 그 때문에 “(노사정위가 아닌) 다른 형식이라면 참여하겠다”는 이석행 위원장의 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금지시킨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는 문제들에 노동의 동의를” 제공하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 아닌가?!


민주노총, 혹은 그 집행부의 이러한 행보3)는 매우 유감스럽고 매우 해로운 것이다. 그것은, 1987년의 대투쟁을 통해서 장기간의 파쇼적 억압을 뚫고 부활한 노동운동의 활력, 그 투쟁력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활력과 투쟁력을 파괴하는 행보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가 타락하고 관료화되어 노동운동을 다시, 다만 여러 정세에 규정되어 새로운 형태로, 자본에 종속시켜 가는 행보이다.

1970년대의 ‘민주노조운동’으로부터 부활하기 시작하여 장기간에 걸친 고난의 투쟁 끝에 폭발한 1987년의 대투쟁이 보여준 것, 그리고 1996년 말-97년 초의 총파업4)이 보여준 것은, 나아가 1998년 초 배석범 지도부 하의 민주노총의 굴욕이 보여준 교훈은 노동자들의 끈질기고 대대적이며 전투적인 투쟁만이 국가와 자본의 억압과 기만, 탐욕을 뚫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활로를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그 이석행 지도부는, 투쟁이 아니라 (정책)대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또 그 굴욕, 그 종속의 길을 걷고 있다. 투쟁이라는 말은 남발되고 있고, 또 투쟁하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책임과 비난을 면피하기 위한 것일 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위력적인 파업도 조직하고 있지 않다.5)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직 자력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사실상 내팽개쳐져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투쟁은, 그들의 현재의 조건을 반영하여, 분산되어서, 그리고 당연히 분산된 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그러나 절망적인 처절함으로 투쟁 하나하나가 장기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비정규직 투쟁의 양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렇게 처절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대적인 투쟁, 대대적인 파업을 조직하여 이들을 엄호하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대신에, 「한겨레」나 시민단체들, 이상수 노동부 장관 등의 농간에 놀아나면서, 새로운 노․사․정 대화의 틀과 거기에 합류할 구실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러한 행보는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력이 대기업 노조, 대기업 노동자들이며, 노동자계급의 최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민주노총의 가맹노조도 아닌 현대중공업 노조나 아직 민주노총 소속이지만 널리 비판의 대상으로 돼 있는 KT 노조 등은 물론이요, 최근 기아자동차 노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등이 그 징후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어리석은 현실안주, 노동귀족화의 표현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부의 그러한 행보가 더욱 불길하게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투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계속 그 알량한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미구에 상실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기득권’이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다면, 이러한 불행은 어쩌면 바로 코앞에 닥쳐 있을 것이다. 얼마나 전 세계의 자본을 공포에 떨게 했던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거액의 긴급자금 수혈로 지금은 잠시 잠잠한 듯 보이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은 그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가히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는 주식시장의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또 한 번의 (대)공황이 임박해 있음은 분명한데, 일단 그것이 폭발하면, 1997년-98년에 겪었던 것처럼, 그 알량한 ‘기득권’ 따위는 허망하게 부서져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아니 오직 그러한 대투쟁만이,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 그나마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었다. 어언 20년 전의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거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대 유적의 관광지로서만 관심을 갖는 이집트, 아직도 친미 무바라크 정권의 장기독재 하에 있는 이집트에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들려주고 싶다. 대대적이고 전투적인 투쟁만이 열쇠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지난 3년 동안 이집트는 파업의 물결을 경험하고 있다. 이들 파업은 주로 무바라크(Mubarak) 정권이 추진한 국유기업의 새로운 사유화 물결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모든 파업은 불법적이며, 그 대부분은 전투적인 방법과 점거농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운동은 섬유노동자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다른 부문들로 확산되어 있다. 대부분의 파업이 승리로 끝나고 있는 데에 고무 받은 까닭이다.6)


비정규직 문제

―대대적이고 단호한 투쟁만이 열쇠이다



채만수 | 소장



1)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거간꾼 같은 행보는 철도노조와 투쟁 중인 KTX 승무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2) 이 발언은 다분히 민주노총의 현재의 행보, 이석행 지도부의 현재의 행보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구심을 다소라도 해소시켜주려는 계산에서 나온 그것일 것이다.


3) 민주노총 집행부의 이러한 행보는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어쩌면 민주노총 출범기부터의 일이지만, 지난 이수호 집행부에서부터, 그리고 특히 현재의 이석행 집행부에 이르러서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4) 비록 지도부의 우유부단함과 사실상 타협적인 행보가 그 효과를 반감시키기는 했지만.


5) 10월 4일 이석행 위원장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발언처럼 ‘대의원대회를 개최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지금 민주노총의 현실이고, 거기에서 위력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핑계를 찾으려 들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민주노총 지도부의 그러한 투쟁 회피적 행보가 오늘날 ‘대의원대회조차 개최하기 힘든’ 민주노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따라서 투쟁과 투쟁의 조직이야말로 민주노총을 정상화하고 활성화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6)Jorge Martin, “Unprecedented Strike Wave by Egyptian Workers”,

6)Jorge Martin, “Unprecedented Strike Wave by Egyptian Workers”,

   socialistview point.org/mayjun_07/mayjun_07_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