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의 논리, 꼬붕의 행패 ― 북의 위성 발사를 둘러싼 소동에 대하여

I



I


북의 인공위성ㆍ로켓 발사를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동해상에 정찰기와 정보ㆍ전투함정들을 배치하는 등 2개월여 동안이나 금방 전쟁이라도 날 듯한 소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그렇게 2개월여나 끌어온 소동, 의도적인 군사적ㆍ정치적 긴장 조성이 4월 5일의 발사 이후에도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소동의 하나는 로켓 발사 그 자체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북이 4월 5일의 발사를 통해서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느냐 못했느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후자, 즉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느니 못했느니 하는 논쟁이야 상당 기간 평행선을 달리겠지만, 당장 그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낼 제도적 장치도 기술적 장치도 없는 마당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 슬그머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 논란은, 논란 당사자들의 아무리 커다란 정치적 위신, 정치적 자존심이 거기에 달려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커다란 정치적 후과(後果), 특히 지속적인 후과는 별반 수반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논란은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기술적인 것, 즉 로켓 제작과 관련한 북의 기술적인 수준 및 로켓의 비행궤적을 추적하는 미군이나 일본군의 기술적 수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켓 발사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우선, 미국과 일본 등은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 압박 결의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주도의 “PSI(대량파괴무기 확산 방지구상) 전면 참가를 적극 검토 중에 있다”고 공언하는 것처럼, 미국도 일본도 그리고 한국도 대북 봉쇄ㆍ‘제재’를 더욱 강화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을 둘러싼 일체의 정치공작, 이데올로기 공작이 그렇듯이 그것은 대중의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의 북에 대한 인상과 정치적 선입견ㆍ잠재의식, 그에 기초한 ‘정치적 판단’을 규정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ㆍ독점자본의 괴력의 대중매체들이 수많은 반제국주의 지도자들을 악마의 이미지로 덧칠하고, 대중도 자칭 ‘사회주의자들’도 그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II


북의 위성ㆍ로켓 발사 그 자체를 둘러싼 논란ㆍ시비는, ‘다른 나라는 다 돼도’, “북은 그것들을 발사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에 기초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반미ㆍ반제국주의적이지 않은 나라나 중국ㆍ러시아처럼 힘 센 나라는 다 돼도, ‘북처럼 반미ㆍ반제국주의적인 약소국가는 안 된다’는 ‘원칙’에 기초해 있다.

실제로 예컨대 극우 ��조선일보��(2009. 4. 6.)은 “왜 북한이 쏜 로켓만 제재하나”라고 물은 뒤 파렴치하게도 이렇게 대답한다.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에 대해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내세우며 합법성을 강변하고 있다. “러시아ㆍ중국ㆍ일본 등 주변 큰 나라들은 모두 쏘아올렸는데 우리가 쏘아올리는 것만 갖고 지역평화를 해친다고 몰아세우는 건 납득할 수 없다”(북한 자성남 주 영국대사)는 것이다. 북한 주장처럼 평화적 목적의 인공위성 발사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만은 예외”(정부 당국자)다.      


“북한 주장처럼 평화적 목적의 인공위성 발사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만은 예외’다”! ― 도대체 왜 북만이 예외인 것일까?

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의 제재결의안(1718호)을 통해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하도록 통제하고 있는 국가다. 인공위성이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든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는 장거리로켓 기술은 동일하기 때문에, 핵실험까지 한 북한이 ‘운반수단’이 되는 장거리로켓 기술까지 확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장거리로켓처럼 평화적ㆍ군사적 목적으로 모두 활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은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돼 있다”며 “하지만 북한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투명하지 않은 핵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차별적인 통제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식칼로 요리를 할 수도 살인을 할 수도 있지만 연쇄살인 전력이 있는 사람 손에 들려 있는 식칼은 일단 뺏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저들은 북이 “‘인공위성’으로 철저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거리핵미사일 실험용”이며, 따라서 제재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저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먼저, “인공위성이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든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는 장거리로켓 기술은 동일하기 때문에, 핵실험까지 한 북한이 ‘운반수단’이 되는 장거리로켓 기술까지 확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주장. 그것은, 아무리 그러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공위성이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든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는 장거리로켓 기술은 동일”한 것은 북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는 모든 국가에게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핵실험까지” 했을 뿐 아니라 다량의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고 해서, 심지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한다고 해서 그들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장거리로켓처럼 평화적ㆍ군사적 목적으로 모두 활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은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돼 있다’며 ‘하지만 북한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투명하지 않은 핵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차별적인 통제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거리로켓처럼 평화적ㆍ군사적 목적으로 모두 활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은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돼 있다”지만, 미국을 위시하여 위에 열거한 국가들의 ‘장거리로켓’ 기술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제3자적인, 불편부당한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단 말인가?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고, 그리하여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북 아닌가?

“북한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투명하지 않은 핵개발을 하고” 있다지만, 오늘날 핵무기를 개발ㆍ보유하고 있는 나라치고 도대체 어떤 나라가 ‘투명한 핵개발’, ‘투명한 핵무기 개발’을 해왔단 말인가?

북이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했다고 비난하지만, NPT 자체가 핵무기의 독점을 노린 강자의 논리요, 또 북의 NPT 탈퇴 자체가 핵무기의 독점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소산 아닌가? 따라서 NPT 탈퇴의 문제는 결국 핵무기 독점의 타당성 여부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핵무기의 개발과 보유 자체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주장이면 몰라도, 그리하여 핵무기의 전면적인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면 몰라도, 저들은 특정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ㆍ보유에 대해서는 사실상 눈 감고, 따라서 그것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그 핵무기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에 도전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특정 국가들에 의한 핵무기의 독점과 그에 따른 국제정치상의 불평등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옹호하고 있다.

저들은, “식칼로 요리를 할 수도 살인을 할 수도 있지만 연쇄살인 전력이 있는 사람 손에 들려 있는 식칼은 일단 뺏어야 하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누구의 로켓 기술 개발, 누구의 핵무기 개발을 먼저, 가장 문제 삼아야 할까?

“연쇄살인 전력이 있는 사람”, 상습적인 침략의 전력이 있는 국가는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오늘날 북의 위성 발사에 가장 길길이 날뛰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나 미 제국주의가 아닌가?

일본 제국주의야말로 세계 평화를 가장 심각하게 파괴한 일련의 전력이 있는 나라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오늘날에도 ‘평화헌법’을 유린하면서 ‘자위대’라는 기만적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는 저 막강한 군사력이야말로 세계평화에 대한 가장 커다란 잠재적 위협, 잠재적 도발이다. 노동자ㆍ민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 등을 통해 그 군사력의 사용에 대한 어떤 제도적 제약도 걷어내고 무력화시키려는 일본의 독점자본ㆍ극우정치세력의 책략이야말로 세계평화에 대한 가장 커다란 잠재적 위협, 잠재적 도발인 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한 나라도, 인류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핵폭탄을 그것도 두 번이나 실전에 투하하여 수십만의 인명을 살상한 나라도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과거사는 다 그만 두더라도, 미국이야말로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의 로켓ㆍ위성 발사를 가리켜 “용납할 수 없는 국제적 도발”이니,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니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뻔뻔한 협박이다.

물론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북의 로켓ㆍ위성 발사는 용납하기 어려운 ‘국제적인 도발’일 것이다. 자신들이 강요하는 불평등한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요, ‘도발’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들은,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의 제재결의안(1718호)을 통해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하도록 통제하고 있는 국가”라는 주장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소동을 벌이며 정치적ㆍ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저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에 쏘아 올린 것은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인공통신위성’이며, 그것을 운반하기 위한 로켓이다. 그 때문에 유엔결의 제1718호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북에 대한 새로운 제재 조치를 결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하게는, 저들이 내세우는 유엔결의 제1718호, 혹은 북에 대한 핵 관련 유엔의 제재결의안이란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들은 어떤 불편부당한 정의(正義)를 표현하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열강의 핵무기 독점을 고착시키고, 따라서 열강 지배의 불평등한 국제정치 질서를 영구화시키려는 열강 간 타산의 산물일 뿐이다.

북의 핵무기 개발, 핵무기 보유가 나쁘다면, 북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ㆍ보유가 나쁘다면, 그리하여 그것들이 폐기되어야 한다면, 미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의 그것들도 역시 나쁜 것이고, 따라서 역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저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 모두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아니,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그렇게 주장하지 않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저들 열강의 수만 개의 핵무기, 대륙 간 미사일의 개발ㆍ보유는 사실상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북이나 이란 같은 반미ㆍ반제 국가들의 그것에 대해서만 정의의 기사인 양 나서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이 로켓을 발사하고, 위성을 발사하면 환호성을 올리면서 중계하고 찬미하는 저들이 북이나 이란 등의 그것에 대해서는 ‘군사적 위협’이니 ‘국제적 도발’이니 하면서 온갖 비난을 퍼붓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한겨레��(2009. 4. 6.)조차 ‘사설’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발사 중단 요구를 저버린 점에서 큰 유감이다. ...

... 위성 발사라고 하더라도 국제사회 우려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위성을 띄우는 데 필요한 로켓 기술은 쉽게 장거리 미사일 기술로 전용될 수 있다. 북한은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갖고 있을을 보여줬다. 핵실험 한 나라가 이런 기술을 보유한 것 자체가 지구촌에 잠재적 위협 요인이 된다. 이번 발사는 북한의 행태에 대한 불신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한겨레��조차 사실상 제국주의 열강의 핵무기 개발ㆍ보유,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ㆍ보유는 당연시 하면서, 즉 “지구촌에 잠재적 위협 요인”이라고 적시하지 않으면서, 북의 그것만은 “지구촌에 잠재적 위협 요인”이요, 따라서 “유감”이라고, 즉 북‘만’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미국ㆍ일본 안의 강경파들은 이 결의안[=‘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 유엔 결의 제1718호]에 따라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새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주장한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 ��한겨레��가 극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문제를 전적으로 독자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강경파’가 아니라는 점 뿐이다.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는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며, “무리한 대북 제재 추구는 위협 요인 억제라는 애초 의도에서 벗어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 의지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편의주의적, 실용주의적 접근ㆍ발언이 전혀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발언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결국 깡패의 논리요, 그의 지시에 따라, 혹은 그의 환심을 살 요량으로, 혹은 적어도 그의 미움을 면할 요량으로 약자를 집단적으로 학대하는 꼬붕의 행패이다. 혹은 비굴한 꼬붕의 논리이다.



III


그러면 이렇게 의도적으로 군사적ㆍ정치적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저들이 얻으려는 구체적 목표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것은 물론 그렇게 북을 봉쇄하고 집단적으로 따돌림으로써 반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북을 고사시키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미 수십 년 동안 추구해온 바로 그 목표가 여기에서도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엔 여타의 잠재적인 반제국주의 국가들의 있을지 모를 도전에 대한 경고ㆍ위협이다. 북이 당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엄중하고도 엄중한 봉쇄ㆍ압박ㆍ제재ㆍ적대를 뚫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이 있거든 어디 도전해보라. 그렇지 않으면 얌전히 줄을 서라. 그러한 경고ㆍ위협인 것이다.

이상은 국제정치적 목표ㆍ이유이다.

그 다음엔 군비확장을 위한 구실 만들기이다. 군사적 긴장 혹은 냉전 상황은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비를 재강화하려는 데에 혈안이 돼 있는 일본의 극우들에게는 물론, 엄청난 과잉생산, 대공황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독점자본에게도 군비를 더욱 확장할 훌륭한 구실을 제공할 것이다. 북의 로켓ㆍ위성 발사를 이용하여 미국과 특히 일본이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경제적 이유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저들이 그러한 군사적ㆍ정치적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노리는 정치적 목표를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경기대의 남주홍 교수라는 사람은 “북한에 미사일은 정치 무기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대북 적대주의자들도 인정하는 ‘로켓’과 ‘인공통신위성’을 짐짓 “미사일”로 표현하는,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노리는 적대적 목적의식은 그렇다 치자.

“북한에 미사일은 정치 무기”라면,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군사적ㆍ정치적 긴장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정치 무기’이다. 저들이 기회만 있으면 북과의 군사적ㆍ정치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긴장을 통해서 국민주의, 국가주의, 애국주의를 선동ㆍ고취하고, 그것을 통해서 국내의 계급적 대립을 은폐ㆍ호도하려는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그 심화된 모순 때문에 노-자의 계급적 대립ㆍ적대ㆍ투쟁은 일상적인 것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이 대립과 적대ㆍ투쟁을 일정한 한계 속에 억눌러두어야 하는 것은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최대의 난제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언제나 ‘평화’의 이름으로 반제 국가와 군사적ㆍ정치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그리하여 국가주의ㆍ애국주의를 선동ㆍ고취하여 계급적 대립ㆍ적대를 외부로 돌리는 것, 카타르시스 하는 것은 군과 경찰을 동원한 직ㆍ간접적인 억압, 노동자계급 상층부에 대한 회유와 매수, 강력한 이데올로기 장치, 즉 대중매체 등을 통한 기타의 이데올로기 조작 등과 더불어 그러한 난제를 ‘해결’하는, 아니 사실은 그 계급적 대립ㆍ적대ㆍ투쟁의 결정적 폭발을 미루는 주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 앞에서, 그리하여 계급적 대립ㆍ적대가 격화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부르주아 국가에게 그러한 카타르시스는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바일 것이다.

참고로, 반제 국가 및 그 지도자에 대한 지속적인 이데올로기적 악마화는 대중은 물론 상당수의 자칭 활동가, 자칭 ‘사회주의자들’의 뇌리조차 깊이 각인하며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에 침공할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여러 활동가ㆍ‘사회주의자들’이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에 대해서 남긴 글들을 보라. 그 속에서 그들은 ‘제국주의의 이라크 침공’은 반대(!)하지만, 후세인은 악마 같은 독재자이다. 혹은 저들에게 구 쏘련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레닌을 제외하면, 아니 일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레닌까지도, 사실상 모두 극악무도한 독재자들이다. 자신들의 그러한 ‘관점’이 무엇에 의해서 각인된 것인지에 대해서, 대중은 물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인 저들 일부의 ‘사회주의자들’ 혹은 일부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무튼 반제 국가 및 그 지도자에 대한 지속적인 이데올로기적 악마화는 그렇게 위력적이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지금 그러한 악마화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노사과연>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45호(2009.4)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채만수 | 소장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hansub1004

    매우 공감이가는글입니다 많은사람들이 볼수있었으면 합니다

  • 글쎄

    모두의 권리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남한의 그리고 일본의, 미국의 무기 증강과 핵무기 개발 내지 확장 또한 비판하기 어렵지요. 전세계가 돈 많은 순으로 그리고 돈 없어도 무기 개발에 쏟아붇는 순으로 무장하게 되고 자위권을 갖게 되겠네요. 평화 운동이 아닌 핵무기가 해결책이라는 식은 군비 증강의 악순환이 계속되는게 해결책이라는 논리와 하등 다름 없습니다.

  • 웃기네요

    북한이 국제적으로 위치가 나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도 딱히 부정하기는 힘들군요. 그런데 그래서 북한의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소리는 납득하기 힘들군요. 북한처럼 공공연하게 국제 사회에 싸움을 거는 국가도 없는 게 사실이죠. 북을 고사시키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어디까지나 관점이 다른 부분이니 감히 정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상론따위 때문에 부정을 할 수도 없습니다. 도대체 글 쓰신 분은 현실적인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건지 의견을 묻고 싶군요. 부정만 해서 무슨 해결이 되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이 글은 무언가를 해결하려 한다기보다는 글 쓰신 분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도 싫어해 줬으면 하는 정도로 밖에 안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