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에 ‘희망’이라는 옷을 입히자!

사회주의에 ‘희망’이라는 옷을 입히자



중간계급에 대한 가시적ㆍ직접적 공격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 ‘서민물가’를 잡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연일 폭등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의료보험 민영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등 ‘국민생활’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정책들을 추진함으로써, 이른바 ‘국정지지도’로 표현되는 그들의 척도로 보아도 대중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1) ‘민심이반’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농민, 자영업자 등의 이해에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은 ‘시장화’, ‘민영화’, ‘개방’, ‘자율’, ‘경쟁’, ‘실용’ 등의 다양한 이름표를 달고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전의 정부들 역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한 적은 결코 없었으며, 이러한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세는 그들의 삶을 그나마 지탱해주고 있었던 최소한의 영역까지도 침탈해 들어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2) 그래서 이러한 정책의 싹이 조금 돋아날 기미가 보이자, 그들은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살린다고 했는데, 경제가 살기는커녕, 생활은 점점 힘들어진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반발은 시작되고 있으며, 그들의 분노는 정권의 이러한 공세가 점차 가시화 될수록, 이에 비례하여 커져갈 것이다. 지하철 타기가 어려워질수록, 수돗물 가격과 전기요금이 올라갈수록, 아파도 병원가기가 쉽지 않을수록, 자식들 교육시키기가 힘들어질수록, 그들의 분노는 커져갈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그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종부세’3)등 각종 부동산 세금이 마치 ‘세금폭탄’이나 되는 듯 떠들어대던 보수정당, 보수언론에 부화뇌동하였고, 각종 언론 등을 통하여 자본가 계급이 조장한 주식열풍, 펀드열풍에도 그러하였다. 지난 총선 때는 자신들의 이익과 상관없는 ‘뉴타운’공약에 무슨 떡고물이나 있는 줄 알고 열광했었다.4) 최근 삼성특검의 결과에도 그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고, 사태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흔들리고, 부화뇌동하고, 동시에 분노하는 존재이다.5) 동시에 분노하고는 있지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여전히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운운하는 보수언론의 말을 반쯤은 믿고 있으며,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들의 이러한 분노를 해결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하고 절규하지만, 그들의 절규와 분노는 슬프다.



노동자계급의 현 상황


‘비즈니스 프렌들리’, ‘엄중한 법집행’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친기업ㆍ노동자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이다.

노동자계급, 특히 대공장 노동자들 사이에 팽배한 패배주의, 무사안일주의, 대화ㆍ교섭 중시 분위기는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시기 대규모 구조조정과 대량해고의 칼바람을 겪으며, 그들은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고, 당장의 생활 ― 먹고 사는 문제, 자식 교육 문제 등 ― 을 영위하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다. 이러한 주ㆍ객관적 상황에서 상대적으로나마 안정적인 그들의 현재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고, 지도부가 투쟁보다는 교섭을 통해, 때에 따라서는 양보를 통해, 심지어는 비정규직노동자를 팔아서라도, 내 임금 내 자리를 지켜준다면 그렇게 하자는 것이 그들의 마음일 것이다.

현장 활동가들의 외침은 그들에게 ‘달나라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관심없다. 지금 내 코가 석자다...” 그리고 이러한 외침들 또한 자신들이 속한 여러 정파로 나뉘어져, 현장 내에서 상호 간 여러 문제를 야기 시키고, 다시 현장 대중에게 “너희들이나 잘해라...”는 외면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도부의 무사안일주의, 교섭주의 등의 행태는 이러한 현장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며, 이에 기반해 있다.

그래서 싸움은 직접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중소사업장,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대공장ㆍ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은 아직까지 비정규직노동자와 연대해서 이 상황을 투쟁으로 뚫고 나가자는 분위기로 상승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현실은 그들을 더욱 자신의 임금과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게 만들고 있고, 자본은 이러한 그들에게 일정한 떡고물을 던져주면서,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의 공격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규모적이고, 전면적인 대응은 현재까지는 없다. 심지어 공공부문을 ‘개혁’의 선두로 하여 압박해오고 있는 정부의 칼날에 여전히 ‘교섭(!)’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기까지 하다. 물론 여러 가지 투쟁 전술을 병용하기는 하지만, 그들 자신의 입으로도 이것은 ‘교섭용 압박카드’라고 하고 있다.


사회주의에 ‘희망’의 옷을 입히자!


살펴본 것처럼, 중간계급은 자신들에게까지 가해지고 있는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에 분노하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을 무엇인지 모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노동자계급 중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부분은 “차라리 죽여라”며 싸우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부분은 이러한 현실을 방기하는 대가로 자본으로부터 일정한 보상을 받으며, 동시에 자신들에게도 언제 다시 가해질지 모르는 이러한 공격에 불안해하고 있다(지난 시기의 패배는 이러한 불안을 더욱 고착화 시키고 있다). 지도부는 이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있으며, 심지어 그 일부는 이러한 분위기의 지속을 원하는 자본에 깊이 매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분명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의 공세적 압박이 점점 심화될수록, 상대적으로나마 안정적인 노동자계급의 입지마저 허물어버릴 것이고, 그 때는 그들도 이에 대항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자신의 잃어버린 입지 ―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임금 ― 를 되찾기 위한 것에만 머문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렇게 타개된 상황은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다시 노동자계급의 힘이 약해진다면 언제든지 자본에 의해 뒤집힐 수 있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인 타개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만족해하는 임금노예’의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그러한 전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현재의 상황만으로 볼 때,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대중은 그들이 중간계급이든 노동자계급이든 간에 평생에 걸친 ‘반공교육’ 속에 살아왔다. 국가와 사회의 다양한 수단을 통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 심지어는 계급의식을 획득했다고 하는 많은 활동가들 또한 마찬가지다.6)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전망을 대중에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당장 이 전망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 대중에게 사회주의는 희망이 아니다!

쌀 개방에 시름하는 농민이나 쇠고기 개방에 분노하는 축산농민이나, 늘어나는 교육비에 막막한 도시서민이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특수고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나, 임금과 고용의 안정을 점차 침탈당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나...모두에게 ‘사회주의’는 ‘획일’, ‘억압’, ‘굶주림’, ‘독재’ 등의 부정적인 단어로 생각될 뿐, ‘희망’을 주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사회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는다면, 중간계급도 노동자계급도 모두 지금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다.

쌀 개방을 막아냈다고 해서, 쇠고기의 개방을 막아냈다고 해서 그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정부와 농협, 축협, 금융자본의 빚쟁이일 뿐이다. 공교육이 강화된다고 해서, 우리의 학생들이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언젠가 자본가의 더 충실한 노예로 살기위해 경쟁하며 공부해야 한다. 해고자가 복직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고용과 임금이 보장ㆍ안정된다고 해서 우리가 자본가와 동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다시 자본가의 눈칫밥을 먹고사는 노예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지금보다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이며, 상황은 우리를 다시 투쟁으로 나서게 할 것이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잘 벼려진 한 자루 칼이 ‘사회주의’이다.

노동자계급에게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사회주의의 무기를 들지 않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는 것을.

아래로부터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단위사업장들을 바꾸어내고, 이전의 분위기에 편승해 있던 단위 지도부를 하나씩 바꾸어내고, 마침내 중앙을 쇄신해야 한다. 지금 중앙은 분명 지금의 노동자계급 의식에 기반해 있다.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서, 투쟁하는 중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중간계급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당신들에게 희망이란, 노동자계급과 함께 사회주의의 대오에 서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 중간계급에게 직접적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중간계급에게 우리가 당신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믿게 해야 한다. 한미FTA, 의료보험민영화 문제는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이 공통 이해를 가진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중간계급을 견인해야 한다(지난 한미FTA반대투쟁처럼, 중간계급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부분에서 노동자계급 대오를 먼저 굳건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속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와 함께 싸울 때 당신들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랫동안 사회적 학습을 통해, 철저한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있다. 따라서 이것을 극복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정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사회주의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적 과정과 함께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노동자 계급의식을 세우는 의식적 과정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의식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의 올바른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며, 동시에 우리의 실천적 투쟁에서도 ‘사회주의’라는 깃발을 선명하게 올려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사회주의가 대중에게 희망이 될 때, 우리의 승리는 바로 눈앞에 와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사회주의, 바로 맑스-레닌주의이다.) <노사과연>


1)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긍정평가는 10.2%p 하락한 44.6%에 그쳐 취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7.5%p 상승한 36.1%로 나타났다.”(경향신문, 2008.4.21)


2) 이러한 부분에서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은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3)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자는 전체 1600여만 가구 중 상위 1.6%정도로 추정된다.


4) 어느 정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노동자계급 또한 이러한 부화뇌동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5) 이러한 그들의 특성은 ‘소유자임과 동시에 생산자’라는 그들의 존재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6) 최근 의료사유화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에게 함께 보기 운동을 진행 중인 미국 영화 ‘식코(Sicko)’에는 유럽의 의료 등 국가보장제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식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또한 쿠바에 대한 그것도 역시 잘 묘사되고 있는데, 미국인들에게 국가에 의한 서비스는 ‘공산주의’, ‘쏘련’, ‘비능률’, ‘억압’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쿠바’라는 국가에 대해서도 쿠바 난민(주로 혁명이전의 지배계급)들, 언론 등을 통한 온갖 악선동으로, 자국민들이 쿠바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사회주의국가와 직접 대치 관계 속에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당연한 진실로 믿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러한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사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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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른 지식인들

    교회 세우는 것처럼 연구소를 수십개, 아니 수백개 세워서 사회주의를 대중들한테 전도해보세요. 그럼 사회주의가 되는지...

    대중들 탓하지말고 당신들 게으른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나 행동에 나서시죠. 당신들의 추상적 선전주의 때문에 사회주의가 대중들한테 더 멀어지는지나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 해인

    "게으른 지식인들"님 께.

    제 주장은 대중을 탓한 것도, 사회주의를 추상적으로 선전하자고 한 것도 아니라는 점, 해명드립니다. 저희 해명 후에도 님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없는 일이겠지만요.
    저는 실천과 이론이 함께 해야 한다는 오래된 그리고 당연한 명제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비추어 현재 우리의 실천과 이론의 상황은 어떠한가를, 짧지만 반성적으로 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요.

    맑스가 일찍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이 된다...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사상의 번개가 이 소박한 인민적 지반 속으로 깊숙이 내리꽂히자마자 독일인들의 인간으로의 해방은 성취될 것이다-, 레닌이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적 실천이 없다고 한 것,
    이것은 굳이 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님의 생각에서도 당연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지 않고, 우리가 어떤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어떤 길로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올바르지 못한 길이라면 우리는 그만큼의 우회를 한 댓가를 치루게 되겠죠. 물론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러한 오류의 과정을 통해, 그 오류를 정정할 길을 반드시 찾을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방의 길을, 어떠한 오류의 과정을 반복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스스로 찾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그 경험 속에서 스스로 배움으로서요.

    따라서 저는 대중을 탓하고 있는 것도, 추상적 선전주의를 이야기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당연하고 오래된 명제를 우리의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떠한 교훈을 찾고 실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이 땅 어디서나 과도하게 볼 수 있는 십자가 숫자만큼, 우리의 깃발이 그곳에 있다면-그것이 연구소의 형태로, 여러 협회의 형태, 여러 단체의 형태로, 당의 여러 조직의 형태로, 지금의 십자가 숫자만큼 존재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지요?

    저는 지금의 수많은 십자가가 수십, 수백만, 수천만의 붉은 깃발로 바뀌는 날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충실히 최선을 다해 임할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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