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의 미소는 학습지교사의 피눈물

― 임금삭감 폭력만행에 맞서다

현장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재능교육은 샐러리맨이던 박성훈이 창업자 10여명과 함께 1977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설립하였다. 2007년 ��포브스 코리아��의 집계에 따르면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은 2167억원의 주식 소유자로 한국 68위의 부자이다. 그는 60억 원의 도곡동 타워 팰리스 자택1)에 살고 있으며 3억 짜리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또 재능 사옥은 한 평당 공시 지가가 1억1300만원에 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6년 ��포브스 코리아��2) 집계를 보면 그의 동생이자 재능유통 사장인 박지훈도 635억의 주식부자이며, 35살 밖에 안된 그의 아들 박종우 이사도 484억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3) 1977년 시작은 직원 27명이던 작은 회사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교육 관련 계열사를 11개나 두고, 1992년 미국 LA에 2003년에는 중국에 현지 법인을 둔 재능그룹으로 성장하였다. 무엇이 대기업 샐러리맨에 불과하던 박성훈을 이렇게 창대한 재벌로 성장케 하였는가.



스스로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골병드는 학습지교사 노동자


박성훈 회장의 좌우명은 “교육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자(A Better Life through Better Educaion)”이다. 평생 교육을 위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해 헌신한다고 한다. 광고를 통해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학습이라는 재능교육의 선전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착취를 통해! 1980년대까지 학습지 업계는 성장 일로를 걸었고 학습지교사는 고정급을 받는 노동자였다. 그러던 것이 1989~1991년에 걸쳐 과외금지 조치가 완전 해제되어 학습지의 독점력이 약해지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자본은 자신들의 경쟁의 희생양으로 학습지 노동자를 내세웠다. 실적에 따른 수당지급을 골자로 하는 위탁계약제를 도입하여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였다. 재능 교육 사측 문서에는 위탁계약직 도입 사유를 “사원 개인에게 돌아가는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회원 수 증가에 비례하여 교사수가 급증함에 따라 발생하는 인사관리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4) 위탁계약서를 실제 업무 내용과 다르게 완전한 위임계약으로 바꾸기도 하고, ERP시스템을 통해 재택근무나 인터넷 학습시스템을 구축한다.5) 단지 학습지교사의 수입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다. 자본은 학습지교사를 허울뿐인 개인사업자로 만들어 자본의 항시적인 필요에 따라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였다. 학습지교사는 노동자성조차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되었다. 학습지교사들은 기본 보수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동 강도를 높여야 하고,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아침 일찍 나와서 사무업무를 보도록 만든 것을 마치 강제가 아니라 본인이 필요해서 나오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 학습지 노동자는 밤 10시 11시까지 노동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회원들의 회비와 탈퇴한 회원들의 회비까지 대납해가며 일해야 한다. 교묘한 술수로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알아서 척척척 재능교육이다.

 


재능교육 동지들의 투쟁사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도도한 물결 속에 학습지에도 노조가 설립되었다. 재능에도 1989년 노조가 설립되었으나 사측의 위탁계약제 도입으로 노조가 와해된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강화된 착취에 곳곳에서 학습지 노조가 설립된다. 재능에서는 1999년 9명의 동지들이 발기인이 되어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9인의 부당해고 철회와 민주직장 쟁취를 위해 싸웠고 파업을 통해 용역깡패와 맞서며 노동자 계급으로 단련되어 갔다. 재능 파업은 전국지부로 확산되었으며 부산에서는 점거투쟁도 하였다. ‘학습지교사도 노동자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노동조합의 깃발을 날렸다. 파업투쟁을 통해 노조설립신고필증을 쟁취해내었다. 2000년 7월에는 위탁계약직 최초로 사측과 임단협을 맺었다. 수도권은 90%에 육박하는 조직율을 보일 정도로 노조에 대한 학습지교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2001년 회사 측의 회비 인상 시도를 막아내는 것을 성공시켰고, 임금 인상 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다.6) 투쟁을 통해 9명이었던 조합원은 3800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사측의 집요한 반격이 이어졌다. 2001년 임금협약 체결 이후 8억 9천만원 가압류가 들어왔다. 학습지 노조는 가압류 해제를 목표로 싸워야만 했다. 그와 함께 중간 교사들(계장 라인, 교사들 가운데 관리자급)을 별도의 사업부제로 만들고 조합원들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노조탈퇴가 전제조건이었다. 이를 초기에 막아내지 못하자 6개월 사이에 조합이 위축되고, 조합을 탈퇴하거나 회사를 아예 그만두는 노동자가 생겼다. 12명에 대한 회사의 계약해지를 막아내지 못할 만큼 노조는 힘에 겨웠다. 1000단위로 모이던 집회대오가 2002년 단협 출정식에는 150으로 줄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정종태 동지는 단식과 거듭된 투쟁으로 생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005년 2월 10일 운명하였다.7) 또 같은 해 2월 2일에는 서울 금천지역국 여성 노동자 서모 교사가 자살을 하였다. 그녀는 운명하기 전에 사직을 결심하였다. 1월31일에는 어머니에게 미수금을 채워야 한다며 20만원을 빌려달라고, 운명하던 날에는 위약금 300만원을 내야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울며 매달렸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모르던 한 여성노동자는 그렇게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힘겨운 상황에도 재능 동지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2006년 비정규직법 개악안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에서 제외하였다. 재능 동지들은 단사의 투쟁에 갖히는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해 활발한 연대투쟁을 전개하면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지켜낸다.



최소한의 생존권도 위협하는 신수수료제도


2007년 5월 17일 수수료 삭감이 포함된 신수수료제도가 임단협에 합의된 이후 수수료삭감 반대투쟁이 전개된다. 학습지산업노동조합 지도부가 공청회도 없이 합의안을 상정하고 충분한 설명도 없는 상태에서 51% 찬성으로 합의안이 가결된 것이다. 이에 재능지부는 지부장사퇴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꾸리고 투쟁에 나서게 된다. 학습지교사 노동자가 받는 수수료는 사실상 임금과 다르지 않다. 교사마다 50%를 받기도 하고 35%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학습지교사의 근무 조건이 아니라 ‘일하는 조건’의 적용을 받으며 ‘회사출근’이 아니라 ‘사업장 방문’을 해야 한다. 기존에도 있지도 않은 가짜 회원을 만들어서 자신이 그 회비를 부담해왔던 학습지 노동자는 신수수료제도로 인해 더욱 열악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100여만 원까지 임금이 삭감된다. 처음에는 사측의 신계약서 작성 강요를 40%의 교사들이 거부했다. 그러나 사측은 교활했다. 해고협박과 조합원 비조합원 갈라치기를 통해 신계약서 작성을 강요해 30여명을 제외하고 신계약서를 작성하거나 퇴사한다.8) 탄압 속에서도 재능지부는 신수수료 제도에 맞선 투쟁을 당당히 전개해 간다.



명예시인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의 두 얼굴

명예시인 VS 구사대 폭력


박성훈 회장은 2008년 4월 11일 한국시인협회가 명예시인증을 수여한 세 번째 명예시인이 되었다. 박성훈 회장은 1991년부터 전국시낭송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시를 보급하였고, 지역 문화활동 및 봉사활동에도 앞장선다고 한다. ‘장애인을 위한 시낭송 공연’도 하고 소외계층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시낭송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9) 홍보용 사진에 등장하는 박성훈 회장은 더없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대외적으로 더없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가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한 번 보자.

재능지부는 ‘재교섭은 없다’는 사측에 맞서 2007년 12월 21일 천막농성의 닻을 올렸다. 바로 그날 구사대를 동원해 천막을 다 펼치기도 전에 다 부숴버린다. 연대대오와 함께 그날을 비닐도 없이 차가운 바닥에서 버티어 낸다.10) 구사대는 천막을 부수는 것은 물론 피켓, 개인가방, 스티로폼, 난로 등 모든 물품을 강탈해 간다. 구사대의 폭력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노무 관리 팀장이 진두지휘하며 “내가 다 책임질게 부숴버려. 저 새끼들 뭐야 다 치워버려”11)라는 언사를 내뱉고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밥 그릇 때문에 같은 노동자를 폭력으로 탄압하는 자본의 도구가 된다. 5월 18일에도 농성장 침탈이 있었다. 지난 9월 30일에도 사측은 천막농성 285일차 되던 날 50명 이상의 구사대를 동원해 천막을 다시 침탈한다. 선전전을 진행하던 2인을 고립시키고 2명밖에 없던 농성장을 트럭까지 동원해 침탈한다. 사전 연습이 잘 되어있던지 손발이 ‘알아서 척척척’ 맞았다. 고립된 노동자들은 욕설과 폭행을 견디어 내야 했다. 놀라운 것은 구사대에는 여성 노동자도 섞여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연대대오와 함께 농성 사수 투쟁을 전개하고 날이 밝은 10월 1일 출근투쟁을 전개했다. 웬지 구사대들이 출근이 늦다 싶었는데 재능 사무직 직원들이 혜화동 언덕에서 오와 열을 맞추어 위협적인 기세로 내려왔다. 일부는 술도 덜 깨서 악취를 풍기며 꼬인 혀로 횡설수설 하였고, 욕설과 폭행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명자 지부장 동지가 실신하여 119에 실려 갔다. 8년 째 해고투쟁을 하는 황창훈 동지는 손을 심하게 다쳤다. 그런데도 혜화서 대학로 지구대 경찰은 쌍방폭행으로 몰아가려 하였다. 이미 4월 4일 집회 중에 혜화서 경찰은 대오를 폭력침탈한 바 있으니 그런 식의 교활한 대응은 이미 예견할 수 있는 바였다. 굴하지 않고 10월 2일 오전 10시 반부터 집회를 갖고 힘으로 천막을 다시 설치하려 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번에는 혜화서가 아니라 서울 시경 병력이 동원되어 천막 농성을 하던 자리를 사전에 선점하였다. 구사대는 등을 돌리고 버티며 혹시라도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인원을 철저히 차단하였다.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은 용역깡패 1인 일당 10~15만원이 아까운지 사무직 직원을 구사대로 동원해 이사를 통해 진두지휘하며 노동자의 투쟁을 짓밟으려 한다. ‘지역문화활동및 봉사활동’에 조예가 깊은 명예 시인 박성훈 회장은 지역 주민을 동원해 ‘주택가 집회를 금지시켜달라’는 플래카드를 걸게 한다. 천막을 다시 설치한 다음 날인 10월 6일 박회장은 벤츠를 타고 늘 그랬던 것처럼 9시 10분경 출근하였다.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에 너희가 이러는 것이 회사 어렵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말끔하게 생긴 그의 아들 박종우 이사는 묵묵부답으로 출근한다. 어디에도 홍보용 사진에 등장하던 온화한 미소는 없다.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임금삭감하고 구사대를 통한 폭력탄압이 이어지자 6500명에 달하던 재능교사는 5000여명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박회장 일가의 재산은 줄지 않았다. 그들이 누리는 부는 어디에서 왔는가? 박회장의 만면에 가득한 미소는 구사대의 폭력에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우울증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의 피눈물이다!



2중 3중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해방으로 가리라


박정희 정권 말기 공황의 시기에 가발제조업체인 YH무역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투쟁이 전개된다. 200여명의 노동자들의 투쟁에 파쇼 정권은 폭력으로 응답했고 1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태에 이른다. 이에 곳곳에서 시위와 투쟁이 이어졌고, 부마항쟁을 촉발하게 되어 결국에는 철권 박정희는 총에 맞아 죽는다. 단사의 투쟁이 극악무도한 파쇼정권의 종말을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8년 다시금 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재능지부, 기륭전자, 코스콤, 강남성모병원, KTX, 뉴코아, 콜트-콜텍, 하이텍 알씨디, 장고법개악저지와장애인노동권쟁취를위한공동투쟁단 ... 아직도 투쟁은 각개약진하고 있다. 투쟁은 장기화되고 고립분산화되고 희망과 전망은 가리워진 듯하다. 그러나 단사의 투쟁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탄압을 뚫어 낼 물줄기가 될 수 있다. 3800명이었던 조합원들 중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남아 있는 소수는 끝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투쟁하고 있다. 조합원만의 투쟁이 아니다. ‘학생이면 공부나 해라’는 구사대의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헌신적인 연대를 지속하고 있는 노동해방학생연대, 전국학생행진,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동지들이 있고 장기투쟁사업장을 비롯한 연대대오가 있다. 소산별 학습지 노조에 유일하게 임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재능지부의 투쟁은 단사의 투쟁이 아니다. 언제든 모순의 결절점이 되어 후퇴한 정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 위탁관리와 수수료제 그리고 신수수료제를 통한 2중3중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투쟁은 노동해방의 깃발을 다시 올리는  발걸음이 되리라. <노사과연>


1) 재능교육 교사가 333년 동안 노동하고 한푼 쓰지 않아야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재능지부 유인물 “부자 회장님!! 가난한 선생님!!”)


2) 최근 400대 부자 순위를 보는 것은 유료이기에 부득이하게 지난 통계를 인용한다.


3) 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지부의 홈페이지 게시글에 따르면 젊은 이사 박종우는 재능인쇄 재능유통, 재능컴퓨터 등의 재능 자회사 주식에 따르는 배당금으로 재산을 불려왔다. 원문글은 아래 사이트를 접속하면 볼 수 있다. http://jeitu.nodong.net/maybbs/view.php?db=jeitu&code=headlinenews&n=40&page=3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지부의 새로운 홈페이지는 http://jaenung.org 이다.


4) 윤애림, 「특수고용 노동자의 특성과 노동자성 쟁취 투쟁의 방향」, ��질라라비�� 31호(2005년 10월), pp. 11-12.


5) 김혜진, 「노조활동 탄압하는 자본의 공세를 넘어 공동투쟁으로!」, ��질라라비�� 31호(2005년 10월), pp. 27-28.


6) 「열사의 외로움을 씻어주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뿐이다」 —재능교육교사노조 정종태 열사를 만나다, ��질라라비�� 55호(2007년 10월), p. 25.


7) 같은 글, pp. 26-27.


8)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 동지 인터뷰, ��노동자정치신문��, 2007년 12월, p. 10.


9) 네이버 재능교육 카페에서.


10) 당시 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nid=45658


11) 참세상 영상속보뉴스, “연봉 1억 김효순 선생님 vs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오수영 선생님”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nid=47328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39호(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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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 학습지 ,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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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창

    참세상은 어떤행동이 참세상인지 잘 판단해 주세요 ^^
    이런 글들이 참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며 확실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을 이렇게 방치하는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네요 ...

  • 안철진

    운영위원이라는 작자가 이따위 글을 쓰다니,,,
    법치국가에서 법을 무시하고 판결에도 불복하면서까지 온라인을 통해서 이런 유언비언을 유포하는건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참세상과 진보넷은 깊이 반성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 김정웅

    세상에 이런 글을 올린 참세상은 어떤 생각을 가진 메체인지 알 수가 없네요.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은 참언론매체라 할 수 없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박성훈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문화운동에 앞장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을 이렇게 매도하는 글을 여과없이 올리고 사실과 다른 내용인 기사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참세상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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