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대공황과 현 정세의 몇 가지 특징 ―안팎의 도전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제5차 총회를 맞으면서

I

I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차별에 항거하여 수 명의 노동자들이 산화해간 노동열사정국의 끝자락에 형성된 이른바 ‘탄핵정국’에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니 바로 그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남구현 등 부르주아 강단 맑스주의자들의 ‘수구세력 반대’라는 미명 하의 굴신, 그리고 그에 영합하여 노동자계급운동의 독자성도 대의도 서슴없이 내팽개치며 적대하던 박성인, 이은숙 등등 ‘투사들’의 패거리주의와 결별하고 노동사회과학연구소를 설립한 지 만 4년. ― 어떻게든 노동자계급의 과학, 독자적 정치노선을 곧추세우고 지키고자 달려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오늘 제5차 총회를 맞는 회원 여러분의 가슴에 새삼 감회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만, 그리고 아직도 대반동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소수파’인 처지에 있지만, 그 동안 연구소는 양적으로도, 그 사상 이론적 수준에서도, 그리고 따라서 이 사회의 노동운동에 대한 음양의 영향력에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한 해는 특히 그러한 성장이 두드러진 해였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 두께부터 두툼해졌을 뿐 아니라 그 내용 역시 크게 치열해지고 알차진 기관지 ��정세와 노동��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응을 과학적으로 해명ㆍ제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의 역사와 성과를 부정하면서 노동자 대중을 몰역사적인 소부르주아적ㆍ관념적 급진주의로 오도하고 있는 청산주의와 투쟁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서 ��공황과 사회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오랜 산고 끝에 발행된 연구소의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제1호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운동에 진지하게 참가하고 있는 인사와 단체라면 누구도 ��정세와 노동��이나 ��노동사회과학�� 등을 통해서 표명되고 있는 우리 연구소의 견해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없고, 그것을 지지하거나 그에 적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연구소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연구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회원 여러분들의 노력, 특히 그 동안 말 그대로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일부 회원들의 치열한 노력 덕택이었습니다. 서로 감사하고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욱 정진하자고 다짐해야 하겠지요.



II


여기까지는 연구소 자체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연구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주지하는 것처럼, 노동자계급의 처지도 노동자계급운동의 상황도 모두,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결코 그렇게 만만다행하지가 않습니다. 아니, 특히 국내의 노동자계급운동은 1980년대의 투쟁을 통해서 다시 일어선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안팎의 여러 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공황이 심화됨에 따라 그 부담이 가혹하게 전가되고 있는데도 대응에 속수무책일 뿐 아니라, 사실상 해방에 대한 정치적 전망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더욱 심각하게는 자본의 분열ㆍ매수공작에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III


대공황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나 사업가들, 정치가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의 경험에 가위 눌린 나머지 ‘공황’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는 것조차 그토록 꺼려 왔습니다. 제2차 대전이라는 대파괴ㆍ대살육에 힘입어 지탱되었던 1960년대까지의 ‘장기호황’ 기조를 1970년대 초까지는 ‘케인즈주의 혁명’이니, ‘수정자본주의’니, 아예 ‘혼합경제체제’니 하는 기만적 개념으로 규정하면서,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이제 공황 없이 영구번영할 것처럼 떠들어댔고, 1970년대 이후에는 만성적 과잉생산 기조와 확연해진 주기적 공황에 시달려오면서도 기만적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즉 신자유주의를 막무가내로 선전해오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인데,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심화돼가고 있는 세계 대공황을 맞아 현 사태가 ‘1930년대 이후’, 혹은 ‘제2차 대전 이후’ 최대의 공황임을 공공연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독점자본주의적이면서도, 즉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대규모로, 더 적극적으로 국가기구와 재정을 동원하면서도, 공기업 등의 공적 자산을 사적 독점자본의 소유로 돌리기 위한 기만적 이데올로기, 독점자본에 가해진 일체의 규제를 배제하고 소생산 근로대중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위한 기만적 이데올로기, 허위 이데올로기였지만, 그토록 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간섭ㆍ규제를 반대하던 저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저들인데, 이제 파산에 직면한 대금융기관, 대독점기업에 대한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 지원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유화만이 이 위기를 타개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또 그렇게 실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공황의 규모와 양상을 보면,1) 그것은 각국 정부의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조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대적으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편에서의 과학기술혁명으로 대표되는 비약적인 생산력 발전과, 다른 한편에서의 노동자ㆍ민중에 대한 착취ㆍ수탈의 신자유주의적 강화에 의해서 격화되어 왔으나,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정책과 장치들에 의해서 미봉되면서 그 대대적인 폭발이 미뤄져 오고, 그리하여 더욱 심화되어 왔던,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이 1930년대의 그것 이상으로 결정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그 안에서 발전해온 생산력이 더 이상은 양립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취득 사이의 모순이 폭력적으로 폭발”2)한 것으로서, “부르주아지에게는 더 이상 근대적 생산력을 관리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며, 그 관리를 위해서는 “부르주아지는 없어도 좋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3)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부르주아 스스로 고백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부르주아지가 그 능력을 잃은,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생산력에 대한 관리는 생산수단에 대한 그들의 사적소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관리 능력이 없는 사회의 일부 계급, 부르주아지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이것이야말로 공황의 궁극적 원인일 뿐 아니라, 갈수록 극심해지는 노동자ㆍ소생산자 대중의 빈곤과 대부분의 고통ㆍ비극의 원인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애초부터 자본의 본원적 축적, 즉 소생산자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로부터 출발한 생산양식이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자본주의에 의해서 발명되고 개량되는 “기계가 노동자계급과 싸우기 위한 자본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노동수단이 노동자의 손으로부터 끊임없이 생활수단을 쳐서 빼앗으며, 노동자 자신의 생산물이 노동자를 예속시키기 위한 도구로 변하게”4)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갈수록 대량화ㆍ심각화 하고 있는 실업문제,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자들의 파산 등등이 모두 그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이 그것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폭로된 조건에서 사회가 취해야 할 조치는 당연히 그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를 독점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부터 사회의 소유로 옮기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도 부르주아적ㆍ국가독점자본주의적 국유화, 특히 오늘날 당면한 파산을 모면할 목적으로 저들이 요구하는 “일시적인 국유화”(temporary nationalization)가 아니라 생산자들, 즉 노동자들의 집단적 소유로 옮기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적 상태를 지양하고,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는 계획경제 체제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물론 스스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 소유권의 수탈에 완강하게 폭력적으로 저항할 것입니다. 그 소유권은, 단지 생산력에 대한 관리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막대한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그리고 소생산자들을 수탈하는 물질적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를 독점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부터 사회의 소유로 옮겨야 하는 역사적 사명은 누구에게보다도 우선 노동자계급에게 주어져 있습니다.5) 그들이 주력부대ㆍ선도부대가 되고 그들과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몰락해가는 소부르주아 하층을 동맹군으로 삼아 그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러한 역사적 임무를 담당하도록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가 만들어낸 세력입니다.6)

그런데 오늘날 상황은 어떻습니까?

목하 대공황이 엄청난 생산수단을 파괴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고, 더 이상 평온하게는 지속될 수도 없다고 웅변하는데도, 그리하여 수천만, 수억 노동자의 생존권을 유린하며 노동자계급에게 서둘러 그 역사적 사명의 수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데도, 세계 어디에서도 그 진군의 외침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존권이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대공황이라는 상황을 맞아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국의 일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고, 또 간간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외침도 들리지만, 대중적 차원에서는 대개가 아직 경제투쟁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활동가 운동의 차원에서는 대중적 지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현상이며, 정세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앞에서 저는 우리 모두가 그 동안 어려움을 극복하며 연구소를 성장시켜 온 데에 대해서, 그러한 서로의 노력에 대해서, 서로 감사하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운동의 상황을 보면, 우리는 반성하고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해방이라는 “사업의 역사적 조건들과, 따라서 그것의 본성 그 자체를 규명하고, 그리하여 행동해야 할 사명을 띤 오늘날의 피억압계급에게 그들 자신의 행동의 조건들과 본성을 의식하게끔 하는 것,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이론적 표현인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7)인데도, 우리는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그러한 임무 수행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며, 특히 그 동안 목표사업으로 정관에만 규정되어 있었을 뿐 역량 부족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국제사업소위원회’를 구성, 국제적 활동에도 힘껏 나설 것입니다.)



IV


앞에서 잠깐 지적했습니다만, 국내의 정세로 오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우선, 지난해 초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래 파쇼적 지배와 민중 생존권 파괴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어떤 조직적이고 위력적인 반격투쟁도 없습니다. 그러한 반격투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할 어떤 정치적 주체도, 대중조직적 주체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치적 주체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진보정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ㆍ민중을 (소)부르주아 제도정치의 협소한 틀 속에 가두려 하고 있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정당과, 대중적 기반을 갖지 못한 좌익적 지식인들 중심의, 대개는 몰역사적이고 청산주의적인, 그리하여 사실은 그들이 주관적으로 표방하는 바와 상관없이 사실은 반공주의적인 소규모 ‘정치조직들’입니다.

대중조직적 주체와 관련해서 보자면, 지난 70년대ㆍ80년대 운동의 최대의 성과인 민주노총이 있습니다만, 민주노총의 역사는, 주지하는 것처럼, 그 상당한 양적인 성장과는 반대로, 정치ㆍ사회의식적으로는 (전위적 지도가 없는 조건에서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듭된 후퇴와 후퇴의 역사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민주노조운동, 민주노총은 조합 간부들의 관료주의와 무사안일주의, 무기력, 그리고 심지어 일부 간부들의 배신과 타락, 분열에 적잖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엔, 계급적 억압과 착취 때문에 뒤틀린 세상에서는 사실상 항용 발생하는 일이긴 하지만,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운동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까지 발생해 극우 조ㆍ중ㆍ동 등 극히 위선적인 도덕군자들의 악의적 조롱거리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조직구성상 그리고 성격상 그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부 대형 노조들(―물론 그 관료주의적 집행부―)이 사실상 노골적으로 노사협조주의적 소위 ‘제3노총’, 혹은 ‘제3의 노동운동’ 건설 논의를 공공연히 얘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러 있습니다.8)

노동자 대중운동의 이러한 상황은 사실, 특히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ㆍ붕괴의 영향도 있고 해서 청산주의와 개량주의, 각종의 소부르주아적 개혁사상들이 발호하고 있고 팽배해 있는 등 운동이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사상ㆍ이념적으로도, 그리고 확립되고 검증된 전위정당 노선을 거부하는 등 조직노선 상으로도 1980년대보다 훨씬 후퇴해 있는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9)

청산주의와 개량주의라는 소부르주아적 사상ㆍ이론의 주요 포지자이자 재생산자이고 유포자들인 수많은 강단 맑스주의자들 및 노동운동 내부의 지식인 활동가들의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사상ㆍ이론이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와 ‘오류’에 대한 분석 및 비판적 성찰의 결론인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적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소부르주아로서의 그들의 계급ㆍ계층적 지위와 국가보안법, 그리고 바로 그 국가보안법 하에서 지배적인 담론들, 즉 그들 자신이 포지하고 있고 유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담론들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있어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와 ‘오류’는 자신들의 그러한 사상ㆍ이론의 연원을 은폐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구실일 뿐입니다.

아무튼 이런 운동 상황 속에서는 변혁적 정치조직이 성장하기 참으로 난망하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대공황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속에서도 대중은 변혁의 전망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V


극우 ��조선일보��(2009. 3. 14.)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서울지하철노조 초대 위원장을 지낸 배일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복수노조가 예정대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 근로자들의 현실적 요구와 동떨어진 정치파업만 일삼던 민주노총은 소수 노동운동가만의 단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방해가 예상되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며 “합리적이고 조합원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새로운 노동단체의 모델이 확립되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의 합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대의 예언자 같은 자신감에 찬 발언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들의 주관적 자신감에 찬 발언들일 뿐입니다. 저들이 눈을 뻔히 뜨고도 청맹과니처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의 현 파국,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더 이상은 결코 ‘평온하게’ 진행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격화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모순입니다.

민주노총이 “근로자들의 현실적 요구와 동떨어진 정치파업만 일삼(아)” 왔다는 저들의 진단도 정말 터무니없거니와, 지금 정세는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대공황으로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이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고, 파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 속에서, 사실상 마지못해서이지만 그나마라도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어떻게 “소수 노동운동가만의 단체로 전락할 것”이며, 저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또 다른 어용노총이 될 ‘제3 노총’ 혹은, 저들의 표현을 빌리면, “합리적이고 조합원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새로운 노동단체의 모델”에 어떻게 “민주노총 ... 소속 노조들의 합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겠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특히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ㆍ붕괴 후에 조성된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망 상실, 장기간의 대반동으로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국내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가변적이고, 더구나 대공황은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황이 무르익으면, 1987년에 배일도 씨 자신이 시대의 도구가 되어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의 선두에 섰던 것처럼, 그리고 1930년대에 자본주의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결사적으로”10) 투쟁하고 나섰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아니, 앞에서 인용했던 엥겔스 식으로 표현하면, “몰락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무기력 상태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과학과 역사적 정치적 전망을 불어넣기 위해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것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투쟁, 그 방법, 그 경로는 물론 지난할 것이며, 상황의 현실적ㆍ구체적 전개 그 자체에 의해서 규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공상적이지 않다면, 그렇게 예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 기본적 노선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대강을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20세기 초에 러시아의 선진 노동자들, 선진 활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난 80년대에 우리의 선진 활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 대중 속에 들어가서 노동자 대중을 ‘의식화’시켜야 하고, 그를 통해서 선진 노동자들, 선진 활동가들 자신을 재의식화해야 하며, 자신들과 대중을 조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관료화되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노조간부들에게 매달릴 게 아니라, 그렇게 의식화되고 조직된 노동자 대중으로 그들 간부들을 포위해야 하고 강제해야 합니다.

둘째, 방금 얘기한 노동자 대중과 선진분자 자신들의 ‘의식화’와 직결되는 것이지만, 이데올로기 활동, 독점자본의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조작에 대항한 여러 형태와 방법을 통한 선전활동, 여러 형태와 방법을 통한 학습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독점자본의 대형 대중매체가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끊임없이 왜곡ㆍ조작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조건에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활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셋째, 이 역시 이데올로기 투쟁의 주요 부분의 하나이지만, 20세기 초의 러시아 선진 노동자들이 여러 형태의 청산주의, 지식인 활동가들의 극좌적 경향과 투쟁했듯이, 여러 형태의 현대의 청산주의ㆍ극좌적 경향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화려한 혁명적 언사를 구사하지만, 사실은 대중 속에 패배주의ㆍ허무주의ㆍ냉소주의ㆍ반공주의를 유포하면서 노동자계급운동을 오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20세기 초의 러시아 노동자계급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동자 대중에 튼튼히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철의 규율을 가진 정치조직의 획득을 현 전략적 시기의 최대의 목표로 삼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치조직 없이는 올바른 정치적 전망도, 올바른 정치적 투쟁도, 투쟁의 성과의 축적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 시기 노동자계급에게야말로 실로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밖에는 없습니다!


1) 애초 일반적으로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규정되고 있었지만, 그러한 규정은 이제 사실상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 ‘금융위기’ 자체가 사실은 전반적인 과잉생산 공황의 한 폭발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해졌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한 어느 나라 하나도 이 격렬한 공황을 비켜가고 있지 못하고, 갈수록 유럽과 일본에서의 전개양상이 미국에서의 그것을 무색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F. 엥겔스,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MEW, Bd. 19, S. 219.


3) 같은 책, S. 221.


4) 같은 책, S. 217.


5) “... 세계 해방의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근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이다.”(같은 책, S. 228.)


6)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인구의 대다수를 더욱 더 프롤레타리아로 바꾸어감으로써, 몰락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이 변혁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력을 만들어낸다.”(같은 책, S. 223.)


7) 같은 책, S. 228.


8) 이러한 ‘제3 노총’ 혹은 ‘제3의 노동운동’ 건설 움직임은 물론 자본과 조ㆍ중ㆍ동 등으로 대표되는 극우언론ㆍ극우세력, 변절자들의 대대적인 지지ㆍ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극우언론은 최근, 주지하는 것처럼, 민주노총 때리기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고, 정치의식이 낮은 노동자 대중을 체제 이데올로기의 포로로 삼고 이들과 소부르주아 대중으로부터 민주노총을 고립시키기 위한 허위 이데올로기 작업 또한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2009. 3. 9.)는 “민노총 지도부 향한 진짜 노동자들의 분노”라는 기만적이고 악의적 제목의 기사에서, “현장과 괴리된 과도한 투쟁노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언제 도살당할지 모르고 배부른 돼지이고자 하는 일부 타락한 조합간부들에게서가 아니라, “진짜 노동자들”에게서 나오고 있으며, 따라서 소위 ‘제3 노총’ 혹은 ‘제3의 노동운동’이라는 “민주노총 극복론”이 사실은 그들 타락한 조합간부들의 음모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개혁”인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의 민주노총의 사태가 그 지도부의 투쟁 회피와 무기력에서가 아니라 “지나친 투쟁노선”으로 인한 “파업 피로증” 때문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ㆍ선전하고 있습니다. 극우 한나라당 (전)의원으로의 대표적인 변절자인 배일도 전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의, 같은 날 같은 지면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흥미’가 있습니다. “인천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고, 서울지하철노조 역시 정연수 신임 위원장이 ‘사회공헌’과 ‘합리적 개혁’‘에 근거한 ’제3의 노동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 인천지하철노조, 현대중공업 노조 등에서 잇따라 노조가 기존의 ‘투쟁적’ ‘이념적’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런 변화는 진작에 왔어야 한다. 시기적으로 보면1997년 외환위기 때 노동운동이 좀 더 합리적으로 변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당당하게 이번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노동조합의 본분은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러한 노조의 본분을 잊고 이념적 투쟁에 매몰되면서 조합원들의 불만이 쌓여 왔고,..”운운. ―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노동조합의 본분은 조합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사람이 같은 입으로 ”노동운동이 좀 더 합리적으로 변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당당하게 이번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노동조합에게, 노동자들에게 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예가 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9) 과거 운동의 일부 지도자의 (소)부르주아 정치가로의, 심지어 극우 정치가로의 ‘전향’ㆍ변신은, 바로 그러한 전향ㆍ변신 때문에 현재의 운동에 적어도 선진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문제로도 되지 않습니다.


10) “1930s Depression: Red-Led Working Class Fought Like Hell”,Challenge, January 14 2009. 개량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이 역사적 맥락도 모른 채 ‘찬양’하며 지향하고 있는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사회복지제도’ 혹은 ‘사회보장제도’도 사실은, 사민주의의 선물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지향한 바로 이러한 결사적인 투쟁의 의도하지 않은 성과―혁명을 예방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마지못한 양보―일 뿐이었습니다.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44호(20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