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지난 10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지난 10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교과서 포럼(뉴라이트계열), 국방부, 대한상의가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했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보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주요 검토의견<��조선일보��, 2008.10.31.>

(교과서)출판사

수정요구기관

교과서 원문

교과부 검토의견

금성출판사

교과서

포럼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분단의 원인을 외인으로만 해석한 서술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삭제 혹은 수정이 바람직.

국방부

제 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시행한다(미군 포고령 1호)

조선 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여러분들의 수중에 있다(소련군 포고문)  

구체적 방침인 포고령과 포고문을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자료교체가 바람직

교과서 포럼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의의 및 정통성에 대한 보충 서술이 필요.

교과서 포럼

이처럼 광복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오는 우리 현대사를 옥죄는 굴레가 됐다.

“우리 현대사를 ... 됐다”는 지나치게 주관적이 견해로 수정필요  


고등학교 때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사들은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고, 그래서 역사책의 뒷부분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필자는 이 기사를 보며 교과서가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먼저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미군 포고령 1호와 소련군 포고문이다. 역사적 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포고령은 자신이 일본 제국주의를 대신하는 미제국주의 군대로서 점령군임을, 그리고 소련 포고문은 자신들이 조선인민의 해방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소련군이 기차 안에서 애기가 자기에게 오줌을 싼다고 따발총으로 쏘아서 죽였다느니, “나는 공산당이 싫다”는 이승복 이야기 밖에는 없던 내가 배우던 교과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아무튼 소련의 포고문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미군의 포고령을 읽고 그들이 점령군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 예속된 정권으로서 “자료교체가 바람직”하다고, 즉 글을 삭제하라고 협박할 만한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할까?

저들은 또한 자신들이 분단을 원했음을 보여준다.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되었다”라는 금성교과서의 글에 대해 “분단의 원인을 외인으로만 해석한 서술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삭제 혹은 수정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저들의 주장대로 분단의 원인이 외인이 아니라면, 내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인민’들이 분단을 원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 즉 지배계급들 밖에는 없고, 결국 자신들이 분단을 원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는 교과서의 주장에 대해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의의 및 정통성에 대한 보충 서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 이는 결국 분단을 위한 총선거였으며 그 결과 탄생한 대한민국은 분단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 저들이 “의의와 정통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이 바로 분단을 원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기는커녕 친일파는 친미주의자로 변신하여 미제의 비호 아래 대한민국정부를 세우고 권력을 손에 쥐었고,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전두환으로, 그리고 이명박까지1), 일제식민지에서 미제의 신식민지로 그저 식민지 모국만이, 그리고 식민지 통치의 방식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것은 이제 상식이 되지 않았는가? 이 과정은 1%의 지배계급에게는 부와 권력의 역사, 영광의 역사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자긍심”2)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인민”들에게는 교과서의 주장처럼 “광복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일 뿐이었고 생존자체의 시련이요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4.3 제주항쟁”에서, 한국전쟁에서 수백만의 “조선인민들”은 세계역사에 기록될 학살을 당했다. 4.19혁명으로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으로 분출한 민중들의 투쟁도 미제가 지원한 군부쿠테타에 의해 꺾여버렸고, 군사파쇼의 폭정에 신음하고, 노예적 굴종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시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송전탑으로 오르고 한강다리로 올라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제 몸을 사르는 투쟁이 비일비재한 참혹한 현실의 뿌리는 바로 이 땅이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고 패배와 굴욕, 그리고 오욕의 역사이다. 거기에 영광과 자긍심이 있다면 바로 대한민국정부와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일 뿐이다.

이명박과 뉴라이트 등 극우집단은 일제가 조선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인정하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가 하면, 박정희를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주역으로 숭배한다. 저들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그들로서는 타당한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세력이고,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의 저항을 극복(!)하고 분단을 통해 반도 이남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노동자ㆍ민중의 거센 저항을 파괴하며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며 착취와 수탈을 통해 거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진정 간난의 세월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에게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준 일제와 미제를, 이승만, 박정희를 숭배하고, 이 모든 것의 응집체로서의 대한민국에 ‘무궁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써라. 그것은 당신들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8.15광복절 행사를 대한민국 건국절로 바꾸고 기념하라. 대한민국은 미제의 신식민지이기 때문에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의 “광복절”은 사실 없는 것이다. 그것도 당신들의 자유이다.

그리고 이것을 분명히 하자. 우리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아무런 미련도 없고 권리도 없고, 그리고 아무런 의무도 지고 싶지 않다. 우리는 단지 이 반도땅에 우리의 역사, 노동자ㆍ민중의 투쟁의 역사, 해방의 역사를 쓸 것이다.   

끝내기 전에 한마디 더하자. 금성교과서는 말한다. “이처럼 광복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오는 우리 현대사를 옥죄는 굴레가 됐다”라고. 그러나 친일파의 청산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는 친미파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현대사를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노사과연>


1)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2) ��조선일보��, 2008.10.31. 이날 심은석 교과부 학교정책국장은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정신,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 등을 고려해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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