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아침의 지면특강의 내용은 바오출판사에서 나온 비폭력 대화의 내용과 캐서린 한 선생님의 워크샵 등을 참고로 하여 작성이 됩니다.

들어가며

기린언어를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입장이지만 항상 기린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관들이 튀어나와 일을 더 망치거나 끝도 없이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한다. 사실은 그럴 때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머릿속으로 “도대체 비폭력 대화를 배워서 쌈 싸먹었나? 갈등해결 기술을 배워서 그것밖에 못해?” 등 지면에 미쳐 싫기 민망한 온갖 가지의 욕들이 번득이면서 가슴을 쑤셔버린다. 다행히 주기적으로 기린언어를 배우는 사람들과 만나고 일을 하다 보니 오래가진 않는다. 기린의 귀로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행이고, 혹은 기린언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기린의 언어로 통역을 하면서 자기 공감을 하게 된다. 단순히 말하는 법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강한 좌절의 나락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이번호에서는 후회가 되는 과거의 행동이나 잘못이라고 여겨졌던 부분들을 기린언어를 통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법을 알아보겠다.

우리의 특별한 존귀함을 기억하는 것

“나는 이 아이가, 자기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게 되길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점점 잃어가면서도 잃어버리는 것조차 모를 테니까요. 나는 이 아이가 깨어 있으면서 …… 이 모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가능성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이 세상을 살짝 꼬집어서 깨워주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이 아이가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낱 의자가 아니고 왜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그 미묘하고 비밀스러우면서 중요한 이유를 알기 원합니다.”

- 허브 가드너(Herb Gardner)의 연극 일천 광대(A Thousand Clowns) 중에서 주인공이 열두 살 된 조카를 아동복지당국 관계자에게 넘기길 거절하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완전하지 못했을 때, ‘잘못’이나 ‘실수’라고 하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의 한계를 알게 해주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끄는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혐오를 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그 후의 행동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게 된다. 지면특강 4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사회는 두려움뿐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을 이용해 지배하려 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잘 듣고 서열에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는 방법으로 두려움과 수치심과 죄책감을 활용한다. 스스로의 존귀함을 잊어버린 사람은 그만큼 지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자기비판들은 모든 폭력이 그러하듯,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다. 자신을 질책하게 된다면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충족되지 않은 어떤 욕구가 이런 비판으로 표현되는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평화캠프 2005에서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기린언어 워크샵을 개별워크샵으로 신청을 해두었다. 처음 기린언어를 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시작할 무렵 찬성 주민(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국방부의 토지 수용에 대한 찬성 - 자세한 내용은 지난 호 평화캠프 관련 글을 참조하세요.)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비틀거리며 찾아와서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그때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고, 우리들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게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그 분을 이해를 하려는 마음으로 공감을 잘 했더라면 워크샵 참가자들에게 좋은 모델을 보여줄 수 있었다. 참가자들과 본인의 이해와 배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못생긴 아줌마! 여기 막걸리 좀 가져와”라고 하는 아저씨를 공감할 마음의 준비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다.

그 일에 대해 스스로를 “배운 것도 써먹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워크샵을 진행한다고 하다니 참으로 뻔뻔스럽구나”라는 식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수치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 “다른 참가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기린언어는 쓸모가 없다고 느끼겠군...”하면서 의기소침해졌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정말로 기린언어로 대화하고 싶었던 참가자들과의 워크샵을 더 망쳤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미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순간에 내가 원했던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자책보다는 민망하고 안타까운 느낌들을 솔직히 표현을 했고 그 느낌의 원인인 나의 욕구들을 표현을 했고 모두 공감하면서 기린 언어의 모델을 함께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비폭력 대화로 애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했을 때 충족되지 않는 욕구와, 그 때문에 일어난 느낌에 충실히 연결되는 과정을 충분히 하게 되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 캠프에서 그 일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참가자들을 보호해야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했다. 운동장에서 촛불집회를 하던 주민 분들이 찾아와서 그 분을 달래가면서 데리고 갈 때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못했다. 그 당시 내가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 충족하고자 했던 다른 욕구(나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보호 등)가 있었던 것이다. 각각의 행동들에 대해 곰곰이 관찰해보고 그때의 충족시키려 했던 욕구들을 찾아보는 것은 애도 이후의 용서도 가능해지고 배우고 자랄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좀 더 욕구들과 조화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과 단절되어 사는 것은 이 사회가 지배 구조를 가지기 때문인 것을 지난 지면 특강 4에서 설명했었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더 지배하기 쉬운 인간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실수’나 ‘잘못’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은 지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 역시 세상이 정해놓은 목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 역시 지배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 행동 뒤에 있는 힘을 인식하는 능력을 키우기

“나는 ~을 원하기 때문에 ~을 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 선택 뒤에 있는 중요한 가치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내용이 그 선택 뒤의 이유라면 강한 저항감과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 때문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 돈을 위해서 : 모두가 알다시피 돈은 우리의 욕구나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2) 인정받기 위해서 : 인정 역시 외적인 보상 형태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도록 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그들이 싫어하거나 벌을 줄 것 같은 일은 기피하는 데에 중독되어 있다.

진정한 기쁨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 단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행동하고 그것이 성공적일 때 스스로에게서 진정으로 축하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3) 벌을 피하기 위해서 : 벌을 피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 역시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4)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서 : 자신을 질책하는 내면의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한다.

5) 죄책감을 면하기 위해서 : 다른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두려워서 행동하게 된다면 우리의 욕구를 인식하는 것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6) 의무감에서 :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을 하게 되면 막연한 죄책감과 빚진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면의 욕구와 단절시키면서 전쟁범죄자들과 군인들은 감정적인 충격이나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서 다른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도록 했었다.

덧붙이는 말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