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사건의 본질과 투쟁의 방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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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불과 며칠 앞둔 1월 20일, 용산에서는 참극이 벌어졌다. 적절한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망루 점거 농성을 벌이던 전철연 소속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려던 경찰관 1명이 불길에 휩싸여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아직도 철거촌과 철거민이 있다는 것, 용역과 경찰에 의한 강제 철거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사망한 철거민과 경찰관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고 있다.

언론들에 따르면 참사가 벌어진 용산4구역은 2006년 4월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되어 작년 5월 관리처분인가가 난 상태였다. 철거가 끝난 이후에는 최고 40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3개 동과 업무용 빌딩 3개동이 들어설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건물에 세를 든 점포와 주택은 각각 434개, 456 세대로 주택 세입자들은 이사비(99㎡ 기준 100만원)와 4개월 치 집세(4인 가족 기준 1,400만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고, 상가세입자들은 2007년 6월 7일 이전에 영업하던 상인들에 한해 3개월 치 수입을 보상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 액수로는 기존의 생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상태였다. 용산 지역뿐 아니라 서울 곳곳이 이미 뉴타운 등 대단위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집과 상가의 값은 오를 데로 오른 상황이었다. 또 상인들의 경우, 입주하였을 때 납부한 권리금에 대해서는 보상이 없고 추가로 설치한 인테리어비나 설비비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감정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용산 지역의 상가, 주택 세입자들은 작년 3월 경 철거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 전반에 대해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용산구청을 상대로 집회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에 대해 용산구청은 협상 테이블 자체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용산구청장은 대학생 재학시절부터 임광토건 전무이사로 출발해 남양진흥기업(주) 이사, 동영개발(주) 사장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2년부터 이듬해까지 용산구의회 초대 도시건설 상임위원장을 지낸 건설자본가 출신으로서, 자신의 출신 성분대로 행동하였다. 용산구청은 이들을 떼잡이로 몰아대며 이미 많은 보상을 해주었는 데도,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로 취급하고 그같은 문구를 구청앞에 커다랗게 전시하였다. 용산구청장은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철거민들을 폄하하며 용산 개발이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보통 3-4년이 걸리던 사업시행 인가가, 용산4구역의 경우 조합 설립 이후 4개월만에 난 것을 보면, 분명 용산구청장의 활약상은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 현장에서는 용역깡패들이 작년 여름부터 상주하면서 일상적인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하루 빨리 공사에 들어가길 원하는 조합과 시공사(삼성물산, 대림, 포스코)는 용역을 통하여 철거를 밀어붙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세입자들 중 80%정도는 반강제적으로 이미 떠난 상태였다. 용역들의 횡포와 세입자 간에 마찰이 끊임없이 발생하였지만, 이것은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로 다루어졌고, 경찰은 민원의 형식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개발 초기에는 개별적으로 법이나 행정 민원을 통해 해결해보려고 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궁지에 몰린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망루를 세워 최후의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언론에 따르면 1월 19일 오전 5시경 약 30여 명의 세입자들과 전철연 회원들은 한강대로변의 한 건물을 점거하고 시공사, 구청이 함께 생계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용역들과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방해하였지만 결국 망루가 세워지고 이 투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가 싶었다.

그러나 1월 20일 새벽 5시경 용역과 의경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다. 경찰특공대는 전문가들 답게 크레인에 컨테이너 박스를 매달아 현장에 직접 투입, 진압을 시도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망루가 화염에 휩싸이면서 허무하게 철거민 5명과 진압경찰 1명이 사망하였다.


누군가 그랬듯이 철거민들은 살려고 올라갔는데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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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영세상인들이다. 여기서 영세 상인들이란, 노점상 만큼 열악하고 법 외에서 비공식적으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언론에서 보도된 대로 어엿한 사장들이다. 이번 사건에서 기소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의외로 이러한 상인들이 많으며, 이들은 횟집, 금은방, 호프집 등을 운영하였다. 과거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철거민들은 주로 산동네에서 일용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연상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들에게 ‘빈민’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들은 계급적으로 보자면 소부르주아지들로서 그 하층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자영업자라 불리는 사람들이며, 이들 중 일부는 어엿한 주택을 가지고 있기도 하는 등 과거의 ‘빈민’의 개념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중산층 중 하층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오랫 동안 도심지의 귀퉁이에서 단골손님을 가지고 있었으며, 적어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할 수준보다는 상위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근 영세업자들의 주요 업종들이 독점화되어 거대 유통기업들이 장악하게 되고,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점차 위축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른바 “IMF 외환위기” 직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계급 중 일부가 영세 자영업이나 노점상에 가세하면서 그들끼리의 경쟁도 심해지게 된다. 여기에 최근의 경제 공황은 이들의 주요 고객들인 노동자계급 및 하층 서민들의 지출을 압박하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적 상황도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최근 자영업자의 폐업은 극히 심한 상태인데, 2월 13일 통계청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두달간 폐업한 자영업자는 4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위태한 상황들에 치명적인 사건 하나가 터지면 이들은 곧 몰락하게 된다. 요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심지 개발은 바로 이러한 상인들에게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최근 재개발 단지에서 주요 저항 세력은 몰락 직전에 놓인 영세상인들이었다. 전철연을 비롯한 철거민 단체 중 영세상인들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으며, 이번 투쟁에서 연행자들의 대다수는 상가 세입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지역은 자신들의 생계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머무를 수 없는 것 자체가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수단의 박탈을 의미한다. 업종별, 규모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한데 모여 단결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들이 격렬한 투쟁에 선봉으로 서게 된 것은, 그만큼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보상책은 각 언론들이 보도한 바대로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에도 그다지 제기되고 있는 바가 없다. 상가의 특성상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고 기존 관행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거대 자본과 이들을 대리하고 있는 조합 측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경제 위기의 상황이라면 자본 측은 더욱 서두를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들 간의 대립 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이전까지 나름의 중간계층의 생활을 영위하였던 영세 상인들도 차츰 몰락해 가고 있으며, 다른 계급과의 연대가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용산 상인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국가와 자본에 대립하게 된 것은 결국 소부르주아지를 몰락시키는 끊임없는 자본주의적 경향에 기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산은 미군 기지 때문에 그다지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군대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집창촌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가들이 밀집된, 저개발된 도심지였다. 따라서 일부 곳곳에서는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구도심지의 성격을 가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군 기지 이전이 전격 발표되고 이른바 건설 자본을 구제하기 위한 뉴타운 사업이 곳곳에서 벌어지자, 교통 좋고 도심지에 위치한 용산은 커다란 이윤이 보장되는 황금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인근에 용산민자역사와 지하철 역이 있고 국제업무단지가 있는 등 용산4구역은 용산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평가받는 곳이었다. 이와 더불어 참사 하루 전에 서울시는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기 위한 거대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경인운하가 합정까지 이어지고 용산은 150층짜리 건물이 즐비한 빌딩숲과 공원이 어우러지는 명소로 소개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용산을 포함한 한강변의 건물들에 대해 초고층 빌딩의 건축을 허가하였다. 당일날 일간지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는데 한 일간지는 “미리 가본 2016년 한강변”이라는 감상적인 기사를 올리기도 하였다.1) 이렇게 대자본이 밀집되고, 마천루가 어울리는 장소에서 영세 상인들이 차지할 자리는 없게 되었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투사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이 지적하였다시피 어쩌면 용산사건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특히 노후한 도심지에서 오랫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이 사업들의 주요한 처리대상일 것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하여 거칠게 저항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투쟁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른 하층 계급과 공동의 행보를 취하도록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용산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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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하자, 이명박 정권은 원칙적으로는 유감을 표시하였지만 태연한 척을 하며 검찰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수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이명박 정권은 은근슬쩍 모든 공을 검찰에게 넘기는 시늉을 보였다. 검찰은 사건 조치부터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으며 수사 전담반을 꾸렸다. 그러나 초반부터 수사를 거의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검찰은 정확한 조사를 한답시고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였으며, 유족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부검을 실시하였다. 사건 현장의 조사는 ‘외부에서 눈치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누가 어떻게 조사를 했는 지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진실은 가려져 있고, 모든 정보는 검찰에게 독점되어 있으며, 이들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나 ‘정황상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생존자들의 증언들이 연이어 매스컴에 출현하였지만 그다지 수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수사는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에는 전철연 등 철거민 단체의 와해 공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이번 사건의 수사는 바로 전철연에 대한 표적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농성에 참여한 생존자 중 5명을 구속․기소시켰으며, 이 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알려진 용산철대위 위원장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농성에 참여한 15명도 불구속 기소가 된 상태이며, 전철연 사무국장 등에 대해서는 소환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검찰은 장례식장에 머물고 있는 남경남 전철연 의장의 검거를 공언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 철대위 사무실도 기습 압수수색을 실시하였다.

반면 경찰과 용역업체에 대한 조사는 매우 미온한 편인데, 용역업체를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를 소환했으나 특별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지 일부 인터넷 매체와 MBC의 한 시사 프로그램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아 일부 용역업체 직원들 7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 조사는 이렇듯 결정적인 증거가 외부에서 공개될 때에만 수사를 하는 등 이들의 행보는 너무나 거리낌이 없었다.

한편 검찰의 수사 관리 대상 중 하나인 경찰은 이번 사건이 자신들에게 그다지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수없이 말바꾸기로 일관하였다. 자신들의 수하 조직이나 관계 조직들에게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등 유치하고 치졸한 방법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또한 군포 살인 사건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려다 적발되어 곤혹을 치르는 등 잔인하고 악랄한 짓도 서슴치 않고 있다. 워낙 인터넷이나 매체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들은 곧 폭로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구차한 변명만을 일삼아 왔다. 물론, 이들이 기자회견이라는 공식 석상에서 밥먹듯이 되풀이한 말바꾸기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죄에 해당되지 않았다.

수사는 이렇듯 정해진 대로 짜깁기의 연속이었고 2월 9일 수사 결과 발표를 끝으로 대단원의 쇼는 마무리됐다. 검찰은 “더 큰 공공의 손해가 생길 수 있는만큼 전문성을 갖춘 경찰 특공대를 투입한 조치가 불합리하고 위법한 조치라고 할 수 없으며 화재는 시너와 화염병으로 저항한 농성자들의 책임으로, 경찰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진압 작전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재의 원인이 누구한테 있는 지는 밝힐 수 없다는 것도 덧붙였다. 결국 철거민의 대량 기소와 조금 실수를 저지른 용역의 불구속 기소로 수사는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사망하였는 지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오직 철거민들의 구속과 철거민 단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만이 진행되었을 따름이다. 조사가 마무리되자 그간 절대 목을 굽히지 않았던 김석기 경찰청장은 사임하였다. 경찰이 죄가 없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의 사임은 당당한 것이었고 이명박 정부와 경찰의 축하를 받으며 퇴임하였다. 이렇게 검찰 조사는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철거민들의 여죄를 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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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동조자로서 용역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 철거를 맡은 회사는 호람건설과 현암건설이라고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 이러한 용역회사의 직원(?)들이 사실상 깡패, 건달들이라는 것은 파다하게 알려진 것인데, 이번 사건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 ��시사 IN」 74 호는 이들이 목포에 있는 조폭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으며, ‘용산 대책위’에서는 “다원건설(악명높았던 적준용역의 후신)과 쌍벽을 이루는 참마루건설로부터 2006년 갈라져나온 업체”라고 밝히고 있다(1월 25일 기자회견문). 이 업체들은 연매출액이 40억원대에서 70억원대에 이르고, 일시 동원할 수 있는 인력만 2천-3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공가에 불을 지르거나 벽에 위협감을 주는 낙서질을 하며 장사를 하는 가게에 들어가 손님을 위협하고, 때로는 직접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등 기간 내에 어떻게든 주민들을 퇴거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용역 깡패의 짓거리들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단 한차례의 공식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더욱 번창하게 된 배후가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이들의 뒤에는 먼저 자본이 있었다. 이 용역회사들은 시공사였던 삼성․포스코․대림과 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2) 이 계약서에 따르면 “2008년 5월 30일에 구청 인허가가 났는데 공사 시한은 6월 30일로 한 달 사이에 강제철거를 종용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다(「참세상」 2월 7일 자). 지급하기로 한 액수는 51억 원이며 기한 내 철거를 끝내지 못하면 하루에 510만원(계약금액의 1/1000)씩 조합에 지체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어떻게든 시일을 지키고자 하는 용역 깡패들은 따라서 더욱 위협을 가하는 행위들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인맥은 자본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특정 건설회사는 특정 용역업체와 계속 계약을 맺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것은 인맥관계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은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용역들을 고용했고, 용역들은 돈을 벌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다지 법에 저촉된 점은 없다고 한다. 경비업법과 행정대집행에 관련한 법령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마땅치 않다고 한다. 즉, 그들의 폭력은 합법이다. 단, 이번처럼 과도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자본은 소위 “민사”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이 직접 “공권력”이 되어 이윤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에 대해 적절히 공무를 집행하고 수행한다. 건설자본의 이러한 용역깡패들과의 긴밀한 결합은 사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어떻게 돈을 벌어내는 가를 보여주는 단편일 것이다. 자본은 시장 질서에 따라 등가 교환을 원칙으로 하여 적절하게 이윤을 얻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등가 교환의 원칙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추찹하고 더러운 것들이 거의 언제나 깔려 있는 법이며, 오히려 등가 교환은 그러한 배경 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자본은 자본인 한에서 성격이 동일하다. 용역들은 철거현장에서만 그 유례가 깊은 것은 아니다. 각종 구사대, 노조 탄압의 현장에 이들은 늘 있어 왔고, 그 뒤에는 언제나 자본이 있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들이 더욱 대규모적으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현대중공업 굴뚝 농성시 물품의 반입을 금지시켰던 것도,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진입 투쟁을 막은 것도,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철거시킨 것도 모두 이러한 용역업체들이며, 깡패ㆍ건달들이다.

용역들은 단순히 자본의 비호만 받지는 않는다. 그 뒤에는 또 ‘공공’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기구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본과 긴밀히 결탁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깡패ㆍ건달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 용산 사태의 경우에는 불미스럽게도 언론을 통해 ‘불법’적인 결탁 내용이 드러나서 문제시되고 있다. 민주당은 1월 23일 사고 당시 무전 내용을 폭로했는데, 진압 과정에서 용역과 경찰이 합동 작전을 편 내용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또 사고 당시 영상을 녹화한 인터넷 매체들의 자료들로 인해, 용역들이 유사 경찰 방패를 사용하였고, 경찰의 비호 아래 물대포를 장시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이 크게 ‘불법’적인 것은 아니거나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2월 9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무전 내용은 ‘오인’에 따른 것으로 실제 용역이 투입된 것은 아니며, 신임 경찰청장은 그날따라 무전기를 꺼놓았다고 하며 로그인 증거는 보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유사 방패는 용역직원들이 아닌 경찰이 사용한 것이라 한다. 불행히도 MBC의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용역이 물대포를 쏜 것이 정확히 포착되어 이 용역만 처벌될 예정이다. 또 폐타이어를 태웠다는 증거가 나옴에 따라서 관련 용역은 처벌될 것이지만, ‘방화죄’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쇠파이프를 사용하고 주민들을 위협한 것은 경찰에 민원으로 접수되어 처리 중인데, 아직까지 용역업체는 관련된 사항으로 처벌 받은 것은 없고, 오히려 이미 사망한 70대의 노인이 가해자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한다. 등등등. 용역업체에 대해서 이토록 처벌이 관대한 것은 이들이 자본과 국가의 가장 말단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은 대부분 ‘합법’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국가는 타격을 입게 된다. 소위 ‘공공성’의 허울이, 이윤의 원천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결국 용역 업체는 단 두명 정도만이 처벌받게 될 것이다. 국가는 보통 경찰과 같이 겉으로 드러난 질서유지 집단이 하기에는 더럽고 치사하고 구차한,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들에 이들을 투입하여 왔다. 이 과정은 자본을 배후에서 비호하며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국가가 손수 앞장서서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노점상 철거이다. 노점상 철거와 단속을 할 때 보통 발주를 하고 용역 계약을 맺게 된다. (구 단위에서는 보통 1억원대인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 액수는 알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이 깨끗할 리는 없다. 다만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노점단속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공무원들이 챙기는 떡고물도 있다.) 최근 서울시는 노점상에 신고제를 도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쓰고 있지만, 거기에는 막대한 돈을 들인 용역 깡패의 단속이 배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용역 깡패들은 한마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부류들이며, 계급적으로 규정한다면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류들은 자본주의가 기생적인 성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많아지게 되며, 이제는 하나의 업체나 산업으로까지 존재하고 있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떠돌이 빈민층으로 거의 일을 하지 않으며 취업의사도 없고 범죄ㆍ성매매 등으로 그날그날 끼니를 얻는다. 따라서 이들은 산업예비군과도 다르며, 노동자대중에게 공공부조의 무거움을 짊어지게 할 상대적 과잉인구층의 피구휼계층과도 다르다. 맑스는 이들의 자유분방함이나 과격함을 칭송하는 무리들을 경계하였는데, 과거 4․19혁명 때와 같이 자본주의가 미발달한 당시에는 이들도 정권에 저항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으나,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전한 지금,  매수당하는 것을 직업적으로 하게 된 반동적인 집단들이다. 이들이 최근 활기를 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사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중 젊은 상대적 과잉인구층에서 끌어내려진 자들로서 노동할 의욕이나 가능성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조건에 처한 이들로 충원된다. 계급 투쟁이나 생존권 관련 저항들이 곳곳에서 격화될수록 이들에 대한 자본이나 정권의 수요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반노동자ㆍ민중적인 성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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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과정과 이명박 정권의 태도가 전혀 굽힐 기세를 보이지 않고 도의적인 자세마저 취하지 않자, 또 용역 업체와 건설 자본, 행정당국이 서로 야합하고 한패거리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자, 대중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분노의 움직임은 한층 가열차지고 있다. 사람이 6명이나 사망하였다는 사실 자체도 매우 고통스러운 것인데, 이 사건에 대한 수사 또한 너무 질 낮게 편파적인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작년 촛불 집회보다 운집하는 사람들의 수는 다소 적어보이지만 그 기세는 더욱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매 집회 때마다 물리력, 폭력 사용을 둘러싼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강자와 약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확연히 드러난 이상 물리력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 명동 성당 앞에서는 최근 볼 수 없었던 격렬한 가두 투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경찰은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물대포를 동원하여 시위대들의 해산을 종용하였지만, 오히려 분노를 불러 일으켜 보도블럭이 내던져지고 투석전이 장시간 지속되었다. 어떤 선량한 시민이 투석전을 몸으로 막는 퍼포먼스도 벌였지만 곧 진압(?)되었다.

촛불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여론도 뜨겁다. 검찰 수사가 명백한 허위라는 사실이 인터넷 언론을 통하여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도 하였다. 검찰은 이 인터넷 언론사가 동영상 원본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폈는데 오히려 인터넷 언론사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매주 마다 집중 집회가 열리고 있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대응도 한층 바빠지고 있는데 청계광장은 이제 상시적으로 경찰차에 폐쇄되어 있다. 그러나 대중은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를 벌이며 투쟁을 가리려는 이명박 정권을 압박해 나가고 있다. 차츰 거대한 대결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워낙 자극적이며 선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쟁은 더욱 공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으며 격렬해질 수 있다. 구호는 자극적이며 모든 것은 이명박에게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촛불 집회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 경험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산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이 사건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보다 구체적이고 시기 적절한 전략전술을 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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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단체들은 이 사건에 분노하면서 이 원인을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로 돌리고 있다. 즉 이명박 정권이 1980년대로 회귀할 정도로 서민을 억압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건이 발생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때로는 과거 정권과 비교를 하면서 더욱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폭로하는 전술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보통 철거민들을 일차적으로 제압하는 것은 용역깡패이다. 경찰은 단지 사적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망루 투쟁이 있을 때 일차로 진압하는 것은 용역이었으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때서야 경찰이 투입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경찰 특공대가 망루 투쟁 단 하루만에 투입되었다. 또한 진압 시 지켜야 할 자체 내규를 지키지 않았으며, 농성장에 방어용으로 준비해 놓은 시너 등 인화물질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진압작전에 돌입하였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자체 내규에 의하면 농성 진압시 농성자들이 물리력을 모두 소비할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이번에는 농성 단 하루 만에 작전을 폈다고 한다. 또 유류 화재가 발생하였음에도 불을 끄기 위해 어처구니 없게도 물을 부은 것도 한 도마에 올랐다. 최근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번 진압 작전에는 경찰이 사설 용역업체와 합동 작전을 폈다는 무선기록이 있으며, 이 용역업체는 경비업법에 따라 등록도 되지 않은 무허가 업체라는 것도 알려져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특히 2005년 오산 세입자 예를 들고 있다. 당시에도 격렬한 투쟁이 벌어졌는데, 투쟁 과정에서 용역 한 명이 숨지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었다. 그때 경찰의 작전은 철거민들이 화염병 등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기에 ‘무리없이’ 철거민들을 제압하는 것이었으며, 작업 지침을 그대로 잘 따랐기 때문에 경찰과 철거민 양측 모두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철거민들은 죽지 않은 채 진압당했고 그들은 현재 중형을 선도받아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철거민과 빈민들의 삶은 갈수록 열악해졌고, 이들의 투쟁은 늘 있어왔지만 언제나 억압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다만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은 현재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을 포섭하였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다. 2년 전 이주 노동자들은 쇠창살에 갇힌 채 불에 타 숨져갔고, 최근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간다고 한다. 또 돈이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해 가거나 경제적 상황이 힘겨워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용산 참사는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그 희생자 대부분은 빈민이라 불리는 이 사회의 최하층이라는 점에서, 또 끔찍하게 화재로 인해 사망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원인을 단순히 절차상의 문제라든가 ‘무리’한 진압 작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 사건은 매우 이례적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자본주의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성을 덮어둘 우려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공안사범 및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수3)이다.



공안사범의 경우 줄기차게 늘어가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무려 7만여명을 넘어섰다. 반면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수도 줄어들긴 했지만 계속 존재하고 있다.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은 나름대로 그간 오랫 동안 문제시 되어왔던 국가보안법 상의 검거수는 매우 줄여나갔다. 그러나 다른 법상으로 끊임없이 노동자ㆍ빈민․농민 투쟁을 탄압하고 억압해왔다. 일종의 눈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공식적인 법망을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 공정한 법집행의 외관을 만들어 왔으며, 여기에는 노동자들의 가장 약점인 각종 손해배상 청구 등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치졸한 방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방식과 외관상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조금이라도 위협을 가하는 세력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 공통된 점이며 본질이다. 오히려 용산 참사에서 발견되는 사실들은 그동안 잠재되어 있고 은폐되어 있던 것들이 순식간에 폭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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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본주의적 정권의 속성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지금이 공황 시기라는 점이다.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으며, 곳곳에서 일자리를 둘러싼 마찰들이 벌어지고 있다. 쌍용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의 대량 해고의 우려가 차츰 현실화되고 있다. 아직까지 투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고립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든 대규모 투쟁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게다가 대중들은 작년 촛불집회의 경험을 통해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광범위하게 인식하였고 정권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이제 익숙해 있는 상태였다.

공황상태가 심각해지자 자본을 살리기 위한 정권의 행보도 빨라졌는데, 이미 2월달에 최대한 빨리 비정규직 법안을 개정하겠다는 한나라당과 청와대 간의 협의도 끝난 상태였다. 민주당 역시 원론적으로는 비정규직 법안을 반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당론에서 차이도 없고 어쨌든 장외 투쟁을 접고 장내로 들어온 이상 야당과의 극한 대립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된 상태였다. 공황시기 노동계를 잠재우기 위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것은 이제 기술적인 절차만 남았을 뿐 행동에 돌입하면 되는 문제였다. 이러한 시기 이명박 정권은 만약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계급 투쟁이 목전에 와 있기 때문에 기선 제압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1월 19일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랐을 때, 경찰은 전철연을 희생양으로 공권력의 위엄을 보여줄 작정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고립되고 격렬한 투쟁방식으로 온건한 시민․사회단체에게도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전철연의 망루투쟁은 어쩌면 정권에게는 공안정국으로 몰고 갈 기회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특히 서울 거의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곳곳에서 세입자들의 저항이 조직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이 강성으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용산 사건을 어떻게 진압하느냐는 정권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추어 사건 발생 전날까지 언론들은 용산 점거 투쟁에 대해 주로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2년만에 다시 등장한 ‘화염병’을 위주로 다루었으며 1월 19일 법무부 차관은 공권력의 엄정 집행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의 벼랑 끝 전술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월 10일 상가․주택 세입자들을 위한 후속 대책을 내놓았지만 보상비 상향 조정이나 순환개발 방식 ‘추진’, 분쟁‘조정’위원회 신설 등 현재에도 ‘추진’만 되고 있는 사안이나 결국 힘과 자본력 싸움으로 끝나버릴 애매모호한 ‘조정’ 등, 실효성 있지 않은 것들만이 제시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오히려 2월 16일 서울시는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14개 지역 재개발조합에 융자를 해줘 뉴타운 사업을 적극 앞당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주거 문제는 늘 열사가 탄생되면 그때마다 조금씩 개선되곤 했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정권은 시늉조차 내고 있지 않다. 이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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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대응은 범대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범대위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검찰 조사에 대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와 병행하여 매주 주말 대중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집회는 폭발력은 있지만 아직까지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 보도의 횟수도 갈수록 줄어들어 가고 있고 용산참사가 회자되는 곳은 집회라기보다는 기자회견자리나 국회로 한정되어 가고 있다. 이런 경향으로 간다면 용산참사는 최악의 경우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법정투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반면 민주당․창조한국당․민주노동당 등 “야권”은 이 정세를 국회 안으로 끌어당기며 반 MB 전선 구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활용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4월 재․보궐 선거가 앞에 다가옴에 따라서 정당들의 움직임이 선거에 치중될 것은 확실해 보이며 모든 활동을 선거 결과에 수렴하려는 노력이 심해질 것이다. 추상적인 이명박 반대의 구호로서는 대중들의 투쟁이 자칫 선거나 일반적인 이명박 반대 세력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따라서 당면한 시기에 이명박 반대의 세력들을 결집함과 동시에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목표를 다잡아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 사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의 구체적인 주체를 세워내고 이들을 중심으로 투쟁 전선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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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선 먼저 빈민단위가 이번 투쟁의 주체로서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한다. 빈민단위는 1990년대말 이후 고립분산적인 투쟁을 벌여왔다. 임대주택 제도가 과거에 비해 확대되고 대규모 재개발 단지 조성이 마무리된 조건이 일정정도 작용하였지만 무엇보다 노선 및 투쟁 방식 상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분열되었던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며, 또한 그 바탕에는 철거민이 단일한 계급이라기보다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이합집산되어 있는 계층이라는 데에 기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산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점은 최근의 상황들은 이들의 차이는 매우 사소한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오히려 공통 기반이 확대되고 연대투쟁할 수 있는 정세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개발이 최근 무차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도심지를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재개발로 인한 폐해는 더욱 밀집되고 격렬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의 경제 공황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영세상인들은 다른 생계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또 소규모 아파트 및 임대주택 관리비를 내지 못하는 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체납율이 급증하고 있으며, 퇴거 위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도 점차 증가되어 가고 있다. 반면 건설자본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과잉생산으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 돈이 되는 사업을 빨리 해치워야 살 수 있다는 절박감에 몰려 있다. 국가는 이들을 위해 임대아파트 건설 의무 규정을 없애는 등 각종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의 부도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들은 주거 및 생계와 이윤을 놓고 자본 측과 노동자․영세상인 간의 생존권을 두고 벌어지는 거대한 투쟁이 벌어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곳곳에서 자생적인 세입자 대책위나 영세상인 대책위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일부 정당이나 다소 진보적인 변호사 단체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각종 소송을 준비 중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다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잘못 알고 있거나 누락되어 받지 못했던 혜택을 미약하게나마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극빈한 사람들이다 보니 소송에 걸리는 비용이나 기간 문제도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게 된다. 또한 용산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법은 결코 빈곤한 사람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기껏해야 약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뿐 곧 극한적인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보장을 조금만 해준다 하더라도, 워낙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 사태가 파급되어 건설자본과 국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례적이고 선별적으로 특별한 보상이나 혜택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용산사태 이전에는 지역별, 철거민별로 워낙 사정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합집산의 양상을 보이면서 분산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의 사례들은 이들을 점차 격렬한 투쟁으로 몰아 가고 있는 데 비교적 온건한 형태로 주거권 운동을 해 왔던 주거연합의 경우에도 세입자들이 용역들에게 구타당하고 경찰서에 연행되는 사태들이 반복되자 차츰 활동이 격렬해지는 양상을 보일 정도이다. 이들이 공동 행보를 보이거나 집단 행동을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며,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으며, 공동 집회조차 제대로 열고 있지 못하다.

또한 그간 빈민운동에서 막강한 조직력을 발휘하였던 노점상 단위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들은 용역들과 언제나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철거민들과 비슷한 경제적 처지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사안에 따라 연대투쟁한 경험들이 풍부하다. 그러나 노점상 조직 중 핵심인 전노련의 경우, 최근 지도부의 부패 행각과 정부당국과의 야합 혐의 등이 있어 평회원들의 불만이 높아져가고 있으며, 참사 당일 집회와 1월 31일 빈민대회에 조직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조직 내부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배경에는 정부 당국 및 지자체의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덧 뿌리깊게 박힌 조직 관료화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산 참사 사건은 이러한 노점상 단체에도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용역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생계가 어려워지는 노점상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절박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빈민들은 주로 노동자계급 하층과 상가 세입자 등 다양한 구성들을 보이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공동의 행보를 강력하게 펼쳐낼 주요한 단위로 판단된다. 그들 자신들의 문제와 용산의 사안이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핵심 주체로서 자신의 투쟁들을 용산 사안을 통해 결집하여 풀어내어야 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원칙 수준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용산 사건을 통해 결집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법정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이들의 생계는 매우 비관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용산 사건의 해결은 곧 이들 생계의 해결이자 이명박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 원칙적인 투쟁의 성과로 수렴될 것이다. 따라서 빈민 단체들은 보다 결속력 있는 단위로 결집해야 하며, 기자회견이나 집중 집회에 함께 결합하는 수준을 넘어서 일상적인 타격 투쟁을 줄기차게 벌여나가는, 용산 투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대중들이 함께 결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라도 일상적인 시기에 용산구청과 삼성물산 등의 건설자본을 줄기차게 압박해 나가는 집중적인 실천 투쟁이 현재로서는 매우 필요하다. 현재 주말 집회의 집중 투쟁과 더불어 빈민 단위들의 일상적인 투쟁이 결합되어야 이 투쟁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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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를 통해 자본과 정권, 용역깡패 등이 야합된 것이 드러났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들의 사소한 차이도 사라지고 차츰 하나로 수렴되어 가는 경향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나 용산에서 죽어간 세입자나 자본, 국가에 대해서는 맞설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거대한 계급 간의 대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각종 검찰 수사나 경찰들의 짓거리들, 그리고 수많은 실증 자료가 있음에도 수사에 반영되지 않는 모습, 사람이 죽었어도 이에 대해 어느 것 하나 개선책도 내놓지 않는 상황 등, 이제 계급 간 싸움은 논리를 벗어나 육박전으로 치달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자계급은 일부 비정규직 투쟁을 제외하면 전국 뿐 아니라 현장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한 빈민단위들은 계급 투쟁의 전국적인 전선을 확대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확인한 바처럼 법이나 국가 모두 우리의 편은 아니다. 지나치게 법적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일관적이고 일상적인 투쟁을 벌여나간다면, 또 집중 집회 때 모든 차별받는 계급들이 어우러져 자본가를 타격한다면, 용산 참사에서 사망한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1) “미리 가본 2016년 한강변은…

1) “미리 가본 2016년 한강변은…

   “이렇게 멋진 한강변도 몇 년 전까지는 우중충한 회색 아파트가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7년 전 서울시가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한강 접근성, 조망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뒤부터 한강 일대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상하이나 두바이, 홍콩 같은 세계적 대도시보다 스카이라인이 더 아름답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됐습니다.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 템즈강변 못지 않게 더 볼거리도 많고 즐길거리도 많은 관광명소가 됐지요." 가이드의 설명에 J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매일경제�� 1월 19일 자)


2) 계약서에는 ‘공사감독관’으로 삼성물산(주) 대표이사 이상대, 대림산업(주) 대표이사 김종인, (주)포스코건설 대표이사 한수양을 명시하고 있다(��참세상�� 2월 9일 자).


3) 이 그래프는 ��조선닷컴��에서 캡쳐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자료를 근거로 들면서 공안 당국의 비중을 감소시켜 이같이 공안사범이 늘어났다는 희한한 논리를 쓰고 있다. 그러나 만약 ��조선일보��가 주장하듯이 공안 당국의 비중이 줄어든 상태에서 이같은 ‘실적’을 올렸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조직 효율성 면에서 노무현 및 김대중 정권은 훌륭한 성과를 남긴 것이다.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43호(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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