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투쟁정국이 보여준 가능성과 교훈

확연해진 전선

확연해진 전선


지난 5월 초 ‘촛불소녀들’이 시작한 미국의 광우병소 수입반대 투쟁이 2개월을 훌쩍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이명박 정권의 노골적인 친미․친재벌 정책 전반에 반대하는, 나아가 이명박 정권 그 자체에 반대하는 범계급계층적․전민중적 투쟁이 되어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대중의 투쟁은 광우병 위험을 안고 있는 여러 부위들을 포함한 쇠고기를 연령 제한 없이 수입하고, 심지어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을 금지할 수 없는 미국과의 어이없는 쇠고기 협상 타결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실제로, 타결된 협상 그것은 한미 FTA라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도, 소위 ‘검역주권’도 모두 포기한 그것, 광우병의 위험이 높지만 출산․수유 등 축산업의 유지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라는 미국의 독점자본주의적 축산업의 대모순, 골칫거리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그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의 독점자본, 그 부시 정권이야 이명박 대통령의 등을 두드려주며 크게 환대했지만,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에, 실업과 빈곤, 무권리 상태에 시달려온 대중의 분노와 그 폭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투쟁과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노동자․민중과 친미․친제국주의 독점자본 간의 전선이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저들의 반노동자․반민중적인 추악한 본모습들이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권력과 ‘조․중․동’을 위시한 파쇼언론, 그 주변의 극우 지식인들을 장식하고 있던 일체의 위엄과 권위는 사라지고 그들은 대중의 조롱과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우선,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나 소위 한반도 대운하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정책이 오로지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 패거리의 탐욕을 위한 것이며, 대중을 향해서는 기만과 꼼수, 그리고 폭력으로 일관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이명박 정권은 권력의 최고 담당자로서의 어떤 권위와 위엄도 상실한 채 노소(老少)를 불문한 대중의 조롱과 증오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부터 60대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OUT”,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는 전과 14범이다, ◇◇◇◇의 모든 행동은 거짓으로부터 나온다”고 합창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 등은 유해한 ‘찌라시’(散らし)로 규정되어 “폐간하라!”는 구호가 난비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6월 하순의 어느 날인가에는 ��조선일보��가 그 제1면의 머리를 “청와대만 지키면 다냐”는, 히스테리 가득 찬 기사로 장식할 만큼, 그리하여 전투경찰대가 매일이다시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에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만큼 저들은 대중의 증오와 공격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이들 매체의 주요 필자들을 위시한 극우 지식인들, 극우 기독교인들, 극우 관변단체들 역시 조롱과 증오의 대상으로 되어 있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노동자․민중이 자주적으로 일어서고 있는 데에 대한 극도의 증오, 사실은 극도의 공포를 숨기지 않으면서, 한편에서는 사실 한 줌도 안 되는 소위 ‘맞불집회’를 조직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골적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발포․학살하라’는 피의 선동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나서면 나설수록 대중은 그들에게 “참 특이한 애들”이라는 식의 조롱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저들의 그 증오의 선동, 피의 선동에 대중이 공포 대신에 조롱을 보내는 것은 저들은 결코 군을 동원하여 발포․학살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실상 수백만이 전쟁과 학살의 재물이 되었던 1950년대는 물론 그 연장선상에서의 1960년대나 70년대, 그리고 1980년과는 크게 달라서 저들이 군을 동원하여 발포․학살을 저지른다면, 바로 그 순간이 바로 저들의 최후일 것이다. 1987년에 이미 사실상 계엄령을 선포할 듯이 위협을 가했던 전두환 정권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은 결코 더 이상 그러한 학살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도의 탐욕과 공포로 판단력이 마비된 저들 소수의 미치광이들을 제외하면, 그러한 사실은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을 포함한 그 주변 세력들도, 아무리 그들이 극우적일지라도, 필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끈기의 이명박 정부


수십만 대중의 장기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물러서지 않고 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을 미 수출업자들과 국내 수입업자들의 기한부 자율규제라는 기만과 꼼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 만큼이나 뻔한 기만과 꼼수로 강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 어떤 정책도 정언적(定言的)으로 포기하거나 철회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이 반대한다면, 유보...” 운운하는 기만과 꼼수로 일관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역시 기만적이고 꼼수적인 형태와 수법으로 그것들을 강행하려는 의사를 내비치곤 한다. 게다가, 공기업의 이른바 구조조정 혹은 구조개혁, 즉 사유화를 앞두고 수익성 강화를 위해 벌이는 대규모 감원조치나 사유화․민영화 자체는 심지어 공기업 ‘선진화’라는 말장난으로 그것을 보다 일찍이 보다 철저히 추진하겠다는 투지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기조차 하다.

실제로 7월 10일 “18대 국회개원 시정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선언하고 있다. “규제개혁과 공기업 선진화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일들”로서 “이 개혁 과제들은 철저히 준비해서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공부문의 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며, “공기업 지원에 국민의 세금이 매년 20조원이나 쓰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 대다수도 개혁과 변화를 바라고 있...다”며,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넘기는 게 맞...다”고! 그렇게 ‘공기업 선진화’, ‘공공부문 선진화’라는 기만적인 언사로 공기업의 사유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거듭 선언하고 있다.

문제는, 그 “지원에 국민의 세금이 매년 20조원이나 쓰이고” 있다는 그 공기업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넘기는 게 맞”기 때문에 ‘선진화’, 즉 사유화하겠다는 그 공기업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경제위기, 즉 공황에 파산하던 민간기업들이고, 그것들을 ‘공적자금’이라는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어 공기업화한 것들이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넘기는 게 맞”느니 어쩌니 하는 궤변을 농하며 사유화하겠다는 공기업들은 바로 그렇게 파산하던 민간기업들인데, 그렇게 막대하게 지원하여 수익성 있는 기업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것들을 독점자본에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본심이고 진실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본심․진실은 물론 은폐한 채 파렴치하게도 그렇게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넘기는 게 맞...다”고 왜장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기만과 꼼수로 볼 때,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나 전기․수도․건강보험의 사유화 등등, 반대에 부딪쳐 좌절된 것처럼 보이는 주요 사업들도 이명박 정부가 버티고 있는 한 언제 다시 기만적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들을 재추진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 언제 어떤 반민중적 정책을 새롭게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미 그 행태를 꿰뚫어 보게 된 대중이 물론 그때마다 길거리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쳐들고 나오는 고개를 마구 내리치긴 할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상황은 크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대공황이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황과 파시즘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진 않지만, 대공황은 이미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을 수 없는 거대 금융자본의 투기로 유가와 곡물가가 폭등하고 있고, 그 때문에 대중의 생활상의 어려움도, 자본주의 재생산체제의 뒤틀림도 심화되고 있다. 저들 자본의 언론도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고 나선 지 오래다. 지난해에 이미 미국의 이른바 써브프라임 모기지, 즉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의 부실사태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의 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회사들이 파산의 위기를 맞아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되거나 인수․합병되는 등의 사태를 겪었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보거나, 진행되고 있는 여러 사태로 보거나 아직 대공황의 초입에 불과하다.

‘747’ 운운하며 사기를 치던 이명박 정부도 이미 경제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7월 10일의 연설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기회는 늘 위기의 얼굴로 찾아온다”며,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의 하나가 바로 한미 FTA”이므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승적 결단으로 한미 FTA 비준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노사안정 없이 현 경제난국을 타개할 수 없”는데, “올해 전반기에 노사화합선언이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노사상생의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를 정착시켜 신노사문화를 확립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것은 모두 “경제난국”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747’ 운운하며 사기를 치던”이라고 한다고 해서 저들은 시비를 걸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기였다. 왜냐하면, 저들이 ‘747’, 즉, 자신들이 집권하면 연간 7%씩의 성장률을 기록하여 10년 후에는 1인당 소득 4만 불을 달성할 것이고 세계 7대 경제강국에 진입할 것이라고 선전하기 훨씬 전부터 세계경제는 이미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대공황에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 증후가 예기치 않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대외 경제요건이 ...” 운운하면서, 그렇게 사기 치면서 경제위기를 강조하고 있고, 유인촌 등의 “관광객 감소” 운운처럼 정부와 파쇼언론은 심지어 경제의 어려움이 ‘촛불시위’ 때문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언제 ‘747’ 운운했더냐는 듯이 경제위기를 강조하고 나서는 저들의 속셈은 물론 이른바 ‘국민통합’, 즉 마치 계급적 분열, 자본과 노동 간의 착취와 피착취 관계 따위는 없다는 듯이 노동자계급에게 침묵과 굴종을 강제하는 파시즘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말들로 표현되어 있다.


“‘통합’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계층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

“노사안정 없이 현 경제난국을 타개할 수 없습니다. ... 신노사문화를 확립해야 합니다.”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습니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 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관용과 배려는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 ‘화합과 동반의 시대’로 나아가는 귀중한 사다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환은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어 피할 길이 없지만 내우는 우리 스스로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내우를 줄여야 외환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야 물론 거의 없겠지만, 혹시 예컨대 “‘통합’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필수 요건”이며 따라서 “계층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나 기타 여러 가지 ‘사회복지정책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미국과의 쇠고기 문제를 그렇게 처리하고 있는 그가 같은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먹거리 문제만큼은 ‘국민건강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겠습니다.”


온통 기만과 꼼수요, 복선이다. 특히 ‘통합’ 운운에 이르면,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철저히 엄연한 계급적 분열과 착취-피착취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필연적 대립을 은폐하려는 것이고, 그리하여 피착취자들, 곧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저들의 반노동자․반민중적 억압과 정책들에 대한 투쟁이 힘 있게 지속된다면 저들이 획책하는 파시즘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이 패배하여 대다수 대중이 패배감에 좌절한다면, 경제위기와 함께 몰아칠 저들의 파시즘 선동이 노동자․민중의 목을 옥죌 것이다.


가능성과 교훈 혹은 과제


투쟁은 사실상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규모와 끈질김으로 진행되어 왔고, 또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깃발’이니 ‘단체’니 ‘운동권’이니 하며 소위 ‘순수한 일반시민’과 ‘전문적 시위꾼’을 분열시키고 이간시키려는 저들 파쇼언론의 농간으로 처음 한때 집회가 여의도와 청계광장으로 갈라지는 듯도 하였으나, 이내 저들 파쇼언론이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들은 고립되고 대중은 곧바로 하나가 되었다. ‘좌파’니 ‘좌빨’이니 운운하는 저들의 악의적 헛소리에 누구도 개의치 않게 되었으며, 그런 헛소리를 내뱉는 것 자체가 이제 탐욕과 기만, 파쇼의 징표로 되었다. 6월이 되면 이미 투쟁의 대열은 수십만으로 커졌고, 누구 하나 스스럼없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게 되었다. 운동권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누구나 한 뜻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투쟁의 이러한 발전․전개는 장기간 신자유주의에 시달려온 대중이 언제고 계기만 주어지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수준과 방향이 반드시 올바르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아직도 소부르주아적 국가주의, 애국주의, 배외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이명박 씨의 출생지가 일본이래서 인터넷에 달리는 ‘쪽바리’ 운운의 댓글 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집회에서 공식적으로 애창되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는 소위 “헌법 제1조”나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운운하는 “광야에서”도 사실 대중들의 그러한 ‘기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는 노래, 소위 “헌법 제1조”는 특히 심각하다. 일면 계몽적이긴 하지만,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의 수입을 80% 가량의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와 그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10%대로 곤두박질치는데도 자본의 이익을 위해 그것의 수입을 강행하고 있는 데에서도 명백한 것처럼, 사실은 자본의 공화국이요 모든 권력은 자본으로부터, 그것도 독점대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으로 하여금 그러한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그 사고에 혼돈을 조장하며, 그리하여 그 사고를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본질과 기능을 은폐하고, 미화하기 때문이다.

만일 정말 민주공화국이라면, 어찌 그토록 압도적인 반대가 묵살당하고 전투경찰의 군홧발에 의해 짓밟히겠는가?

법률적 의제(擬制)는 어디까지나 의제, 즉 허구이다. 그것은 결코 현실이 아니다. 저들 국가와 독점자본은 그것을 냉철하게 알고 있다.

그리하여 투쟁의 지도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창하고 대중이 그것을 노래하고 있을 때, 오히려 검찰과 경찰은 정확히 “국가의 정체(政體)를 위협하는 언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몰계급적, 소부르주아적 관점은 이명박 정권과 그 정책들을 예컨대 노무현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의 그 정책들로부터 절대적으로 구별짓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그런 식으로 타결해버린 것을 두고 “노무현 정부가 벌여놓은 일을 설거지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이명박 정부의 강변은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가 그것을 타결지었더라도 현재의 그것보다 크게 달랐으리라는 어떤 보장도 없다. 김대중 정권도 노무현 정권도 역시 친미 신자유주의로 일관했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쇠고기 협상을 그렇게 타결짓도록 한 한미 FTA 역시 노동자․민중의 대대적인 반대에 거슬러 노무현 정권이 시작했고 노무현 정권이 체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8대 국회에서 처리할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상당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당인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준이 확실하기 때문일 뿐이다. 즉, 자신들이 무책임하게 행동해도 대한민국의 국회가 그것을 차질 없이 비준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그들이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파병 동의안 등을, 그리고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 등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상기하는 것으로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투쟁은 놀랍도록 대규모로, 놀랍도록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 성격과 지향은 다분히 애국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물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무능력의 다른 표현이다. 투쟁이 진행되면서 차츰 노동자계급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상황을 주도하고 있지 못하고 꽁무니를 좇고 있다. 몇몇 노동자 정치조직들이 소부르주아적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선전전을 일부 벌이고 있지만, 소규모 써클적 규모․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여 대중적 반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투쟁의 방향과 형태 등 모두는 기본적으로 대중의 자연발생성과 소부르주아적 지도부에 맡겨져 있다. 더구나 대중의 자연발생성 중의 폭발적 역동성은 ‘비폭력!’ ‘비폭력!’이라는 소부르주아적 그리고 종교적 ‘평화주의’에 억눌려 있다. 경찰의 물대포, 소화기, 군홧발, 방패가 대중을 짓밟고 내리찍어도 그렇게 억눌려 있다. 국가는 물론 경찰의 폭력을 사용하되 대중의 투쟁이 전면적인 폭력투쟁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그 사용을 일정한 수준에 제한․관리하고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을 ‘비폭력’으로 극복하겠다는 환상, 그것을 국가는 이명박 정부의 완강한 정책 추진으로 비웃고 있을 뿐 아니라 검찰이나 경찰의 관리된 폭력으로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투쟁이 대중의 자생성과 소부르주아적 지도부에 맡겨져 있는 사실을 들어 민주노총의 지도부를 비판하고 지탄할 일만도 아니다. 민주노총의 지도부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그 ‘무능’이나 투쟁의지의 부족 등만을 비판하고 질타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쌩디칼리즘이나 투르도비키즘, 조합정치주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나 소위 진보신당을 비판하고 지탄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애국주의적이고 사민주의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그들의 주관이야 어떻든, 그들은 지금 노동자계급을 정치적 포로로 삼아 독점자본주의체제를 영속시키려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단계 한국의 노동자계급운동의 최대의 전략적 과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부대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가 도도하게 분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생성과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과 교훈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그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고, 확인시켜 주고 있다. <노사과연>

덧붙이는 말

"생각하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2008. 7/8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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