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코스콤!

필승 코스콤

팔뚝질이 어색했던 노동자, 투사로 거듭나다


민중가수 연영석, 아니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이제 대중가요계까지 인지도를 넓히고 있는 연영석. 아니다. 동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냥 ‘문화노동자 연영석’. 문화 노동자 연영석의 인디 스페이스 개봉 영화 “필승 Ver 2.0 연영석”에는 KTX,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코스콤 동지들의 투쟁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2007년 5월 처음 노조가 결성되어 어색한 팔뚝질을 하던 코스콤 동지들은 이윽고 구사대와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코스콤 비정규직 동지들도 여느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언제 증권 씨스템 오류가 생길까, 언제 전화가 올까 잠 못 이루며 노동하는 나날이었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는 감전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증권 씨스템을 지켜내기도 하였다. 15년을 일해도 복리혜택은 4대보험이 고작이며 임금은 정규직의 4분의 1, 5분의 1이다. 애초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는 것은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벌어진 회사의 공세에 급격한 의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2007년 4월 코스콤은 ‘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이전에도 사내하도급, 하청업체를 통한 위장도급에 2년마다 재계약 해야 하는 신세였지 만 사측의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공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하게 되었다. 새로운 하도급으로 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자행되는 공격에 노동자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자발적으로 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찾아가서 노동조합 결성협의를 하였고, 처음으로 네트워크 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코스콤 협력사 지부노조가 탄생하였다. 이 당시에 사내하도급을 상대로 하느냐 코스콤을 상대로 직접 싸우느냐는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이 이어졌다. ‘이것 은 말도 안 된다, 우리를 직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은 코스콤이다.’ 결론은 원청 코스콤을 상대로 한 직접고용 쟁취 투쟁으로 귀결되었다. 이 당시에는 네트워크팀 만이었지만 하청업체와 다른 부서에까지 조직이 확장되었다. 콜센터 노동자들까지 조직이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회사의 해고 협박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노조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때가 한 고비였다. 노동조합 조직이 널리 확장될 수 있는 시기였지만, 호기를 놓치고 현재까지 대체로 당시의 그 대오가 유지되고 있다.

대다수가 남성조합원이고 서로 선후배 관계로 엮어진 상황에서 군대식 문화가 주를 이루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통해 서로 동지라 부르고 팔뚝질과 투쟁가요를 배웠다. 사무금융연맹 산하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에 '코스콤비정규지부'의 투쟁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영화촬영 카메라가 돌아 다녀도 신경쓰지 못했던 ‘어리버리한1)’ 노동자들이 증권업계에 서 최초의 비정규직 투쟁을 벌여내게 되었다.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 소사(略史)


1977년 한국증권전산에서 코스콤으로 이어지는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코스 콤은 ‘세계 금융IT 솔루션 리더’를 지향하는 증권산업 전산 인프라를 담당하는 IT기업이다. 코스콤은 와이파이(WiFi)2), 블루토 스3), HSDPA4), 와이브로5) 등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 고 있는 첨단 통신기술을 적용하여, 최적의 금융 IT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6) 화려한 기술발전의 실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한 것이다. 코스콤은 50여 개의 하청회사를 통해 500여 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 실상은 코스콤이 직접 노동자를 관리하며 실제 업무에 있어서는 상이점이 없는 명백한 불법파견 위장도급이다. 그런데 2007년 4월 몇몇 하청업체에서 30%의 임금삭감을 통보했고 일방적으로 해당분을 지급하지 않았다. 2007년 5월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되고 이후 코스콤비정규지부의 투쟁은 파업을 단행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측은 처음 펼쳐지는 싸움에 어리버리한 용역 을 동원했고 영화 “필승 Ver 2.0 연영석”에는 용역이 몸싸움에서 밀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후 사측은 전문적인 용역을 일당 10만원 이상에 고용하고 치밀하 고 악랄한 대응으로 노동자를 탄압한다. 1차 파업 당시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①노동조합 활동보장을 한다. ②비정규직 문제를 정기적인 협의회를 통해 논의한다. ③손 배 가압류를 철회한다. 최소한의 요구였던 3대 사안에 대해서는 회사와 협의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측은 2007년 9월 2차 파업 전야제 때 중노위 쟁의조정 신청이 기각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세 가지 협의안조차 파기한다. 손배 가압류로 인해 후원계좌조차 압류되는 지경에 이른다. 코스콤 동지들은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 간다. 각종 연대투쟁과 삭발투쟁, 고공투쟁과 19일, 22일간의 고공단식, 2008년 증권시장 개장식을 통해 코스콤 투쟁을 여론화하고 지지를 조직해낸다. 가까이 있는 알 리안츠 생명 동지들과 함께 여의도의 농성장을 사수하며 회사를 압박하며 면담 투쟁을 전개하고 촛불 문화제도 이어갔다. 투쟁을 하면서도 몸짓 선언 동지와 함께 율동 패 ‘한길’을 조직해 활동하고 학습팀을 꾸려 노동자의 철학 학습7)과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농성장 폭력침탈이 있었고, 이는 자본가 정권의 대(對) 노동자 투쟁에 대한 선전포고 였다. 코스콤 동지들은 경찰과 용역의 폭력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천막을 재설치 하고 조직적인 투쟁을 이어갔다. 지난 7월 16일에는 또 다시 고공 농성을 진행했고, 마침내 투쟁의 성과로 7월 18일 “근로자존재지위확인소” 판결에서 남부지방법원이 코스콤의 “위장도급, 불법파견”을 인정 하였다. 위장도급업체(증전엔지니어링과 FDL)에 형식적으로 속해 있던 65명의 조합원이 “코스콤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는 것이 결정되었고, IT네이드에 속해 있던 소 송인 8명의 경우에도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투쟁은 그것으로 끝날 순 없었다. 사측은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상소할 의사를 비치며 탄 압을 지속하고 있다. 아직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장도급, 불법파견 판결을 이끌어 낸 것도 다른 증권산업 비정규직 투쟁의 불씨가 될 것이며 사무직과 전체 비정규직 투쟁의 또 하나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코스콤 정규직의 노사협조주의와 배신


생산 현장 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사실상 같은 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을 하고 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노동의 불안정성과 임금의 차이에 불과하다. 사무 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담당하고 있는 업무나 작업공간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몇몇 ‘고유한’ 업무만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를 수 있을 뿐이며 이조차도 비정규직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스콤 정규직 노조의 최근 행보는 우려를 넘어서 노동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이다. 코스콤 노조 는 1987년 민주노조 운동의 일대 전진을 통해 건설되었다. 1996년 12월 OECD 가입 이후 자본시장의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외국자본의 유입이 증가되었다. 장밋빛 희망도 잠시 1997년 공황이 몰아친다. 사측은 임직원 연봉 반납을 신호탄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 한다. 1998년 명예퇴직의 바람은 코스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 자들은 수십 명의 명예퇴직 이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명예퇴직은 2차, 3차로 이어졌다. 당시 제 5대 코스콤 노동조합 집행부(1997년 8월 1일~2000년 7월 31일)는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을 수용한 후과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임금반납 등 ‘고통분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노사협력의 ‘전통’을 쌓아나갔다.8) 현 코스콤 집행부도 그러한 노사합의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파업 초기에 비정규직의 투쟁에 ‘저들도 우리와 같은 노동자다’라는 다소 우호적인 반응들이 있었으나 투쟁이 길어지자 애초에 노사협조주의를 수용한 후과가 이어졌다. 코스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을 노골적으로 방해하였 다. 비정규지부와 사측 간의 면담을 방해하기까지에 이른다. 마침내 2007년 11월 8일 사무금융연맹은 코스콤 정규직노조를 제명하기에 이른다. 코스콤 사우회가 유령회 사를 차려 비정규직 착취의 대가로 배당금을 챙겨먹는데 코스콤 정규직은 노사협조주의를 고수한다니…. 그러나 코스콤 정규직의 반노동자 행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 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있고, 2009년 2월 4일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이 예고되어 증권ㆍ금융 산업의 일대변화와 노자 대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8월 21일 기륭투쟁에 결합하며 든 고민


필자는 8월 21일 코스콤 정인열 동지와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기륭투쟁에 결 합하러 이동했다. 움직이지 않던 금속노조가 드디어 기륭전자 투쟁에 결합했다. 반이명박 전선의 촛불집회와 기륭 비정규직 투쟁이 한자리에 만났다. 김소연 분회장 동 지가 72일 간의 단식을 진행한 끝에서야 이루어진 자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자리였다. 한 기륭의 한 동지는 발언을 통해 완곡한 표현으로 아직 부족 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랬다. 애초에 금속노조의 기륭투쟁 결합은 1박2일 투쟁으로 예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금속노조는 하루 투쟁에 결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기륭 동지의 표현대로 금속노조의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것이었다. 주변의 요소요소에 배치된 경찰병력과 물대포가 머쓱해지는 상황이었다. 금속노 조의 투쟁을 자본과 정권이 두려워하지 않기에 하루 전 정갑득 위원장을 의기양양하게 체포한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과 금속노조에 대한 탄압이 몰아치는 때이기에 또 목숨을 건 기륭의 투쟁과 촛불투쟁이 결합하는 소중한 연대의 자리였기에 1박 2일 투쟁이라는 최소한의 결의를 지키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집회가 마무리 될 무렵, 이후 영화 상영이 있을 예정이라는 안내가 들렸다. 이어서 익숙한 얼굴의 동지가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의 영화 “안녕? 허 대짜 수짜님!”을 소개했다.  다른 곳에서 활동하던 동지가 언제 노뉴단에서 활동 하게 되었는지 몰랐지만 반가운 마음이었다. 동지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기륭동지들과 같은 투쟁을 하는 곳에서 상영하는 것이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고, 많이 부족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파업전야” 이후 18년 만에 제작된 본격적인 노동영화다. 노뉴단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기에 일상적인 영상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힘겨 운 투쟁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영화를 소수의 제작인원으로 완성해낸 동지들의 노력 그 자체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래도 딱 한가지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영화인데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무시한 민투위의 현판이 지나가는 장면이다. 의도적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겠지만 좀 더 세심한 장면 구성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간단하게만 감상평을 적는다. 유명 배우도 없고 스 펙터클도 없다. 영화 전후에 아이의 해설과 삽화가 들어가 있었고 드라마 형식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정윤광 윤선애 동지의 음악이 배경으로 흘렀다. 같은 라인을 공유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러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방패막이였다. 외로운 비정규직 동지가 고공농성을 결심하던 시점에 정규직 허대수의 심경에는 변화가 일어나며 다시금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싸울 것을 결의한다…. 영화에서는 정규직이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싸우는 것을 1인칭 주인공의 심리의 변화 과정을 통해 그려낸다. 비정규직은 결국 고공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코스콤 동지들이, 기륭동지들이, GM대우 동지들이, 동대문풍물시장 사수대책위 동지들이, 뉴코아 이랜드 동지들이 …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동지들이 고공농성 진행했고, 또 얼마전 8월 27일에는 서울역 40여 미터 조명철탑위에서 KTXㆍ새마을호 동지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현실은 자본이 분할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울타리를 극복하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 준다. 코스콤 비정규직 정인열 부지부장 동지의 이야기가 메아리친다. “단 한명의 정규직이 최소한의 양심선언이라도 했다면!”

공황의 시기 자본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최대한의 공세를 통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친다. 비정규직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규직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미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사유화를 내건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공 공 부문 노동자들의 ‘고액연봉’을 공격하고 있다. 올해 4월 코스콤 정규직의 1억에 가까운 연봉에 대한 언론보도가 난 것은, 저들이 곧 비정규직과 함께 정규직도 공 격할 것이라고 신호탄을 쏜 것이다. 단지 구조조정과 사유화뿐만이 아니라 공안탄압의 광풍까지 불고 있다. 전투적인 이명박 자본가정권이 움츠러들었던 국면을 지나 전 방위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이라는 공안탄압과 지역 촛불까지 싹을 잘라내려하고 있다. 촛불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두려워하는 저들은 구 속영장이 기각되었음에도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동지들이 집회 참여하는 것하나 하나 사찰을 자행하고 있다. 정규직의 몸사리기는 곧 설자리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 노동 관료들의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는 곧 설자리를 잃게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끔 링거를 맞으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 김소연 동지가, 아직도 여의도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는 코스콤 동지들이 변혁운동 진영의 분발을 요청하고 있다. 변혁운동 진영의 의식적인 결합으로 코스콤과 기륭을 비롯한 현장 투쟁을 엄호하고 다시금 자본 과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전선을 이어가야 한다. <노사과연 >


1) 8월 21일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인열 동지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며 코스콤 동지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힌다.


2) 전파나 적외선 전송 방식을 이용하는 근거리 통신망. 일명 무선랜.


3) 근거리의 기기끼리 자료를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체제. PC 프린터 전화 팩스 휴대 폰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정보통신기기는 물론,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까지 무선으로 연결해주는 획기적인 기술. 가정이나 사무실 곳곳에 복잡하게 늘어선 전선을 없 앨 수 있다 .


4) High Speed Downlink Packet Access. W-CDMA를 확장한 고속 패킷통신 규격이다. W-CDMA 나 CDMA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와이브로와 함께 3.5세대 이동통신 방식으로 불린다.


5) 이동하면서도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

   Wireless Broadband의 줄임말.


6) 한국증권전산(Koscom), ��코스콤 30년사 1977 2007��


7) ‘선언’ 동지의 전언에 따르면 연구소에서 발간한 ��노동자 교양경제학 ��을 다음 학습 교재로 삼으려 했지만 코스콤 동지들이 책의 두께에 부담을 느껴 내용을 다시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8) 한국증권전산(Koscom), ��코스콤 30년사 1977 2007��, p. 240.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38호(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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