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정치범의 투쟁 기록

- 독서 노트: 서준식 저 『서준식 옥중서한』

[역자 주] 이 글은 土松克典, “讀書ノート, 徐俊植著 ��徐俊植 全獄中書簡�� ― 非轉向政治犯の鬪いの記錄”(��社會評論�� No. 91, 1993년 7월)의 번역이다. ��서준식 옥중서한��의 일본어 판(1992년)에 대한 일종의 서평인데, 우리 연구소에서 이번에 ��서준식 옥중서한��을 증보․복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본의 “활동가 집단 사상운동”이 보내왔다. 필자인 도마츠 씨는 현재는 ‘活動家集團 思想運動’의 사무국장 겸 계간 ��社會評論��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993년] 3월 20일, 도쿄에서 “서군 형제를 구원하는 모임”(徐君兄弟を救う會)을 해산하는 집회가 열렸다. 동생인 서준식 씨가 1988년 5월에, 형인 승(勝) 씨가 1990년 2월에 각각 석방되어, 개별 구원회로서의 임무를 끝냈다는 판단에서다. 실로 21년 반에 걸친 활동이었다. 이 구원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도 담고 있는, 전에 한국에서 발간된 ��徐俊植 全獄中書簡��이 작년[1992년] 10월에 “구원회” 사무국장인 니시무라 마코트(西村 誠) 씨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서 형제 사건” ― 90년대인 현재에는 처음 듣는 젊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1971년 4월,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3선 저지 투쟁이 한국 내에서 한창 고양되어 있던 때였는데, 민주화 운동의 탄압․진정화를 노린 한국당국(국군보안사령부)이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을 받고 박 대통령 3선 반대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며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을 발표. 4월 20일 그 주모자로서 교토(京都)시 출신의 재일한국인 모국유학생인 형 서승 씨(당시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재학)를, 그 “동조자”로서 동생 서준식 씨(서울대 법과대학 재학) 등을 체포한 사건을 말한다. 재판 결과 승 씨는 무기징역에, 준식 씨는 징역 7년의 형에 처해지고, 이후 앞에서 말했던 석방일까지 서 형제는 가족이나 구원회를 필두로 하는 국제적인 지지 여론을 받으면서 비전향의 자세를 관철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역대 한국의 파시즘 정권이 한창일 때였다.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한국 국군보안사령부의 취조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꾀했을 때에 입은 대화상 때문에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첫 공판에 출정한 승 씨(1971년 7월 19일).

서울고등법원에서의 최후진술에서 “풍요롭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통일된 조국을 갖는 것”이라는 ‘적극적 민족의식’을 당당히 개진한 서승 씨(1972년 11월 23일).

니시무라 강기치(西村關一) 참의원의원(작고)을 면회할 때, 목숨을 걸고 옥중에서의 전향 강요, 고문의 실태를 폭로하고, “그러나 나는 전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와 형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한 준식 씨(1974년 5월 3일).

비전향을 이유로 “죄를 재범할 위험성이 있다”며 “사회안전법”의 “보안감호처분”이 적용되어 7년의 형기 만료 후에 다시 또 재수감된 준식 씨(1978년 5월 27일).

1980년 5월의 봉기, 광주 코뮌의 출현이라고 하는 커다란 파도의 한복판에서, 마음의 지주였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오기순(吳己順) 여사를 자식 석방이라는 “아침을 보지 못하고” 변환으로 잃은 서 형제(1980년 5월 20일).

총5회, 10년에 이르는 “보안감호처분”의 적용에 대하여 국가를 상대로 3회에 걸친 “보안감호처분 갱신 결정 무효 확인청구소송”을 옥중에서 제기하고, 나아가 “사회안전법의 철폐와 신병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51일간에 걸친 단식투쟁에 돌입한 서준식 씨 (1987년 3월 3일-4월 22일).

실로 격렬한 삶을 사는 형제다.

이 책에는 247통의 옥중으로부터의 편지가 수록되어,1) 이 동생 서준식의 격렬한 삶의 내면이 밝혀져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스스로의 내부를 깊이 살펴볼 수 있었으며,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 나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써 보낸 편지들 중에는 자신에게 얼룩져 있던 ‘일본’을 불식하고 ‘재일(在日)’이라는 존재로부터 조국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습,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다스리려고 ‘예수의 삶’을 탐구하고 추체험(追體驗)으로 경도돼 가는 모습, 인생에 관해서, 학문의 각오에 관해서, 엘뤼아르나 브레히트의 시, 톨스토이나 로망 롤랑의 소설, 베토벤의 음악, 루오의 그림에 관해서 열심히 고종동생들이나 이종동생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점철되어 있다.

“현대 법치국가의 한 가운데에 어두운 ‘중세’가 집요하게 살아 있다. 사상범에 대한 ‘전향성명제도’는 고속도로 시대의 ‘십자가․예수상 밟기’2)이고, 사회안전법에 의한 사상범의 심판은 고층빌딩 시대의 ‘이단심판’이다”―이는 서준식 씨가 “보안감호처분” 갱신의 무효를 주장하며 제기한 제1차 행정소송 때의 ‘진술서’의 마지막 대목인데, 한국의 반공체제가 강요하는 사상전향 거부투쟁도 이 편지들 속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결국 나는 전향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비우면, 누가 대신 채워 줄 것인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주 쓸모없고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닐진대 채워 줄 사람 없이 비울 수 있겠는가”(1987년 2월 17일, 여동생 서영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해서 17년에 이르는 고난 끝에 그는 청주보안감호소로부터 처음으로 비전향을 관철하며 출소를 쟁취했던 것이다.

그는 이번 구원회의 해산집회에 다음과 같은 메씨지를 보내왔다. “... 실로 ‘인간’이려고 하는 노력은 엄혹한 것이고, 이 엄혹함 속에서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인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야말로 서형제구원운동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머물게 하는 기념비라고 믿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적 근대가 낳은 가장 야만적인 정치형태인 파시즘의, 그것도 가장 광폭한 폭력장치인 옥중에서 인간이기 위해서 계속한 투쟁의 기록이 이 옥중서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려고 하는 노력”―그것은 지금은 고인인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오기순 여사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도 연결된다. “애들은 절대로 잘못하지 않았는데, 너, 굽히고 모두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없지만, 말할 마음조차 갖고 싶지 않아요. 그대로 구출해서, 올곧게 올곧게,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아요, 올곧게 올곧게 사회 나와서도 공부해갔으면 하고 생각합니다”(��아침을 보지 못하고��에 수록된 “구술, 오기순 여사의 회상”으로부터).

서준식 씨는 지금 한국에 있다. 많은 재일한국인 청년이 느끼는 “머나먼 이국에서 허공을 향하여 민족과 통일을 부르짖는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족을 대기(大氣)처럼 느끼고, 오직 통일만이 사는 길이라고 온몸으로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모국에서 정치범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재야운동단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인권위원장으로서 한국의 장기수 구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협의회가 발표한 “양심수 백서”에 의하면, 1993년 2월 13일 현재 한국의 구속․수감 중인 양심수는 674명. 그 가운데 7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장기복역 양심수는 88명에 이른다. 복역 연수별로 20년 이상의 장기구금자가 34명, 연령별로 60세 이상의 장기구금자가 55명, 그 중에는 한국전쟁 때인 1951년에 간첩죄로 체포되어 이후 43년간이나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세계 최장기수 이종환(李鐘煥, 72세) 씨의 존재도 판명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장기수는 매일 서준식 씨에게 가해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상 전향 공격을 받고 있다. 서준식 씨의, 올곧게 올곧게 인간이려고 하는 노력은 이 한국 장기수의 구원운동을 벌이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서 형제의 구원운동, 넓게는 한국 정치범의 구원운동을 벌이면서 옥중 정치범의 자세에 나타난 인간적인 진실을 배우며 성장해온 사람이 적지 않다. 필자 역시 많은 깨달음을 받아온 사람의 하나이다. 이 책이 발간됨으로써 서준식 씨가 옥중에서 개척해온 정신적 지평을 배우며 인간으로서 성장해가는 “뒤에 오는 사람들”(서준식 씨가 편지 속에서 누차 소개한 브레히트의 시의 제목)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노사과연>


1) 이번에 노사과연에서 복간한 ��서준식 옥중서한��은 여기에 15통의 서신이 다시 추가되었다.―역자.


2) ‘十字架の踏み繪’의 번역으로서, 일본에서 에도(江戶)시대, 즉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 시대에 예수교도를 색출하기 위해서 예수나 마리아를 조각한 목판을 밟게 하던 일을 가리킨다.―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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